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혼들에게 보내시는 자비로운 사랑의 메시지

 

 

2. 메시지의 내용

   메시지를 읽을 때에 이것은 어떤 작가가 책을 쓸 마음을 먹고 한 것처럼 마르가리따가 구상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 메시지는 마르가리따가 그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퍼져 나오는 가운데에서 산 아내와 가정주부로서의 지극히 평범한 생활의 줄거리를 나날이 적어 놓은 개인 일기에 끼워져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마르가리따가 자기의 매일의 생활의 우발 사건 중에서 가졌던 자기의 영혼의 상태를 끊임없이 알리기 위하여 그의 영적 지도자에게 털어 놓은 비밀에 관한 것이다. 그 비밀 이야기에는 반성, 묵상, 기도, 영적인 충동, 어떤 때는 이 위에 설명한 뜻으로 주께서 그에게 내려 주신 예언자적 정신으로 영감을 받은 권고 따위가 섞여 있다. 이 비밀 이야기들의 절정에는 대화에서 달하게 된다. 대화에서는 무슨 이야기가 나오는가?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작은 영혼들에게 주시는 사랑의 메시지에 관한 것이다. 이 대화들의 내용은 추상적으로 주어지지 않고 예수께서 교황과 주교와 사제들의 인격과 세상과 인류에게 보시는 그대로의 현재의 교회의 구체적인 배경 속에서 주어진 것이다.

   이 메시지는 무엇보다도 사랑의 메시지이므로 주께서는 당신 제자들에게 사랑의 부활과 사랑의 사도직과 당신의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지식을 요구하신다.
   "내 메시지는 사랑에 근거를 두고 있으므로 나는 네게 사랑에 대한 일밖에 할 수가 없다" (1966.3.8)
   "나는 너희들에게 사랑의 메시지를 보낸다. 사랑의 가르침을 깊이 파고 들고 그것을 실천에 옮겨라" (1966.11.4)
   "메시지가 침투하는 곳에서는 그 사랑의 불꽃으로 영혼들을 다시 뜨겁게 할 것이다" (1967.1.12)

   예수와 친밀한 가운데에서 성덕과 완전의 길로 집중시킨 교훈이다. 그러므로 이 교훈에서 체계화된 신학의 표현법을 찾아내려고 애쓰지 말자.
   예수께서는 이 가르침에서 "작은 영혼들", 당신의 말씀 상대가 되는 사람들을 절대로 소홀히하지 않으시고 그들에 대하여 "신학에는 보잘 것 없는 모든 사람의 손이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사랑은 그들에게 붙잡힌다" (1967.2.15) 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구속에 근거를 두고, 오류에 반대되는 진리와 악에 반대되는 선과 그분께 맡겨진 영혼들 안에 있는 하느님의 나라에 근거를 두고, 개인적인 고행에 근거를 둔 사랑의 교훈이다. 하느님을 찬미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그 분을 섬기는 것 따위 모든 복음덕(福音德)들이 이루어진다.

"네 작은 희생들을 아낌없이 바쳐라..." , "인내하고 자비심을 가져라..." , "두려워 말아아..." (1966.3.13),
"내 깊은 사랑 속에서 필요한 것을 얻어가라..." , "나를 신뢰하여라... " (1965.12.12) ,
"네 형제들을 사랑하여라..." , "너를 위하여 성덕을 구하여라..." (1966.3.18) ,
"내 사랑 속에서 더 높이 올라 오너라..." (1966.3.2) ,
"너희들의 마음에서 일절 세속적인 생각을 몰아내라..." (1966.4.3) 등등...

   그러니 작은 영혼들에게 주시는 이 교훈이 현재 교회와 그리스도인의 생활이 전개되는 분위기를 고려하여 주어졌다는 사실에서 독특한 태도를 띠게 된다.

   메시지에서 세상에 대하여 하는 묘사는 소름이 끼치는 것이다. 인류는 여기에 비록 일반적이기는 하지만 그 죄와 타락과 교오와 당치않은 자만과 더불어 노골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멸망하고 파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이 세상을 끈질기게 재론하시고, 그의 타락과 부패와 하느님께 대한 반역을 비난하신다.
"그 기초까지 뒤흔들리는 이 세상이 현실을 다시 자각하지 못하다. 그의 타고난 타락은 아무런 반대도 용납하지 않는다" (1968.1.1)

   이 세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은 "그들" 이라는 대명사로 가리켜진다.
"그들은 그들의 빈약 지능에 따라서 그들이 원한 것과 같은 그런 생활을 만들어 가졌다" (1967.1.15).
"그들은 평화를 희망하는 때에만 그것을 누릴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큰 재앙일 것이다... 아! 사람의 아들들아, 내가 어떻게 너희들을 견디어 낼 수가 있느냐? 너희들은 어디로 달려가느냐?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에게 대단히 많이 미리 알렸다... 너희는 육체를 파괴한다. 그러나 너희의 죄악들은 너희 영혼들을 훨씬 더 많이 해친다... 너희는 너희들이 원한 그대로의 영원을 얻어 만날 것이다" (1967.12.29).
"그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내 시간을 앞당긴다" (1967.3.2).

   교회에 대한 묘사도 세상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로 준엄하다. 그것은 교회가 세상에 의하여 더럽혀져 가기 때문이다.
   대명사 "그들" 은 어떤 주교들을 가라키기 위하여 여기서 다시 쓰인다. 그 주교들에게는 무서운 말이 떨어진다.
"내게서 맺고 푸는 일체의 권한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책임이 있느냐! 할 수 있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불행하다! 내 사랑의 욕구가 크다 하더라도 나는 분별을 잃지 않고 책임 추궁은 무섭겠기 때문이다" (1968.1.6).
"그들은 내가 준 권한을 가지고 무엇을 하느냐? 책임자인 그들을 나는 영혼들의 멸망에 책임이 있는 것으로 여기겠다. 그들은 내 앞에서 어깨를 들썩하지는 못할 것이다" (1968.6.23).

   원죄, 인류의 타락, 본죄, 구속, 그리스도의 육체의 부활, 성모의 티없이 잉태되심, 성모의 하느님의 어머니 되심, 그들의 의견으로는 단순히 주의 최후의 만찬의 기념이 되어버린 미사의 제사로서의 본질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교리들을 부인하고, 성체 안에 구세주의 실제적이고 영속적인 현존을 부인하면서 성체를 경시하며, 성모와 성인들에게 드리는 공경을 조롱하고, 하느님의 위험에 드려야 하는 공경과 전례제도를 지킴으로써 교회에 바쳐야 하는 복종을 거부하는 신부들도 "그들" 이다.
   "그들은 교회의 건전한 교리와 양립할 수 없는 길로 접어 든다" (1967.6.5).
   어느정도 "세상을 받아들이는 것" 을 주장하는 공의회는 본문을 악용하여 그것을 세상의 타락을 "받아들이는 것" 으로 왜곡하는 것을 빗대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들은 세상을 회개시키기를 원하지마는 세상은 호개에서 이 만큼 떨어져 있는 적이 일찌기 없었다. 그러니 그들은 무엇을 아느냐? 완전한 혼돈이다. 그러면 사랑은? 사랑은 불행히도 그들의 어리석음을 변호하기 위한 엄호물 노릇밖에는 못한다. 나는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그로 인하여 죄의 기회가 오는 자는 불행하다' " 고 (1968.4.22)

   끝으로, 고의적으로 세속의 정신에 오염된 그리스도교인들도 "그들" 이라는 대명사로 지칭된다. "영혼들의 원수가 짠 그물이 되어져서 간선된 사람들까지도 거기에 속아 넘어간다. 만일 그들이 회개를 하면 내 모든 용서로 그들을 도와 주겠다. 지금은 사탄이 지배하고 있다" (1967.5.21).

   이 때문에 예수님의 입술에서는 뼈저린 한탄이 새어 나온다.
"나를 보아라, 그리고 내 고통보다 더 심한 고통이 있는지 말하여라" (1966.5.31).
"아! 가엾은 내 딸아, 세상의 죄들이 너보다 나를 훨씬 더 괴롭힌다" (1966.5.29)
마르가리따가 예수님께 "주님은 항상 주님을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는군요..." (1967.1.3) 하고 말씀드릴 정도로 예수님의 입술에서 되풀이되는 한탄이다.

   교회의 책임자들에게도 이보다 덜 준엄하지 않은 경고를 주신다.
"그들이 내 앞에 나타날 때는 참으로 무서운 순간일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과 그들이 맡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 대하여 보고를 해야 할 것이다" (1966.1.19).

   이 책임자들은 누구인가? 예수님께서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신다. 그들은 양의 가죽을 쓴 늑대들이며, 양떼를 희생시켜서 자기 배를 채우는 거짓 목자들이다.
"내 양우리에 늑대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양의 가죽을 뒤집어 쓰고 있기 때문에 의인들 자신도 흔들림을 느낀다. 내 어린 양들이 위협을 당하고 있다" (1966/9.28).
"저들을 나는 산 사람들에게서 떼어 내겠다" (1967.5.6).

   그러나 아무리 깊은 상처를 입었어도 예수님으 마음은 당신의 무한한 자비를 버리지 않으신다. 그래서 교회와 세상에 그들이 접어든 길에서 나오는 데 적합한 구제책을 추천하신다. 우선 속죄이다.
"너희들 자신의 죄의 선고를 울리고 있는 어리석고 목석 같은 마음들아... , 너희 죄를 위하여 속죄하여라! 속죄를! 속죄를! 속죄를! " (1968.1.1)

   교회를 깨끗하게 하고 세상을 회개시키기 위하여 예수님의 메시지가 와서 생기게 하는 - 따라서 벌의 위협을 멀리하는 - 섭리에 의한 방법을 구원의 군대, 작은 영혼들의 군대를 조직하는 것이다.
   이 작은 영혼들은 심부름꾼인 마르가리따라는 인물에 묘사되고 깊이 분석된다. 그들의 사명은 여러 가지 형태로 설명된다.
작은 영혼들은 그들의 기도와 고통과 희생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라고 부름을 받았다. 그들은 "사물의 흐름을 바꿀 " 수 있고 (1966.11.21), "땅으 양상을 바꿀" 수 있다 (1967.5.22).

   이 작은 영혼들은 "예수님의 자비로우신 마음의 작은 영혼들의 회" 라고 불리는 군대에 자리잡을 것이다 (1967.4.1).
   그들은 구속 사업에서 예수님과 손잡을 것이다. "작은 영혼들아, 나와 함께 구속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느냐? 나는 지금 아버지께서 내게 부탁하신 것을 너희들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1967.7.5).
   성덕에 대한 가르침 이외에 "작은 영혼의 날" 이 예수의 뜻대로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예수께서 그들에게 설명하시는 절(節)에는 가장 명확한 행동지침이 그들에게 주어진다 (1967.12.5).

   우리는 메시지의 힘과 주님의 분개를 나타내는 어떤 말들의 기운에 충격을 받는다 (이 말들은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의 글을 연상시킨다). 예수님의 고민이 비쳐 나온다.
"구원할 사람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다... 나를 도와다오. 도와 주겠느냐? 나는 몹시 지쳤다. 그리고 그들은 도무지 순종하지를 않는다" (1967.3.19)

   메시지의 두 가지 독창적인 특징에도 유의할 것이다. 그것은 그 현실성과 긴급성이다. 1965년부터 마르가리따에게 점차적으로 맡겨진 메시지는 현대의 중대한 문제들과 사건, 공의회(꽤 짤막하게), 바오로 6세의 회칙, 현대주의 이단, 그리스도교계의 분열, 전쟁들(이스라엘 전쟁, 베트남 전쟁) 에 언급한다.

   메시지의 전파도 덜 긴급한 것이 아니다. 교회와 세상이 지금 처하여 있는 어려운 상황 때문에 메시지가 전파되는 것이 필요불가결하다.

   메시지의 내용에 대한 이 전체적인 견해는 우리를 비관론으로 이끌어가는 것 같다. 과연 죄악이 극도에 달아여 성경에서 말하는 한계, 그 너머로 죄악이 퍼지는 것을 하느님의 정의가 용납하지 않으시는 그 한계를 넘은 것 같다. 그러나 이 메시지에서 예수께서 하신 많은 말씀은 오히려 우리를 낙관적인 바람으로 이끌어 간다. 하다못해 다음과 같은 말만이라도 말이다.
"내 목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졌다. 세상은 내 목소리를 듣고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나는 내 사랑으로 그들의 마음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를 원한다" (1968.4.9).

- 마르가리따의 영적 지도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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