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당신을 바라오면...;묵주기도로 받은 은혜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오면 먹을 것을 제때에 주시나이다" (시편144,14)
   그렇습니다. 하느님만 바라고 하느님만 의지하게 되면 그분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저는 이제 마흔 여섯 살밖에 되지 않았고 더욱이 서른 다섯 살에 하느님을 알게 되어 세례를 받았으니 겨우 10여 년의 세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동안 그분이 저와 저희 가정에서 하신 일들을 볼 때 그분을 의지하고 성모님을 통하면 안되는 일이 없음을 저는 굳게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런 지면을 빌어 간단하게나마 그분이 하신 일을 자랑할까 합니다.
   저는 형제 많은 가정 더구나 큰집, 작은집이 모두 함께 제사를 지내고 집안의 대소사를 치르는 가정의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이른바 매운 시집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때는 하느님을 알지 못했기에 삶은 곧 고통으로만 여기며 살았었는데 그러다 보니 그것이 우울증이란 병세를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운 시기였고 반면 그런 고통만큼이나 커다란 은총이 저를 준비시킨 나날이기도 했습니다.
   우울증을 치료하고자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고 심지어는 굿도 해보았지만 효험이 없었는데 어떤 권유로 세례를 받게 되어 저는 그것을 계기로 하느님께 매달리고 특히 성모님을 통한 묵주기도에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건 은총이었습니다. 지금은 대학생들이 된 우리 아이들 세 명이 유치원도 들어가기 전 올망졸망하던 시절에 저는 집안 일을 하는 것 외에는 오직 묵주기도에만 모든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습니다. 밤낮으로 기도했고 성모님의 발을 붙잡고 늘어졌습니다. 후일 알고보니 가족, 친지들은 가망이 없어 보이는 저를 두고 제 몰래 가족회의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그런 저를 살려주셨고 저는 우울증으로 인한 생사의 갈림길에서 새사람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성모님께서 저를 살려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한번의 치유가 있었는데, 지금부터 50년 전 마흔 한 살 때의 일입니다. 목이 뻣뻣해져 가면서 목소리가 변하여 전화 목소리로는 다른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더랬습니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니 악성종양이라고 했습니다. '설마' 하는 생각에 여러 병원의 의사에게 보였지만 모두 똑같은 진단을 내렸고 보름간 약을 먹은 후 수술을 해야 한다며 "한 알이라도 빠뜨리면 안됩니다", "목을 마음대로 쓰면 안됩니다", "목이 점점 굳어가게 될겁니다" 라며 경고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 자신은 그런 죽음의 선고가 전혀 두렵지 않았습니다. 오래 전에 지옥같은 우울증을 성모님께서 낫게 해주셨는데 이것도 성모님께 매달리면 치유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을 마음대로 쓰면 안됩니다" 라는 경고를 무시한채 종야이 생기기 전보다 더 큰 목소리로 성모님을 찬양했습니다. 목의 종양은 저를 약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제 신앙심에 더욱 굳센 의지를 불어넣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차치하고서라도 세 아이들을 바라보니 너무나 가슴이 아팠고 이 나이에 죽는다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내가 없으면 아이들이 천덕꾸러기가 될 것같은 생각에 "저는 이제 마흔 한 살밖에 안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불쌍해 못 죽겠어요" 라며 또 다시 성모님께 살려달라고 매달렸지요.
   병원의 선고를 받고 약을 먹으며 지내던 7-8일 후 어느 날, 쎌기도 모음에 참석하기 위해 어느 자매님의 집으로 갔을 때의 일입니다. 쎌기도가 시작되고 사람들이 기도문을 외우고 있을 때 갑자기 저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을 흘리며 통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속 깊은 곳에서 손의 형상을 한 무엇인가가 올라와서 제 목을 부드럽게 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순간 저는 성모님께서 저를 용서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참 후 손의 형상인 듯한 그것이 사라진 후 저는 어머니의 사랑에 휩싸여 눈물을 흘리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 다음날 저는 어떤 확신에 가득차서 병원으로 갔습니다. 성모님께서 낫게 해주셨다는 확신을 하면서 진료실로 들어갔는데 목을 들여다보던 담당의사가 이상하다는 듯 유심히 관찰하더니 "어, 이상하네. 아주머니, 혹이 없어졌어요!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여러 명의 의사들도 모두 제 목을 들여다보며 확인하고는 갸우뚱했는데, 순간 저는 어머니께 진정으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저는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그 즉시 하느님과 성모님께 큰 소리로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간호사는 조용히 하라고 했을 정도로.
   의사는 혹시 모르니 약을 가져가라고 했지만, 제 병은 사람이 아닌 하느님께서 치료하셨기 때문에 약이 필요없다고 말했는데 그러자 의사도 "아, 그렇겠군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병원을 나오는 즉시 곳곳에 전화를 걸어 하느님께서 하신 일을 널리 알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지 않는 우리 가족, 친지들에게 하느님을 알리는 커다란 기회가 되었습니다.

"묵주기도만큼 좋은 기도는 없어예"
   지금까지 제가 한 일은 오직 열심히 미사에 참례하고 묵주기도로 성모님께 매달린 것밖에 없습니다. "기도밖에 없다!" 는 신념으로 버텨온 오늘에 이르기까지 두 번이나 생사의 갈림길에서 저를 구해주신 것 외에도 하느님께서 마리아를 통해 우리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에 내려주신 은총을 어찌 글로써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보잘것없는 저를 고통을 통해서 당신께로 불러주신 것을 시초로 시댁과 친정 식구들의 거의 대부분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하느님 안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특히 제 남동생 베드로는 약 1년에 걸친 저의 끈질긴 전화선교(?)덕분에 묵주기도의 은총을 체험하고 세례받게 된 이후로 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아침마다 묵주기도 15단을 꼭 바치고 출근하는 습관을 갖게 되었습니다. 부산을 비롯하여 서울, 울산 등지로 흩어져 사는 동생, 친지들에게 저는 전화를 통해 끈질기게 하느님을 전하고 묵주기도를 권유했는데 이제는 모두 열심한 신앙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저는 평소에 이렇게 권하곤 합니다. " '어떻게 하면 하느님과 성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을까?' 만을 생각해라." 전화선교에 얽힌 에피소드, 아니 하느님께서 해주신 일을 두가지만 나누고 싶습니다.
   십여년 전 전 우울증을 앓으면서도 묵주기도에 매달려 살던 당시, 그때는 경제적으로도 무척 어려운 시절이었는데 어느 날인가 단돈 3,000원 밖에 가진 게 없었지만 울산에 사는 친정 여동생에게 시외 전화를 걸어 이른바 '전교' 를 하고픈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그 당시 여동생은 결혼 후 아기를 낳지 못해 고민 중이었는데 묵주기도를 권해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입니다. 집에 전화가 없으니 공중전화를 이요해야 했는데 가진 돈 3,000원으로는 저녁 찬거리를 사야 했기에 전화요금으로 쓸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전교하고 싶은 생각이 너무나 간절했기에 생각다 못해 그 중 2,000원만 찬거리를 사고 나머니 1,000원으로는 전화를 걸기로 마음먹고는 마침 놀러 와 있는 친정 남동생과 함께 잔돈을 바꾸어 울산에 시외전화를 했습니다. 돈이 1,000원뿐이므로 용건을 간단하고도 빨리 말해야 했는데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동생에게 하느님 얘기, 묵주기도의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전화 요금통이 고장이어서 돈이 그대로 남아있는것이 아닙니까? 통화는 되어도 전화통이 돈을 먹지를 않아 저는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동생은 아기를 얻기 위해 굿을 하려던 참이었고 저는 그러한 미신행위를 만류하면서 하느님과 성모님의 도움을 위해 세례를 권했습니다. 그리고 때마침 가까운 성당에 입교식이 있어 동생은 세례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후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돈을 고스란히 남겨주는 기적(?)을 보여주신 하느님 덕분에 그날 저는 마음놓고 실컷 얘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절호의 찬스를 놓칠세라 옆에 있던 남동생이 여자 친구에게 역시 시외전화를 했는데, 방금 전에는 꿈쩍 않던 요금통이 다시 정상으로 가동되면서 남동생은 결국 할 얘기도 제대로 다하지 못하고 통화를 중단해야 했습니다.
   또 언젠가는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남동생인 베드로가 제게 전화로, 원수같이 미워하는 직장 동료와의 문제를 털어놓으며 하소연하는 것이었습니다. 책상을 마주하고 앉아 있는 그 동료가 너무나도 미워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해주겠다고 하면서 그 대신 그에게 먼저 악수를 청하고 찻집에서 따로 만나 그간의 심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으면서 화해를 청하라고 타일렀습니다. 쉽지 않은 이 부탁을 들은 남동생은 난색을 표했지만 마지못해 누나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동생의 활짝 개인 음성을 통해 저는 기도의 힘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요청에 따르기로 마음은 먹었지만 쉽지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그날 아침 놀랍게도 상대방 쪽에서 먼저 제 동생에게 악수를 청해오면서 제가 동생에게 시킨 것과 똑같은 말을 하더랍니다. "찻집에 내려가서 얘기 좀 나눕시다" 고. 그래서 제 동생과 그는 그날 완전히 화해했고 그 이후로 직장 안에서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은 안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그분이 성모님을 통해 저희 가정에 하신 일은 많고도 많은데 그분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당신께 대한 믿음과 신뢰를 둘 때 당신 뜻 안에서 모두 이루어주셨기에 저는 그저 감사드릴 뿐이며, 그 대신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고 성모님을 자랑하는 일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이 많아져 자중하여 애쓰지만 제 얘기는 그칠 줄을 모릅니다.
   "모든 일은 하느님께서 다 해주신다!" 는 이 신념은 그동안 제가 기도를 통해 얻은 깊은 체험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저는 오늘도 묵주기도를 하루 일과 중의 최우선으로 삼고 묵주기도로 온전히 하루를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사는 길은 기도뿐이다. 밥은 안 먹어도 기도는 해야 한다." 며 늘 일러주고 있습니다. 남편 역시도 예전에는 기도의 힘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았지만 성모님의 전구를 통해 하느님께서 해주신 일들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가면서 이제는 기도의 위력(?)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저에게는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므로 제가 할 일은 오직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에게서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그 고통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기쁨이 어찌 있을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에 하느님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이렇게 좋으신 하느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을 전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매주 월요일마다 저희 집에서 갖는 쎌기도에 참석한 이들에게 오늘도 하느님 자랑, 성모님 자랑을 실컷 했지요.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제 얘기의 핵심은 항상 이것입니다. "묵주기도만큼 좋은 기도는 없고, 묵주기도로써 안되는 일은 없어예."(문영수 아녜스)-마리아1997년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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