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중의 선물인 묵주의 9일 기도
무더운 여름이 지났는가 했더니 어느덧 가을이 가고 95년도가 저물어 가는 겨울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녁기도를 드리고 가벼운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는데 새벽 2시나 되었을까, 갑자기 숨을 틀어막는 듯하고 칼로 하복부를 휘젓는 듯 통증이 급습해오면서 저는 사경을 헤매게 되었고, 구급차에 실려 가까운 병원의 응급실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이리저리 검사를 했지만 3일이 지나도록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통증은 점점 심해져 갔습니다. 마약성 진통제를 주사하면 잠시나마 통증을 잠재울 수 있었으나 10분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금 고통은 더욱더 심해졌고 밤낮으로 시달렸습니다. 그곳에서 종합병원인 백병원으로 옮겼는데도 통증의 원인은 알 수 없었고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에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오른쪽 다리의 감각마저 없어져 갔습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검사를 거친 결과 심장판막 부전으로 형성 된 혈전(피떡)이 전신으로 퍼져 우즉 신장동맥의 색전(막힘)으로 우측 신장이 이미 괴사되었고, 우측 대퇴동맥의 색전, 장간동맥의 색전으로 조직의 괴사가 진행되어 긴급한 수술을 요하는 상태임이 밝혀졌습니다. 그 밤의 극심한 통증은 우측 심장이 저절로 괴사되면서 생긴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너무나 절박한 상태여서 혈전이 급히 제거되지 않으면 대장, 소장을 모두 절단하고 우측 다리마저 절단해야 하는 상태였습니다. 더욱 고약한 것은 제 심장이 워낙 약해서 전신 마취를 할 경우 소생할 확률이 희박하다는 진단이었고, 그래서 가족 친지들에게 연락하여 죽음에 대한 마음 준비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원래 심장이 약한 상태여서 과한 운동이나 일은 어려웠지만 생활에는 그리 큰 불편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약한 박동이 심장에서 피를 몸의 구석구석까지 힘차게 보내주지 못하여 이런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수술실에서 신부님으로부터 병자성사를 받고서 수술에 들어갔습니다.
"티없으신 성모님, 이 고통을 예수님의 십자가 성혈과 합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바쳐주소서." 얼마나 처절하게 이 화살기도를 외쳤던가? 아무도 수천 번, 수만 번은 되뇌었을 것입니다. "저는 죽어도 성모님 딸이요, 살아도 성모님의 딸이옵니다. 예수님, 당신 뜻대로 하소서."
희미한 의식 속에서의 중환자실, 수술도중 혈전이 흩어져 아래 동맥으로 내려가 막혔는데 막힌 동맥의 장을 절단해야 한다며 잠시 결과를 지켜보고 있는 상태에서도 저는 목에는 스카풀라, 손에는 묵주를 쥐고서 두서없이 묵주알을 얼마나 돌렸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저의 입원과 동시에 제가 소속된 김해 활천성당은 물론이요 사돈댁 성당과 언니네 성당의 신자들이 저를 위해 묵주의 9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으며, 저를 아는 모든 분들이 기도해주었습니다. 그때가 성탄절을 앞둔 추운 겨울이었는데, 특히 저희 성당의 교우들은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밤을 낮삼아 기도해주었음은 물론이요 중환자실 앞 복도에서 죽음의 긴 밤을 기도의 빛으로 밝혀주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대퇘동맥 혈전제거 수술이 시작되었고 기도에 힘입어 다리 수술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어 절단하지 않게 되었으며 약간의 부자유스러움은 있어도 지금까지 걷는 데는 어려움이 없게 되었습니다.
죽음에 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들어 올 수 없는 중환자실, 바로 그것에서 시시각각으로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가 옆 침대 환자를 데려가고 또 다음 침대의 환자를... '오늘 밤은 누구일까?' 하며 생각하자 조금 먼저 간다는 것뿐이데도 왜 그렇게 안타깝고 외로운지... 그러나 저를 찾아온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막힌 동맥 옆에 기적적으로 새로운 동맥이 형성(측부 순항)되어 장을 잘라내지 않아도 된다는 담당의사의 진단이었습니다. 그때가 성탄절이었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러 오신 아기 예수님, 경배드립니다. 찬미 영광 받으소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통증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것이 얼마나 기쁜지 저는 날아갈 것만 같았습니다.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드린 많은 교우들의 정성된 기도를 들으시고서 아기 예수님께서 치유시켜주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담당의사는 저의 빠른 회복을 신기하게 여기며 무슨 약을 먹었느냐고 물어오기에 웃으며 "구약, 신약 다 먹었지요" 라며 대답했습니다.
생사를 넘나들며 43일을 보내고 드디어 저는 퇴원하여 집으로 살아 돌아오게 되었고 3개월 정도의 회복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달 정기검사를 받아야 하고 매일 꼬박꼬박 약을 먹어야 하는 불편은 있지만 정상적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담당의사는 그래도 인공심장으로 대체할 것을 권하며 "단 하루도 약을 안 먹으면 큰일납니다" 라고 경고하지만(?) 저는 의사 선생님의 그런 경고를 귓전으로 흘리면서 내심으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예수님, 성모님만 믿고 사는데 살든지 죽든지 모든 것이..."
외동딸과 두 아들이 올망졸망하던 제 나이 서른 일곱 살에 혼자되어 예순을 눈앞에 둔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가 넘어야 했던 인고의 산이 크고 컷을지라도 또한 우리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저와 저희 가정에 베풀어주신 은총이 너무나 크기에 저는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성모님이 해주지 않으신 일이 하나도 없다" 고 감히 고백하게 됩니다. 저의 생명을 되찾아주신 것은 물론이요 어느 하나도 그분이 해주지 않으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저는 덤으로 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5월 13일 임진각의 평화통일 기원미사에 참례하고 있던 중에 문득, 아주 문득 이런 말씀을 제 가슴에 들려주셨습니다. "덤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희생과 보속을 많이 바치라고 살려주었단다." "주님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의 저의 남은 생은 모두 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몫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어떠한 고통도 희생으로 참아받으며 살겠사오니, 주님 뜻대로 쓰시옵소서." 이런 뜻에서 저는 요즘 매주 금요일마다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에서 주최하는 철야기도에 참석하고 있으며 매주 월요일에는 쎌기도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되찾아 주신 생명이므로 그분의 뜻대로 쓰시도록 봉헌하고자 하는 뜻에서, 또한 그 겨울 보잘것없는 저를 위해 기도의 손을 높이 쳐들었던 교우들의 그 정성에 보답하고자 하는 뜻에서 이제는 제 모든 것을 내놓으려 애쓰고 있습니다. 저의 회복을 위해 기도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이 지면을 통해서나마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기도 중에 항상 뵈옵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동해안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대자연의 품에 안겨서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작품이며, 하느님 성모님의 품속임을 느끼면서 소리 높여 "어머니" 라고 외쳐봅니다. 그리고 이 영광, 이 감사의 마음을 성모님을 통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 봉헌합니다. 아멘.(심분아 마리아) -마리아1997년 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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