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 2864 나그네 2003-07-07. 11:08 조회 : 28
제목 : 여인혈전의 단상
배나무골.이곳은서울시 동작구 사당동 산 64번지의 마을 명이다.
지금은 아파트가 낙락장송처럼 길을 막고 서 있지만 내가 살 때만 해도
지붕의 추녀들이 맞닿을 만큼 옹기종기 붙어있던 유난히 빨간기와집이 많았던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구수한(?) 연탄까스냄새가 동네를 휘감고 있었고
동네뒤가 바로 육영수여사 묘소가 있는 국립묘지라서 뻐스정거장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십오분이상 걸리는 언덕길 끝이었다.
신혼초 아내는 무거운 몸으로 이 길을 오르락 거리느라고 등산 아닌 등산에 고생을 무척했지만---
여느 골목이 다 그러하듯이 우리 동네 골목초입에도 연탄가게, 과자 술 과일 등을
파는 구멍가게가 있었는데 문제는 이 가게의 쉼터 이었다.
이곳은 항시 동네여론의 발상지였고 수많은 격전의 시발터였다 .
그 날도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는 여름날 해거름이였다. 퇴근길에 얼핏 보니까
이 쉼터에 연탄가게아저씨,구멍가게아저씨,금붕어장사아저씨등이 모여 앉아 시끌법적 야단법석이였다.
아마 낮부터 날씨도 푹푹찌고 하니 한잔들 시작하셨나보다 하고
지나치는데 갑자기 전투가 시작되었다.
연탄가게아저씨는 한여름이면 자동으로 개점휴업이고 그저 장마철에
젖은 구들장 말리는 사람 몫으로 새끼줄에 한장씩 끼워 가지런히 몇장 올려 놓으면
그 날일은 땡이였던 충청도 분이였고, 금붕어장사는 큰 대나무 광주리에
어항과 수초등을 짊어지고 손에는 빨간금붕어 ,까만금붕어등을 가득 들고 다니며
행상을 하셨는데 더운 날씨에 돌아 다니다 붕어만 죽일 것 같으니 일찌감치 퇴근하신것 같았는데
이 분은 딸만 내리 일곱을 낳으셔서 동네에서는 별명이 칠공주 아빠라고 불리시던 전라도 분이셨고
구멍가게아저씨는 성질이 아주 급한 김천 사람으로 기억되는데 두 사람이 소주병이라도 팔아주니
고마움에 접대차원으로 그자리에 끼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듣고보니
싸움의 발단은 대통령 선거얘기 끝에 누구 때문에 어떤 놈은 호의호식하고 우리는 이지경이다 라고
한 사람이 큰 소리를 내기 시작하니 각도 대표가 다 모인자리인 만큼
자연 의견이 분분할테고 이 더운 날씨에 시원챦은 안주로 지애미 지애비도 몰라본다는
낮술마저 걸쳤으니 사건이 확대되는 것은 마치 용광로에 불을 지피는것과 같은 이치였으니라
아니나 다를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연탄선수가 금붕어선수의 멱살을 잡았겠다
멱살을 잡힌 금붕어선수 이 지겨운 세상살이 힘들어 죽겠는데 애라 네 이놈 잘 걸렸다 하고
연탄선수의 귀통배기를 냅다 왕복으로 행차하셨는데 너무 순식간에 당하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연탄선수 갑자기 금붕어선수의 행장을 내팽겨쳤는데
그많은 빨간,까만금붕어들이 나살려라 하고 길바닥에서 이리팔딱 저리팔딱 온통 아수라장이였다.
이때 기별을 받고 허겁지겁 달려온 금붕어선수 부인, 구멍가게선수 부인에게
내가 저 인간한테 술 팔지 말랬잖아 하고 삿대질로 난리를 해대니 이번에는
구멍가게 부인이 남편에게 내가 거기 끼지 말랬잖아 하고 남편을 윽박지르고 닦달을 하니
열을 확 받은 구멍가게선수 울분을 참지못해 가게의 큰 수박을 땅바닥에 계속 내리 꽂으니
이번에는 시뻘건 수박물이 쫙 깔리면서 수박물에 이차탄까지 맞은 금붕어들이 서서이 세상사를 고하고 있었겄다 ,
이 와중에 관중은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온 가족의 생계를 짊어진
금붕어가 죽어가는 모습을 보던 금붕어선수부인과 아둥바둥 사는 처지에
수박 몇 통이 박살난 가게부인이 도저히 참을수 없는 일, 이에 남편이 억울하게
맞았다고 생각하는 연탄선수의 부인까지 가세 드디어 부인혈전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에는 들어가서 말릴 형편도 못 되고 구경밖에 할수 없었는데---
뜯기고 찢어지고 넘실거리고 뭉클거리고 비치는 살결의 행렬에다가
붉은 수박물에 파닥이는 금붕어의 트위스트. 이 것은 바로 브라질의 샴바축제 그 자체였다.
상상들 해보시라 백주대낮의 화려한 비키니 쇼를---- 그 일이 잊고 난후에
온동네가 무슨 애도기간처럼 무거운 침묵으로 사람얼굴을 피하고 다녔다.
싸운 사람도 그렇겠지만 이구석 저구석을 구경한 사람도 미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배나무 골은 이런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던 고만고만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우리의 정다운 달동네였다.
또한 우리 동네에는 서울 최고의 자랑할만한 특징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비군훈련 백퍼센트 참석율 이였다. 이유인즉슨 우리 골목길의 훈련통지는
중대장일이 아니고 동네 술총무가 훈련 이틀전에 꼭 연락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틀전쯤 되면 으레히 술 총무가 전화로 훈련인거 알고있지 하면 우리는 자동으로 완전참석이였다.
단합하여 화끈하게 훈련(사역)받고 딴동네보다 일찍 끝나자 마자 우리는 삼겹살 집으로 직행,
마지막엔 깡똥뚜드리는 집까지 보통 오륙차. 통행금지 싸이렌이 불어야 우리는 집으로 들어들 갔다.
헤어질 때는 다음 훈련 언제 나오지? 좀 땡겨서 미리 받을수 없나 하면서 아쉬워했고
집에서는 예비군 훈련땜에 못 살겠다고 뚜덜거리면서도 골목어귀에 모두들 마중나와
조국의 안녕과 자유를 지키느라고 불철주야 고생한 낭군들을 모시고 들어갔던 기억이 새롭다.
서울에도 이젠 옛 모습을 보기가 정말 어렵다. 변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마는
때로는 변하지 말았으면 하는 것 들도 있다. 바로 사람의 정과 연 이리라.
이십여년 만에 옛날 살던 동네에 잠깐 들려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시조구절이 실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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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공원들의 학교생활 >
글쓴이: 나그네 날짜: 2004.07.21. 13:04:23 조회: 113 글쓴이IP: 218.237.233.12
해묵은 사람을 찾기 위해 이십여년 전의 명함철을 뒤적이다 모 섬유회사의 명함을 문득 발견하고
까마득한 생각에 마음이 묘하게 찡해온다.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 그때까지만 해도
섬유산업이 우리나라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었다.
항시 수출의 날 시상식에도 섬유회사가 선두에 여럿 있었고, 특성상 수많은 공정에
여러사람이 매달려 일해 먹고 살수있는 노동집약형 산업의 표본이었다.
가난한 농촌에서 경작해 먹을 땅은 손바닥 만하고 식구수는 많지 경제사정도 뻔한지라
입이라도 하나 덜어야 할 처지이니 어머니들이 우선 쉬운 딸들을, 눈물을 머금고
소위 공순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방직회사에 보낼수 밖에 없었던 운명의 가정이 꽤나 많았을 것이다.
이때만 해도 순하고도 착하면서, 악착같이 일하는 값싼 노동력이 얼마나 많았을 때인가?
나는 이시절 업무관계상 방직회사에 출장이 잦았는데,대구에 가면 경북대를 지나 검단못을 돌아서 한참 올라가면
당시만 해도 허허벌판에 "갑을"이라는 큰 방직회사가 있었다.이 회사가 한참 승승장구하던 시절인지라
여공원 숫자만 해도 엄청났다. 이 공원들이 긴 작업대 앞에서 해사기에 실을 갈아 끼우는
분주한 모습이 수출한국의 최전선을 보는 듯 하였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하던 시절이니
자연히 이 여공원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오는 경우가 무척 드물었고 대부분이 중졸이었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이들을 상대로 자긍심도 심어주고 숙련공을 만들어 장기근무를
유도하자는 차원에서 여자고교를 설립, 삼교대 근무 짬짬이 학교수업을 받을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른바 실업고등학교라는 이름의 발생지였던 것이다. 이들은 조간(7∼3시근무) ,주간(3∼밤11시),
야간(11∼새벽7시퇴근) 반으로 나누어서 근무를 하였는데 근무시간이후에 학교에
등교하여 4시간씩 공부를 하였는데 예를 들면 야간반은 새벽7시에 퇴근해서 아침먹고 잠깐 눈 붙이고
12시에 부설학교에 등교해서 떨어지는 고개를 괴여가며 수업을 받고 하교하면 밀린 세탁에
분임조 토의에 숙제까지 하고 오후11시에 출근 날밤을 꼬박 세워야하니 이 어린 소녀들에게
얼마나 혹독한 세파의 고통이였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많은 이 청춘의 여학생들은
만나면 재잘되면서 웃음을 잃지 않았고 힘든 시험을 치르고 대학을 진학하는 학생도 있었고
나중에 교수, 의사, 노동가 등등 사회의 기둥이 된 사람을 여럿 보았다.실로 한사람 한사람이 투사였던 것이다.
때론 작업장에서 피로에 지쳐 졸다가 실타래에 머리카락이 감긴 학생, 쪽가위에 자기 손을 상처낸 학생,
고무롤러에 손가락이 끼인 학생 등 그나마 같은조에 학교에 다니지 않는 고참공원이라도 있으면
이들의 회사생활은 맵고도 따가왔으리라. 이러한 역경속에서도 열심히 근무한후
교복으로 갈아입고 공장 뒷마당의 학교에 등교하여 그림연습,가사실습, 체육시간에 즐거움을 쏟아내는 이들을 보고
김부장은 저들을 보면서 꿈이란 말을 새겨보게 되었고 나는 왜 저 나이때 늘 불평만 하고
노력을 게을리 했는지 후회된다고 하였는데,
하루는 마침 출장을 가니까 오늘 부설학교 졸업식인데
참석해 보라고 권하지를 않는가.나도 힘에 부쳐 탱자얼굴이 되버린 여학생들을 보면서
늘 그들의 주경야독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던지라 혼쾌히 졸업식장의 내빈석에 앉아서
구경을 하게 되었는데 축사 낭독의 순서가 되었다.
졸업식 축사를 하러 올라온 한 여공원이,
-----언니들의 지친 모습과 수업시간에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고 저는 학교를 그만 둘려고
몇 번 맹세했읍니다만 지난번 한 언니가 가난한 집안의 딸이 그것도 못 참느냐고 야단하시는 바람에
이를 악 물었읍니다만 오늘 영광스러운 언니들을 보니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언니 우리들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다른 학생들 처럼 행복한 학창시절을 보내지 못하고
이렇게 힘들게 공부해야 하나요?
대충 이런 뜻이었던 같았고 이어 답사에 나선 작업조장인
한 여학생이 ---------사랑하는 아우들에게 하면서 작업장에서 시험공부에 쫓기고 있는
너희들을 볼 때마다 한없이 우리 형편을 증오하였지만 너희들을 다그칠 수밖에 없었던 언니들을 용서해다오.
너희들은 더 열심히 노력하여--------------,아우들아 누가 뭐래도 이 세상은 우리가 헤쳐 나가야한다,
이제 우리들은 더이상 우리의 환경이나 부모님을 원망하지 말자.----------
대충 이런 뜻이었는데 글을 읽는 두 여학생이 얼마나 구성지게 읽는지 감수성도 많고
서러움도 쌓인 학생들이라 처음 글을 읽을때 만해도 간간이 들려오던 울음소리가 답사를 읽기 시작하자
온 운동장이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장도 울고, 참석한 대구시장도 울고, 내빈들도 울고,
사회를 보는 선생님도 울면서 그만 멈추어 달라고 사정을 해도
도저히 이 여학생의 울음의 흐름을 한참동안 멈출수가 없었다.
이들의 모습을 본 내빈들도 모두 얼굴이 벌겋게 부어서 이 자리를 떠나가고......
나도 서울로 올라 오면서 이들이 모진 환경의 고초를 헤쳐가며 열심히 노력해서 모두 모두의
꿈을 이루기를 빌고 또 빌었다. 그때에도 이 어린 여학생들이 여공원으로 한 가정을 받치는 기둥인 자가 많았지만
아마 지금도 단란한 한가정의 튼튼한 기둥으로 억척같이 자녀교육시키고 남편 뒷바라지 하면서
살아가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아줌마이리라.
산업의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이런 학교들은
이제 다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버렸고 모교와 다니던 회사가 없어진 사실이 또다시
이들에게 가슴아픈 일이 되는것은 아닌지 옛 명함철을 뒤적이다 흘러간 생각을 더듬어 보았다.
이 시절 "사계"라는 민중가요도 있었다. 빨간 꽃 노란 꽃 꽃밭 가득 피어도 하얀나비 꽃나비
담장위에 날아도 따스한 봄바람이 불어도 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공장엔 작업등이 밤새 비추고---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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