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공항에서

     2. 호텔에서

     3. 한국        

     4. 신촌      

     5. 끝

                    

 

        

                                  1. 공항에서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했다.

나리타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노스웨스트항공 티켓 끊는 곳에 가서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성수기에는 이렇게 표 구하기 힘든데, 왜 나올 때 미리 예약하지 못했을까  한달 전부터 구했는데도 가망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10월 중순까지 예약이  되어있다는 말에 복학을 포기할 순 없어 무작정 가보라는 충고를 듣기로 하고 나오긴 했지만
대기실에는 서울로 돌아가려는 한국인들, 여행자들, 어학연수 갔다 오는 학생들. 엄마는 한국말로 딸은 일본말로 대화 하는 특이한 커플도 보인다.

제발...가야할텐데.

제가 몇 번째입니까?

여우같이 생긴 일본 발권부 여자는 한번 힐끔 보고는 5번째라고 대답했다.
월말이라 방도 비웠기에 다시 돈내고 들어갈수도 없다. 한달 방세가 장난이 아니니까.

드디어 18시 50분 탑승수속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리고 사람들이 줄서서 5번 게이트로 들어가고 있다. 제발 예약하고 안오는 사람이 몇명 ,,적어도 5명이 있기를
대기자인듯한 여행자 몇명도 발을 동동 구르며 발권대 앞에 서서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입안이 바짝 마르는 30분의 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모두 탑승했고, 게이트 앞에는 컴퓨터로 몇 명이 못 탔는지 알아보는 항공사 직원이 뭐라고 열심히 탑승 체크 요원에게 말하자 1번 순위였던 아기 업은 흑인여자가 기쁜 안도 한숨을 쉬고 들어갔다.

"3일만이래요."

 들어가는 흑인여자를 보며 같은 처지의 대기자 한명이 말했다.

마지막 10분이 흘렀다.

방송은 애타게 아직 탑승못한 사람을 찾았고 몇 명이 또 떼거지로 몰려와 들어갔다.

마지막 점검이 시작되었다. 사실 비행기 탑승시간은 5분이 더 지났다.

"죄송하지만 다음에 다시 오십시오"라고 탑승 승객수를 조회하던 직원이 말했다.
그러자 갑자기 조용히 함께 기다리던 여자가 입을 떼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전 캐나다에서 여기 거쳐가는 티켓을 구입한건데 이런 경우는 항공사측에서 책임져야하는게 아닌가요?"
작은 체구에 여린 눈빛을 가진 여자였다.

 

 

2.호텔에서

 

그녀 덕분에 나도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조용한 그 여자는 얌전해 보이긴 하지만 그다지 수줍어 한다거나 생색내는 타입은 아닌 것 같았다.

공항 근처 데이스 인에 들어갔다.

"여행갔다 오신 겁니까?"

나의 질문에 그녀는 가방을 한쪽으로 밀어 넣으며 그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제가 먼저 샤워할께요" 그녀는 작은 가방을 들고 욕실에 들어갔다. 샤워기에서 물떨어지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렸다.

나는 약간 당황스러웠다.

침대에 눕기도 그렇고 솔직히 어색하고 그래서 침대 모서리에 걸터앉아 방을 살펴보았다.

TV를 틀었지만 별 흥미를 못 느껴 그냥 꺼버렸다. 침대 옆 테이블에 달린 라디오를 틀었다. 바이올린 소리가 흘러나왔다. 커텐을 치고 밖을 보았다. 공항근처라 허허 벌판같은 느낌만 들었다. 도로와 가로등과 가끔 쌩쌩 달려 날아오는 비행기 소리. 멀리 건물의 불빛만 보였다.

욕실문이 열리며 비누냄새와 함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확 풍겨져왔다.

그녀는 별로 당황스럽지 않은 듯이 수건으로 돌돌 말아올린 머리와 발그레한 볼로 다가왔다.

내가 들어갈 차례였다.

 

 

잠이 올 리가 없다.

"내일도 표를 못구하면 어떡하냐?"라고 형의 걱정어린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왔더,

"어떻게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 마"

사실 걱정이 되었다.

그녀는 머리를 말리지도 않은채 침대등을 켠채 누워있었다.

라디오를 끌까요? 라고 묻자 눈도 뜨지 않은채 손만 저었다.

 

 

그녀와 대화를 한다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어제도 그렇게 그냥 잠들어버렸기에 아침도 못먹고 우리는 부랴부랴 체크아웃하고 짐을 들고 다시 공항으로 갔다.

대기실 의자에 않아서 또 대기자 명단 받는 3시까지 기다려야 했다.

"뭐좀 먹을래요?"

그녀는 그냥 너무 지치고 기운없어 보였다.

짐을 다 들고 가기도 뭐해서 나는 대답없는 그녀를 등지고 일어나 햄버거를 사왔다.

우리는 별말 없이 햄버거를 씹었다. 정말 조용한 여자군.  그러나 왜그렇게 자신을 감추려할까 하는 반감도 들었다. 말이 없는 사람한테 주저리 주저리 얘기하기도 그래서 나도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하염없이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몇번 왔다갔다 하고 비행기가 들어오고 나가고, 다시 6시  50분이 다가오고 있었다. 어제완 달리 오늘은 그녀가 첫번째 내가 두 번째 대기자로 들어가게 되었다. 같은 항공사직원이 우리를 보고 웃었다.

"오늘은 탈수 있을 것 같네요."

어제완 달리

 

우린 탈수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그녀는 통로쪽에 나는 가운데에 앉게 되었다. 그녀와 나 사이에 2명이 더 앉았다. 나는 그녀를 조심히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가 보는지도 모른채 그대로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감은 옆모습을 슬쩍 바라보았다.

눈한번 감았는데 벌써 서울 도착을 알리는 방송이 나왔다. 서울은 지금 비가 많이 내리고 있습니다..안전벨트를 매시고 의자는 원위치로...승무원이 돌아다니며 확인을 했다.

나는 다시 그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언제 깨었는지 꼿꼿이 앉아 있었다.

 

 

 

 3. 한국

 

 

가방을 찾고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형이 기다리고 있는게 보였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어떻게 용케 비행기가 도착했네..

공항밖을 빠져 나오다 버스를 기다리는 그녀를 보았다.

"잠깐만.."

그녀앞으로 차를 세웠다.

"집이 어디세요?"

그녀는 뜻밖이란 듯이 차창사이로 나를 보았다.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타세요."

형이 의아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어,,나중에 설명해줄게."

나는 약간 비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백미러를 통해 보았다. 그녀는 마치 비에 젖은 참새처럼 보였다. 손바닥 위에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병아리 같기도 했다.

창천동에서 그녀를 내려 주었다.

집에서 아무도 마중나오지 않았느냐, 왜 혼자냐, 여행갔다 오느냐는 형의 계속적인 질문에 그녀는 그저 짧게 예, 아니오 로만 대답했을 뿐이었다.

나는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뭐에 씌였음에 틀림없라, 전혀 평소의 내 행동이 아니었으니까- 그녀에게 내 전화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녀는 멈칫했지만 내리기전 그번호를 받아쥐었다.

 

바로 그 다음날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신촌에서 만나기로 했다.

 

 

 

4. 신촌

 

  

그녀에게서 전화가 오고 몇시간 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솔직해지고 싶으니까.  

예쁜얼굴도 아니고, 키가 큰것도 아니었다. 명랑하거나 쾌활하지도 않은 내 이상형에서 완전히 벗어난 스타일인데. 나는 그녀를 만나러가면서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기대감.

현대백화점 지하에서 기다리고 있는 그녀얼굴이 보였다. 확실히 수척해져 있었다. 그녀가 나를 알아보고 살짝 미소를 띄웠다. 아마도 처음본 것이 아니었을까.

"제대로 잠은 잤어요?" 그녀의 얼굴이 안좋아 보인다고 내가 말을 건넸다.

"뭐, 5시간 정도 잤으니, 많이는 아니지만 충분한 것 같네요."

우리는 백화점 안으로 들어가 옷을 한번씩 둘러보았다.

둘다 외국에 1년이상 있었기에 어색하고 뭔가 다른 느낌을 받았다.

"참 우리나라 많이 변했네요."

지하1층에서 크라상과 초밥, 샐러드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분위기가 많이 부드러워지고 따뜻해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 호텔에서의 일을 떠올리며 웃었다. 그녀는 그저 살짝 미소를 보이며 나를 볼 뿐이었다.

그렇다."stillness" 그녀에게서 나는 항상 그대로의 모습, 웃지도 찡그리지도 울지도 않고 화내지도 않고 항상 그대로의 상태인 "stillness"를 보았다. 어디선가 읽은 "stillness is a lie, my dear" 란 구절을 떠올리며.

이대까지 걸어갔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밤이 되려하자 공기는 많이 선선해지고 있었다.

내일 모레. 이틀 남았네요? 그녀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네." 복학하려면 이틀남았다.

 

우리는 그리 깊고 사적이 대화 없이 날씨나, 비행기, 한국의 변화 같은 대화를 간간이 나눴을 뿐이었다.

그녀는 정말 자기 얘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이름 조차 캐나다에서 썼다는 제니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름을 가급적 부르지 않으려 했었다. 사실 이름 부를 기회도 별로 없었지만.

이대 옷골목안의 소프트 아이스크림파는 곳에서 산처럼 올려진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돌아다녔다.

"사람들 안에 있으니까..." 내가 말을 했다.

"정신이 없네요.."그녀는 조금 뒤 덧붙였다. "살아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배가 고파오고 떡볶이와 순대다 먹고 싶다는 그녀 말에 극장아래 1000냥하우스에 들어가 튀김, 떡볶이, 순대를 시켜먹었다. 그리고 팝콘과 콜라를 들고 근처영화관에 들어가  '매트릭스'를 보았다.

 

시간은 10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극장 밖으로 나오며 그녀가 말했다. 보이지 않는 미소를 살짝 띄운 채.

뒤로 돌아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쓸쓸해 보였다.

많은 사람들 사이로 그녀가 묻혀 사라졌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그녀가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꿈같은 3일

꿈이었을까?

"제가 전화  할께요" 전화번호를 묻자 그렇게 대답했었다.

나는 그녀에 대해서 알고 있는게 전혀 없는 것이다.

거짓말 같은 하루였다.

 

 

 

5. 끝

 

학교에 다시 들어가 친구들, 후배들, 선배들과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러 다니고 공부하고, 시험보고 리포트 제출하고.

몇 달이 훌쩍 지나갔다.

그녀에게선 전화가 없었다. 집에 혼자 있는 날은 전화기에 손을 가만히 대보기도 하고 혹시 잘못 놓여진 게 아닌가 확인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시 겨울방학이 다가오고 있었다.  텀페이퍼 도 제출해야 하고 도서관에서 자료를 찾으며 정신이 없을 때였다. 사회학 보고서 문제로 TV에서 방송된 프로그램 몇 개를  미디어센터에서 틀었다. "자살에 관하여"란 제목이었다. 숙제도 하기 싫고 정신도 딴 데로 가 있었다. 노트에 몇 자 끄적이며 별생각 없이 화면을 보다 순간 난 얼어붙고 말았다. 심장이 정말 철렁 마비된 듯한 느낌.

새파란 그녀의 얼굴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어떤 뚜렷한 원인은 부모님도 모른다고 하죠...오랜 외국생활에서 오는 우울증이라고 추정합니다만...평소에는 굉장히 쾌활했다 하는데..귀국한 다음날 이런일이 발생했다 하죠..이처럼 자살 원인과 동기가 뚜렷이 밝혀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21세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알수 없는 슬픔이 왈칵 메마른 울음과 함께 밀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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