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戰 後   문 학 의  이 해 >

         太平洋戰爭의 패전후, 완전히 황폐해서 돌아온 문학의 재출발을 주도한것은
       급속하게 재건되어진 文藝 저널리즘이다.
       志賀直哉나  谷崎潤一郞등 전쟁중에 비교적 순결을 지킨 老大家가 우선 기용
       되어져, 계속해서 그들의 작품에 자극되어져 川端康成, 丹羽文雄등 昭和時代의
       기성작가도 다시 창작활동을 재개한다.
       거기에 먼저 宮本百合子나 中野重治시게하루등 전전의 마르크스주의 문학을 계승하는
       작가들도 新日本文學會를 일으켜, 보다 광범한 작가층을 결집하면서 민주주의 문학운동
       의 전개를 지향했다.
       그러한 여러가지 문단현상가운데 역시 전후문학의 본질을 더욱 선명하게 나타낸것이다.
       잡지[近代文學]에 의한 荒正人,平野謙,本多秋吾,佐佐木其一들의 批評活動을 중심으로
       형성되어졌다.
       이른바 戰後派=아프레겔.크레아토리스의 文學運動일것이다.
       주로해서 마르키시즘의 붕괴기에 청춘을 형성한 世代의 作家에 의해서 담당되어져 ,
       전쟁에 의한 공통의 피해의식을 발상의 전제로 , 전후사회의 혼란과 고뇌를 반영한
       독자의 문학을 구축했다.
       이파에 속하는 작가에는 [暗이畵](소화21)의 野間宏 [무거운 흐름속에](소화22)의
       稚名麟三, 武田泰淳이하 中村眞一郞, 梅尾敏雄, 埴谷雄高들이 있다.
       그들을 소위 제1차의 전후파계라고 한다면 조금 늦게 나타난 島尾敏雄, 堀田善衛, 大岡昇平
       三島由紀夫, 安部公房들은 그의 연장선상에 있는것으로 보여져 그들이 모여서 더욱 광의의
       戰後文學을 완성한다.
       이들의 작가들의 作風은 개개에 있어서는 극히 여러가지가 있지만 실험소설적인 성격이 강하고
       주제에 있는 실존적관심과 형식에 있는 방법적추구와의 두점에 공통의 특색을 지적할수 있다.
       戰後派의 文學運動은 昭和 22,23년경에 최융성기에 달했다.
       이후 운동을 담당한 제작가의 개성적인 성장과 더불어 운동체로서의 해체를 진행시켜, 한국전쟁
       의 격발에 의해서 점령시대의 <密月>이 끝을 알림과 더불어 일응 종지부를 찍는데 이른다.
       전후문학의 운동체로서의 실질과 의의에 대해서 명확한 평가는 아직 성립하고 있지않다.
       幻影으로 보는 설도 있고, 점령하문학의 가상에 지나지 않는 설도 있다.
       또 문학운동으로서의 실질을 인정하는데에 있어서도 政治와 文學, 革命文學의 방법, 戰爭責任論
       등 운동의 최성기에 제시되어진 여러가지 주제가 너무도 성급한 문제제기와 관념적인 처리의
       방법에 의해서 본질을 해답부재의 대로 다음의 시기에 끌려간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전후파을 전후의 일문학현상에 있고, 그의 현상가운데에서 임의의 다양한 <個性의 束>
       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아도 그의 속으로서의 영향이 현대문학에 깊이 침투하고 있었던 사실도
       도 일방 움직이지 않았다.
       에를들면 방법의 성찰을 결여한 自然主義 리얼리즘을 부정하고 , 문학의 구조화를 지향한 방법
       의식의 심화를 수긍하는 형으로서도, 전후문학은 현대문학의 토양에 하나의 가능성을 준비했다.
       그러한 구체의 측정은 에도불구하고 운동의 제시한 본질적인 과제가 眞의 肉化를 이룰수없었던
       사정의 구명과함께 昭和文學史의 큰 과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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