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해진다는 것 고운기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그리움에 대해 김기만
그리워 김소월
개여울의 노래 김소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김용택
꽃 잠 김용택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김용택
참 좋은 당신 김용택
미친 사랑의 노래 김태형
잠이 든 당신 김하인
그대는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 김현태
가을엽서 남낙현
가을 사랑 도종환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희망 도종환
나비 류시화
여우 사이 류시화
소금 인형 류시화
소금별 류시화
우리는 한 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류시화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류시화
다시 박노해
세월이 가면 박인환
겨울이 오기 전에 백창우
좀 쉬세요 백창우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소리 물고기 복효근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신경림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
얼마나 좋을까/2 신진호
친구가 화장질 갔을 때 신진호
재떨이 신진호
나무를 위하여 신현림
어린왕자 중에서... 쌩떽쥐베리
기관차를 위하여 안도현
대숲이 푸른 이유 안도현
가난하다는 것은 안도현
가을 햇볕 안도현
개망초꽃 안도현
겨울 나무 안도현
겨울 숲에서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국방색 바지에 대하여 안도현
그대에게 안도현
그대에게 가는길 안도현
바람이 부는 까닭 안도현
애기똥풀 안도현
연탄 한 장 안도현
수박을 먹으면 안도현
분홍 지우개 안도현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中에 예 반
가을을 파는 꽃집 용혜원
그대가 진정 사랑한다면 용혜원
커피와 인생 용혜원
어리석은 사람 용혜원
한잔의 커피 용혜원
그립다는 것 원태연
담배를 태우며 원태연
가을 유안진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유안진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論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이기철
이정하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이정하
사랑이란 이름의 종이배 이정하
흔들리며 사랑하며 이정하
우울한 하루 이정하
가까운 거리 이정하
사랑했던 날보다 이정하
맛있는 하루 이해인
사소한 배려의 향기 이해인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나를 받아주십시오 이해인
너에게 띄우는 글 이해인
사 랑 이해인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낙화 이형기
아침 천상병
그냥 좋은 것 칼리지브란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즐거운 편지 황동규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익숙해진다는 것 
-고운기- 
오래된 내 바지는 내 엉덩이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칫솔은 내 입 안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구두는 내 발가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내 빗은 내 머리카락을 잘 알고 있다 


오래된 귀가(
歸家) 길은 내 발자국 소리를 잘 알고 있다 
오래된 아내는 내 숨소리를 잘 알고 있다 


그렇게 오래된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지도 칫솔도 구두도 빗도 익숙해지다 바꾼다 
발자국 소리도 숨소리도 익숙해지다 멈춘다 

그렇게 바꾸고 멈추는 것들 속에 나는 나를 맡기고 산다. 

 

 

 

 

 

 

 

 

바닥에서도 아름답게 
-곽재구-
사람이 사람을 
사랑할 날은 올 수 있을까 
미워하지도 슬퍼하지도 않은 채 
그리워진 서로의 마음 위에 
물먹은 풀꽃 한 송이 
방싯 꽂아줄 수 있을 까 
칡꽃이 지는 섬진강 어디거나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한강변 어디거나 
흩어져 사는 사람들의 모래알이 아름다워 
뜨거워진 마음으로 이 땅위에 
사랑의 입술을 찍을 날들은 
햇살을 햇살이라고 말하며 
희망을 희망이라고 속삭이며 
마음의 정겨움도 무시로 나누어 
다시 사랑의 언어로 서로의 가슴에 뜬 
무지개 꽃무지를 볼 수 있을까 
미쟁이 토수 배관공 약장수 
간호원 선생님 회사원 박사 안내양 
술꾼 의사 토끼 나팔꽃 지명수배자의 아내 
창녀 포졸 대통령이 함께 뽀뽀를 하며 
서로 삿대질을 하며 
야 임마 너 너무 아름다워 
너 너무 사랑스러워 박치기를 하며 
한 송이의 꽃으로 무지개로 피어날 수 있을까. 

 

 

 

 

 

 

 

 

그리움에 대해 
-김기만-
기다리면 별이 된단다 
슬픔 한 조각으로 배를 채우고 
오늘은 쓸쓸한 편지라도 쓰자 
사랑하면서 보낸 시간보다 
외로웠던 시간이 많았을까 
그대 뒷모습 
동백꽃잎처럼 진하게 
문신되어 반짝이는 내 가슴 구석 
노을이 진다 슬프도록 
살아서 살아서 슬픈 
추억 한줌으로 남아 있는 사랑을 위해 
눈 감는 저녁 하늘 속에 
별 하나가 흔들린다 
사람의 뒷 모습엔 온통 그리움 뿐인데 
바람이나 잡고 
다시 물어 볼까, 그대 
왜 사랑은 
함께한 시간보다 
돌아서서 그리운 날이 많았는지....

 

 

 

 

 

 

 

 

 

그리워 
-김 소 월- 
봄이 다 가기 전,
이 꽃이 다 흩기 전
그린 님 오실까구
뜨는 해 지기 전에. 

엷게 흰 안개 새에
바람은 무겁거니, 
밤샌 달 지는 양자,
어제와 그리 같이. 

붙일 길 없는 맘세,
그린 님 언제 뵐련,
우는 새 다음 소랜,
늘 함께 듣사오면. 

 

 

 

 

 


개여울의 노래 
-김 소 월- 
그대가 바람으로 생겨났으면
달도든 개여울의 빈 들 속에서
내 옷의 앞자락을 불기나 하지. 

우리가 굼벙으로 생겨났으면
비오는 저녁 캄캄한 넝기슭의
미욱한 꿈이나 꾸어를 보지. 

만일에 그대가 바다난 끝의
벼랑에 돌로나 생겨났더면
둘이 안고 굴러 떨어나지지. 

만일에 나의 몸이 불귀신이면
그대의 가슴 속을 밤도와 태워
둘이 함께 재 되어 스러지지.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김용택-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나 홀로 걷는 그 숲에 당신이 왔습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지기 전에
그가 와서 반짝이는 이슬을 텁니다 나는 캄캄하게 젖고
내 옷깃이 자꾸 젖어 그대를 돌아봅니다 
어린 참나무 잎이 마르기 전에도
숲에는 새들이 날고 바람이 일어
그대를 향해 감추어두었던 길 하나를 
그대에게 들킵니다

그대에게 닿을 것만 같은 아슬아슬한 내 마음 가장자리에서
이슬이 반짝 떨어집니다
산다는 것이나 사랑한다는 일이나 그러한 것들이 때로는 낯설다며
돌아다 보면 이슬처럼 반짝 떨어 지는 내
슬픈 물음이 그대 환한 손등에 젖습니다
사랑합니다
숲은 끝이 없고 인생도 사랑도 그러합니다

그 숲

그 숲에 당신이 문득 나를 깨우는 이슬로 왔습니다

 

 

 

 

 

 

 

꽃 잠 
-김용택-
저기 저 남산 꽃산에 꽃 되어 가는 길 
그대 만나 우리 함께 봄잠 들었네 
잠자는 동안 꽃들은 피어나 우리를 덮고 
새들은 날아 푸른 하늘 열었네 

우리 둘이 꽃산 되어 깊은 잠 잘 때 
어린 산 하나 꽃 속을 걸어나와 
돌아다니며 놀다가 
작은 꽃산 되어 우리 사이에 꽃잠 자네 

우리 오늘 난생 처음 꽃 속에 꽃산 되어 
식구끼리 행복한 꽃잠 잘 때 
집집이 꽃 피어 울 넘고 
마을에서 마을로 꽃길이 열리었네

 

 

 

 

 

 

 

 

 

 

 

 

 

꽃처럼 웃을 날 있겠지요 
 -김용택- 
작년에 피었던 꽃 
올해도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 피어 새롭습니다 
작년에 꽃 피었을 때 서럽더니 
올해 그 자리 거기 저렇게 
꽃이 피어나니 
다시 또 서럽고 눈물 납니다 
이렇게 거기 그 자리 피어나는 꽃 
눈물로 서서 
바라보는 것은 
꽃 피는 그 자리 거기 
당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 없이 꽃 핀들 
지금 이 꽃은 꽃이 아니라 
서러움과 눈물입니다 

작년에 피던 꽃 
올해도 거기 그 자리 그렇게 
꽃 피었으니 
내년에도 꽃 피어나겠지요 
내년에도 꽃 피면 
내후년, 내내후년에도 
꽃 피어 만발할 테니 
거기 그 자리 꽃 피면 
언젠가 당신 거기 서서 
꽃처럼 웃을 날 보겠지요 
꽃같이 웃을 날 있겠지요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좋은
당신. 

 

 

 

 

 

 

 

 

 

미친 사랑의 노래
-김태형-
설핏 잠 속에서 서로에게 가진 것만큼 조금씩 허물어지고
열이 몹시 나 가만 누워 있지를 못한다 자꾸 몸 뒤척일 때마다
무거운 땀내에 창 밖 어린 라일락나무는 작은 잎들을 더 푸르게
내 감겨진 눈이나 그리움의 뒤켠에서 피워 놓곤 했다
그애의 목소리가 듣고 싶어 나 그만 누운 자리에
내 몸체만한 열기를 쏘옥 남겨 둔 채 차운 가까이 다가서 본다
어떤 슬픔을 나는 가진다 공중에 둥둥 떠가는
가벼운 천장의 줄을 내어 열에 들뜬 무거운 몸
가눌 수 없는 내 음악들을 매달고 싶었다
하루는 비와 바람에 슬픔의 무게로 흔들리는
한 덩이 검은 공중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검게 검게 말라 가다
익숙하게도 푸른 공중의 일점으로 떠 다닐 것이다
내가 그애의 발밑으로 허물어지면서 하나의 저녁이 되고
무수한 저녁들의 지는 햇살을 투명히 비춰 내어 
그애의 몸을 이루는
가득한 공기가 될 것이다 그애를 호흡해 내고 그애를 피워내면서
여름 잎사귀들은 내 한 몸을 온전히 이루어내리라
달아오른 열기가 쏘옥 빠져 나간 곳에 하늘과 공기와
그 앞에 허물어져 그대로 저녁의 거대한 허파로 숨쉬는 곳에
서로에게 조금씩 허물어지면서 가진 것만큼
무너져 주면서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말하지 않아도
저녁의 부풀어 오르는 공기 가득 호흡해 내고
내가 그애의 고운 숨이 되고 그애가 나의 몸이 되고
그럴 수만 있다면 어느 날은 그애의 체온에 따라 달아오르거나
나의 숨 더 낮아지거나 할텐데 여름 저녁조차도
낮아지거나 달아오르면서 다 검붉은 잎으로 물들어 갈텐데

 

 

 

 

 

 

 

 

 

 

잠이 든 당신 
- 김하인의 《눈꽃편지》중에서 -
잠이 든 당신을 들여다봅니다. 
어느 먼길을 걸어와 지금 당신이 
제 옆에 잠들어 있는지 불가사의하게 느껴집니다. 
분명히 언젠가 낯선 타인이었을 당신이 
제 손이 미치는 곳에서 가벼운 숨소리를 내며 
잠들어 있는 게 마냥 신기합니다. 
당신이니? 당신이 삼십 억 명 중 
한 사람이었던 여자이었니? 
그렇게 쉼 없이 속으로 중얼거리는 
전 가슴이 뻑시게 저리고 아파옵니다. 
나 같은 남자 뭘 믿고 
더없이 소중한 마음과 몸을 맡기고 
저처럼 아늑한 미소를 머금을 수 있는지, 
순간순간 놀라면서도 전 눈물이 납니다. 
그저 고맙고 감사해서 
촛불 같은 당신 잠과 꿈을 꺼뜨릴까 
조심조심하며 밤새 저는 
당신 마음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그대는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 
 - 김현태-
그대와 함께 있으면 
어느 새 나도 하나의 자연이 됩니다 

주고받는 것 없이 
다만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바람과 나무처럼 
더 많은 것을 주고받음이 느껴집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길섶의 감나무 이파리를 사랑하게 되고 
보도블럭 틈에서 피어난 제비꽃을 사랑하게 되고 
허공에 징검다리를 찍고 간 새의 발자국을 사랑하게 됩니다 
수묵화 여백처럼 헐렁한 바지에 
늘 몇 방울의 눈물을 간직한, 
주머니에 천 원 한 장 없어도 얼굴에 그늘 한 점 없는, 
그대와 함께 있으면 
어느 새 나도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낍니다 

그대의 소망처럼 나도, 
작은 풀꽃이 되어 
이 세상의 한 모퉁이에 아름답게 피고 싶습니다 
그대는 하나도 줄 것이 없다지만 

나는 이미 그대에게 
푸른 하늘을, 
동트는 붉은 바다를 선물 받았습니다 

그대가 좋습니다 
그대는 왠지 느낌이 좋습니다 
그대에게선 냄새가, 사람냄새가 난답니다 

 

 

 

 

 

 

 

 

 

가을엽서
 -남낙현- 
가을에는 
사랑한다는 말이 필요치 않다 

가을에는 
장문의 편지를 쓰지 않아도 좋다 

공원에 나가 
하염없이 떨어지는 
단풍잎 하나 주워들고 
사랑하는 마음을 단풍잎에 실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내자. 

피빛으로 물든 
그리움이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 속으로 
진하게 전해질테니까

 

 

 

 

 

 

 

 

 

가을 사랑 
-도종환-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할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나의 마음은 바람부는 저녁 숲이었으나
이제 나는 은은한 억새 하나로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때의 내 마음은
눈부시지 않은 갈꽃 한 송이를
편안히 바라볼 때와 같습니다

당신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끝없이 무너지는 어둠 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조용히 다시 만나게 될
아침을 생각하며 저물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을 사랑하는 내 마음은
가을 햇살을 사랑하는 잔잔한 넉넉함입니다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도종환-
저녁숲에 내리는 황금빛 노을이기보다는 
구름 사이에 뜬 별이었음 좋겠어.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버드나무 실가지 가볍게 딛으며 오르는 만월이기보다는 
동짓달 스무 날 빈 논길을 쓰다듬는 달빛이었음 싶어. 

꽃분에 가꾼 국화의 우아함보다는 
해가 뜨고 지는 일에 고개를 끄덕일 줄 아는 구절초이었음 해. 
내 사랑하는 당신이 꽃이라면 
꽃 피우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인 
콩꽃 팥꽃이었음 좋겠어. 

이 세상의 어느 한 계절 화사히 피었다 
시들면 자취 없는 사랑 말고 
저무는 들녘일수록 더욱 은은히 아름다운 
억새풀처럼 늙어갈 순 없을까 
바람 많은 가을 강가에 서로 어깨를 기댄 채 

우리 서로 물이 되어 흐른다면 
바위를 깎거나 갯벌 허무는 밀물 썰물보다는 
물오리떼 쉬어가는 저녁 강물이었음 좋겠어. 
이렇게 손을 잡고 한 세상을 흐르는 동안 
갈대가 하늘로 크고 먼바다에 이르는 강물이었음 좋겠어. 

 

 

 

 

 

 

 

 

 

희망
-도종환-
그대 때문에 사는데 
그대를 떠나라 한다 

별이 별에게 속삭이는 소리로 
내게 오는 그대를 
꽃이 꽃에 닿는 느낌으로 
다가오는 그대를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고 
사람들은 내게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돌아섰듯이 
알맞은 시기에 그대를 떠나라 한다 

그대가 있어서 
소리없는 기쁨이 어둠속 촛불들처럼 
수십개의 눈을 뜨고 손 흔드는데 

차디찬 겨울 감옥 마룻장 같은 세상에 
오랫동안 그곳을 지켜온 
한장의 얇은 모포 같은 그대가 있어서 
아직도 그대에게 쓰는 편지 멈추지 않는데 

아직도 내가 그대 곁을 맴도는 것은 
세상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 한다 
사람 사는 동네와 그 두터운 벽을 
제대로 보지 못하기 대문이라 한다. 

모든 아궁이가 스스로 불씨를 꺼버린 방에 앉아 
재마저 식은 질화로를 끌어안고 
따뜻한 온돌을 추억하는 일이라 한다 

매일 만난다 해도 다 못 만나는 그대를 
생에 오직 한번만 만나도 다 만나는 그대를

 

 

 

 

 

 

 

 

 

나비 
-류시화-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지구에 달맞이 꽃이 피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이제 막 동그라미를 그려낸 
어린 해바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세상은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내가 삶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그리움 때문
지구가 나비 한 마리를 감추고 있듯이
세상이 내게서
너를 감추고 있기 때문

파도가 바다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그 속에서 장난치는 어린 물고기 때문이다 
바다가 육지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모래에 고개를 묻고 한 치 앞의 생을 꿈꾸는
늙은 해오라기 때문이다

아침에 너는 나비 한 마리로 
내게 날아온다
달이 지구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나비의 그 날개짓 때문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달아날 수 없는 것은 
너에 대한 내 그리움 때문

 

 

 

 

 

 

 

 

여우 사이 
-류시화- 
나무와 나무 사이
섬과 섬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어디에나 사이가 있다 

여우와 여우 사이
별과 별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그 사이가 없는 곳으로 가고 싶다 

물과 물고기에게는 사이가 없다
바다와 파도에는 사이가 없다
새와 날개에는 사이가 없다 

나는 너에게로 가고 싶다
사이가 없는 그곳으로 


 

 

 

 

 

 

 


소금 인형 
-류시화-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 간
소금 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 든
나는
소금 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소금별 
-류시화- 
소금별에 사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 수 없네
눈물을 흘리면
소금별이 녹아 버리기 때문
소금별 사람들은
눈물을 감추려고 자꾸만
눈을 깜박이네
소금별이 더 많이 반짝이는 건
그 때문이지 

 

 

 

 

 

 

 

 

우리는 한 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류시화-
우리는 한 때
두 개의 물방울로 만났었다
물방울로 만나 물방울의 말을 주고 받는
우리의 노래가 세상의 강을 더욱 깊어지게 하고
세상의 여행에 지치면 쉽게
한 몸으로 합쳐질 수 있었다
사막을 만나거든
함깨 구름이 되어 사막을 건널 수 있었다
그리고 한 때 우리는
강가에 어깨를 기대고 서 있던 느티나무였다
함께 저녁강에 발을 담근 채
강 아래쪽에서 깊어져가는 물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리가 오랜 시간 하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어도 함께 기울고 함께 일어섰다
번개도 우리를 갈라 놓지 못했다
우리는 영원히 그렇게 느티나무일 수 없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우리는 몸을 바꿔 늑대로 태어나
늑대 부부가 되었다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늑대의 춤을 추었고
달빛에 드리워 진 우리 그림자는 하나였다
사냥꾼의 총에 당신이 죽으면
나는 생각만으로도 늑대의 몸을 버릴 수 있었다
별들이 약속했듯이
이제 우리가 다시 몸을 바꿔 사람으로 태어나
약속했던 대로 사랑을 하고
전생의 내가 당신이었으며
당신의 전생은 또 나였음을
별들이 우리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러나 당신은 왜 나를 버렸는가
어떤 번개가 당신의 눈을 멀게 했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물방울로 만날 수 없다
물가의 느티나무일 수 없고
늑대의 춤을 출 수 없다
별들의 약속을 당신이 저버렸기에
그리하여 별들이 당신을 저버렸기에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 
-류시화- 
넌 알겠지 
바닷게가 그 딱딱한 껍질 속에 
감춰 놓은 고독을 
모래사장에 흰 장갑을 벗어 놓는 
갈매기들의 무한 허무를 
넌 알겠지 
시간이 시계의 태엽을 녹슬게 하고 
꿈이 인간의 머리카락을 희게 만든다는 것을 

내 마음은 바다와도 같이 
그렇게 쉴새없이 너에게로 갔다가 
다시 뒷걸음질친다 
생의 두려움을 입에 문 한 마리 바닷게처럼 

나는 너를 내개 달라고 
물 속의 물풀처럼 졸라댄다 
내 마음은 왜 
일요일 오후에 
모래사장에서 생을 관찰하고 있는 물새처럼 
그렇게 먼 발치서 너를 바라보지 못할까 

넌 알겠지 
인간으로 태어난 슬픔을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는 
무한 고독을 
넌 알겠지 
그냥 계속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그것만이 유일한 진실이라는 것을 

 

 

 

 

 

 

 

다시 
-박노해- 
희망찬 사람은 
그 자신이 희망이다 

길 찾는 사람은 
그 자신이 새길이다 

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 

사람 속에 들어 있다 
사람에서 시작된다 

다시 
사람만이 희망이다

 

 

 

 

 

 

 

 

 

세월이 가면 
-박인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날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그 벤취 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겨울이 오기 전에 
- 백창우의 <겨울이 오기 전에>중에서 - 
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우리
몇 장의 편지를 쓰자.
찬물에 머리를 감고
겨울을 나는 법을 이야기 하자.
가난한 시인의 새벽노래 하나쯤 떠올리고
눅눅한 가슴에 꽃씨를 심자.

이제 숨을 좀 돌리고
다시 생각해 보자.
큰 것만을 그리느라
소중한 작은 것들을 잃어온 건 아닌지.

길은 길과 이어져 서로 만나고
작은 것들의 바로 곁에 큰 것이 서 있는데
우린 바보같이 먼 데만 바라봤어.

사람 하나를 만나는 일이 바로
온 세상을 만나는 일인데
조그만 나무 한 그루가
온 우주를 떠받치고 있는데
우린 참 멍청했어.

얘야, 오늘은 우리
그리운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자.
겨울이 오기 전에... 

 

 

 

 

 

 

 

 

좀 쉬세요
-백창우- 
쉬고 싶은 만큼 쉬다 가세요 
사는 게 힘들지요 
뭐 좀 해볼려고 해도 잘 되질 않고 
자꾸 마음만 상하지요 
모두 일 다 미뤄두고 여기 와서 좀 쉬세요 
읽고 싶던 책도 맘껏 읽고 
듣고 싶던 음악도 맘껏 듣고 
어둑해지면 나랑 같이 
술이나 한잔 해요 
시계도 없고 달력도 없고 
전화도 없고 텔레비젼도 없고 
여긴 없는 게 많아서 
그런대로 지낼만할 거예요 
아무 때나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는 것 하나만 해도 
쉬는 값은 하지 않겠어요 
좀 쉬세요, 그러다 고장나요 
한두 해 살다 그만둘 게 아니라면 
이따금 세상에서 한발짝 물러나 
숨을 좀 돌릴 필요가 있지요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복효근-

내가 꽃피는 일이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면

꽃은 피어 무엇하리

당신이 기쁨에 넘쳐

온누리 햇살에 둘리어있을 때

나는 꽃피어도 무엇하리

또한

내 그대를 사랑한다 함은

당신의 가슴 한복판에

찬란히 꽃피는 일이 아니라

눈두덩 찍어내며 그대 주저앉는

가을 산자락 후미진 곳에서

그저 수줍은 듯 잠시

그대 눈망울에 머무는 일

그렇게 나는

그대 슬픔의 산높이에서 핀다

 

당신이 슬플 때 나는 사랑한다

 

 

 

 

 

 

 

 

 

소리 물고기 
-복효근- 
내소사 목어 한 마리 내 혼자 뜯어도 석 달 열흘 우리 식구 다 뜯어 
도 한달은 뜯겠다 그런데 벌써 누가 내장을 죄다 빼먹었는지 텅 빈 
그 놈의 뱃속을 스님 한 분 들어가 두들기는데...... 

소리가 하, 그 소리가 허공 중에 헤엄쳐 나가서 한 마리 한 마리 
물고 가고 칠산바다 조기떼도 한 마리씩 온 산의 나무들도 한 
마리씩 구천의 별들도 그 물고기 한 마리씩 물고 가는데...... 

온 우주를 다 먹이고 목어는 하, 그 목어는 여의주 입에 문 채 아무 
일 없다는 듯 능가산 을 바람그네 타고 노는데...... 

숲 저쪽 만삭의 달 하나 뜬다

 

 

 

 

 

 

 

 

 

사랑한다는 것으로 
-서정윤- 
사랑한다는 것으로
새의 날개를 꺾어
너의 곁에 두려 하지 말고 
가슴에 작은 보금자리를 만들어
종일 지친 날개를 쉬고 다시 날아갈
힘을 줄 수 있어야 하리라

 

 

 

 

 

 

 

 

 

 

 

 

 

 

 

 


-신경림-

사람들은 자기들이

길을 만든 줄 알지만 
길은 순순히 사람들의 뜻을 좇지는 않는다. 
사람을 끌고 가다가 문득 
벼랑 앞에 세워 낭패시키는가 하면 
큰물에 우정 제 허리를 동강내어 
사람이 부득이 저를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들은 이것이 다 사람이 만든 길이 
거꾸로 사람들한테 세상 사는 
슬기를 가르치는 거라고 말한다 
길이 사람을 밖으로 불러내어 
온갖 곳 온갖 사람살이를 구경시키는 것도 
세상 사는 이치를 가르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길의 뜻이 거기 있는 줄로만 알지 
길이 사람을 밖에서 안으로 끌고 들어가 
스스로를 깊이 들여다보게 한다는 것은 모른다 
길은 밖으로가 아니라 안으로 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길은 고분고분해서 
꽃으로 제 몸을 수놓아 향기를 더하기도 하고 
그늘을 드리워 사람들이 땀을 식히게도 한다 
그것을 알고 나서야 사람들은 비로소 
자기들이 길을 만들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임께서 부르시면
-신석정_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에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호수(湖水)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파란 하늘에 백로(白鷺) 노래하고 
이른 봄 잔디밭에 스며드는 햇볕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얼마나 좋을까/2 
-신진호-
깨끗한 찻잔 부딪히는
투명한 소리처럼
맑은 소리 내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떨어진 꽃잎 보며
정말 거짓이 아닌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종달새 울음 같은 
예쁜 울음 울며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눈이 부셔,
그 눈부신 햇살 받으며
초라한 껍질 벗고 
죽을 수 있는 죽음
다 죽어가며
그래도 하나 남을 목슴
조차, 사랑 보듬고
내가 죽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뿐인 세상에서
현실뿐인 사람들이 
비웃으며, 비웃으며
쳐다보는
또한 현실뿐인 눈동자를
씩씩하게 뿌리치는 
재만 남은 가슴
끌어안고
내가 죽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랑이란 
결과가 아닌
과정이라는
아름답고 영원한 진실
증거하며
처마 밑 댓돌 위에
부서지는
은빛 물방울처럼
그렇게 아름답게
부서질 수 있다면
얼마나, 얼마나 좋을까


 

 

 

 

 

 

 



친구가 화장질 갔을 때
-신진호-
그 짧은 시간에
눈물을 훔쳤다
그리고는 서둘러
술잔을 비웠다
알지 못하리라
이런 가슴 아픔을

친구가 돌아설 때
나는 웃고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재떨이
-신진호-
처음,
백조다방 개업기념으로
받아왔던
하얀 사기 재떨이는
너무 깨끗했다
쓰기 아까와
흑백 T.V. 위에
장식용으로 놓아 두었지

시덥지 않은
가을비 때문에
일 못나간
포장마차 술친구 몇놈
막무가내 찾아와
고스톱도 치고
막걸리도 마시고

라면 사러 갔다온 사이
재떨이는, 내 하얀 재떨이는
난장이 되어 있었다
침도 뱉고
담배도 비벼끄고
달걀껍질도 까놓고

그날 저녁
막걸리에 취해
연속극도 못보고
자리에 누웠다가
달빛에 울고 있는
서러운 재떨이가 
너무 청승 맞아서
박살을 내버렸다

 

 

 

 

 

 

 

 

 

나무를 위하여 
-신현림- 
어둠이 오는 것이 왜 두렵지 않으랴 
불어닥치는 비바람이 왜 무섭지 않으랴 
잎들 더러 썩고 떨어지는 어둠 속에서 
가지들 휘고 꺾이는 비바람 속에서 
보인다 꼭 잡은 너희들 작은 손들이 
손을 타고 흐르는 숨죽인 흐느낌이 
어둠과 비바람까지도 삭여서 
더 단단히 뿌리와 몸통을 카운다면 
너희 왜 모르랴 밝은 날 어깨와 가슴에 
더 많은 꽃과 열매를 달게 되리라는 걸 
산바람 바닷바람보다도 짓궂은 이웃들의 
비웃음과 발길질이 더 아프고 서러워 
산비알과 바위너설에서 목 움츠린 나무들아 
다시 고개 들고 절로 터져나올 잎과 꽃으로 
숲과 들판에 떼지어 설 나무들아 

 

 

 

 

 

 

 

 

 

 

어린왕자 중에서...

내가 이토록 흔들리고 있는 까닭은 네 영혼이 너무나 아름답고 착하기 때문이다..
사막이 아름다운건 샘이 숨어 그렇듯이...

 

 

 

 

 

 

 

 

 

 

 

 

 

 

 

 

 

 

 

 

 

기관차를 위하여          

 -안도현-

기관차야, 스스로 너는 힘을내 달린다고 생각하겠지

하찮은 일에서부터 세상을 움직이는 큰일까지

혼자힘으로는 될 수 없는게 너무 많다는 것을 모르고

기관사가 타고 서울역에서 출발하기만 하면

어디든 닿을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겠지

 

그래서 떠나기도 전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는 구나

가령 객차에 한사람의 손님도 타지 않았다면

화물칸에 라면상자 하나 싣지 않았다면

비록 떠난다해도 너는 우스운 쇳덩어리일 뿐

그 누구에게도 추억이 될 수 없을 거야

 

이세상 끝에서 끝까지 얼마나 많은

철길들이 서로 어깨끼고 있는 줄도 모르고

부산이나 목포까지 갔다 왔다고 기적을 울리며

플랫포옴으로 들어오는 기관차야, 자만심을 버려야해

국경을 건너고 거친 대륙을 횡단하기 전에는

한반도는 슬픈 작은섬일 뿐이야

 

내 어린시절, 기차를 몇번 타 봤는지

얼마만큼 먼곳 까지 타고 갔다 돌아왔는지 내기할 때마다

시골뜨기인 나는 미리 주눅이 들곤 했었는데

나중에 커서야 알았지 세상을 많이 아는것도 어렵지만

세상하고 더불어 사는건 더욱 벅차다는 것을

 

이제 슬쩍 너에게만 말해줄게 있는데

기관차야, 요즈음 사람들이 기차를 타고

삶은 계란을 잘 사먹지 않는 까닭은 말이야 그것은

삶으로 부터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란다.

 

그저 스치고 지나가는 간이역의 이름름처럼

앞으로 많은 날들이 너를 녹슬게 하겠지만

기관차야, 철길위에 버티고 서있지 말고

새길을 만들어 달릴때 너는 기관차인 것이다.

끝이다. 더는 못간다 싶을때 힘을내

달릴수 있어야 모두들 너를

힘센 기관차로 부를 것이다

 

 

 

 

 

 

 

 

 

 

대숲이 푸른 이유

-안도현-

 

대숲의 푸른 머리카락을 빗질하려고

 바람이 대숲으로 들어가네

 댓잎들이 배때기를 일제히 뒤집은 채

 바람을 밀어내려고 버티네

 이것 좀 봐 화가 잔뜩난 바람이

 한 손으로 대숲의 머리채 휘어잡고

 한 손으로 대숲의 종아리 후려치네

 대숲이 왜 저렇게 푸르냐 하면

 아으, 한 평생 서서 매맞은 탓이라네..

 

 

 

 

 

 

 

 

 

가난하다는 것은

-안도현-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 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가을 햇볕

-안도현-

가을 햇볕 한마당 고추 말리는 마을 지나가면

가슴이 뛴다

아가야

저렇듯 맵게 살아야 한다

호호 눈물 빠지며 밥 비벼먹는  

 

그럴 때 속을 달래는 찬물의 빛나는

사랑도 되고

 

 

 

 

 

 

 

 

 

 

 

개망초꽃

 -안도현-

눈치코치 없이 아무 데서나 피는 게 아니라

개망초꽃은

사람의 눈길이 닿아야 핀다

이곳 저곳 널린 밥풀 같은 꽃이라고 하지만

개망초꽃을 개망초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개망초꽃은 핀다

 

더러는 바람에 누우리라

햇빛 받아 줄기가 시들기도 하리라

그 모습을 늦여름 한때

눈물 지으며 바라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이 세상 한쪽이 얼마나 쓸쓸하겠는가

훗날 그 보잘것없이 자잘하고 하얀 것이

어느 들길에 무더기 무더기로 돋아난다 한들

누가 그것을 개망초꽃이라 부르겠는가

 

 

 

 

 

 

 

 

 

 

 

겨울 나무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마음 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 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가지 내 할 일은

머리 끝까지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고래를 기다리며...

-안도현-

 고래를 기다리며

 나 장생포 바다에 있었지요

 누군가 고래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 했지요

 설혹 돌아온다고 해도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나는 서러워져서 방파제 끝에 앉아

 바다만 바라보았지요

 기다리는 것은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다리고, 기다리다 지치는 게 삶이라고

 알면서도 기다렸지요

 고래를 기다리는 동안

 해변의 젖꼭지를 빠는 파도를 보았지요

 숨을 한 번 내쉴 때마다

 어깨를 들썩이는 그 바다가 바로

 한 마리 고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요

 

 

 

 

 

 

 

 

 

 

 

 

 

국방색 바지에 대하여

-안도현-

저 벽에 걸린 바지는

국방색이다

단단한 청춘의 허벅지가 쑥 빠져나갔다

나는 후줄그레한 저 바지를 볼 때마다

우리들의 뒷골목을 돌아가야 빠꼼하게 간판불을 달고 있는

여인숙을 생각한다

그리운 냄새가 킁킁, 날 것도 같다

휴전선 이남에서 국방색 바지 입고 좆뺑이친 사내들 중에

50년대 이후 거기 누워 옆방에서

힘쓰는 소리, 욕지거리 한번 들어보지 않은 놈 있으면

나와 봐라, 국방색 바지가 걸려 있는 모든 방은

그래서 붉은 유곽이며

우리는 유곽이 키운 자식들이다

빳빳하게 다린 바지 훌러덩 벗고 그곳을 통과하지 않고는

누구도 어른이 될 수 없는 나라에서

그 바지 속에다 팽팽한 두 다리를 밀어 넣고

헌 자전거 타고 연대본부에 출근하던 나는

방위병이었다, 그때

군용트럭 위에서 여자만 보면 주먹감자를 먹이던

현역들의 성욕을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의 국방색 바지 속에 숨어 있는

욕망의 종소리를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짬밥을 퍼먹을 때

나는 어머니가 차려준 밥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마다 어이 물방위, 하고 불러서는 차렷, 열중쉬어 시키던

한참이나 어린 상병의 낯짝에 침 한번 뱉지 못했던 것도

계급 때문이 아니라

내가 국방색 바지를 그보다 먼저 벗게 되기 때문이었다

생전에 우리 아버지는 군에 가면 밥도 주고 옷도 주고

그래야 사람이 된다, 하셨지만

나는 내 아들에게는 다시는 입히지 않을

녹슨 못대가리에 달랑 매달려 있는

치욕의 빈 껍데기 같은

저 국방색 바지

 

 

 

 

 

 

 

 

 

 

그대에게

-안도현-

괴로움으로 하여

그대는 울지 마라

마음이 괴로운 사람은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아무도 곁에 없는 겨울

홀로 춥다고 떨지 마라

 

눈이 내리면

눈이 내리는 세상 속으로

언젠가 한번은 가리라 했던

마침내 한번은 가고야 말 길을

우리 같이 가자

모든 첫 만남은

설레임보다 두려움이 커서

그대의 귓불은 빨갛게 달아오르겠지만

떠난 다음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 일이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더 많은 우리가

스스로 등불을 켜 들지 않는다면

어느 누가 있어

이 겨울 한 귀퉁이를

밝히려 하겠는가

 

가다 보면 어둠도 오고

그대와 나

그 때 쓰러질듯 피곤해지면

우리가  

 

세상속을 흩날리며

서로서로 어깨 끼고 내려오는

저 수많은 눈발 중의 하나인 것을

생각하자

부끄러운 것은 가려주고

더러운 것은 덮어주며

가장 낮은 곳으로부터

찬란한 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우리

가난하기 때문에

마/음/이/ 따/뜻/한/ 두/ 사/람/이 되/자

괴로움으로 하여 울지 않는

사/랑/이/ 되/자

 

 

 

 

 

 

 

 

 

 

 

그대에게 가는길

-안도현-

그대가 한자락 강물로 내 마음을 적시는 동안 끝없이 우는 밤으로 날을

지새우던 나는 들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밤마다 울지 않으려고 괴로워하는 별을 바라보았습니다

래오래 별을 바라본 것은 반짝이는 것이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어느 날 내가 별이 되고 싶어서가 아니라 헬 수 없는 우리들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었습니다

그때부터 나는 지상의 여기저기에 크고 작은 길들을 내기 시작

하였습니다

해 뜨는 아침부터 노을 지는 저녁까지 이 길 위로 사람들이 쉬지 않고

오가는 것은 그대에게 가는 길이 들녘 어디엔가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이랍니다  

 

  

 

 

 

 

 

 

 

바람이 부는 까닭

-안도현-

바람이 부는 까닭은

미루나무 한 그루 때문이다

 

미루나무 이파리 수천, 수만 장이

제 몸을 뒤집었다 엎었다 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흔들고 싶거든

자기 자신을 먼저 흔들 줄 알아야 한다고

 

  

 

 

 

 

 

 

 

 

 

 

 

 

 

 

 

애기똥풀

-안도현-

나 서른다섯 될 때까지

애기똥풀 모르고 살았지요

해마다 어김없이 봄날 돌아올 때마다

그들은 내 얼굴 쳐다보았을 텐데요

  

코딱지 같은 어여쁜 꽃

다닥다닥 달고 있는 애기똥풀

얼마나 서운했을까요

 

애기똥풀 모르는 것이 저기 걸어간다고

저런 것들이 인간의 마을에서 시를 쓴다고

 

 

 

 

 

 

 

 

 

 

 

 

 

 

 

 

 

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듯이 
연탄은, 일단 제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나는 

 

 

 

 

 

 

 


수박을 먹으면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수박을 먹네요.
사랑으로 빚어진 이야기를 먹네요.
물 속에서 돌아온 아이들의
싱싱하게 씻긴 의욕이 모여앉아
착한 맘으로
시원한 입술로 먹네요.

은피라미떼를 움직이는 지느러미처럼
하나씩 하오의 햇빛을 뱉으며
여름을 쪼개어 먹네요.
속살을 베어 무는 아이들의 송곳니
그 송곳니로 몰려와
찰랑이는 강물소리.
포플러 긴 요동만큼이나 부퍼오르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내 잃어버린 하늘이 고여 있네요.

수박을 먹으면
아이들의 속눈썹엔 함박눈이 내리네요.
눈 내린 부피만큼 아이들은
오랜 낮잠을 어루만질 것이네요.

 

 

 

 

 

 

 



분홍 지우개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분홍지우개로 
그대에게 쓴 편지를 지웁니다 
설레이다 써버린 사랑한다는 말을 
조금씩 조금씩 지워 나갑니다 
그래도 지운 자리에 다시 살아나는 
그대 보고 싶은 생각 
분홍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그리운 그 생각의 끝을 
없애려고 혼자 눈을 감아 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지워질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엇이 되어 中에

-예반-

처음엔 꼭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모두
우리의 삶을
그 누군가와
나눌 목적으로
이세상에 왔습니다
그리고 일생 동안
우리는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
늘 고민하고
또 가끔씩은 
고통스러워합니다
그것은 하나가 다가서서는
이룰 수 없고
둘이서
중간쯤에서 만나려고 해야만
이루어지는 목적이어서 그렇습니다

당신께
내게 오도록
부탁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것이
중간쯤에서 나와 만나는
하나뿐인 방법이라도 말입니다

당신을 만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아니, 당신을 
아주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배고플 땐
음식이
보호받고 싶을 땐
집이
늘 건강하기 위해선
일이 필요한 당신을 
그리고
당신에겐 누군가가 
특히 필요하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누구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누구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되돌아가기 위해 돌아선다면
나는 그제야
느낄 것입니다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을 거라고

 

 

 

가을을 파는 꽃집
-용혜원- 
꽃집에서
가을을 팔고 있습니다
가을 연인같은 갈대와
마른 나무가지
그리고 가을 꽃들
가을이 다 모여 있습니다

하지만
가을 바람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거리에서 가슴으로 느껴 보세요
사람들 속에서도 불어 오니까요
어느 사이에
그대 가슴에도 불고 있지 않나요

가을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
가을과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은
가을을 파는 꽃집으로
다 찾아오세요

가을을 팝니다
원하는 만큼 팔고 있습니다
고독은 덤으로 드리겠습니다

 

 

 

 

 

 

 

 

 

 

 

그대가 진정 사랑한다면
-용혜원-
그대가 진정 사랑 한다면
사랑을 함부로 고백하지 말아요.
모든 열매들이
소리없이 꽃피고
소리없이 열매를 맺듯이
진실한 사랑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요.

그대가 진정 사랑한다면
날 지켜봐 주어요.
한 순간으로 전부를 안다고
할 수는 없어요.

사랑은 기쁠 때보다도
아픔서 속에서 
알 수 있어요.

그대가 진정 사랑한다면
사랑을 함부로 고백하지 말아요.
일 년 사계절을 살아가며
계절마다 부는 바람도 다르듯이
우리의 사랑은
살아가면서 더욱 깊어 갈거예요.

 

 

 

 

 

 

 




커피와 인생
-용혜원-
한 잔의 커피도 
우리들의 인생과 같다

아무런 의미를 붙이지 않으면
그냥 한 잔의 물과 같이
의미가 없지만

만남과 헤어짐 속에
사랑과 우정 속에
의미를 가지면

그 한 잔의 작은 의미보다
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우리들의 인생도
그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따라
의미가 다를 것이다

모두 저마다의 
삶의 의미를 갖고
저마다 자기의 삶을
오늘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잔의 커피에 
낭만과 사랑을
담고 마실줄 아는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도 역시 
낭만과 사랑이 있으리라

 

 

 

 

 

 

 

 

 

 

어리석은 사람
-용혜원-
그대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싫어서가 아닙니다 

하지만 
유독 짜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왠지 짜증을 
부리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골이 난 아이처럼 
잔뜩 심통 난 아이처럼 
퉁명스런 말투와 
찌푸린 눈으로 
자꾸만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그대가 
미워서가 아닙니다 
그대가 
싫어서가 아닙니다 

살다보면 
산다는 것에 짜증이 나서 
내가 보기에도 
어리석은 사람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한잔의 커피 
-용혜원-
하루에
한 잔의 Coffee 처럼
허락되는 삶을
향내를 음미하며 살고픈데
지나고 나면
어느새 마셔버린 쓸쓸함이 있다.
어느 날 인가?
빈잔으로 준비될
떠남의 시간이 오겠지만
목마름에
늘 갈증이 남는다.
인생에 있어
하루하루가
터져오르는 꽃망울처럼
얼마나 고귀한 시간들인가?
오늘도 김 오르는 한 잔의 Coffee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뜨겁게 마시며 살고 싶다

 

 

 

 

 

 

 

 

 

 

 

그립다는 것
-원태연-
그립다는 건 
흐르는 강물과도 같은 것
떠밀려 내려가면서도
돌아볼 수 있는 그곳에 만족하며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만 가는 것 

그립지 않다는 건
아이의 투정과도 같은 것
할 수 있는 일이란
떼를 써보는 일이기에
그립지 않다고
그립지 않다고
악을 쓰며 울어대는 것 

가만히 있어도 아프고
가만히 있지 않아도 아픈 것
그립다는 것 
그것 


 

 

 

 

 

 

 



담배를 태우며
-원태연-
문득
알아버렸다
담배를 태우며
깊숙히 빨아들이다
느닷없이
알아버렸다
죽이려한다는 걸
가슴 속 그녀를
담배연기로 질식시켜
죽여버리려 한다는 걸
한모금 깊게 빨아들이다
죽이려고
태운다는 걸
알아버렸다

 

 

 

 

 

 

 

 

 

가을
-유안진 -

이제는 사랑도 
추억이 되리라 

꽂내음보다는 
마른 풀이 향기롭고 

함께 걷던 길도 
홀로 걷고 싶어라 

침묵으로 말하며 
눈감은 채 고즈느기 
그려보고 싶어라 

어둠이 땅속까지 적시기를 기다려 
비로소 등불 하나 
켜놓고 싶어라 

서 있는 이들은 앉아야 할 때 
앉아서 두 손 안에 얼굴 묻고 싶을 때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유안진-

슬퍼지는 날에는 
어른들아 어른들아 아이로 돌아가자 
별똥 떨어져 그리운 그곳으로 가자 
간밤에 떨어진 별똥 주우러 가자 

사랑도 욕스러워 외로운 날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물어보자 
개울가의 미나리아재비 물봉숭아 여린 꽃이 
산기슭의 패랭이 엉겅퀴 산나초가 
어때서 별똥 떨어진 그 자리에만 피는가를 

어른들아 어리석은 어른들아 
사는 일이 참말로 엄청 힘들거든 
작고도 단순하게 경영할 줄도 알아야지 
작아서 아이같은 고향마을로 가서 
밤마다 떨어지는 별똥이나 생각다가 

엄마 누나 무릎 베고 멍석자리 잠이 들면 
수모도 치욕도 패배도 좌절도 
횃불꼬리 달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꿈 
찬란한 별똥별이 되어주지 않을꺼나 

 

 

 

 

 

 

 

 

 

 

콜라 속의 연꽃, 심혜진論 
-난 느껴요―苦口苦來 
우리나라 신식 국자는 무슨 국자? 일명 신식민지 국독자? 
처음 코카콜라가 등장했을 때 웬 간장이냐며 국에 뿌린 년도 있긴 있을라 
난 느껴요―코카콜라, 언제나 새로운 맛 신식 국독자로 떠먹는 코카콜라 그때마다 
톡 쏘는 맛처럼 떠오르는 여자가 있다 코카콜라 씨에프에서 
팔꿈치로 남자를 때리며 앙증맞게 웃는 여자, 그 몇 프레임 안 되는 장면 하나가 방영되자마자 연예가 
일번지 압구정동 일대가 
술렁였댄다 그것 땜에 애인 있는 남자들의 옆구리가 순식간에 멍들었다는데…… 
왜 그 시에프가 히트했는가에 대한 항간의 썰들은 분분하다 
가학으로 상징되는 남자와 피학으로 상징되는 여자의 쏘샬 포지션을 자극적으로 뒤튼 것이 주요했다는 
친구도 있고 
(놈은 허슬러부터 휴먼 다이제스트에 이르기까지 마조히즘 사디즘에 관한 미국의 온갖 빨간책은 물론 
마광수의 가자 장미여관, 야한 여자, 권태까지 섭렵한 권태스런 놈이다) 
그 씨에프의 콘티는 말야 전세계 장래마저 자국의 문법으로 콘티 짜는 미국의 솜씨니까 당연한 거라구, 
잘난 척하는 녀석도 있다 
난 전율한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심혜진의 보조개 패인 미소 뒤에도 얼마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은 쾌남아들의 거대한 미소가 도사리고 있는가 
하여튼 단 심 초의 미소로 바보상자의 관객들과 쇼부를 끝낸 여자 심혜진 
그녀가 요즘 씨에프에서 닦여진 순발력 있는 연기로 은막에서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다 제목은 물의 나라 
감독은 얼씨구나 양파 껍질처럼 끝없이 옷을 벗기기 시작하는데, 그녀만 보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코카콜라를, 
삼성 에이 에프 오토 줌 카메라를, 해태 화인쥬시껌을 사고 싶어지는 내 눈알, 나는 본다 저 알몸 위로 
오버랩되는...... 
온 산을 갈아엎는 사람들의 세상을 온통 콜라빛 폐수로 넘실대게 하는 사람들을 이땅을 온갖 욕망의 
구매력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들을 그리하여 
이 지구의 虛를 말살시키고 있는 사람들을 아아 하나뿐인 인격, 하나뿐인 지구 
라오쯔의 말씀대로 빈 그릇만이 쓰임이 있는 것 
또한 갖가지 색과 음과 맛이, 사람을 질주하는 미친 말처럼 만드는 것 
수많은 심혜진들이 허를 상실당하고 반짝별로 사라지는 충무로 
차차차여, 오늘도 그녀들의 금테 잔이 출렁출렁 넘치는구나 
결국 색이란 건 아무리 벗겨봐야 양파처럼 空이 될 뿐, 아으 
난 앞으로 심혜진을 보면 절제를 생각하겠다 목마르면 보리차나 드라이하게 한잔, 쏠리면? 에이 에이즈 
땜에...... 
빈 코카콜라 병은 어따 쓰게, 그거야 화염병으로라도 쓸모가 있으리니 
난 느껴요―가끔은 코카콜라 든 심혜진의 미소가 폐수 위에 핀 연꽃처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이기철- 
잎 넓은 저녁으로 가기 위해서는 
애인들이 더 따뜻해져야 한다 
초승달을 데리고 온 밤이 우체부처럼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채소처럼 푸른 손으로 하루를 씻어 놓아야 한다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을 쳐다보고 
이 세상에 살고 싶어서 별 같은 약속도 한다 
이슬 속으로 어둠이 걸어 들어갈 때 
하루는 또 한 번의 작별이 된다 
꽃송이가 뚝뚝 떨어지며 완성하는 이별 
그런 이별은 숭고하다 
사람들의 이별도 저러할 때 
하루는 들판처럼 부유하고 
한 해는 강물처럼 넉넉하다 
내가 읽은 책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내가 만난 사람은 모두가 아름다웠다 
나는 낙화만큼 희고 깨끗한 발로 
하루를 건너가고 싶다 
떨어져서도 향기로운 꽃잎의 말로 
내 아는 사람에게 
상추잎 같은 편지를 보내고 싶다 

 

 

 

 

 

 

 

 

 

 

 

 

 
-이정하- 
너에게 가지 못하고
나는 서성인다. 
내 목소리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름이여,
차마 사랑한다 말하지 못하고
다만 보고 싶어진다고만 말하는 그대여,
그대는 정녕 한 발짝도
내게 내려오지 않긴가요.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 
-이 정 하- 
비를 맞으며 걷는 사람에겐 우산보다
함께 걸어줄 누군가가 필요한 거임을
울고 있는 사람에겐 손수건 한 장보다
기대어 울 수 있는 한 가슴이
더욱 필요한 것임을. 

그대를 만나고서부터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대여, 지금 어디 있는가.
보고 싶다 보고 싶다
말도 못 할 만큼
그대가 그립습니다. 


 

 

 

 

 

 

 



사랑이란 이름의 종이배 
-이 정 하-
때때로 난
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가 지금 어디에 있으며
무엇을 하는지 또한 알고 싶었다.
당신은 당신의 아픔을 자꾸 감추지만
난 그 아픔마저 나의 것으로
간직하고 싶었다. 

그러나 언제나 사랑은
내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가만히 놓아 주지 않았다.
이미 내 손을 벗어난 종이배처럼
그저 물결에 휩쓸릴 뿐이었다.
내 원하는 곳으로 가주지 않는 사랑
잔잔하고 평탄한길이 있는데도
굳이 험하고 물살 센 곳으로 흐르는 종이배
사랑이라는 이름의 종이배. 



 

 

 

 

 

 

 


흔들리며 사랑하며 
-이 정 하-- 
이젠 목마른 젊음을
안타까워하지 않기로 하자.
찾고 헤매고 또 헤매이고
언제나 빈손인 이 젊음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하자. 

누구나 보균하고 있는
사랑이란 병은 밤에 더욱 심하다.
마땅한 치유법이 없는 그 병의 증세는
지독한 그리움이다. 

기쁨보다는 슬픔
환희보다는 고통, 만족보다는
후회가 더 심한 사랑, 그러나 설사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가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어찌 그대가 없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으랴 

길이 있었다. 늘 혼자서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쓸쓸했다.
길이 있었다. 늘 흔들리며
가야하는 길이었기에 눈물겨웠다. 

 

 

 

 

 

 

 



우울한 하루 
-이 정 하- 
낙엽이 떨어졌었죠.
내 마음 깊은 곳으로
그대를 만난지 하루만 지나도
내 마음은 우울병을 앓는답니다.
어떤 독한 약을 먹어도 고쳐지지 않는 

기다리지 않기로 해놓고
혼자 있을 땐 혼자의 생활에 충실하기로 해놓고
난 또 멍청히 전화기만 내려다 봅니다
지금쯤 연락이 올 때도 됐는데 연락이 오지 않으면
내 마음 그렇게 우울할 수 가 없어요
슬픈 나뭇잎만 가득 쌓인답니다 


 

 

 

 

 

 

 

 

 

 

 

 

 

 




가까운 거리 

-이 정 하- 
그녀의 머리냄새를 맡을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영원히라도 함께 있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댄 이런 나를 타이릅니다.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함께 있는게 전부가 아니라고. 

여전히 난 이해를 못하겠습니다.
그대와 함께 있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는데
왜 우린 멀리 떨어져서 서로를 그리워해야 하는지.
왜 서로보다 하고 있는 일이 먼저인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나중을 위해 지금은 참자는 말,
그 말을 이해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도 나 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지
그것이 궁금할 뿐입니다. 


 

 

 

 

 

 

 




사랑했던 날보다 
-이 정 하- 
그대 아는가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다는것을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그대와의 만남은 잠시였지만
그로 인한 아픔은 내 인생 전체를 덮었다. 
바람은 잠깐 잎새를 스치고 지나가지만
그 때문에 잎새는 내내 흔들린다는 것을
아는가 그대 이별을 두려워했더라면
애초에 사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이별을 예감했기에 더욱 그대에게
열중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상처입지 않으면 아물 수 없듯
아파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네 

만났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사랑했고
사랑했던 날보다 더 많은 날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그대여 진정 아는가 

 

 

 

 

 

 

 

 

 

 

맛있는 하루 
 - 이해인의《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중에서 -
무슨 일부터 할 지 모를 적엔
먼저 요일별로 정해놓고 ''날마다의 숙제''를 
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입니다. 교안 준비하는 날,
쌓아둔 잡지들 살펴보고 도서실에 내는 날,
빨래하는 날, 편지 쓰는 날, 시 쓰는 날, 
환자 방문하는 날, 어려운 이웃에게
전화 거는 날, 표시해둔 신문기사 오리는 날, 
부탁받은 심부름들을 우선적으로 챙기는 날,
옷 정리하고 바느질 하는 날, 색종이로
무언가를 만들고 선물 포장하는 날등....
하루하루를 맛있게 재미있게 요리하는
방법을 경험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사소한 배려의 향기
-이해인 산문집<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중에서-
아주 사소한 것일지라도 다른 이를 생각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늘 아름답습니다.

담화 시간을 끝내고 공동방에서 나오다
어느새 제 신발이 바로 신도록 돌려진 것을 보았을때,
출장길에서 돌아온 빈방에 
누군가 살짝 꽂아놓은 들꽃을 보았을때,
빨아놓고 미처 거두지 못한 옷들이 
가지런히 정돈되어 침방에 놓인 것을 보았을 때의
그 고마움과 은은한 향기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요.
이것저것 야박하게 따지거나 계산하지 않고 언제나 남을 먼저 생각하고
배려하는 행동이 몸에 밴 사람들이 많은 집에 살고 있어 행복합니다.
숨어서 묵묵히 향기를 풍기는 들꽃 같은 사람이 더욱 많아지면
이 세상도 그만큼 향기로워지겠지요.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이해인- 

내가 심은 꽃씨가

처음으로 꽃을 피우던 날의

그 고운 설레임으로

  

며칠을 앓고 난 후

창문을 열고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의

그 눈부신 감동으로

  

비 온 뒤의 햇빛 속에

나무들이 들려주는

그 깨끗한 목소리로

  

별것 아닌 일로

마음이 꽁꽁 얼어붙었던

친구와 오랜만에 화해한 후의

그 티없는 웃음으로

 

나는 항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싶다

 

못 견디게 힘든 때에도

다시 기뻐하고

다시 시작하여

끝내는 꽃씨를 닮은 마침표 찍힌

한통의 아름다운 편지로

매일을 살고 싶다

 

 

 

 

 

 

 

 

 

 

나를 받아주십시오

-이해인-

 

나를 받아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너에게 띄우는 글

-이해인-

사랑하는 사람이기보다는 진정한 친구이고 싶다.

다정한 친구이기 보다는 진실이고 싶다.

내가 너에게 아무런 의미를 줄 수 없다 하더라도

너는 나에게 만남의 의미를 전해 주었다.

순간의 지나가는 우연이기 보다는 영원한 친구로 남고 싶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할 너와 나이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친구이고 싶다.

  

모든 만남이 그러하듯

너와 나의 만남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진실로 너를 만나고 싶다.

그래, 이제 더 나이기보다는 우리이고 싶었다.

우리는 아름다운 현실을 언제까지 변치 않는 마음으로 접어두자.

비는 싫지만 소나기는 좋고

인간은 싫지만 너만은 좋다.

 

가 새라면 너에게 하늘을 주고

내가 꽃이라면 너에게 향기를 주겠지만

나는 인간이기에 너에게 사랑을 준다.

 

 

 

 

 

 

 

 

 

 

사 랑

-이해인-

우정이라 하기에는 너무 오래고

사랑이라 하기에는 너무 이릅니다.

당신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다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보았습니다.

남남이란 단어가 맴돌곤 합니다.

어처구니 없이

난 아직 당신을 사랑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신을 좋아한다고는 하겠습니다.

외롭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누구나 사랑할 때면

고독이 말없이 다가옵니다.

당신은 아십니까..

사랑할수록 더욱 외로와진다는 것을.

 

 

 

 

 

 

 

 

 

 

 

마음이 마음에게..  

-이해인-

내가 너무 커버려서

맑지 못한 것

밝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것

 

누구보다

내 마음이

먼저 알고

나에게 충고하네요

 

자연스럽지 못한 것은

다 욕심이에요

거룩한 소임에도

이기심을 버려야

순결해진답니다

  

마음은 보기보다

약하다구요?

작은 먼지에도

쉽게 상처를 받는다구요?

  

오래오래 눈을 맑게 지니려면

마음 단속부터 잘해야지요

작지만 옹졸하진 않게

평범하지만 우둔하진 않게

마음을 다스려야

맑은 삶이 된다고

마음이 마음에게 말하네요

 

 

 

 

 

 

 

 

 

 

 

 

낙화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 ……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 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 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아침 
-천상병- 
아침은 매우 기분 좋다 
오늘은 시작되고 
출발은 이제부터다 

세수를 하고 나면 
내 할 일을 시작하고 
나는 책을 더듬는다 

오늘은 복이 있을지어다 
좋은 하늘에서 즐거운 소식이 있기를 .... 

 

 

 

 

 

 

 

 

 

 

 

 

 

 

 

 

 

그냥 좋은 것
-칼리 지브란-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어디가 좋고 무엇이 마음에 들면,
언제나 같을 수는 없는 사람
어느 순간 식상해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특별히 끌리는 부분도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 때문에 그가 좋은 것이 아니라
그가 좋아 그 부분이 좋은 것입니다.

그냥 좋은 것이 그저 좋은 것입니다.
그대와 나의 관계는 내 삶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내가 알고 있는 다른 어떤 이의
삶을 통해 보아도 더 이상 아름다운 관계를
나는 알지 못합니다.
그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선천성 그리움 
-함민복-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나는 왕이로소이다 
-홍사용-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님의 가장 어여쁜 아들 나는 왕이로소이다. 가장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서...
그러나 시왕전(十王殿)에서도 쫓기어난 눈물의 왕이로소이다.
"맨 처음으로 내가 너에게 준것이 무엇이냐" 이렇게 어머니께서 물으시며는
"맨 처음으로 어머니께 드린 말씀은 '젖 주셔요'하는 그 소리였읍니다마는,
그것은 '으아'---하는 울음이었나이다" 하겠나이다. 다른 말씀도 많지요마는......

이것은 노상 왕에게 들리어 주신 어머님의 말씀인데요.
왕이 처음으로 이 세상에 올때는 어머님의 흘리신 피를 몸에다 휘감고 왔더랍니다.
그 말에 동네의 늙은이와 젊은이들은 모두 "무엇이냐"고 쓸데없는 물음질로 한창 바쁘게 오고갈때도
어머님께서는 기꺼움보다도 아무 대답도 없이 속아픈 눈물만 흘리셨답니다.
벌거숭이 어린 왕 나도 어머니의 눈물을 따라서 발버둥질치며, '으아' 소리쳐 울더랍니다.

그날 밤도 이렇게 달 있는 밤인데요,
으스름 달이 무리 서고, 뒷동산에 부엉이 울음 울던 밤인데요,
어머니께서는 구슬픈 옛 이야기를 하시다가요,
일없이 한숨을 길게 쉬시며 웃으시는 듯한 얼굴을 얼른 숙이시더이다.
왕은 노상 버릇인 눈물이 나와서 그만 끝까지 섧게 울어버렸오이다. 울음의 뜻은 도무지 모르면서도요.
어머니께서 조으실 때에는 왕만 혼자 울었소이다.
어머니의 지으시는 눈물이 젖 먹는 왕의 뺨에 떨어질 때이면 왕도 따라서 시름없이 울었소이다.

열 한 살 먹던 해 오월 열 나흗 날 밤 맨 잿더미로 그림자를 보러 갔을 때인데요, 명이나 긴가 짜른가 보랴고.
왕의 동무 장난꾼 아이들이 심술스럽게 놀리더이다 모가지 없는 그림자라고요.
왕은 소리쳐 울었소이다 어머니께서 들으시도록, 죽을까 겁이 나서요.
나뭇군의 산(山) 타령을 따라가다가 건넛 산 비탈로 지나가는 상둣군의 구슬픈 노래를 처음 들었소이다.
그 길로 옹달 우물로 가자고 지름길로 들어서며는 찔레나무 가시덤불에서 처량히 우는 한 마리 파랑새를 보았소이다.
그래 철없는 어린 왕 나는 동무라 하고 좋아 가다가 돌부리에 걸리어 넘어져서 무릎을 비비며 울었소이다.

할머니 산소 앞에 꽃 심으러 가던 날 아침에
어머니께서는 왕에게 하얀 옷을 입히시더이다.
그리고 귀밑 머리를 단단히 땋아 주시며 "오늘부터는 아무쪼록 울지 말아라."
아아 그때부터 눈물의 왕은---어머니 몰래 남 모르게 속깊이 소리 없이 혼자우는 그것이 버릇이 되었소이다.

누우런 떡갈나무 우거진 산길로 허물어진 봉화(烽火)뚝 앞으로 쫓긴 이의 노래를 부르면 어슬렁거릴 때에
바위 밑에 돌부처는 모른 체하며 감중련하고 앉았더이다.
아아, 뒷동산 장군 바위에서 날마다 자고 가는 뜬 구름은 얼마나 많이 왕의 눈물을 싣고 갔는지요.

나는 왕이로소이다. 어머니의 외아들 나는 이렇게 왕이로소이다.
그러나 눈물의 왕---이 세상 어느 곳에든지 설움이 있는 땅은 모두 왕의 나라로소이다.

 

 

 

 

즐거운 편지 
-황동규-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 
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 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 
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 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 
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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