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대기근

(Great Famine)

 
 
 

전 아일랜드 대통령 메리 로빈슨의 연설, 그로스아일, 캐나다, 1994년 8월 21일.
피터 그레이, 아일랜드 대기근(디스커버리 총서 63, 서울:시공사), pp.182-183

  추억과 회한의 이 자리에 선 우리는 1840년대의 엄청난 재앙으로 이곳에 왔다가 무력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할 기회를 갖고자 합니다. 그 당시의 엄청난 무력함을 보면서, 우리는 조정할 수도 변화시킬 수도 없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태도 역시 무기력하다고 믿어버리는 잘못을 범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인간의 역사와 함께 전개되어온 저 고통으로 가득 찬 광대한 현장에서 방관자가 되느냐 참여하느냐를 놓고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만약 방관자가 되겠다면 우리는 역사의 필연적인 희생자와 필연적인 생존자가 있다는 견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바로 그 견해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고 비도덕적인 거리두기가 나온다고 믿습니다.
  만약 참여자가 된다면 필연적인 희생자란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주변의 고통과 거리를 두려는 유혹을 거부합니다. 그것이 역사책에 나오든 지금의 텔레비전 뉴스에서 나오든 말입니다. 그렇게 할 때, 시계를 돌려놓을 수 없어도, 이곳에서의 죽음을 돌이킬 수 없어도, 최소한 그들의 고통을 받아들이고 나아가 그것을 우리의 열정과 헌신에 도전하는 오늘날의 고통과 연결시킴으로써 이곳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진실을 정당하게 평가하게 되는 겁니다. 만약 우리가 방관자가 된다면 우리는 그 사람들을 통계와 기억의 감옥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그 감옥 속에서 그들은 감히 탈출하지 못하고 우리의 양심과 열정에 의문을 던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아일랜드의 대통령으로서 그리고 여기서 죽어간 무수한 사람들을 기억할 때 나는 특별히 아일랜드적인 점은 단지 여기서 죽어간 사람들의 국적이 아니라고 감히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의 역사가 우리에게 단지 개인적인 추억의 목록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 고통받고 살아 남은 사람인 우리의 양식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단순히 1847년 이곳에서 최초로 죽은 네 살바기 엘렌 케인을 기억할 것이 아니라, 기근과 퇴거의 첫번째 희생자가 바로 어린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요구합니다. 엘렌이라는 이름은, 지금 이름조차 붙일 수 없는 저 르완다에서 죽어가고 있는 어린이들 그리고 소말리아의 난민 캠프에서 보고 온 어린이들에 대해서, 열정과 분노를 가지고 생각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년이면 아일랜드를 황폐화시긴 기근이 있은 지 150주년이 됩니다. 당시 그 누구도 강력한 동질성과 확실한 문화를 가진 한 근대적 유럽 국가의 탄생을 예상하지 못했고, 바라지도 못했습니다. 이 문화 속에서 그로스아일 같은 곳에서 맞은 쓸쓸한 죽음이 기억되고 기려진다는 사실이 제게는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우리는 역사의 물결을 우리 쪽으로 돌려놓은 용감하고 단호한 행동에 대한 사랑과 존경만큼이나 운명의 손에 당한 그들의 굴욕에도 빚을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운명의 맑은 얼굴과 어두운 얼굴을 다 본 사람으로서 우리는 한때 우리가 그랬듯이 기근과 질병에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 어린 행동에 앞장설 뿐만 아니라 그런 고통에 대한 당대의 태도를 재정의해야 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엄청난 역사의 아이러니 속에 갇혀 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편안함과 확대는 우리를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의 거실 속에 있는 죽음의 존재, 공포의 영상은 우리로 하여금 무기력감과 운명론을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우리가 여기 누워 있는 사람들과 기근 당시 죽은 사람들을 진정으로 정당하게 평가하고 기억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식량과 물 같은 일용품의 공급과 배급에 관해서 단호하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로스아일은 단지, 과거를 기리고 여기 묻힌 사람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장소가 아닙니다. 이곳이야말로 현대 세계의 무서운 현실들과 우리를 연결해 주는 곳입니다. 이곳은 우리에게 필연적인 희생자라는 관념을 거부하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함으로써 그 거부의 결과와 용감히 맞서라고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국가 경쟁력 순위 조사때마다 상위권에 드는 지금의 활기찬 아일랜드의 역사에서 어려운 때도 적지 않았습니다.  특히 1846년에서 1851년사이 아일랜드에는 심각한 대기근이 있었습니다.  그로인한 기아로 아일랜드인은 큰 고통을 겪었는데 이 때 희생된 사망자가 약 110만에 이를 정도로 극심했습니다(아래 책 p.94).  또 많은 아일랜드인이 고향을 떠나 먼 이국인 캐나다, 미국 등지로 이민을 떠나야 했습니다.  앞에서 아일랜드 대통령이 방문한 캐나다 그로스아일은 이민자를 대상으로한 검역소가 있던 곳으로 많은 이들이 긴 여행으로 인한 병으로 죽었습니다.  대기근의 직접적 원인은 간단히 말해 감자 마름병이란 새로운 병의 출현으로 감자를 수확하지 못해서이지만 복합적으로 상호연관된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영국의 영향력하에서 아일랜드는 전반적으로 빈곤했고 인구는 과잉상태였으면 식량으로써 감자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습니다.  영국 식민정책은 환금성 작물의 재배와 수출용 가축의 생산증가에만 관심을 두었고(p.14) 대기근 동안 영국 정부의 순수 지출은 700만 파운드로 영국의 5년간 국민총생산의 0.5%도 안되는 액수였으며 영국보다는 아일랜드에서 더 많은 돈이 모금 되었습니다.  이는 1854년에서 1856년간의 크림 전쟁에 영국이 쏟아부은 7000만 파운드의 비용과 극명한 대비를 이룹니다(p.95).  자원자가 아닌 피난민으로서 대기근을 전후해 180만명의 아일랜드인이 이민을 떠났습니다(p.97).  이런 사실은 영국에 대한 아일랜드인 민족감정의 일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대기근은 이후 아일랜드인에게 많은 상처와 함께 여러가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아일랜드 내적인 변화는 물론 해외 아일랜드 이민사회의 성장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오늘날 대기근이 아일랜드에 남겨놓은 의미는 복잡다기한 무엇이고 또한 아직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p.126).  그러나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북한을 돕자던 교회 포스터 생각이 납니다.  슬라이고에서 였습니다.  이렇게 대기근에 대한 기억이 아일랜드인 자신만의 것일 수 없다는 바로 그것입니다. 
 

자료출처: Peter Gray, 장동현 역, 아일랜드 대기근,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63, 서울:시공사, 1998 
-- 역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번역에 몇 가지 유감스런 아쉬움이 보입니다.  첫번째는 지명의 현지 발음을 무시한 점입니다.  몇가지 예를들어 Dun Laoghaire는 '던 라오가르'가 아니라 '던 레어리'로, Laois는 '라오이스'가 아닌 '레아쉬' 혹은 '리이쉬'로, Achill은 '에이칠'이 아닌 '악킬'로, Connaught는 '코노트'가 아닌 '콘옥트'로 읽는 것이 맞습니다.  두번째는 '아일랜드 서부 콘옥트 지방'과 '아일랜드 콘옥트 지방 서부'란 두 표현상의 차이를 소흘히 한 점으로 독자의 혼란을 야기합니다.  세번째로는 오트밀의 아일랜드에서 영국으로의 수출을 영국에서 아일랜드로의 수출로 번역한 오류(p.39) 등 입니다.  그러나 그 외 전체적으로 일독을 권할만 합니다.

아일랜드 대기근과 관련해서는 서적은 물론 인터넷상에 많은 자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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