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 성모발현과 묵주기도 -

묵주기도의 힘

 

    로마에 간다면 반드시 가봐야 할 장소중에 한 곳이 시스틴성당이다. 얼마 전에 일본인 예술가들이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벽화에 수백년 동안 묻은 먼지와 얼룩을 청소했다. 청소가 다 끝난 지금, 그 위대한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더욱 잘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성당 제단 바로 위 벽쪽에 미칼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이 작품은 1541년에 완성되었는데, 이때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공의회 중 하나인 1545년의 트리엔트 공의회를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이 공의회는 종교개혁에 맞서기 위한 것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바와 같이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교리의 일부를 부정함으로써 교회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었다. 이러한 반란은 1530년대에 최고조에 달하여서, 교회는 공의회를 열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게 되었다.
   미켈란젤로는 매우 신심 깊은 열심한 신자였다. 그는 신부님들이 공의회를 잘 준비하도록 최후의 심판을 그렸다. 실제로, 그 그림은 공의회의 주교님들과 추기경님들이 매우 진지하게 얖으로의 일에 임해야 함을 암시해 주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하느님이 그들 모두의 언행을 판단하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켈란젤로는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이 도전하는 가톨릭 교회의 모든 교리를 그의 작품에 구체화했다. 개혁가들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드리는 공경과 신심을 부정했다.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성모님을 예수님의 오른쪽 자리에 위치하게 함으로써 공경을 표했다.그리고 성모님 바로 밑에, 커다란 묵주가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두 영혼이 그것을 잡고 하늘로 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 위대한 천재는 자신과 르네상스 시대의 성모님과 묵주기도에 대한 신심을 반영하고 있다.
   그 후 30년이 지난 1571년, 셀린은 자신의 통치하에 있는 터어키인들로 하여금 유럽 침공을 감행하게 했다. 셀린은 오트만 제국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들 중의 한 사람인 슬레이만의 아들이다. 슬레이만은 자신의 제국 안에 강력한 육군과 해군을 구축했다. 그는 현명한 사람이었고 결코 유럽을 공격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허나 그의 아들은 현명하지 못했다. 1566년에 권력을 이어받은 술고래인 셀린은 유럽을 침공하기로 결심했다.
   당시 교황은 성 비오 5세였다. 교황은 즉위하자 즉시 터키를 치기 위한 십자군을 소집하였다. 그러나 오스트리아의 돈 존과 스페인 사람들, 그리고 베네치아인들과 몇몇 교회의 함대 등 소수만이 이에 호응을 했다. 3대 1정도로 터키인들의 함대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숫자였다. 도미니코 수도회 호원이었던 교황 비오 5세는 도미니코회 수도자들에게 묵주기도를 열심히 봉헌해 줄것을 요청했고 그리스도 군대를 돕기 위해 전 유럽에 묵주기도 십자군을 요청했다. 1571년 10월 7일, 돈 존과 안드레아 도리아의 휘하에 있던 그리스도 군대는 그리스 해안 레판토 만에서 터키인들과 싸워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총칼로 된 무기때문이 아니라 묵주기도를 무기로 하여 승리한 것이라고 고백했다.
   교황은 이 승리에 감사를 드리고자, 10월 7일을 지극히 거룩한 '묵주기도의 복되신 마리아 기념일'로 제정하였다. 또한 이 위대한 도미니코회 교황인 비오 5세를 기리기 위해서 모든 후임 교황들은 도미니코회의 흰색을 일상 성직복으로 입게 되었다.
   파티마에서 성모님은 마지막 발현일인 1917년 10월 13일에 거룩한 묵주기도의 여왕으로 발현 하셨다. 한 손에는 묵주를 다른 한 손에는 스카풀라를 들고 계셨다.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는 도미니코 성인에게 "묵주기도와 스카풀라를 통하여 나는 세상을 구할 것이다" 라고 하셨다. 지금이 바로 그 시대이다!

생각하는 기도
   곱비 신부님에게 1983년 10월 7일 묵주기도 축일에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랑하는 아들들아, 사탄과 그의 교활하고 위험한 유혹에 대항해서, 또 '악'의 힘센 군대에 대항해서 너희가 날마다 싸우는 싸움에서, '주님의 천사들'이 주는 특별한 도움 외에 너희가 사용할 필요가 있는 불패의 안전한 무기가 있다. 이 무기가 다름아닌 너희들의 기도이다. ...기도야말로 강력한 힘이어서 원자핵 반응보다 더 위력있는 연쇄 반응을 선(善)에 일으킬 수 있다."

   이제 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내가 특히 좋아하는 기도는 '거룩한 묵주기도'이다. 그래서 나는 발현을 통해 묵주기도를 바치라고 호소한다."

   거룩한 묵주기도가 왜 그처럼 효과적인가? 거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묵주기도는 생각하는 기도이기 때문이다. 나쁜 생각이 오늘날 우리 현실에 혼란을 가져왔다. 나쁜 생각은 프랑스 혁명을 움트게 했다. 볼테르(1964-1778), 루소(1712-1778), 디드로(Diderot 1713-1784)와 백과전서 파들이 프랑스 혁명의 선조들이었는데, 이 몇몇 사람들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했다. 혹 그들이 하느님을 인정한다해도, 하느님은 이 세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생각했다. 말하자면, 하느님은 시계처럼 태엽을 감고는, 그것이 다 풀리게 해 놓았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손에 놓여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인간과 인간의 이성을 예찬했다. 그들의 도덕적 철학은 이신론(理神論)이라고 불리우고 그들의 시대를 "깨우치고 밝히는 시대"라고 덧붙였다.
   그들의 추종자들은 - 프랑스 혁명론자들 - 그들의 논리적 결론에서 그들의 가르침을 전달하면서, 사제들과 수녀들을 살해하고, 교회를 약탈하고 더럽혔으며, 여러 성상들을 파괴했다. 심지어는 여배우인 마드모아젤 오브리안을 이성의 여신으로서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왕위에 앉히기까지 했다.
1   8세기 이신론은 19세기의 합리주의를 태동시켰다. 19세기 합리주의는 20세기의 미국의 세속적인 박애주의와 러시아의 무신론적 공산주의를 태동시켰다. 러시아의 무정부주의자 크로폿킨은 프랑스 혁명을 "현재 공산주의, 무정부주의와 사회주의 이론의 근원이고 기원"이라고 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소련의 생활 방식에 현존하는 프랑스 혁명의 정신을 발표하였다(1987년 7월 17일 월 스트리트 저널에).
   한마디로, 우리 시대의 도덕적인 해악과 오류들은 18세기에 프랑스에서 근거한 나쁜 생각에서 파생되어진 것이다. 그것이 19세기에 하느님없이 인간이 하겠다는 오만과 교만을 낳았으며, 따라서 성모님의 발현이 프랑스에서 일어나야만 했던 이유임에 틀림없다. 하느님의 모친이신 성모님은 우리의 진정한 어머니이시다! 이는 신심깊은 수식어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들이다. 성모님은 우리를 매우 사랑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돌보신다. 자녀가 위험에 처했을 때, 그 아이의 어머니는 서둘러서 그 아이에게 간다. 성모님은 프랑스에서 이신론과 무신론에 처해 있는 당신의 자녀들의 위험을 보시고 서둘러서 문제의 핵심부인 프랑스로 가셔서 프랑스를 순회하셨다.

19세기와 20세기의 성모님의 발현

파리, 가카리나 라브레
   처음에, 성모님은 프랑스의 수도인 파리에서 시작하셨다. 1830년 7월 18일에, 성모님은 파리의 루드 박(빵을 파는 거리)에 있는 자선단체수녀원의 수녀인 가타리나 라브레에게 발현하셨다. 같은 달, 7월 혁명은 프랑스의 절대 왕정을 무너뜨리고 프랑스 혁명의 많은 원칙들을 복원시켰다. 교회는 한 차례 더 심한 공격을 당했다. 그해 11월에, 성모님은 가타리나에게 나타나셔서 우리 모두에게 많은 은총을 부어주시는 성모님을 묘사하고 있는 메달을 보여주셨다. 이 메달은 너무나도 많은 기적의 도구가 되어서 사람들은 그것을 "기적의 메달"이라고 부른다. 성모님은 프랑스를 하느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 기적이 필요함을 아셨다.

라 살레트
   그러나 여전히, 프랑스는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았다. 성모님은 낙담하지 않으셨다. 파리로부터 시계 방향을 움직이시어 1846년 9월 19일에 프랑스 동 서쪽의 라 살레트에서 두 어린이 메라니와 막시민에게 다시 발현하셨다. 사람들이 거룩한 주일을 무시하고 아드님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이름을 함부로 남용하기 때문에 우신 것이다. 성모님은 당신의 말씀대로 교회 입장에서 프랑스의 4분의 3을 잃게 될 것이고, 나머니 4분의 1은 냉담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셨다. 자녀에게 불장난 하지 말라고 말하는 좋은신 어머니처럼, 성모님은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돌아오지 않으면 끔찍한 기아가 발행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
   역사는 1848년을 "광란의 해(mad year)"라고 부른다. 1848년에 칼 막스는 그의 공산당 선언을 작성했다. 교황 비오 9세는 로마에서 피신하여 일생 동안 가에타에서 보냈다(이탈리아 혁명군에 의해서 교황청을 잠시 떠나셨다). 그의 비서인 드 로시는 칼에 맞아 죽었다. 은퇴한 웰링톤은 런던의 폭동을 진합하라는 명을 받았다. 메테르니는 일생 동안 비엔나를 벗어나 피해 있어야 했다. 감자 기근이 닥쳤고, 수백만의 목숨을 앗아 갔다. 아일랜드인들과 독일인들은 떼지어서 미국으로 이주해 갔다. -마리아 1998년 91호 -

루르드
   성모님의 기적들과 눈물은 사람들에게 거의 효과가 없었다. 성모님은 1858년 2월 11일에 남부 프랑스에 발현하셨다.
   거기서 벨라뎃다 수비루라는 어린 소녀에게 프랑스를 구하는데 필요한 두 가지를 밝히셨다. 회개와 묵주기도. 허나 그렇게 간단한 요청도 프랑스에서 아무런 반응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프랑스-프러시아 전쟁이 1871년에 시작되었다. 비스마르크의 강력한 군사력은 프랑스 군대를 굴복시켰다. 파리는 점령당했고, 승리한 독일은 프랑스 점령을 계획하면서 서쪽으로 영국 해협까지 휩쓸었다.

포트만
   그러나, 프랑스의 서쪽에는 열렬한 가톨릭 신심으로 널리 알려진 노르만 민족과 브리튼 민족의 소작농들이 살고 있었다. 위기 중에 그들은 성모님께로 되돌아갔다. 성모님은 1871년 1월 17일에 파리에서 서쪽으로 약 180마일 떨어진 포트만에서 4명의 아이들에게 발현하셨다. 모든 이들이 묵주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아이들은 묵주기도를 드릴 때마다 성모님의 모습이 커진다고 보고했다. 성모님은 그들의 기도를 격려하시며, "기도하라, 나의 자녀들아, 하느님은 짧은 시간에 너희의 말을 들어 주실 것이다. 내 아들이 마음을 움직이기로 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들은 성모님 요청대로 했다. 그들은 묵주기도를 드렸고 독일 군대의 서쪽으로 움직임이 멈추어졌다. 10일 이내인 1871년 1월 28일에 휴전 협정이 조인되었다. 성모님의 중재하심에 감사하여 프랑스 민족은 포트만에 성모 대성당을 건립하였다. 포트만 발현시, 성모님은 43개의 별들에 둘러싸여서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함께 행동하여 하느님께로 돌아가도록 43년이라는 세월을 프랑스에 주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점점 더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학교들은 세속화되어지고 정부는 교회의 모든 재산을 국유화하려고 시도했다. 방향키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은 암초에 주의해야 한다. 1871년부터 43년 후는 1914년이다. - 그해에 1차 대전이 시작되었다.
   3년간의 이 끔찍한 전쟁에서, 프랑스 혁명은 러시아에 볼세비키 혁명을 태동시켰다. 1917년 4월 16일에 알렉산더 커렌스키는 로마노프 왕정을 전복시키고 이제가지 알려진 유일한 민주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런 커렌스키는 독일과으 전쟁을 계속하려는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 따라서 루덴돌프 장군은 볼세비키 세력을 러시아로 파견했다. 그들 중에는 레닌, 트로트스키와 스탈린도 포함되어 있었다. 1917년 1월 7일에 이러한 소수가 러시아의 민주 정권을 전복시켰다. 커렌스티는 오스트리아로 도망쳤고, 무신론 공산주의가 세계적인 공격을 이행하 수 있는 공급원일 얻게 되었다.

파티마
   1917년 그 운명의 달인 4월과 11월 동안에 성모님은 프랑스를 떠나셔서 1917년 5월 13일 성모성월부터 1917년 10월 13일 묵주기도성월까지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발현하셨다. 여섯 번의 발현 때마다 성모님은 인류에게 세계적 해악을 끼치는 무신론적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해독제를 주셨는데 다름아닌 묵주기도이다! 사실상 10월의 마지막 발현에서 성모님은 거룩한 묵주의 여왕으로 발현하셨다.
   "묵주기도를 매일 드려라" 라고 요청하셨다. 여전히 사람들은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2차 대전이 잇달았다.

메주고리예
   이 끔찍한 전쟁 이후에도, 세상은 세상의 평화가 하느님의 의지 안에서만 찾아질 수 있음을 깨닫지 못했다. 세상은 핵 파괴의 길로 거침없이 움직여 가고 있기에, 성모님은 한 차례 더 발현 하셨다. 성모님의 마지막 발현! 이번에 성모님은 동쪽 유고의 메주고리예에서 1981년 6월 24일 발현하셨다. (1997년 6월 24일 현재까지 계속) 성모님은 6명의 아이들에게 발현하셨다. 성모님은 메시지의 긴급함을 강조하시기 위함인 듯, 4명의 아이들에게는 매일 발현하신다. 항상 그렇듯이, 성모님은 하느님께로 돌아올 것을 호소하시는데, 특히 기도 - 묵주기도 - 를 통하여 하느님께로 올 것을 말씀하신다. 이제는 매일 묵주기도 15단을 바칠 것을 요청하신다.

묵주기도
   왜 묵주기도 대해 이토록 강조하실까? 우리의 어머니이신 사려깊은 성모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행동함을 잘 아신다. 신념이 행동에 앞서는 것이다. 성모님은 우리의 생각을 바르게 하고 현대의 많은 오류들에 대항하는데 있어서 매일 묵주기도의 신비들을 묵상하는 것 이상의 좋은 방법이 없음을 잘 아신다. 묵주기도는 좋은 생각이다. 묵주기도는 종교적인 네 가지의 위대한 진실로 이끈다.
   1) 묵주기도 환희의 신비는 종교의 첫 번째 위대한 진실을 가르쳐준다. 즉, 신앙의 삶, 환희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자주 사람들은 그 반대로 생각한다. 조오지 엘리옷은 그 당시의 성직자를 가리켜서, "과거의 유품에서나 볼 수 있는 장엄함을 지닌 창백한 얼굴"로 묘사했다. 참으로 어처구니 없는 말이다. 환희의 신비는 바로 그 정반대의 것을 가르쳐 준다. 우리에게 삶은 환희, 바로 기쁨임을 상기 시켜준다. 종교도 환희에 찬 것임을 상기시켜준다. 하느님은 우리를 행복하라고 창조하셨음을 상기시켜준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지상의 첫 번째 인간을 에던 동산에 있게 한 이유이다. 바오로 사도는 사랑하는 필립비 교우들에게 촉구하지 않았던가! "주님과 힘께 항상 기뻐하십시오!" (필립 4,4)
그러나 훨씬 더 좋은 것은, 환희의 신비는 우리가 어떻게 그 환희를 얻을 것인가를 말해준다는 것이다. 즉, 성모님과 성 요셉이 하셨듯이, 엘리사벳과 즈가리아가 했듯이, 안나와 시몬이 한 것처럼,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이 했듯이, 하느님의 뜻을 따라 행하면 환희를 얻을 수있다는 것이다.
   2)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는 종교의 두 번째 위대한 진실을 가르쳐준다. 즉, 죄란 이 세상의 삶을 눈물의 골짜기로 만든다는 것이다.
고통의 신비는 하느님의 뜻이 아니라 인간의 의지대로 했을 경우에 죄가 슬픔의 길이라는 것을 가르친다. 사람들은 얼마나 종종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가! 예를 들어 젊은이들은 종종 술, 마약과 섹스가 행복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하느님의 방법이 아니라 우리의 방법으로 사는 것은 고통과 불행의 길이 된다.
   3)묵주기도 영광의 신비는 종교의 세 번째 위대한 진실을 가르쳐준다. 즉, 현세의 삶은 이 세상을 지나야만 목적지가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삶은 윤회적인 것이 아니며 삶은 윤회 속에서 순환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교도들처럼 순환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바로 그런 이유때문에 이교도인들이 지루해하고 권태로워하고 자살하는 것이다. 목적없는 활동은 미친 짓일 수 있다. 핀이 서 있지 않는 레인에서 볼링을 하는 것은 아무런 재미가 없다. 하지만 핀을 세워놓고, 그 핀을 향해 볼링 공을 던지면, 그것은 재미있는 게임이 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삶은 명확하다. 우리는 어느 곳인가로 가고 있는 중이다. 하늘나라 혹은 지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영광의 신비는 우리의 운명이 하늘나라임을 강조한다. 그것은 이 세상을 뛰어 넘는 영광스러운 삶이다.
   4)묵주기도 15단은 종교의 네 번째 위대한 진실을 가르친다. 즉, 성화(聖化)는 우리 모두를 위해 꼭 필요하다는 것과, 마땅히 우리가 도달해야 할 것임을 알려준다.
   15단 전체는 평범한 모든 사람들이 성모님과 성 요셉처럼,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일상의 평범한 일을 함으로써 거룩함에 도달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세상이 볼 때, 성 요셉과 성모님은 단지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예수님이 감동적인 말씀으로 마을 사람들을 두려워하게 했을 때 사람들은,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루가 4,22)라고 물었다. 평범한 목수였다. 예수님이 천상의 빵이라는 말씀을 하셨을 때도, 예수가 평범한 시골 출신이라는 배경에서 항변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그의 부모도 우리가 알고 있는 터인데 자기가 하늘에서 내려왔다니 말이 되는가?" (요한 6,42) 그의 부모도 단지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평범한 사람들 그 이상의 것은 원하지 않으신다. 그리고 선한    사람들의 유일한 초점은 그리스도이다.
묵주기도는 그러한 진실들에 대해서 생각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생각은 행동을 이끈다. 사람들을 감싸고 있는 생각이 그들을 실행케하기 때문에, 성모님은 우리가 주님의 삶의 신비를 나날이 생각할 수 없다면 변화될 수 없음을 아신다. 성모님은 그것을 아시기에 묵주기도를 하도록 열렬히 요청하시는 것이다.
   성모님은 혁명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다(그것은 구조만을 바꿀 뿐이다). 구조의 변화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프랑스 왕정의 전복이 보다 나은 국가를 가져 온 것은 아니다. 공산주의를 위하여 로마노프 왕조와 커렌스키 정부의 몰락이 러시아를 돕지 못했다. 카스트로를 위한 바티스타 정군의 몰락이 쿠바를 구하지 못했다. 성모님이 추구하는 것, 그리고 교회와 복음이 추구하는 것은 갱신이다. 갱신은 마음의 변화를 뜻한다.
   그것이 성모님께서 묵주기도를 요청하시는 이유인데, 묵주기도는 마음을 새롭게하고 사람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변화면, 사회가 변할 것이다.(알버트 J.M 세몬) -마리아 1998년 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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