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부부(夫婦) 정절(貞節)의 증언

- 한 정기구독자(니다우)의 편지 -
 

   1968년 체코가 점령당했을 때 우리는 다섯 살된 아들을 데리고 스위스로 망명을 했습니다. 망명하기 전에는 신심이 깊고 성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
   우리는 처음에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나중에는 인간적인 기쁨을 한껏 누렸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잃지 않았습니다. 하느님 없이도 세상은 아름다웠는데도 말입니다. 한 주일에 한 번은 미사에 참례했으며 이것으로써 우리들은 종교적인 의무를 다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는 서로 떨어져서 생활했고, 각자 자기의 길을 갔습니다.
   메주고리에로의 순례여행(1968년)이 나로 하여금 커다란 회개를 하게 해주었습니다. 집에 들어와서 나는 우리의 혼인생활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순례여행 뒤에 생긴 나의 건강상의 여러 문제들이 나로 하여금 삶의 형태를 바꾸도록 강요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총고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남편도 내가 종교생활을 실천하는 것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그의 종교에 관한 관심은, 지나친 스포츠 활동 때문에, 동정을 보낼만큼 형편없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때 나는 나의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함께 일을 하자고 나를 부르신다는 것을 깨달았고, 따라서 나를 그분의 티없으신 성심께 봉헌했습니다.
   하느님 어머님께 대한 나의 신뢰는, 나를 본보기로 하여 내 남편이 회개하게 되리라는 확신을 굳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뜻으로 나는 가족이 다 함께 루르드를 순례할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내 남편에게는 순례여행과 테니스 경기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게다기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에는 남편의 오른쪽 팔의 근육파열로 병원에 실려 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모든 일이 다 이렇게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하느님의 경고를 알아듣지 못했고, 나는 심리적인 테러를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나는 1990~91년 연말 연시에 케냐에서 휴가를 지낼 계획을 마련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한 스위스인 가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파리 여행도 함께하고, 해안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습니다. 남편은 매일 아침 그 가족의 젊은 부인과 열세 살된 아들과 함께 테니스를 하며 즐겼습니다. 나는 테니스를 못하지만, 남편의 취미생활을 받아들였고 그가 테니스 하는 것에 아무런 의심도 갖지 않았습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남편이 신경이 쓰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와는 아무 일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는 수없이 나는 고해신부님을 찾아갔습니다. 신부님은 저에게 "남편이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을 가능성은 없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는 이런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1991년 8월, 내 눈에는 먼지가 박혔습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남편은 자기는 어떤 여자에게 반해 있으나, 앞으로 우리 사이에 달라질 것은 전혀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나는 우리의 혼인상태를 올바르게 지켜나가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도는 내가 그를 다시는 보지 않게 될 만큼 약해져 갔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의 가시밭길은 시작되었습니다.
   1992년 2월에 나는 우리의 혼인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시도를 했습니다. 남편은 일찌감치 나를 데리고 에집트로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여행 동안의 날들이 나의 일생에서 가장 슬픈 날들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도 우리는 9개월 동안 계속해서 함께 살았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보통 때와 마찬가지로 살림을 꾸려나갔습니다. 1992년 10월, 남편은 나를 버리기로 결단을 내리고 이혼소송을 했습니다. 그는 나에게 보내는 아름다운 꽃다발을 식탁 위에 남겨 놓고 떠나갔습니다.
   한 달 뒤에는 아들이 자기 아내를 데리고 슬로바키아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혼자 남게 되었고, 내 생활은 근본적으로 뒤바뀌었습니다. 나에게는 수없이 많은 문제들이 생겼고, 나는 이 문제들을 오직 하느님의 도움으로만 견디어낼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혼자 사는 여자는 어떤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도 경험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과 고독 속에 빠져 있었을 때, 우리의 기도단체가 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을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나는 이 사람들에게서 이웃사랑을 발견했습니다. 이들의 기도가 나의 영육간의 건강을 지켜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혼인을 위한 투쟁을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1993년 5월 1일, 우리들의 이혼은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다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때 내가 혼인에서 맡은 역할을 잘하지 못하였고 아무데도 쓸데없는 꼭두각시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법정에서 생긴 일을 이해할 수 없었고, 나의 권리는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나에게는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물음들이 생겼습니다. "왜 내가 그 사람을 방해하고 있어? 그 사람은 자기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는 거야!" 이런 태도는 내가 (혼배성사 때) 제대 앞에서 나의 남편에게 했던 "예" 라는 말과 반대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예" 라는 말은 죽음이 우리 둘을 갈라놓을 때까지 유효한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법관도 변하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남편은 돈 때문에 이혼소송을 계속하는 것을 단념하고 말았습니다. 나는 마음을 놓고, 이 정도의 상태로라도 그냥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993년 나는 루르드로 순례여행을 떠났습니다. 거기서 나는 기이한 꿈을 꾸었습니다. 알지 못하는 한 남자가 나를 붙들고 때리려고 했습니다. 겁에 질려 나는 얼굴을 가렸습니다. 갑자기 나는 어떤 소리를 들었습니다. "사랑과 많은 인내를 가지고 애써야만 너는 그를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침착을 되찾아, 동정심과 사랑으로 그 낯선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는 안정을 되찾자 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잠에서 깨어났을 때, 이것이 내가 악을 이겨내도록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주신 충고라는 것을 분명하게 알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아직 나에게 다가올 모든 것들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는 보다 더 자주 영성체를 모시고, 매일같이 묵주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영혼의 안정을 다시 찾고, 내 문제를 해결할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몇 주일이 지난 1995년 11월 22일은 우리들의 "운명의 날" 이었습니다. 나는 하루 종일 법정에서 나의 혼인을 위해 싸웠습니다. 나는 그 모든 시간 동안에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고 느꼈습니다. 나는 마지막 진술을 할 때 침착하게 있으면서 다음과 같이 결심했습니다. "나는 나의 남편 편이며, 우리들의 이혼에 반대한다!" 법관들은 어쩔 줄을 모르고,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번 경우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고 말했습니다. 이 날 판결이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정의롭지 못한 판결은 약 두 주일 뒤에 내려졌습니다. 나의 남편의 고소에 따라 우리의 혼인은 이혼으로 끝나고 말았습니다. 나는 몇 일 동안 커다란 충격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십자가 앞에 꿇어앉아 나의 실망을 호소했습니다. 이런 모든 일들을 이해하고 이런 정의롭지 못한 일을 받아들이기란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나의 고해신부님이 바르게 설명해주셨습니다. "이제 당신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려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느님의 버림을 받았다고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잘 이해하십니다." 그런 뒤 나는 진정을 하고 나의 십자가를 받았습니다. 이제 나는 성금요일 예수님이 돌아가신 날 뒤에 부활절이 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느님은 또 침묵만 지키고 계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이 이혼을 하기 얼마 전에 내 남편은 또 한 가지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심장장애, 이제 그는 심장병환자 생활을 해야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내 이혼을 강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1996년 정월 초, 나는 어떤 장례식에서 "우연히" 나의 남편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인사를 나누고, 마련되어 있던 점심식사를 하러 함께 갔습니다. 우리들의 대화는 매우 자유로웠고 간절한 것이었습니다. 이때 나는 내 남편이 매우 고독하고 불만에 차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시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직도 자기의 결단이 잘못되었다고 고백할 수가 없었습니다.
   1966년 5월, 나는 다시 이스라엘로 여행을 갔습니다. 나는 가나에서 나의 혼인서약을 갱신했습니다. 그리고 내 남편이 돌아오기로 결심했을 때에는 그를 받아들일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 마리아 1999년 9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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