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가정교육, 기질 다혈질, 담즙질, 우울질, 점액질, 기질테스트, 기질극복 , 영어공부

 젖을 먹여야 몸짱

지금 우리 나라는 자녀 교육 문제 때문에 이민을 떠나고 싶은 나라,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육 박람회가 열려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구름 떼같이 몰려드는 나라이다. 이러한 교육적 현상의 이면에는 너무나도 많은 문제가 얽혀 있어서, 그 모든 문제를 단시일 내에 해결할 길은 어디에도 없고, 그 누구도 제대로 해낼 수 없다. 단 하나, 우리 교육이 그나마 나아질 방향을 찾으려면, 학력을 중시하고 성공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우리 ‘국민의 사고 방식과 사회 구조’가 달라져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아마 백약이 무효할 것이다.

우리 교육의 문제점은 어떻게 해서든 내 자식만은 좋은 대학에 보내서 성공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증적인 관념과 삿된 욕망에 있다고 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너나없이 오로지 얼마나 돈을 잘 버는 성공한 인간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 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성공이란 것이 과연 어떤 것을 말하는지에 대해서는 요모조모로 따져보아야 하겠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돈을 잘 벌고,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타고, 사회적 신분이 상승하여 편안하게 살게 되면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붙잡기 위해서 주야장천, 사시사철 매달리기만 하니, 사회 전체가 ‘성공의 신화’를 붙잡아, 저마다 똑같이 남부럽지 않게 살기 위해 열병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지금처럼 우리 나라의 초·중·고등학교나 대학교의 학교 교육이 오로지 지식과 정보와 기술의 전수장이 되고 만다면, 우리의 앞날은 그리 밝지 못할 것은 분명한 일이다. 우리는 보다 더 전체적인 시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우리가 왜 지금과 같은 교육 제도와 사회 제도를 갖게 되었는가?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 탓이다! 우리가 근시안적으로 자기 자식들의 성공만을 지상의 목적으로 삼아 돌진해왔기 때문에, 사회 전체가 비효율적이고 소모적이며, 부정한 인간 투성이로 각종 스트레스와 갈등이 가득한 나라가 되고 만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는 그 어떤 사람도 행복할 수 없다.

지금 우리 나라 교육 문제의 핵심은 가정에서 인간 교육을 포기하고, 오로지 학교나 학원에서 지식과 기술만 습득하고 연마하도록 내맡기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부모들이 교육을 포기하고 있다! 이것은 교육열은 세계 제일이지만, 정작 자식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고 돌보는 교육의 본래 목적에서는 크게 벗어나 있다는 것을 지적하는 말이다.

가정에서 자녀들의 교육을 포기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중대한 범죄라 할 것이다. 교육의 시발점은 학교가 아니라 가정이다. 우리 국민들은 지금 가정에서부터 인간 교육을 포기하고, 오로지 자녀들이 지식과 기술만을 습득하고 연마해서 남보다 더 나은 성공을 쟁취하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리고 오직 정부가 그 모든 것을 효율적으로 관리해주기만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기르는 교육의 일차적인 임무는 가정에 있다. 교육의 목적은 남과 비교해서 성공하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알고,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고, 세계와의 조화점을 찾아 조금이라도 세계에 기여하는 인간을 양육하는 일이다. 가정이나 학교는 바로 이러한 고귀한 목적을 실현할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일찍이 미국의 자연주의자였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이렇게 말했다. “대열에서 발걸음이 틀리는 소년은 분명히 다른 북소리에 발을 맞추어 걷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 말은 진정 올바른 통찰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자신을 남과 비교하는 좋지 않은 습성에서부터 해방될 필요가 있다. 인생의 행복이나 보람이나 마음의 평정은 결코 비교를 통해서는 오지 않는다. 사람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면, 그로부터는 오로지 열등감이나 못난 우월감밖에는 가질 게 없다. 내가 남 때문에 사는 것은 아니질 않는가? 한평생 작은 땅뙈기에서 농사를 짓거나 두세 평 정도 되는 작은 국수집을 한다고 해서 왜 성공하지 못한 것이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하든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작은 일을 하더라도 널리 이로움을 끼치고, 보다 많이 미소를 짓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애정을 보다 많이 나누어주며 산다면 한평생 구두를 닦든지, 조그마한 구멍가게를 하든지, 남의 집 파밭을 매며 살아가든지, 무엇이 부끄러울 것인가?

어렸을 때 읽은 이야기다. 어떤 사탕 가게에 네다섯 살 되는 꼬마 오누이가 들어왔다. 꼬마들은 사탕 진열장을 보자, 군침을 흘리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빠인 큰 아이가 손가락으로 이것저것을 가리키더니, 사탕을 한 주먹이나 쥐고는 바지주머니에서 무엇을 한 줌 꺼내면서 계산을 하려고 했다. 그 아이가 꺼낸 것은 동전이 아니라 버찌 씨였다. 주인 아저씨는 기가 막혔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면서 “어이구! 돈이 너무 많구나!”라고 말하며 거스름돈을 내주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벌써 사탕을 입에 물고는 손을 흔들며 유유히 걸어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주인 아저씨는 오래 전 자신의 어린시절 일을 떠올렸다. 그도 어렸을 때 버찌 씨를 가게에 갖다 주고 사탕을 바꾸어 먹고 거스름돈까지 받은 적이 있었던 것이다.

‘교육’이란 글자 그대로 ‘사람을 가르쳐 기르는 일’이다. 이것이 교육의 목적이다. 교육은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개성을 실현하는 인간으로 기르고 돌보는 일이다. 우리 국민들이 교육을 단지 지식과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고 연마하여 출세하는 과정이 아니라 개성을 실현하는 인간을 교육의 목적으로 알고, 그에 기초하여 사회적 교양을 지닌 섬세한 인간, 다른 사람이나 자연의 사물들과 더불어 살아갈 줄 아는 자비로운 인간, 풍부한 내면적 세계를 통하여 삶의 수단과 도구가 되는 것들을 가장 인간적이고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제어할 줄 아는 인간을 기르는 것이라고 이해하고, 한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것들을 그 인간 자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고 평가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교육의 방향을 새롭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즉, 개성을 살려내는 교육이 진정한 교육이라 할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들 중에는 우등생도 많았지만, 개성을 말살하는 학교 교육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탈출하여 제각기 노력한 끝에 위대한 작가가 된 사람들이 많다. 보들레르, 조지 버나드 쇼, 프란츠 카프카, 라이너 마리아 릴케, 앙드레 지드, 헤르만 헤세,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형제, 베르톨트 브레히트 등은 모두 낙제생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들이 학교를 자퇴하거나 퇴학 당했던 것은 학교 교육이 인간의 개성을 말살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자퇴생이나 퇴학생이 모두 다 이렇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의 아이들이 본래 타고난 개성을 발견하고 아름답게 실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훌륭한 지식인이나 기술자를 양성하여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인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이 교육이 아니라, 자신을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의 개성에 따라서 가장 적절한 직업을 찾아 일을 하고, 무엇보다도 진실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줄 알며, 그 마음으로 밖에 나아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사회적 규칙을 어기면서 반칙을 하지 않고 착하게 살며, 자연의 신비로운 사물들을 애정을 가지고 대하고, 여기에 존재했다가 감으로써 세상을 보다 더 좋게 만들고 가는 자비로운 인간을 양육해내는 것이 성공적인 교육이라 할 것이고, 그러한 사람이 진정으로 성공한 인간인 것이다.

이러한 교육이 가정에서 시작되어 학교에서 더욱 심화되고 확대되어야 한다. 우리가 이런 사고 방식과 가치관을 갖고 사회 구조를 점차 개혁해 나간다면, 우리는 교육 본래의 목적을 보다 잘 수행하여 인간적인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교육학자인 닐 포스트먼은 전 세계적으로 기술을 신격화하는 현대 사회의 문화적 상황 속에서, 앞으로의 교육이 나아갈 방향을 “인간성 상승을 주도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한 바 있다.

그렇다. 교육이란 인간성을 기르는 것이다. 교육이란 아름답고, 선하고, 자비로움으로 풍부한 인간성이라는 토대 위에 지식과 정보와 기술을 쌓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간성을 상실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각종 반칙과 불의와 범죄가 사회를 뒤덮게 될 것이다.

브리테니카 회보에서

이범선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