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삶에서 만남 이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누구를 만났는가에 따라 인생의 목적이 바뀌기도 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거나 그렇지 못하거나 하기도 합니다.

저는 Galileetown Christian Family Ministry 홈페이지를 운영하는 Paul Kang 목사입니다. 저 역시 예수님을 만났기에 인생의 목적이 바뀌어 목회의 길을 걸어 가고 있습니다.  목회사역에 헌신하기로 결심한 그 때부터 10년 동안 저의 삶의 질을 향상 시켜 주신 두 분을 만나게 되었습니다만 두 분다 지금은 천국에 가 계십니다.

The Rev. Paul Kang

Minister Member of Hanmi Presbytery in PCUSA

Pre-licensed Member of California Association of Marriage and Family Therapy

Member of American Association Christian Counselor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

Presently, M.A. in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Master of Divinity, 1995

San Jose Christian College

Bachelor of Science, 1991

10년 전, 미국장로교 한미노회에 지망생으로 등록할 때 최원일목사님이 저의 지망생 인터뷰를 하셨습니다. 그 분은 제게 매우 중요한 숙제 한가지를 내 주셨습니다.  그 숙제의 제목은 "왜 목사가 되려고 하나?" 언뜻 보기엔 평범하고 당연한 질문인 것 같지만 저에게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주는 질문이었다는 것을 7년이란 시간이 흐른 뒤 깨달을 수 있었고, 그 질문은 오늘 Galileetown Christian Family Ministry가 태동하는 목적의 정신이 되었습니다.

제가 사역했던 교회 현장에서 많은 갈등의 시간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성서에 기록된 교회상과 교회 현장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갈등은 심화 되었습니다. 사랑과 용서 그리고 화평해야 할 교회와 크리스챤의 가정은 분쟁하고 있었습니다. 담임목회자와 부교역자들의 갈등, 목회자와 장로와의 갈등, 성도들 끼리의 갈등, 분쟁, 그런 것들이 저를 엄청 괴롭혔습니다.  왜 그럴까? 왜 분쟁하는 것일까? 그리고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은 성도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라는 명분 아래 가정을 돌보는 시간 보다 교회의 프로그램에 더 많은 시간들을 할애 하도록 하는 것일까? 등등.. 도대체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에 대한 갈등은 신학대학원을 졸업하는 그 시간 까지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중 또 한 분의 은사를 만났습니다. 권희상 목사님 이십니다. 권목사님은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의 선배 이시면서 한인학생들을 영적으로 돌보아 주신 분이십니다. 그 분과 본교 학생들의 동문회를 구성하는 일로 만나게 되었고, 그 일들을 의논하기 위하여 자주 그 분의 집을 방문하면서 목사님은 제게 전통적인 목회관에서 사회를 무대로 사회복지목회관을 심어 주셨습니다. 권목사님은 이미 Marriage & Family and Children Counselor(MFCC) 라이센스를 가지시고 임상목회와 한인교회를 섬겨 오신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권목사님은 저의 갈등과 고민들에 대하여 상담해 주시면서 저에게 당신이 걸어 가셨던 가정과결혼상담목회를 권장하셨고, 친히 학교도 물색하여 권해 주신 분이십니다. 권목사님의 취지는 목회자가 교회에서 먹고 살 것을 걱정하며 목회 해서는 절대 안되며, 이제는 한인교회들이 한인만을 상대로 목회 할 때 가 아니라 교회 울타리 밖의 사람들에게 복음의 빛을 전해 주어야 할 때가 이미 왔다고 하셨습니다. 단순한 구제와 선교의 차원이 아니라 전문직으로 크리스챤들이 목회자들이 사회 속으로 스며 들어가야 할 때라고 말입니다.

이제까지 이런 영성을 가지고 목회에 임하는 분은 만나지 못한 저에게 그 분의 말씀은 생활의 지침이 되었다 해도 과언이아닐 것입니다. 그 분을 만났던 때가 95년 이었습니다. 그 때도 분쟁하는 교회에서 사역하던 중이었므로 크리스챤 정신건강에 대한 권목사님의 권고는 저에게 목회방향의 전환을 시도하게 하였습니다. 97년에 사역했던 교회는 권목사님이 말씀하셨고, 우려했던 일들이 교회 현장에서 아주 생생한 현장 체험으로 저에게 와 닿았습니다. 그 교회의 분쟁은 저로 하여금목회자 뿐만 아니라 크리스챤들의 정신건강에 잠재적으로 해결되지 못한 응어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하였습니다. 해소 되지 못한 응어리들이 차곡 차곡 쌓였다가 분수 처럼 터져 나온 파괴적인 결과를 보고 저는 전통적인 목회 현장에서 정신건강 목회로 전환 할 것을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한인이민교회는 지난 30년 동안 분쟁하면서 분열하면서 오늘의 이민교회를 이루어 왔습니다. 그 분쟁과 분열의 원인을 찾으라고 한다면, 무엇보다도 이민 정착에 따른 부수적인 요인들이라 할 수 있겠지만, 기독교의 특성에 있다고 보아도 될 것 같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기독교에 입문 하는 모든 사람은 회심을 통하여 크리스챤이 됩니다. 회심은 과거 예수를 알지 못했던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결단이고, 인생의 목적이 바뀐 것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에 자신들이 경험했던 정신건강장애들이 회심과 더불어 없어지거나 고쳐 진 것은 아닙니다. 그냥 남아 있는 상태에서 회심을 한 것입니다. 회심 후 크리스챤의 삶을 살아가는데 과거의 습성이나 사고가 새로운 삶에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과거 습성으로부터 영향 받고 있는 습성들이 성화라는 과정을 통하여 습성이 고쳐 져야 하겠는데 그게 그리 쉽게 바뀌어 지는 것이 아닙니다. 특히 목회자들인 경우는 성도들의 경우 보다 더 어렵습니다.  목회자들의 어린시절들을 보면 평탄하게 성장한 사람들 보다 오히려 역기능적인 가정에서 성장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러다가 소명 받고 신학을 전공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사회조직으로 이해 한다면, 목회자는 갑자기 지도자 위치에 올라 선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성장기에 은연중 학습되어진 사고방식 및 행동발달이 그대로 몸에 배여 있는 상태에서 성도의 영성을 보살피는 목회자가 되었으니 아무래도 과거의 학습되어진 습성이 그대로 목회현장에 반영된다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영성이 성숙되어 가면서 과거의 습성이 고쳐 지기는 하지만, 성장기에 습성화 된 것은 하루 아침에 없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영성의 살이 과거의 습성들위에 덮어 질 때까지는 고통을 감수 해야 합니다.

이렇게 성장기에 습성화 되어진 성격 및 행동은 상황에 따라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미주한인교계에 일반적으로 표출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다른 사람의 말과 표현에 경청하지 않는 대인관계 자세입니다. 내 것을 강조 하는데 남의 것은 무시해 버리는 태도입니다. 교회에서 직분을 강조하는 계급제도를 선호하는 자세입니다.  교회 안에는 장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장애자에 대한 한인들의 시각은 매우 부정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체적인 장애자 뿐 만 아니라 심리적인 장애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신체적인 장애자는 handicap이라 부르지 않고, 오히려 Different ability person이라 여기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신체적 장애자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이 소유하지 않은 특수한 재능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체적인 장애자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심리적인 장애자입니다.

사람에게는 세 사람의 "사"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판사(변호사), 의사, 목사입니다.  판사(변호사) 와 의사는 사건이나 질병이 어느 정도 진전이 되어 판결과 치료가 급히 이루어 져야 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목사는 질병과 사건이 진전되기 전이나 예방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필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심리적인 장애로 우울증,조울증,대인공포증,미움, 시기,질투, 다툼, 두려움 등과 같은 심리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던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찾아 가는 곳은 병원입니다. 마음의 병이 깊어지면 각종 육체적인 병으로 전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 마음의 병이 깊어 지면 사회적으로 지나친 자기방어와 폭력적인 행동으로 나타나 범죄에 연루 되어 변호사를 찾아가거나, 판사 앞에 서야 하는 경우가 발생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 하는 마음의 병으로 고심하는 사람들이 교회 울타리 안에 있습니다. 교회 울타리 안에 있는 이들을 치료할 수있는  도구 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이고 그 중에서도 통성기도가 그 역할을 감당해 줍니다. 그런데,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습니다. 기도의 우선 요구 사항은 철저한 회개와 고백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기도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 문제들은 자신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자신도 모르는 문제들을 전문가에 가져 오게 되면 그 문젯점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Family Therapy Ministry가 바로 그런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근성적인 기도는 오히려 신앙공동체를 힘들 게 하는 원인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어설픈, 홍보용 기도 혹은 중재는 신앙공동체를 멍들 게 하고, 오히려 중병을 호소하게 하며, 분열의 틈을 보이게 하는 현장을 저는 여러번 경험했습니다.

이런 내적치유가 되지 못한 신앙 공동체 구성원들이 교회를 이루어 나갈 때 교회는 분열할 수밖에 없고, 물량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의 병으로 고심하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기 속을 남에게 드러 내지 않습니다. 진실이 결여된 상태에서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봉사한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생활을 괴롭히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교회 직분은 곧 사회적 명예에 해당되고, 명분을 찾기 위하여, 명분을 위하여 자신의 직분에 최선을 다하지만 공의와 부정의 차이는 자신의 뜻에 따라 자주 바뀌는 현상을 나타납니다. 명분을 세우기 위하여 자기의 뜻과 결심을 하나님의 뜻이라 남용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하는 이유가 마음의 병이 치료 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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