공일오비는 누구인가?


015B(공일오비)는 1989년 정석원, 장호일, 조형곤 이 세 멤버들에 의해 결성된 밴드로써 조형곤이 미국유학후 탈퇴하고, 정석원의 군대문제로 인해 1996년 마지막 앨범인 6집(The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을 낼 때까지 약 7년동안 한국 대중음악의 한 축을 차지하며 많은 영향을 끼쳤다. 공일오비란 한자로 空一烏飛이며 글자 그대로 '공중에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간다'라는 뜻이다. 공일오비는 Slow Rap, House, New Jack Swing 등의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낯설던 장르의 음악을 계속하여 새롭게 시도하였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중가요의 여러 장르들의 발전에 공이 크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한 객원가수 도입이란 색다른 방법을 사용하여 신선함을 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될 수 있는한 TV 출연을 거부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말에 따르자면 '보여줄게 없다'이다. 그들의 화면이 아닌 음악으로 보여주겠다는 의지이다. 6집 앨범 재킷에도 나와있듯이 그들은 예술과 Technology의 통합을 꿈꾸며 그들 나름대로 장신정신으로 무장된 예술가의 길을 걸으려 노력해왔다.
공일오비의 결성은 그룹 '무한궤도'의 해체와 연관이 깊다. 당시 신해철을 리더로 한 무한궤도는 '그대에게'로 대학 강변 가요제 대상을 수상했고, 그 여세를 몰아 무한궤도 정식앨범 1집을 만들었다. 정석원은 당시 '실험실'이란 그룹의 Keyboardist로 활약하다가 그룹이 대학 강변 가요제 1차 예선에서 낙방하고 해체되자 정석원의 Keyboard Solo를 유심히 보던 신해철의 제의를 받고 무한궤도의 멤버가 된다. 무한궤도의 1집이 성공적으로 팔려나가고, 또 방송국 측에서도 여러 출연제의를 해오자 신해철은 다른 멤버들에게 Professional musician이 되어보자고 제의한다. 그러나 다른 멤버들은 자신의 인생을 음악에 걸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하나 둘 여러 가지 이유로 무한궤도를 탈퇴해 갔고, 정석원도 평소 무한궤도에서 활동하면서 신해철이 추구하는 음악이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을 느껴온 바인지라 그 역시 신해철과 이별한다. 하는 수 없이 신해철은 솔로 앨범을 내기로 결심한다. 그 소식을 들은 정석원은 그의 형 장호일(본명: 정기원)에게 함께 그룹을 만들어 보자고 제의하고, 장호일은 흔쾌히 동의한다. (장호일은 무한궤도의 무대연주에서 자주 기타를 쳐주기도 하였다.) 그들은 정석원이 무한궤도 있을 당시에 가장 친근감을 느꼈던 Bassist 조형곤과 함께 '공일오비'를 결성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음악 외의 또다른 개인적인 직업을 갖는다라는 전제아래 아마추어 뮤지션으로써 시작을 하였다.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듯이 공일오비의 특징중 하나가 객원가수 도입이다. (참고로 윤종신, 이장우, 김돈규, 조성민 등이 모두 공일오비 객원가수 출신이다.) 그 이유는 정석원의 말을 빌리자면 Vocalist 한명이 그룹을 떠났다고 해서 해체되는 약한 그룹이 되지 않기 위해서이며 또한 Vocalist를 각 노래의 분위기에 맞는 하나의 악기처럼 쓰기 위함이다. 무한궤도 앨범을 레코딩 해주었던 대영기획에서 1집을 내었는데, 멤버들, 특히 공일오비의 Brain 정석원의 '나의 음악이 최고이다.'라는 생각과는 달리 1집에 대한 반응은 처음 몇 달동안 전혀 없었다. 6월에 낸 앨범이 7, 8, 9월이 지나도록 아무반응이 없는데다 솔로 앨범을 낸 신해철의 '안녕'이 히트를 치자 공일오비는 대영기획사에서 찬밥신세로 전락하였다. 하지만 11월이 되면서 점차 반응이 들어왔고, 라디오에서도 '텅빈 거리에서'를 자주 틀어주기 시작하였다. 점점 공일오비의 인기는 올라갔고, 윤종신이 부른 타이틀곡 '텅빈 거리에서'가 히트를 쳤다. 전에는 2집 얘기는 듣는 척도 않하던 유재학 대영기획 사장이 대우를 바꾸며 2집 레코딩 날짜를 제의하기까지 되었다. 2집에서는 무한궤도에서 Drummer였던 조현찬도 참여를 했다. 2집 앨범 "The Second Episode"에서는 화제거리가 제법 많았다. '4210301'이란 노래가 처음 방송을 타고 히트를 치자 팬들은 호기심에 그 전화번호를 걸기 시작했다. 문제는 '4210301'이 환경오염에 대한 노래로 그 전화번호는 환경처의 번호였다. 계속 아무것도 모르는 공일오비 팬들로부터 전화가 와 업무가 마비되자 환경처에서는 대영기획사에 강력히 항의한 후 전화번호를 바꿔버렸다. '4210301'에 영어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이유로 방송금지조치가 내려지자 후속곡으로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히트를 쳤다. 그 노래는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낯설었던 한국말로 된 Slow Rap이었다. 'H에게'는 윤종신이 당시 대학에서 3년동안 짝사랑하던 여학생에게 부른 노래로 그 노래를 들은 (2집 앨범이 나오기전) 그 여학생은 밤을 새며 눈물을 흘리고, 윤종신의 데이트 신청을 받아주었다고. 그외에도 '이젠 안녕', '친구와 연인' 등이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3집 "The Third Wave"는 먼저의 두 앨범들보다 수준높게 만들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정석원을 괴롭혔지만 결국 그 앨범은 공일오비를 일약 한국 대중가요의 슈퍼스타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새롭게 House music을 사용한 '아주 오래된 연인들'은 신세대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이 담긴 가사등으로 인해 큰 히트를 쳤고, '다음 세상을 기약하며', '수필과 자동차', '5월 12일', '먼지낀 세상엔' 등도 인기를 모았다. 또 환경오염을 주제로 한 '敵녹색지대'는 악기를 하나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몸에서 나는 소리만을 사용해 관심을 끌었다. 3집은 이미 히트를 친 1집(30만장), 2집(60만장)보다도 훨씬 많은 100만장 이상이 팔려 당시 음반 판매율 1위를 차지했다. 4집 "The Fourth Movement"는 복고적인 분위기가 담긴 앨범으로 타이틀곡인 '신인류의 사랑'은 공일오비의 TV 불출연에도 불구하고 각 TV 방송국 가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차지하는 인기를 보였주었다. 당시 1위를 할 때에도 공일오비는 자신들은 TV에 나가지 않고, 노래를 부른 객원가수 김돈규만 내보내기도 하였다. 4집후, Gospel 음악에 큰 관심이 있던 Bassist 조형곤이 전문 음악인이 되기로 결심을 하고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공일오비를 탈퇴하고 새로운 그룹을 만들었다. 멤버가 줄었지만 공일오비의 음악은 끝나지 않았다. 5집 앨범 작업을 시작했고, 역시 복고적인 분위기가 담긴 이 앨범 "Big 5"는 당시 Remake 붐을 일으키는 큰 역할을 했다. 나미의 "슬픈 인연",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훌륭히 Remake하여 큰 히트를 쳤기 때문이었다. 그 외에도 Distortion을 사용한 '바보들의 세상', 발라드곡 "너를 위한 마지막 노래", "그녀의 딸은 세 살이에요"등이 인기를 끌었다. 또 New Jack Swing장르의 음악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후 공일오비는 마지막 앨범을 내기로 결심했다. 정석원의 군대문제를 더 이상 미룰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6집 앨범 "The Sixth Sense - farewell to the world"는 그전까지의 공일오비 앨범들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음악들이 담겼다. 세상 종말을 그린 어두운 분위기의 이 앨범은 전자음악이 많이 쓰였고, 고의적으로 잡음들을 삽입하였다. 특히 6분이 넘는 타이틀곡 '21세기 모노리스'는 Future Rock 곡으로 영화 "2001 Space Odyssey"를 배경으로 한 우주 비행사와 관제탑의 감동적인 위기상황의 무전통신을 담고 있다. Alternative Rock 곡인 "콩깍지"는 TV 가요프로그램에서 수위에 올랐고, "인간은 인간이다", 이승환이 부른 "나의 옛친구", 팬들에게 바치는 노래 '나 고마워요'등도 사랑을 받았다. 공일오비는 3억원이란 거금을 투자해 8분짜리 "21세기 모노리스" 뮤직 비디오 제작을 끝으로 해체됐다.
공일오비는 그들의 뛰어난 음악성으로 화려함보다는 단순함, 웅장함보다는 투박함의 음악을 추구했으며 예술을 위한 끊임없는 노력을 한 그룹이었다.

글: 구자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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