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치료의 역사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사람들이 각기 집으로 일터로 돌아가게 되면서 가족체계로 인하여 엄청난 압박을 받는 사례가 전쟁중 일 때 보다 출생율, 청소년 범죄 및 이혼율이 폭등하다 시피 급증하게 되었다. 이런 현상은 가정의 불안정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고, 가정의 불안정함은 가족 구성원들이 감정표현의 장애로 정신건강전문의를 찾는 비율을 높게 하였다. 이때 까지만 해도 심리학자들은 한 개인의 심리에 집착하고 연구 하였던 때로 그룹으로 모여 연구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예가 그리 흔하지 않았다. 그러나 급증하는 청소년 범죄 및 이혼율이 정신적인 질병 환자에게 기인한다고 보기 보다는 한 개인이 속해 있는 가정의 불안정이 각종 사회 잇슈를 만들어 내고 있지나 않나 하는 가정에서 연구는 계속되어져 갔다. 이런 연구들은 주로 결혼상담분야와 정신의학계, 그리고 정신분열증을 research 하는 분야에서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1) 결혼상담분야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은 자신들의 결혼생활에서 발생하는 각종 문젯점들에 대하여 의논해 왔다. 결혼생활로부터 오는 각종 문젯점들을 결혼상담 전문가들 보다 그들이 속해 있는 교회 목사와, 변호사와, 주치의와 의논하여 왔다. 그러던 중, 산부인과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발표가 나오게 됨으로 결혼상담 분야에 변화가 일기 시작하였다. 그 연구발표로 인하여 성(sex) 과 관련된 결혼생활 잇슈를 상담하는 전문가들의 수가 증가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각 대학에서 결혼 과 성에 관한 학과가 개설되고, 학생들의 관심이 증가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영향으로, 최초의 결혼상담소가 1930년 생물학자인 Paul Popenoe가 The American Institute of Family Relations in Los Angeles를 창설하게 되었다. Paul은 the Ladies' Home Journal이란 간행물을 통하여 결혼상담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동안에 저 동부 뉴욕에선 Abraham and Hannah Stones, 두 명의 의사가 Los Angeles에 개설된 결혼상담소와 유사한 클리닉을 오픈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 Emily Hartshorne Mudd가 필라델피아 결혼상담소를 개설하고 결혼상담 사례 연구를 활발하게 진행한 결과, American Association of Marriage Counselors(미국 결혼상담자 협회)를 1945년에 창설하였다. 이 협회는 결혼상담전문가들의 standard를 만드는 데 공헌을 하였고, 이 공헌은 나중에, 결혼상담전문가를 육성하는 training center 와 advanced degree program을 정착시키는데 큰 도움을 주게 되었다.  1956년, 필라델피아 결혼상담소, 디트로이트에 있는 the Merrill-Palmer School, 캔사스 주 토페카에 있는 the Menninger Clinic이 결혼상담전문가를 양성할 수 있는 training center로 인정받게 되었다.

1950 중반부터 1960년 초반에 이르기 까지 therapist들은 개인분석치료방식에서 부부 단위 치료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하였고, 뉴욕정신분석연구소의 Bela Mittlemann이 최초로 결혼생활치료 동시분석이란 글을 발표 하기도 하였다. Bela에 의하면, 결혼생활에서 한 배우자의 문제는 부부관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1959년, Don Jackson은 코뮤니케이션의 관점에서 conjoint therapy를 개발하기도 하였다.

2) 정신의학 분야

결혼상담분야에서 가족치료 movement가 활발하게 진행되는 동안 정신의학계에서도 가족치료에 대한 연구를 하여 이 분야에 독보적인 pioneer 위치를 확보하였다. 정신의학분야에서 가족치료 연구에 공헌을 한 사람들로, Nathan W. Ackerman; Carl Whitaker; and Ivan Boszormenyi-Nagy를 들 수 있는데 여기선 Ackerman의 공헌으로 제한한다.

어린이 정신과 의사인 Nathan W. Ackerman은 정신분석의 틀을 가족 체계에 적용하여 가족치료의 창시자로 불리워 진다.  1938년, Ackerman은 캔사스 주 토페카에 있는 Menninger 클리닉에서 the Child Guidance Clinic의 수석 정신과의사가 되었다. Ackerman은 전통적인 정신치료모델로 어린이 정신건강치료를 하였고 Social Worker가 the mother을 돌보듯이 치료에 임하였다. 그러다가, 1940년 중반기에 들어서, 그는 가족 구성원 모두를 인터뷰하는 과정 중에, 가족정신건강질환의 바른 진단과 치료를 위하여 가족이 중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그의이런 발견은 그로 하여금 미국정신위생학회가 주관하는 대회에서 가족치료 세미나를 구성하고 감독하는 첫 모임을 1955년에 가지게 하였다. 1957년, Ackerman은 뉴욕시에 유대인 가정봉사센타 내에 가족정신건강클리닉을 오픈하게 되었고, 3년 후, 1960년에 들어서, Ackerman은 가족연구소를 오픈하였는데 이 연구소의 이름을 1971년,Ackerman의 사망과 더불어 Ackerman Institute 로 개칭하였다.

그는 가족을 심리적이면서 사회적인 단위로 이해하고 가족을 분석하고 관찰하되 주로 역할관계와 의사소통의 내용과과정에 초점을 두었다. 그리고 그는 치료자에 대한 인식도 새롭게 하였는데,  치료자는 내담자 개인과도 연관되어 있는 동시에 내담자의 가족들과도 연관이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또, 그는 한 개인의 가정구성원을 개별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전체단위로 보아야 한다고 했다. 치료적 개입에 있어서 가족전체의 상호작용유형이나 특성보다는 가족 안의 한 개인을 대상으로 하며, 치료대상의 잠재된 억압상태 해소에 중심을 두었다.

3) 정신분열증 연구 분야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일반체계이론의 영향으로 가족은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상호작용에 의하여 그 어떤 조절기제를 가진 하나의 체계로 인식하게 되었는데 4개의 주요 연구팀(The Palo Alto Group; The Theodore Lidz Group;The Lyman Wynne Group; The Murray Bowen Group)이 정신분열증 환자의 가족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를 통해 이중구속, 결혼분열, 결혼왜곡, 가상 상호작용, 공생적 모자관계등의 개념을 제시하면서 가족치료의 활성화를 도모하게 되었다. 이 연구팀의 새로운 개념제시는 일반 정상적인 가족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이 여러 사례를 통하여 밝혀지기 시작하면서 기족치료의 영역은 확대되어 나갔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동안 개인적으로 가족치료 연구를 해오던 전문가들이 연합하게 되면서 가족치료는 더욱더 전문적인 영역으로 확대 되어 나가 유럽으로 번져 나가기도 하였다. 1970년대 들어서는, Salvador Minuchin의 Structure Family Therapy가 가족치료에 공헌을 하게 되었는데 그의 구조체계치료이론의 근거로 가난하고, 마약 및 알콜중독으로 분열된 가족들을 돕기 위한 직접적이면서 적극적인 가족치료기법들이 모델로제시되었다. Salvador Minuchin의 구조적모델 뿐만 아니라 Jay Haley의 Strategic Family Therapy(전략적가족치료모델--Communication)가 1970년대 가족치료 분야에 큰 공헌을 하였다.1980년대의 가족치료 분야는 전문영역으로 확고히자리잡게 되었고, 그동안 꾸준하게 연구 발표들에 의하여 가족치료의 효율성이 다른 심리치료들 보다 더욱 우세하고 정확한 치료율을 기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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