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학습을 다녀와서>

  

  <효문화 여행>

  우리들은 현장학습을 가기 위해 풍도를 떠났다. 풍도에서 인천을 가는 시간은 2시30분쯤 걸렸다. 우린 하루 밤을 인천에서 잔 뒤 다음날 전철을 타고 코엑스몰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코엑스 몰에서는 아름다운 물고기들이 나를 반겨 주었다. 마치 내가 바다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였다.

  다음에는 과천에 있는 정보나라로 갔다. 로봇이 움직여서 풀들에게 물을 주고 씨앗을 심는 광경을 보았다. 난 너무나도 신기했다. 난 풀들에게 물을 주는 로봇이 참 좋았다. 과학의 힘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안산에 도착하여 연극을 상영하는 극장에 갔다. 제목은 '靑山(청산)아 말해다오' 였다.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숨을 바쳐서 까지 효도하는 모습에서 나는 눈물을 흘렀다. 나한테는 슬펐기 때문이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우린 다시 발걸음을 에버랜드로 옮겼다. 우리는 에버랜드로 가서 여러 가지 놀이기구 들을 탔다. 하지만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바로 '후레쉬 팡팡' 이였다.  정말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네 번은 탔다.

  다음날 아침 우린 경복궁을 향하여갔다. 경복궁을 우린 저번에도 갔었다. 그래서 이번엔 우리가 온 김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갈려고 하였다. 우린 경복궁에서 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나누고 영어를 배웠다. 정말 재미있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는 내가 더 자랑스러웠다. 그리고 더 기뻤다. 우린 점심을 김밥으로 먹고 여러 곳을 구경하면서 명성황후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었다. 명성황후에 대한 생각이 난 더욱 더 달라지고 있었다. 난 경복궁에 두 번 가서 더 많은 것을 깨달았다.

  이번 현장학습은 재미있고 많은 것을 배운 것 같다. 정말로 많은 것을 알아서 가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융릉엔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이 있다. 왕세자의 몸 의로 불과 28살의 나이로 뒤주에 갇혀 굶어 죽어간 사도세자. 아버지가 죽어 가는 것을 보고도 아버지로 불러보지 못했던 정조대왕. 정말 안타까운 일이 였다. 정조는 왕이 된 후 아버지의 묘를 융릉으로 옮기고 자신의 무덤은 그 옆에 건릉에 자리잡았다. 죽어서도 아버지를 보살피기 위함이라. 아버지와 헤어지기 싫은 것이다. 정말 정조대왕의 효성이 깊은 감동을 받았다.

  다음에는 용주사로 발길을 향하였다. 용주사는 효성 깊은 정조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만든 절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왕실에서 지은 용주사는 다른 절과 달리 삼문이 있었다. 그 문 중에서 가운데 문이 닫혀 있었다. 그 문은 왕이 들어갔다가 나오는 문이라고 했다. 해마다 아버지의 영혼을 기리기 위해 정조대왕이 찾아왔다는 용주사는 곳곳마다 효심이 깃들어 있었다.

  다음에는 수원성을 찾아갔다. 활 쏘는 곳, 총 쏘는  곳, 망을 보는 곳,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 성은 남쪽에 있는 아버지의 영혼을 지키기 위해 정조가 이 성을 건축하도록 하였다는 안내자의 말에 다시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효성이 깊은 정조대왕, 아버지를 위해 왕으로서 효도를 하신 임금의 마음이 나를 감동시켰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니 아버지를 지키기 위해 군사들의 싸우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효 문화 답사 여행, 정말 뜻 깊은 하루였다. 임금으로서 부모에게 효도한 그 발자취들이 나를 감동시켰다. 나는 지난 생활이 부끄러웠다. 부모님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되돌아 보고 싶었다.  나도 부모님께 효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