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케몬 해리 포터?

눈에 보이는 것으로 인하여

21세기에는 끔찍한 환각과 망상이 모든 인류를 
사로잡게 될 것이다. 인터넷을 타고 보급되는 
무서운 영상들이 전세계 인류를 결박할 것이고 
그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온 몸을 떨며 절망 속에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눈에 보이는 것을 얻기 위하여 금단의 열매를 먹고 보이지 않는 것을 포기했다. 사람들은 장사꾼들이 만들어낸 보이는 신들에게 정신을 팔기 시작했고 결국 그 보이는 신들은 남자와 여자의 가정을 파괴했다. 애굽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은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셨는데 그 가운데는 보이는 신을 만들지 말라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출 20:3~5).

이스라엘 백성들이 찾아갈 목적지는 보이는 신들을 처음 만들어낸 장사꾼들의 본거지 가나안이었다. 사람이 뱀의 유혹에 속아서 금단의 열매를 먹은 이후로 사람의 영안(靈眼)을 탈취하려는 마귀의 흉계는 계속되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음모의 근원지를 향해 들어가야 했던 것이다. 모세에게 십계명을 주신 후 하나님은 다시 분쟁에 대한 율례를 주시면서 눈의 문제를 강조하신다.


“사람이 만일 그 이웃을 상하였으면 그 행한대로 그에게 행할 것이니 파상은 파상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레 24:20).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눈 때문에 미혹을 받아 스스로 금단의 열매를 먹었듯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은 타인이 자신의 눈을 공격하기도 전에 스스로 자신들의 눈을 마귀에게 팔아버렸다. 

“저녁 때에 다윗이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지붕 위에서 거닐다가 그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다윗이 보내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고하되 그는 엘리압의 딸이요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삼하 11:2~3).

그 밧세바는 바로 가나안 족속의 여인이었고 다윗은 그녀로 말미암아 십계명 중에 세가지를 한꺼번에 범하는 큰 죄를 저질렀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의 질책을 받고 크게 회개했으며 평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긴 적은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것으로 믿고 밧세바 소생의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았는데 그 솔로몬도 나중에 자신의 눈을 아스다롯 여신에게 팔았다.

“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왕상 11:4~5).

눈에는 눈으로

다윗과 솔로몬으로부터 시작하여 가나안의 신들에게 눈을 팔기 시작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왕들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다윗의 자리를 계승했던 왕들 중에 마지막 왕이었던 시드기야 왕의 최후를 보자.

“갈대아 군사가 왕을 잡아 립나 바벨론 왕에게로 끌고 가매 저에게 신문하고 시드기야의 아들들을 저의 목전(目前)에서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고 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어갔더라”(왕하 25:6~7).

유다가 멸망을 당하기 1백여년 전에 선지자 이사야는 영안을 다 빼앗겨버린 유다에 멸망이 닥쳐올 것을 미리 알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제 그 백성을 타락한대로 내버려 두실 것을 작정하셨던 것이다.

“이 백성들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사 7:10).

이사야는 답답하여 다시 하나님께 물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은 차가왔다.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가 전폐하게 되며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 가운데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사 7:11~12). 

그렇게 절망적인 판결을 듣고 이사야는 비통한 심정으로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결국 에덴에서부터 잃어버리기 시작한 사람의 시력을 되찾아주기 위해 구세주를 보내주시리라는 비전을 보게 되었다. 

“그 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벙어리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그 하나님의 아들은 세상에 오셨다. 그가 세상에서 여러가지 일을 많이 했는데 특히 소경의 눈을 뜨게 하는 기적을 여러번 보여주셨다. 그분이 예루살렘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했을 때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이 이를 수상하게 여기자 그분은 말씀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요 9:39). 

그 말씀을 듣고 주위에 있던 바리새인들이 수근거렸다.

“우리도 소경인가?”

그러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 9:41). 

감옥에 갇힌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당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그분이냐고 물었을 때 그분은 대답하셨다.

“너희가 가서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4~5). 

예수께서 고쳐주신 그 모든 불구와 질병들은 사실 다 눈에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사람이 마귀에게 눈을 팔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따랐기 때문에 귀가 먹고 벙어리가 되었으며 서서 걷도록 창조되었으나 앉은뱅이가 되었고 영혼이 타락하여 육체의 병이 생겼고 소수의 부자들을 위해 모두 가난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몸의 모든 기능 가운데 눈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2~23).

그러나 예수께서 그렇게 강조하여 훈계하셨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계속해서 마귀에게 눈을 팔았고 2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사람들은 보이는 것에 미혹되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네가 미치리라

소경의 눈을 뜨게 하기 위해서 오신 예수께서는 갈릴리의 해변에서 천국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거기에는 사람이 지어 놓은 거대한 석조건물도 없었고 화려한 스테인드 글래스로 장식된 강단이나 파이프 오르겐 같은 것도 없었다. 그분은 갈릴리의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이 드리운 언덕에서 갈릴리 호수의 수면과 추수 때가 가까운 들판을 바라보며 천국의 복음을 가르치셨던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그분은 때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자주 ‘눈에 보이는 것들’ 때문에 못마땅해 하셨다. 그분은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고 상을 엎으셨다. 그리고 분한듯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또 그분은 유다 마카비의 성전 정화를 기념하는 수전절에도 성전 앞에 서서 하나님은 그 성전에 계시지 않는다고 증거하셨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요 10:38).

그리고 예수께서는 마침내 그들의 눈에 보이는 성전이 사라질 것을 예고하셨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눅 21:6).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도 그 제자들은 선생님께서 하시던대로 광장이나 들판 또는 강변에서 복음을 전했으며 때로는 남의 집을 빌리거나 땅 속의 묘지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강론했다. 그러던 교회가 로마정부의 공인을 얻고 황제의 후원을 받기 시작하면서 다시 화려한 석조건물을 지어 아름답게 장식했다. 그리고 그 건물에 온갖 보이는 것들을 가득 채우자 타락이 시작된 것이다. 

그러다가 마침내 교회는 르네상스의 선동자들에게 역사의 주도권을 빼앗겼다. 그리고 온갖 문화의 분야에서 하나님과 교회를 몰아낸 지식인들은 마침내 본격적으로 인간의 눈을 파내기 위한 작업에 나섰던 것이다. 기술자들은 세상의 곳곳에 거대한 건축물들을 세웠고 화가들은 나체의 신들을 그렸으며 사람의 몸을 신처럼 만들어주는 패션산업이 시작되었고 마침내 영상의 시대가 열렸다. 

20세기 말부터 이미 컬러 TV가 일반화되고 비디오 산업이 본격화되었으며 화면도 점점 대형화되고 있다. 영화관이 안방으로 쳐들어온 것이다. 시뮬레이션과 컴퓨터 그래픽의 기법에 의해 환각적인 영상이 사람의 망막에 떠오르기 시작하고 격렬한 영상 게임들은 사람의 시각을 완전히 장악해버렸다. 이로써 영상이 인간의 생각과 마음을 획일화로 유도하는 영상 독재시대가 열린 것이다. 

보이는 신을 만든 가나안 사람들이 그 신들의 축제에서 날뛰며 그들의 자식을 칼로 썰어서 불에 구워 바쳤듯이 21세기의 사람들도 그와 같은 환각 속에서 헤매게 될 것이다. 20세기말에 시작된 세가지의 큰 열풍이 그것을 예고하고 있다. 그 열풍의 진원은 일본 만화 ‘포케몬’의 주인공 ‘피카추’와 세계를 휩쓴 동화책 <마법소년 해리포터> 그리고 배에 TV 화면을 달고 있는 ‘텔레토비’이다. 

‘포케몬’는 포켓 몬스터 즉 주머니 속의 괴물이라는 말을 일본식으로 줄인 것이다. 피카추는 99년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올해의 인물’로 뽑혔고 만화뿐만 아니라 비데오 게임과 패션산업에까지 진출하여 거기 나오는 150개의 괴물들과 함께 아이들 사이에 수집 열풍을 일으켰다. 교육전문가들은 이 현상이 아이들의 사행심과 경쟁심리를 부추기고 개인을 소외시킨다고 경고했다.

영국의 무명 여류작가 조안 롤링이 쓴 <마법소년 해리 포터>는 한 고아소년이 마법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벌어지는 모험과 환상의 이야기이다. 그 책을 출판한 무명의 출판사를 일약 출판재벌로 만들었을 정도로 해리 포터의 위력은 전세계를 휩쓸었다. 미국과 영국의 일부 기독교계 학교에서는 마술 신드롬을 일으킨 이 동화가 성경의 가르침에 어긋난다는 이유로 독서를 금지시켰다. 배에 TV 화면을 단 ‘텔레토비’는 어린이프로 제작을 전문으로 하는 랙들 프로덕션의 사장 앤 우드가 4세 미만의 유아용으로 만든 것이다. 영국의 BBC에서 방송을 시작하여 곧 전세계에 보급되었고 유아들의 시선을 장악했다. 유아들의 성장을 오도할 수 있다는 지적에 우드 사장은 오히려 상상력을 길러주는 프로라며 맞섰고 텔레토비로 큰 돈을 벌어 영국 500대 부자의 명단에 올랐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선물로 주신 상상력을 사용하여 돈을 버는데 성공을 거둔 사례들이다. 마치 가나안 사람들이 그 자녀를 썰고 구워서 아스다롯 여신에게 바쳤듯이 오늘날의 장사꾼들은 어린이의 영혼을 제물로 삼아 돈을 벌고 세상의 부모들은 아이들의 ‘상상력 개발’이라는 속임수와 어이없는 마법적인 유행에 휩쓸려 그 자식들을 번제의 제단에 올려 놓고 있는 것이다. 

마법과 환각을 이용하는 장사꾼들의 상혼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어린이들이 몰려드는 테마파크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귀신과 유령이 들끓고 살인과 폭력을 부추기는 환각적 영상들이 도처에서 범람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국제축구연맹이 영국 인터브랜드 사에 의뢰하여 제작한 상상 속의 외계인 ‘아트모’를 2002년 월드컵 대회의 공식 마스코트로 발표했다. 

이런 것들은 시작에 불과하다. 21세기에는 이보다 더 끔찍한 환각과 망상이 모든 인류를 사로잡게 될 것이다. 무선 인터넷을 타고 보급되는 무서운 영상들이 전세계 인류를 결박할 것이고 그것에 중독된 사람들은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처럼 파리한 얼굴로 온 몸을 떨며 절망 속에서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영안을 포기한 인간의 눈에 내려질 형벌에 대하여 신명기가 언급하고 있다.

“네 눈에 보이는 일로 인하여 네가 미치리라”(신 28:34). 

이렇게 인류가 당할 큰 재앙은 그 눈으로부터 시작되었고 결국 인류의 밤과 낮은 공포와 신음 속에 지고 샐 것이며 그것은 역사의 종말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신명기에 기록된 재앙의 마지막 부분은 이렇게 되어 있다.

“네 마음의 두려움과 눈의 보는 것으로 인하여 아침에는 이르기를 아하 저녁이 되었으면 좋겠다 할 것이요 저녁에는 이르기를 아하 아침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리라”(신 28:67).

김성일 소설가·한세대 교수
신앙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