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복음교회의 이단시비와 교단들의 분열

 

답변이 늦어서 미안합니다.

아직도 순복음교회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그 같은 가르침을 성도들에게 은연 중에라도 가르치고 있는 교회가 있음을 매우 애석하게 생각합니다.

성도님도 아시다시피, 본래 이단은 삼위일체,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구원론, 종말론, 교회론 등을 두고 특별하게 다른 교리를 내세울 때 일컫는 말입니다. 즉 역사적 신앙과 기본적인 교리가 다를 때 우리는 그것을 이단이라고 규정짓습니다. 그러나 순복음교회는 전통보수교회들의 신앙과 별반 다를 게 없습니다. 굳이 그 차이를 말한다면 칼빈주의로 대변되는 장로교단의 전통과 오순절주의 교단의 신앙의 양상이 좀 다를 뿐입니다.

 

성도님도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순복음교회는 20세기 세계 복음전도의 주역으로 떠오른 세계 오순절 교단에 소속된 교회입니다. 오순절주의 교회의 특징은 강력한 성령운동에 의한 폭발적인 부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초대교회의 성령의 역사가 재현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그대로 영혼구원과 함께 병든 자들이 고침을 받고, 귀신이 떠나가며,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해결받는 역사가 오순절교단 교회들의 사역에서 강력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보수 신앙인들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이미 1세기에 끝난 것으로 여겨 순복음 교단을 이단시하기도 하고, 성령세례의 시점 문제, 방언의 문제, 각종 치유(신유)사역, 삼박자 축복 등을 문제삼습니다. 특히 순복음교회의 신앙이 너무 기복적이라 하여 일반 무속신앙과 비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한 신앙잡지와의 인터뷰에 나타난 조용기 목사님의 답변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초기에 왜 기존 기독교 교파와 많은 오해, 그리고 갈등을 빚었습니까?"

 

"신앙에 대한 접근법에 차이가 있었죠. 저는 전통적인 기독교 가정에서 자란 것이 아니고, 신학교를 나와 빈민촌 개척교회에서 빈민들하고 같이 지내다 보니 내세적인 신학, 신앙보다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 현세 문제 해결을 중시하는 신앙관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내세를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현실생활이 각박했어요. 먹고사는 현실이 너무나 척박했기 때문에 좌절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강력한 희망을 주고 삶의 동기를 부여하고 현실을 창조적으로 변화시켜 나가는 삶을 살도록 하는 희망의 신학을 나름대로 발전시켰습니다. 그게 한국의 전통적인 내세신학하고 충돌했습니다. 조용기는 현실주의자다. 기복주의자다. 물질주의자다. 이런 공격을 받았는데요, 하나님은 변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믿는 우리의 신학과 신앙은 그 시대의 형편과 환경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어요."

 

현재, 나머지 문제 부분들은 이미 오순절교단의 특징으로 기존 정통 교회들의 이해를 얻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주요 신학 저서들에서도 오순절 교파가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실제로 오순절 교파들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역사는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이 인정해야 하는 지극히 성경적인 것으로 인정해야만 합니다. 표면적으로 나타나는 현상들에 대한 신학적인 이해가 서로 다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한 핵심적인 교리는 기존 정통교회들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옛날과 같지 않게, 많은 장로교 보수 교단들에서도 성령의 역사를 사모하여 강력한 성령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왜 장로교회를 비롯한 일부 교단들이 여러 개로 나누어졌는지 질문해 오셨는데, 그것은 기존의 교단들과 신앙의 견해를 달리하는 일부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여 새로운 교단을 만들어 나가다 보니 지금의 수 없는 교단으로 분리되게 된 것입니다. 아마 여기에는 한국인의 특성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일본사람들은 개인성보다는 집단성이 강한데, 한국민족은 특히 개인성이 더 강하여 뭉치기보다는 흩어지기가 쉽습니다. 이것이 한국 기독교계에도 여실히 나타난 것이라고 할 수 있지요. 그래서 실제로 기독교계에 악영향을 끼치는 많은 이단들이 생겨나기도 했고, 이러한 배경들이 이단들의 온상으로 작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흩어지는 기질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다고 봅니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인이 1,200만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교단 활동도 무시할 수 없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우리 믿는 자들은 마땅히 성령으로 하나되어 주 예수께서 주신 선교의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시편 133편에도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지금은 많은 한국교회 교단들이 연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더욱 가속화되어 주 오시기까지 이를 수 있도록 성도님의 많은 기도를 부탁드리면서, 주 안에서 평안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성령세례 문제 답변

 

첫째, 중생과 성령세례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문제는 대체로 교단에 따라 입장이 다릅니다. 지금 형제님께서 출석하시는 교회가 어느 교단인지 모르겠지만(사모님은 전에 순복음교회에 출석하셨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신지...?) 전통적으로 장로교 계열에서는 성령세례를 따로 받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순복음 계열의 교회에서는 중생한 사람은 별도로 성령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한편, 중생과 성령세례는 다른 것이지만,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다고 보기도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형제님 주변의 목사님이나 다른 분들과의 대화에서 혼란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둘째, 중생할 때의 회개와 성령세례를 받을 때의 회개 문제 역시 교단에 따라 입장이 다릅니다. 전통적으로 중생과 구별된 성령세례를 따로 말하지 않는 장로교 계열에서는 한번의 회개로 모든 것이 족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반면에 중생과 성령세례를 구별해서 말하는 순복음 계열에서는 중생할 때의 회개와 성령세례를 받기 위한 회개를 구분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회개를 구분하는 순복음교회의 입장에 의하면, 물론 우리는 중생할 때 회개하고 죄사함을 받아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 성령이 내주하게 됩니다. 엄밀한 의미에서 중생은 우리가 믿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믿음으로는 의인이 되었으나 행위로는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에 중생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내주하시는 성령의 의지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죄의 소욕을 따라 잘못을 저지르면서 살기도 하는 것입니다. 즉 중생한 사람이라고 해서 그 믿음과 행위에 있어서 완전한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여전히 그는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입니다. 이러한 죄의 소욕과 죄의 행위를 이겨내고 성령에 온전히 사로잡혀서 살기 위해서는 성령세례를 받아 성령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생한 사람은 자신이 믿음으로는 의인이 되었지만 행위로는 여전히 죄의 세력에 있는 것을 알고 자신을 둘러싼 이 죄의 상태를 완전히 물리치고 온전히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 이른바 죄와 죄의 소욕을 고백하고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충만을 사모하는 회개와 간구의 기도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사람이 천국에 가는 문제는 성령세례의 문제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은 중생의 문제입니다. 성령세례는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아 더욱 성결하고 권능있는 삶을 살아가며 나아가서 열심있는 전도와 붕사의 일을 위해서 오히려 더 필요한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넷째, 인용하신 요한복음 3장 5절에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하신 말씀에서 "성령으로 나는" 것의 문제는 학자들에 따라 해석이 다르겠지만, 성령세례로 보기보다는 중생할 때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으로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말씀드렸듯이 성령세례는 중생과는 구별되는 것이며 또 다른 은혜의 체험이기 때문입니다.

 

다섯째, 예수를 믿는다고 고백했다고 해서 그때부터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도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중생한 사람이 방탕한 죄의 삶을 그대로 산다고 말하는 것은 그 자체로서 논리적이지 못합니다. 중생한 사람은 불신자와 달리 그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은 그 사람의 영혼에 의로운 것을 따라 살려는 의지를 주시며, 계속해서 믿음으로 성장하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생한 사람은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하지만 그것을 뉘우치고 다시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는 의지를 여전히 가지고 있습니다. 중생한 사람은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점점 더 예수님께 나아가도록 되어져 있습니다. 참고로 이미 말씀드렸듯이 성령충만은 중생한 사람이 죄의 소욕을 물리치고 온전히 거록하고 의로운 삶을 살도록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진정으로 중생한 사람이라면 불신자와 같이 아무 거리낌없이 방탕한 삶을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자신이 중생했다고 말하면서도 아무 거리낌없이 방탕한 삶을 그래도 산다면 그 사람은 입술로만 잠시 예수님을 구주로 말했을 뿐 진정으로 중생한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한편, 진정으로 중생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타락할 수 있는지의 문제 역시 교단에 따라 다른 편인데, 대체로 장로교 계열에서는 그럴 수는 없다고 말하는 반면 순복음교회 계열에서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합니다.

 

여섯째, 성령세례는 형제님께서 언급하셨듯이 성령의 특정한 능력있는 사람의 안수를 통해서도,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밖에도 찬양을 통해서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고넬료 가정에서와 같이 설교 말씀을 듣는 중에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행10:44-46). 성령은 자유로우신 영이기 때문에 다양한 방법으로 임재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