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나의 방황은 끝났다. 무신론자가 하느님을 발견하다

 

(* 더글라스 하이데(Douglas Hyde)는 1911년 영국의 항구 도시 브리스톨에서 탄생했고 그곳에서 성장했다. 1차대전 후 그곳에서 전쟁 부상자들과 실업자들이 겪는 온갖 고초를 체험했다. 그는 보다 나은 세계를 만들기 위한 온갖 이념들과 투쟁했다. 마침내 그는 청소년이 흔히 갖는 이상주의를 쫓아 공산당에 입당했는데 몇년 후 그는 고위 당직자가 되었고 1940년에는 공산주의 신문인 "데일리 워커"지의 편집인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점점 공산주의 이념의 정당성에 대한 회의와 실망이 커갔고, 가톨릭 신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저는 리챠드 크녹스(Richard knox)의 '가톨릭 신앙' 이란 책을 읽었어요. 그리고 정신적으로 제 생각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았죠. 하지만 그 때문에 하느님을 믿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같은 신앙은 벌써 오래 전에 죽었습니다. 아무것도 제 마음에 와 닿지 않았고 아무것도 저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저의 처 캐롤과 함께 하느님의 존재를 정신적으로는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았지요. 신앙이란 단순히 하느님에 대해 무언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알기 위해 영적인 것을 느낄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과 대화를 나누며, 하느님의 속삭임을 들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저에게는 그러한 경험이 여전히 낯설고, 의기소침해질 때면 영원히 이러한 상태로 머물게 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습니다. 회의에 깊이 빠져 있던 어느 날 저녁 저는 갑작스러운 영감이 떠올라 어떤 일이 있어도 성당에 가보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저는 어둑어둑한 성 에텔드레다(St.Etheldreda) 성당 안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다음날 저녁 저는 다시 그곳을 찾았습니다. 저는 한 시간 가량 어둑한 그곳에 앉아 있었습니다. 감실 옆에서 나오는 아주 작은 불빛만 반짝거리고 있었을 뿐이었죠. 저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주일 동안 저는 바로 그 자리에 다시 와 앉아있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침 묘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성 에텔드레다 성당의 어스름한 빛을 받으며 저는 평소처럼 마지막 줄의 긴 의자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여성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20세 가량 되어 보였습니다. 옷차림은 남루했고 예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가 아일랜드 출신의 가정부라고 생각했죠. 그녀가 제 옆을 지나갔을 때 그녀의 얼굴 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녀 역시 근심이 있는 표정이였습니다. 저와 똑같이 그녀는 뭔가 가슴속에 무거운 걱정 거리를 안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녀는 중간 통로를 통해 똑바로 앞으로 가더니 왼쪽으로 몸을 돌려서 기도대로 향해 갔습니다. 그녀는 거기서 촛불을 켜고 동전 몇 개를 헌금함에 집어 넣고는 성모상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과 촛불이 발하는 빛 속에서 저는 그녀가 열심히 묵주를 손가락 사이로 돌리며 때때로 머리를 숙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몰랐던 가톨릭의 관습이었습니다. 그것은 신앙의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갈구해오던 세계였습니다. 그것은 미신일까? 아니면 마술의 세계인가? 내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모순된 대답이 동시에 나왔습니다. 그녀가 나가면서 다시 내 곁을 지나 갈 때 나는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던 그 무엇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다는듯이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수 개월, 아니 수 년 동안 이 근심을 떨치지 못하고 끌고 다녔던 것입니다.
   나는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얻어 맞은 개처럼 되어 그녀가 했던 것처럼 중앙 통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앞으로 가다가 왼쪽으로 돌아서 헌금함에 동전 몇개를 집어넣고 촛불을 켜고는 기도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모님께 기도를 드리려고 했습니다. 지금은 이미 이러나 저러나 매 한가지라고 그 두 목소리는 동시에 말했습니다.
   '네가 미신에 귀의하여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기도한다면,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동상에 기도할 수도 있지 않는가. 이제 그만하자.' 사람들이 성모님께 어떻게 기도하는지 저는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을 전구자라 부르면서 기도하는지, 아니면 그분을 통해서 기도하는지? 사람들은 성모상 뒤에 서 계실 실체를 보기 위해 성모상을 바라보는지, 아니면 그저 성모상에 대고 기도하는 것에 불과한 것인지?
   그것 역시 저는 몰랐습니다. 저는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를 중세기 문헌을 읽고 생각해 내거나 아니면 체스터톤(Chesterton)이나 벨로스(Bellos)의 시에서 무언가를 생각해내기도 했습니다. 나의 머리는 텅 비었습니다. 촛불은 깜박거리며 불꽃이 점점 작아지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내 자신이 무슨 말인가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어울리는 것같아 보였지만 나중에는 애처로울 정도로 부적합해 결국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아무 상관 없었습니다. 나는 나의 방황전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무에 대고 말한것은 아니었습니다.
   성당 밖에서 나는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말들이 다시 생각났을 때 크게 웃을 뻔했습니다. 그건 내가 젊었을 때 유행했던 댄스곡 중의 하나였습니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여인이여, 나를 사랑해 주오. 그대여 나를 사랑해 주오.'
   더글라스 하이데가 1948년 몹시 실망하여 공산당과, 그리고 공산주의와 완전히 관계를 끊었다고 선언했을 때 영국에서는 선풍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가톨릭 신자가 되던 날 저는 이제 요즘 세상에서 가장 건전한 일과 결부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졌습니다. 세상을 자기 파멸에서 구하기 위해 그 어느 때 보다도 바로 오늘날 우리는 인간이 한 때는 죽었다고 선언한 바로 그 하느님을 필요로 합니다. 무언가 더 나은 것이 저에게 제시되었기 때문에 저는 나의 공산주의를 버렸습니다. 새로운 하느님을 사귀는 것이 저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저의 하느님은 실패하시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더글라스 하이데) -마리아 2000.1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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