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새벽부터 전화를 걸어왔다.

-깔끔한 스타일 좋아한다니까 단정하게 하고 가.

-아, 알았어 엄마.

난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짜증을 냈다.

-이젠 튕길 때가 아니라니까. 조신하게 혀어.

-아~~~~아.

난 비명을 질렀다.

-알았다니까 그만해. 전화를 끊고 나서 불쾌감과 함께 함부로 대한 불효가 동시에 가슴을찢었다.

 -깔끔한거 좋아하네.

 화가 치밀어 올라 다시 잘수도 없었다.

-참나 내신세가 이렇게 전락하다니..

 이불속에서 뒤치락거렸다. 대학 졸업 막 했을 때만 해도 엄마와 둘이서 '사'자 붙은 후보들 대기시켜 놓고 이것저것 트집잡았었는데. 어느새 28이란 나이가 막 저물어가려니 정말 이상한 성격 파탄자한테서만 선이 들어올 뿐만 아니라 35 넘어가거나 서른의 나이에 머리가 완전히 희끗해진 공부를 너무 사랑한 사람까지. 그동안 선본 사람들 특징으로 논문을 써도 나는 대가가 되었을 것이다. 어찌 되었건 그 사람 회사 끝나는 시간에 맞춰 화장을 했다. -이상한 놈이기만 해 봐라. 당장 박차고 나온다.
-야야  주제 파악좀 해.
옆에서 언니가 찬물을 끼얹었다.
'깔끔한 스타일 좋아한다는 말'에 무지 신경이 쓰였다. 저번에 그리 짧지도 않은 치마를 입고 나갔을 때 그 남자는 굉장히 현혹되어 보였다. 그러나 엄마 통해 내 귀에 들린 말은 ' 막나가보인다'는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악담이었다. '에이 , 씨발'하고 욕을 메시지로 보낼 수도 없고. 바지 정장을 한 벌로 입고 홍대 앞 패밀리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프런트에 물어보니 앉아있는 테이블로 안내해줬다. 첫인상은 정말 평범한 회사원의 전형. 깔끔해 보이긴 해서 우선 화가 조금 풀렸다. 게다가

 

 

 

 

 

 어디서 많이 맡았던 향수까지 화악! 풍겼다. 내 앞쪽으로 테이블에 있는 메뉴판을 움직일 때마다 향수가 진하게 찔러와 못참고 말하고 말았다. '아니, 손에다 향수 쳐 발랐어요?'라고 하면 당장 분위기 서늘해지니..'향이 참 좋네요. 뭐 쓰세요? 많이 맡아본 것 같은데' 라고 물었다.
-아... 그  남자가 아주 자랑스럽게 웃었다.
-휴곱니다.
-네..에..참 좋네요.
사실 난 이 향수가 첨에는 좋았으나 옛날에 알던(사실 얼굴도 모르는)사람이 늘 아침마다 뿌려대는 통에 진저리를 치던 차였다.
-뭐 드시겠어요?
남자가 배려한다는 듯 내게 물었다. 그 남자의 작은 눈이 안경너머에서 웃고 있었다. ...조금은 호감이 가는데? 나는 마음이 다시 풀렸다.
-크리스피 치킨 샐러드하고..
-그래요 샐러드 먼저 시키죠.
남자는 자연스럽게 웨이트리스를 불러(사실 패밀리 레스토랑은 보통 부르지 않아도 눈치껏 서버가 달려오지만)
-여기 우선 음료수하고, 뭐 마실래요?
-콜라요.
- 콜라 두잔하고 크리스피 치킨 샐러드 먼저 주세요.
남자는 참으로 배려심이 강했다. 포크가 나오자 냅킨도 내쪽으로 더 얹어 포크를 받치게 해주었고 샐러드의 맛있는 치킨부분도 나에게 많이 양보했다. 이정도면 꽤 괜찮은데. 점점점 호감이 가고 있었다. 스테이크를 먹으면서 모방송에서 데이트시에는 고기를 씹으라고 한걸 상기했다.
-지금 하시는 일이 글을 쓰고 계신다구요.
 남자가 뜻밖이라는 듯한 말투로 물었다
.-네 , 소설을 쓰고 있어요.
-제목이 뭡니까? 제가 통 책쪽으로는 잘 몰라서요.
 - 아직단행본으로 낸건 없구요. 잡지에 연재하고 있어요.
 -아,네.
남자는 약간을 실망이라는 듯,  아님 그럼 그렇지 너깐게 라는듯한 여운을 남기며 콜라를 꿀떡꿀떡 삼켰다.
- 글을 쓰시는 분들은 혼자있길 좋아하고, 신경도 예민하다던데.
어라, 내가 신경이 까스락질 것 같아 이건가?
 - 뭐 그런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개인차에요. 사실 집필할 때 방해받는 건 싫어하지만.
-산에가서 글을 쓰십니까? 유명작가는 휴양지에 가서도 쓰고 하던데..
-하하.
나는 최대한 얌전하고 깔끔하게 , 호들갑스럽지 않게 웃었다. 너무 얌전한 척하면 나중에 뒷말로 내숭이 심했단 소릴  들으니까.
 -사실, 전에 고시원에 들어간적도 있었어요. 딱 한달이지만.
-어, 저도 한 4개월간 집 구하기 힘들고 바빠서 고시원에서 살았는데.
-이야, 동지네요 거기 생활 힘들잖아요. 특히나 직장분들이라면  공부목적이 아니니까 조용한게 더 싫었을텐데
-그렇죠. 말을 크게 할수도  없고. TV도 못보고.
-차라리 하숙하시지 그랬어요?
-워낙 불규칙적이라 식사도 못 챙기잖아요. 주인 눈치도 봐야하고.
남자는 벌써 스테이크를 다 씹어버렸다. 속도를 맞춰야 하는데..젠장. 최대한 말을 줄이고 빨리 먹어야 겠다 생각은 했지만 남자는 계속 말을 걸었다.
-원래 말이 없나봐요?
-네?
한동안 남은 고기, 잘 씹지도 않고 열심히 꼴딱 꼴딱 넘기자 남자가 내게 하던 말이었다.
-아, 네, 먹을땐 좀..
그렇게 말하고 나니  아차, 싶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그럼 먹을땐 조용하시군요.
그래 내가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올줄 알았다. 갑자기 열이 올라 더 이상 고기를 씹을수 없었다. 내가 다시는 데이트때 고기 먹나 봐라. 씹기도 힘들고 소화도 안되고

 

 

 

 

 

-어떤 고시원에 있었어요? 나는 콜라의 얼음을 입안에 살짝 감추고 열을 식히며 물었다.
- 그, 신촌에 있는, 혹시 그랜드 근처 아세요?
-어머, 저도 신촌 그랜드 근처였는데. 이름이 뭐였어요?
-그이름이,,그게 무슨 옛날 이름 같은 거였는데. 도,,그래요 도르리.
- 어머나,
 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도 거기 있었는데.
-언제였습니까? 남자는 이뜻밖의 우연에 아주 흥분해있었다.
-그러니까, 지난 11월이네요.
-네? 저도 그때 있었는데, 남자의 대답이었다.
-어머나, 세상에 이런 우연이 다 있어요? 거기 괜찮았는데. 사실 방음이 거의 안돼 좀 힘들긴 했지만요.
-그래요?  나쁘진 않았죠. 이야, 잘하면 옆방이나 마주편 방이었겠네요? 몇호실이었습니까?
-글쎄요...
잘하면 일 나겠군하는 생각이 들어 모른척했다.
-그런데 한달동안 어떻게 얼굴한번 마주치지 못하다니, 혹시 저 보신적 있습니까?
-아뇨, 제가 워낙 방에서 잘 안나왔거든요.
-하긴 전 아침 일찍 회사 가서 저녁 늦게 왔으니, 참..이런 우연도 다 있다니.
남자는 싱글벙글 거렸다.  
-혹시 지금 화장을 해서 제가 못알아보는 거 아닙니까?
이런, 싸가지 없는...

-네? 아, 하하,,화장하나 안 하나 전 별로 차이 없다던데...
갑자기 코끝을 맴도는 이 휴고향. 혹시...혹시...내 옆방남자가 아니었을까?
-몇호실이었어요?
-지금도 전 기억하죠. 집 주소하고 같거든요. 526. 어느줄이었습니까?
남자는 내방이 가운데 줄이 있는지 양 창 측에 있는지 물었다.
오 마이 갓. 정말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전..그 여자전용 줄..이라고 얼버무렸다.
-네.. 사실 제 옆방. 그러니까 제일 첫방에 들어온 여자도 한달 있다 간 것이 기억나네요. 그리고 남자가 들어왔거든요. 하..그여자 혹시 아십니까? 어찌나 밤늦게까지 안자는지, 가끔 의자소리 들어보면 알거든요. 근데 밤에 혼자 잘먹는 것 같더라구요. 쩝쩝 소리가 하도 크게 들려, 제가 그 방서 일부러 아무 것도 안 먹었다는 거 아닙니까. 소리날까봐
난 얼굴이 빨개지지 않았다. 새하얘졌다. 쩝쩝 소리라니. 그럼 내가 밤마다 라면이랑 빵 먹는 소리가 들렸단 말야? 이런..이런,이런.

 

 

 

 

 

 

그순간 그 한 달동안 옆방 남자 때문에 밤마다 고생한 게 생각났다. 멧돼지처럼 돌진해와 열쇠로 콰과곽 문을 따면 두 방의 문의 손잡이가 바로 옆에 붙어 있어 너무 크게 들려와 조용한 내방을 울리며 내 심장까지도 다 후벼놓았던 것, 무슨 억한 감정이 있는지 문도 쾅쾅 닫고 다니고 밤마다 최소한 6통씩의 전화를 걸어 허험하고 가래끓는 기침 한번을 시작으로 전화를 시작해서 '힘들어, 밥먹었어? (밤  10시가 넘었는데, 밥은.,,) 여보세요? 여보세요?..'를 수십번 반복해 나의 주의력을 완전히 헝클어 놓았던게 생각났다. 아침마다 휴고로 목욕을 해서 코를 마비시키던 그 남자. 겨우 화장실 잠깐 왔다가면서도 문잠그고 수십번 확인하느라 덜컹거려보는 그 남자. 잠자다 방귀 뿡뿡 뀌는 그 남자가 바로 앞에 있는 이남자라니.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어느 날 여자를 데려온 것. 화장실 갔다와서 책을 읽으려 했더니 여자가 와 있었다. 아니 온 것도 몰랐는데, 갑자기 벽을 향해 계속 덜컹덜컹 부딪치는 것이었다. 계속적인 반복음에 이게 뭐하는 짓이야? 하고 짜증을 막 내려던 찰나, 여자의 하이 소프라노 신음소리가 들려왔다..남자가 쉬잇,,하고 주의를 주자(쉬잇!하는 소리까지 그 새벽에 들렸으니.) 더 까르르 거리며 흐느끼는게 아닌가. 딱 한 사람 간신히 누울 수 있는 그 침대에 어떻게.

더 이상의 말이 필요 없었다.
엄마, 다음부터는 공동생활도 잘하는 남자로 어떻게...
아무래도 결혼하긴 글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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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re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