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의 연설, 그로스아일, 캐나다, 1994년 8월 21일. 추억과 회한의 이 자리에 선 우리는
1840년대의 엄청난 재앙으로 이곳에 왔다가 무력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할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그 당시의 엄청난 무력함을 보면서, 우리는
조정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무기력하다고
믿어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어온 저 고통으로 가득 찬 광대한 현장에서 방관자가
되느냐 참여하느냐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 순위 조사때마다 상위권에
드는 지금의 활기찬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어려운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1846년에서 1851년사이 아일랜드에는 심각한 대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한 기아로 아일랜드인은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때 희생된 사망자가
약 110만에 이를 정도로 극심했습니다(아래 책 p.94). 또 많은
아일랜드인이 고향을 떠나 먼 이국인 캐나다,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나야
했습니다. 앞에서 아일랜드 대통령이 방문한 캐나다 그로스아일은
이민자를 대상으로한 검역소가 있던 곳으로 많은 이들이 긴 여행으로
인한 병으로 죽었습니다. 대기근의 직접적 원인은 간단히 말해
감자 마름병이란 새로운 병의 출현으로 감자를 수확하지 못해서이지만
복합적으로 상호연관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영향력하에서 아일랜드는 전반적으로 빈곤했고 인구는 과잉상태였으면
식량으로써 감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정책은
환금성 작물의 재배와 수출용 가축의 생산증가에만 관심을 두었고(p.14)
대기근 동안 영국 정부의 순수 지출은 700만 파운드로 영국의 5년간
국민총생산의 0.5%도 안되는 액수였으며 영국보다는 아일랜드에서 더
많은 돈이 모금 되었습니다. 이는 1854년에서 1856년간의 크림
전쟁에 영국이 쏟아부은 7000만 파운드의 비용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p.95).
자원자가 아닌 피난민으로서 대기근을 전후해 180만명의 아일랜드인이
이민을 떠났습니다(p.97). 이런 사실은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
민족감정의 일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기근은 이후 아일랜드인에게
많은 상처와 함께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일랜드 내적인
변화는 물론 해외 아일랜드 이민사회의 성장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기근이 아일랜드에 남겨놓은 의미는 복잡다기한 무엇이고 또한
아직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p.126).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북한을 돕자던 교회 포스터 생각이
납니다. 슬라이고에서 였습니다. 이렇게 대기근에 대한
기억이 아일랜드인 자신만의 것일 수 없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료출처: Peter Gray, 장동현
역, 아일랜드 대기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3, 서울:시공사, 1998 아일랜드 대기근과 관련해서는
서적은 물론 인터넷상에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