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화 李相和 [1901.4.5~1943.4.25]

 

호 상화(尙火). 본관 경주. 대구(大邱) 출생. 1919년 서울 중앙고보를 3년 수료하고 3 ·1운동이 일어나자 대구학생시위운동을 지휘하였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 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달이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
    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흐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서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몸 신며이 집
    혔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