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지를 받은 여자

- 마르가리따의 자서전 -
 

 

1. 어린시절

   내가 태어난 지 겨우 6주가 되었을 때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내 삼촌을 대부로 정해 주었다. 만일 내 부모가 문득 내게 세례를 받게 할 생각이 들었더라면 삼촌은 스스로 기피하였을 것이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한 나는 삼촌에게 이 칭호를 주기를 항상 몹시 싫어하였다. 내 대부라고? 내가 그 때문에 세례를 받지 못하였으니까 그는 내 대부가 아니었다.

   내가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어머니가 어느날 나를 영세시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아주머니와 나는 부랴부랴 Y의 성당으로 따나게 되었다. 떠니기 전에 나는 벌써 나와는 반대로 낳자마자 세례를 받았던 오빠들의 놀림을 받아야만 했다. 걱정이 없었다고 말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내 어린 작은 뇌리에서는 서로 더 이상해 보이는 이 생각 저 생각들이 빨리 움직이고 있었다.

   신부님이 가까이 오시는 것을 보았을 때 내가 사로잡혔던 공포를 나는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나는 질겁을 해서 성당 출구를 향해 뛰어 나왔고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깜짝 놀라 내 뒤를 따라나왔다.
   나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성당의 계단을 곤두박질해 내려왔다.
   어머니와 아주머니는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해서 나를 붙잡았다. 나는 그날 세례를 받지 못하였다.

   나는 열 세살 까지 어린 짐승처럼 살았다. 내가 그 상태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소름끼친다. 그러나 그때에는 지금처럼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례 영성체 준비를 하는 내 나이 또래의 다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내가 느끼던 슬픔을 기억한다.

   그리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지금 죽으면 천당에 가지 못할 거야" 라고. 나는 그때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 내가 살고 있던 반교권주의적인 환경, 사람들이 버릇없이 종교를 비웃는 반교권주의적인 환경에서 숨이 막혀 있었지만 나는 그 나이에 벌써 천국에 대한 실제적인 동경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내가 가진 모든 것, 사탕이니 장난감이니 하는 것을 모두 나누어 가지는 어린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내가 줄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되면 그 아이들은 나를 쳐다보지 않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벌써 이 애정 결핍으로 고통을 당했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기를 몹시 두려워하였고, 그들에게 기쁨을 주고 싶었다. 나는 그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하여 무엇을 생각해내야 할지 몰랐다.

   나는 열 세 살 때에 예쁘장하게 되었다. 각자가 내 매력을 칭찬하였고, 나는 이 평가가 매우 자랑스러웠다.
   나는 마음 속으로 내 동무들과 구별된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고, 그 결과 내게는 어떤 열등감이 생겨 괴롭게 되었다.
   비록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아직 이해하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매우 자주 천상의 것을 향하였다. 내가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생각 때문에 내 영혼은 암담한 생각에 잠겼고, 나는 이 점에 대하여 다른 아이들의 행복을 부러워하였다.

   어느날 조산원이 집에 왔기에 내가 세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그에게 털어놓았다. "마르가리따, 네가 세례를 받지 못했더?" 하고 조산원은 말하였다. "세례를 받게 해야지, 원!" - "그게 제 소원입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 하지요?" 하고 대답하였다. 조산원은 자기가 책임지고 그 일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켰다. 곧 내가 X에서 세례를 받기로 결정되고 조산원이 내 대모가 되고 본당 신부님이 대부가 되기로 결정이 되었다.
   1927년 3월 17일에 이 일이 행하여졌다. 나는 열 세살이 채 못되었었다.

   그날 내가 가슴 뿌듯하게 느낀 기쁨을 표현하는 것이 내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제는 내가 죽으면 곧장 천당으로 가겠지, 아이고 좋아라! 하고.

   아아! 내가 받은 엄청난 은총에도 불구하고 내 생애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은총이 크다는 것을 그날밖에는 평가하지 못하였다. 나는 종교에 대하여 여전히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초등학교를 마치고 가정(家政)학교에서 2년 동안 공부를 더 하였다. 그리고는 진저리가 나서 공부 계속하기를 거부하였다. 그러자 내 부모는 나를 어떤 작은 기성복 공장에 견습공으로 들여 보냈다. 나는 몇 달 동안을 그곳에 있었다. 그런 다음 시내의 어느 다른 양장점에 가서 일하였다.

   모든 사람에게 매우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에 나는 거기서 주인 부부와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대단히 존중되었다.
   내가 그 양장점에서 지낸 세월에서 특히 눈물겨운 추억이 남아 있으니, 그것은 내 여자주인의 어머니 X부인에 관한 추억이다.
   대단히 연세가 높고 완전한 실명으로 괴로와하는 부인이었다.
   그 부인이 살고 있는 같은 거리에 있는 아파트로 그분을 거의 매일 모시러가는 책임이 내게 주어졌었다. 그 부인이 더듬거리고 망설이고 하는 것을 보니 정말 불쌍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층에 있는 그분의 아파트에서부터 좁은 계단을 얼마나 조심해서 인도하였는지 모른다. 내 동료들은 그 부인을 별로 사랑하지 않고 그분에 대하여 서로 수근거린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어떤 때 몹시 슬펐다. 가엾은, 정말 가엾은 부인이다!

   열 일곱 살이 되었었다. 그때 나는 세상의 허영을 좋아하는 아양떠는 계집아이였다. 그리고 나는 부모에게 몹시 지나친 귀여움을 받았고, 특히 어머니에게서 지나친 귀여움을 받았다.
   부모는 내 뜻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괴상망특한 것이더라도 모두 타협적으로 나왔다. 나는 사들이 나를 상관해 주는 것을 좋아하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을 마련해 주는 것도 좋아하였다.
   나는 누가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매우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행복을 발견할 수 없는 곳에서 열심히 행복을 찾음으로써 점점 더 깊이 빗나간 길로 빠져 들어갔다.
   열 아홉 살 반이 되었을 때 남편이 될 사람을 만나 그와 결혼하였다. 그때 나는 아직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가 거기에 대하여 나와 의견이 같지 않았다. 그래서 일자리를 버렸다.

2. 어머니의 병 3. 첫 영적지도 신부 4. 환상의 시작
5. 묵상기도와 예수님의 현존 6. 신부님의 고통 7. 고독한 기다림 8. 난관을 극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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