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묵주기도의 축제
현세는 선과 악 사이의 엄청난 전쟁에 직면하여 "모든 사람들의 중립을 지킬 권리를 부정한" 전투(戰鬪)의 시기입니다.
교황 비오 11세는 1925년 5월 17일 리지외(북부 프랑스에 있는 지명) 갈멜회의 소화 데레사 수녀를 성인품에 올리셨습니다. 비오 11세께서는 더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그분은 1927년 12월 14일 데레사 성녀를 이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관리하는 사람으로서 모든 선교사들과 선교의 주보로 선포하셨고, 1928년 3월 14일에는 1897년 10월 3일 기적을 일으킨 성녀의 장례날을 기념하는 뜻으로 온 세계의 교회가 영화로운 미사를 드리도록 조치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1997년 10월 19일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를 교회의 학자로 선포하셨습니다.
비오 11세께서는 제2차 세계대전의 어두운 그림자가 세계에 드리워져 있던 1938년 대천사 축일에 중병에서 회복되셨습니다. 그때 교황 비오 11세께서는 전세계를 향한 라디오 방송에서 "주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함께 특히 예수님의 자녀이신 소화 데레사 성녀의 은총으로 저는 중병에서 회복되었습니다" 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의 궁극적인 신비에 바탕해서 교회를 이끌어 가신 교황님으로 하여금 겨우 24세 밖에 안되는 이 성녀를 이렇게 높이 평가하도록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분은 성녀의 신비를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곧 하느님의 삼위일체께 대한 사랑에 완전히 봉헌하는 용기요, 따라서 모든 것을 다 포괄하고 있는 중요한 계시에서 나오는 기쁜 소식에 연결되어 있는 것 등 이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서의 크기의 척도는 업적에 달려 있는 것도 아니요, 하느님과 교회를 위한 업적에 달려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언제나 역사하고 계시는 하느님의 의지와 사랑에 봉헌하는 크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 갈멜회 성녀는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의 신비를 완전히 실행하신 분이십니다. "이 어린이처럼 작아지는 사람은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 된다."
자유의지에 따라 자기를 하느님께 희생으로 바친 이 갈멜회 수녀님은 천상 고향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하셨습니다. "나는 하늘에서 이 땅위에 장미(묵주기도)비를 끊임없이 내릴 것입니다." 이분의 삶, 이분의 포기, 그리고 정신적인 어린이의 길은 우리들이 가장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묵주기도라고 일컫고 있는, 은총의 사업에 들어가는 가장 좋은 열쇠입니다.작은 사람들에게 있어 묵주기도는 다 길어낼 수 없는 은총의 우물이다.
우리가 묵주기도의 신비에 들어갈 수 있는 문은 좁고, 오직 겸손한 사람만이 그 문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조그만 십자가와, 주님의 기도 여섯 번, 성모송 쉰세 번을 바치기 위한 59개의 구슬들을 가지고 있는 "묵주" 는 보기에 수수한 것처럼, 그 기도의 내용도 수수합니다. 침묵과 단순함 속에 감춰져서 나타나는 것은 순수함과 심오함의 징표입니다. 성숙한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와같은 것이 묵주기도입니다. 피상적인 사람들에게는 묵주기도의 성모송과 묵주기도의 신비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구세주의 어머니의 자녀가 되어, 이 어머니를 통하여 예수님의 풍부함 속으로 깊이 깊이 파고드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우물 물리 흘러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마리아님의 기쁨이 이런 사람에게는 은총의 빛나는 사업에 들어가는 문을 열어줍니다. 고통의 신비는 구세주의 사랑의 가치를 한층 더 감동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며, 영광스런 조그만 법칙들은 하느님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마련해두신 영광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묵주기도는 작은 사람들과, 겸손한 사람들과 사랑을 하는 사람들에게, 소화 데레사 성녀는 1886년 성탄절에 하느님의 자녀로서 경험한 것을 점점 더 많이 선물하기 시작합니다. 성녀는 이런 일에 관해, 매우 유명해진 "한 영혼의 이야기" 라는 책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삼위일체의 환희가 환하게 비추던 그날 밤에 새로 태어난 조그맣고 사랑스러운 아기 예수님이 나의 영혼의 밤을 빛의 강물로 변화시키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약해지시고 고통받으신 바로 그날 밤에."
비오 11세 교황님은 소화 데레사 수녀님을 성인품에 올리는 미사에서 다음과 같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선택하셨습니다. "나 이제 평화를 강물처럼 예루살렘에서 끌어 들이리라. 민족들의 평화를 개울처럼 쏟아져 들어 오게 하리라. 젖먹이들은 그의 등에 업혀 다니며 무릎에서 귀염을 받으리라. 어미가 자식을 달래듯이 내가 너희를 위로하리니 너희가 예루살렘에서 위로를 받으리라. 이를 보고 너희는 마음이 흐뭇하며" (이사야 66, 12-14)작은 사람들에게는 묵주기도가 무기가 될 것이다.
성녀는 앞에서 말한 그 성탄 밤 이후로도 다음의 말씀을 써내려 갔습니다. "그분은 나를 힘세고 용감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분은 나에게 당신의 무기로 무장시켜 주셨고, 축복받은 그날부터 나는 어떤 싸움에도 지지 않았습니다. 그와 반대로 나는 승리를 거듭하여 거인처럼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진정한 묵주기도를 다윗의 "돌 던지는 끈"과 비교하는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하니님을 모독하는 거인 골리앗, 자기의 근육과 강력한 무기만 믿고 하느님의 백성을 미워했던 불레셋인은 이스라엘인들을 무서움에 떨게 했습니다. 이럴때 양치지 옷을 입은 다윗이 골리앗에게 맞서 나왔는데, 그는 그저 자기가 잘 맞힐 줄 알았던 "돌 던지는 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호주머니에는 냇가에 주어 온 납작한 조약돌 다섯 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하느님, 곧 양떼들의 주님의 이름으로 "돌 던지는 끈"으로 돌을 쏴 그 거인의 관자놀이를 맞추었습니다. 이런 것이 소박한 묵주기도를 위해 꼭 들어맞는 본보기입니다. 지난 날에는 묵주기도가 경멸되고 조롱당한 일도 자주 있었고, 자부심과 긍지를 짓밟히고 떠밀려난 일은 더욱 자주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시대의 마리아의 발현, 특히 루르드와 파티마에서는 거룩한 동정녀께서 묵주기도를 열심히 바치라고 재촉하셨습니다. 1917년 5월 볼세비키 혁명군(소련의 공산주의 혁명군)이 페테스부르크와 모스크바로 쳐들어가기 시작하자 마리아께서는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을 다시 당신 주위에 모시기 시작하셨습니다. 자유주의 정부들은 마리아께서 발현하신 곳, 즉 포르투갈의 파티마에 있는 보잘 것 없는 골짜기에서 생긴 은총의 기적에 대한 비웃음을 퍼뜨려, 하늘의 복음을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파티마에서는 세계 제1차 대전의 소용돌이 속에서, 1917년 10월 13일 많은 비가 오고 있는 가운데도 태양이 빙빙도는 하늘을 7만명에게 보여준 특별한 자연현상은, 복음이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오늘날 전세계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는 사람들이 몇 백 만이나 됩니다. 이 다윗의 "돌 던지는 끈"이 지난 몇십 년 동안 볼세비키의 세계혁명이라는 거대한 거인과 마주 싸워 어떤 승리를 거두었는가 하는 것은 하느님만이 알고 계십니다.
묵주기도 축일은 이 무기(돌 던지는 끈)를 가지고 크고 중대한 승리를 거둔 것에 대한 생생한 기념비입니다. 이 축일은 비오 5세 교황님이 1571년 10월 7일 그리스도를 믿는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위협하고 있던 터어키 함대를 러판토에서 무찌른 것을 기념하여, 1573년 제정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은 가능한 매일 같이 묵주기도라는 다윗의 "돌 던지는 끈"을 손에 들었으면 좋겠고, 또 많은 사람들이 이 값진 기도를 바쳤으면 좋겠습니다. -마리아 1999년 9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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