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가슴에 묻어둔 그리움

 

    어머니 삼우제(三虞祭)를 지내고 산을 내려오던 날은 일년 중 제일 춥다는 대한(大汗)이어서 쌀쌀했으나 그래도 눈부신 햇살이 무척 포근했다 병풍처럼 둘러 선 앞산 봉이봉에는 잔설(殘雪)이 산정 음지에 남아있고, '휭-잉' 하고 대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이 모친 사별의 슬픔과 곧 미국 이민길에 오르는 나의 마음을 스산하게 헤집고 들어왔다.
   산을 다 내려와 차편을 기다릴 때까지 아버지와 우리 여섯 형제는 아무 말없이 능숙하게 행동만 했었는데 군복무 중이던 동생이 갑자기 침묵을 깨고 나에게 물었다.
   "형! 우리 언제 다시 어머니 산소에 성묘하지?"
   "미국서 한국회사 지점에 근무할거니까 가끔씩 본사에 출장 올 수 있을거야."
   장차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감과 슬픔이 함께 하며 한 대답이었다. 꼭 열 여섯 해 전의 일이다. 그후 나는 미국에 온 후 겨우 세번 어머님의 묘소를 찾았을 뿐이었고 그때마다 봉분의 잔디를 깎으며 성모송만 되풀이 했다.
   아버님께서는 철도국에서 일하신 덕분으로 시골집에서 좀 떨어진 철로변에 밭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방학을 맞아 시골에 내려가는 날에는 으례 어머니가 그곳에서 일하고 계셨다. 그러면 나는 밭에 들러 소쿠리를 들고 어머니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어머니는 아침부터 객지에 나간 아들이 오기를 그렇게 기다리셨던 것이다.
   나를 낳으신 후 복통과 하혈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가셨던 어머니때문에 경황이 없어 나는 강보에 둘둘 말아 방 윗쪽에 밀어 놓아서 제대로 울음소리를 못내서인지 한참만에 정신이 든 어머니가 "아기가 죽었느냐" 는 말에 시중들던 사람들이 갑자기 생각이 나 파랗게 죽어가는 꿈틀거리는 핏덩이를 씻기 시작했다는 첫 몇 시간의 나의 인생이었다. 어머니들이야 모든 자식이 다 이쁘고 귀하겠지만 낳기 전에 유산의 경험과 전쟁 중에 가졌던 아이인데다가 당신 얼굴에 판에 박은듯 닮은 자식이라고 나를 더 애지중지 여기셨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어머니의 사랑을 처음으로 진하게 느낀 것은 고등학교 입시 공부하던 어느 날 밤이었다. 시골에서 중학교 다니던 때인데 밤참을 차려 주면서 "공부도 자면서 해야지" 라는 말씀을 하시고는 은비녀꽂은 모습으로 그냥 잠이 드셨기에 내가 이불을 덮어 드리려는 순간, 어머니의 체구가 내 양팔 벌린 길이보다도 작으심을 보고 새삼 놀랐다. 지친 천사같은 그 모습을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그때야 비로소 "내게 이런 좋은 어머니가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지금 우리집 아이들마냥 당연히 어머니는 노동과 봉사만이 있는 줄만 알고 있던 나였다. 이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잔잔히 밀려와 내 마음에 크게 자리잡기 시작하였다. 청년시절 유혹에 빠지려 할 때, 잘못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에 들어서려 할 때, 화가 날때는 곧잘 어머니의 그 모습을 생각했는데그러면 모든 것이 순조롭고 올바르게 해결되어 갔다.
   음력 동짓달 초닷새가 내 생일인데 나는 이날 어머니를 생각하며 그분의 영혼을 위해 묵주기도를 하였다. 이때처럼 정신이 집중되고 그 기도가 꼭 이루어질 것 같이 느껴 본 적은 없었다. 마침 '성모님께 드리는 묵주의 9일기도' 를 어머니 기일(忌日)에 시작하여 부활절 바로 전에 마쳤다. 연옥 어느 외로운 곳에 계실지도 모를 어머니 영혼을 위해 54일간 무릎꿇고 기도하며 매일 어머니를 만났다.
   아내가 둘째 아이를 임신 중이었을 때 "남편들이 성모님과 함께 기도하면 훨씬 좋을 것" 이라는 충고로 시작된 나의 묵주기도는 지금은 하루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특히 마음이 메말라 하느님과 멀어졌을 때, 분노가 치솟을 때, 모든 것에서 의욕을 상실했을 때에는 어머니의 영혼을 위한 지향(志向)을 두고 묵주기도를 하면 어느새 불안과 의심과 모진 마음이 성모님의 자비와 육친 어머니의 정(情)이 두 어깨를 포근히 감싸주는 것을 느끼며 이민생활에서 오는 많은 어려움을 이겨나가곤 했었다.
   "9일간이면 되겠지" 하고 시작하다보니 54일간 계속해야 하는 것을 알았을 때는 도망갈 수 없이 성모님께 꼭 붙잡힌 뒤였다. 묵주기도는 나같이 게으르고 심성이 단순한 사람에게는 얼머나 좋은 기도였는지 모른다.
   성모님은 아드님이 성장하는 '환희의 신비' 와 피땀과 고통, 멸시 속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공생활을 마치는 괴로운 '고통의 신비' 를 옆에서 지켜보시며 부활하시고 승천하시어 성령을 보내심과 성모승천으로 이어지는 '영광의 신비' 를 모두 체험하시면서 꼭 나의 육친의 어머니가 천상에서 나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이 그림자처럼 느껴지기도 하였다.
   언젠가 한번은 꿈속에서 내가 죽어 천당과 지옥의 갈림길에서 서성이는데 저만치에서 어머니가 나를 부르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이 세상을 먼저 하직한 형제자매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계셨는데 어머니 눈빛에 담긴 기다림과 정에 잠을 깨었다. 잠에서 깨어나서도 꼭 그럴 것 같은 느낌이 한동안 마음을 맴돌았다. 그 옛날 방학을 맞아 귀향하는 아들을 기다리며 밭을 일구고 계시던 때처럼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아들을 기다리며 서성대고 계실 어머니를 만나 본 것이다. 친부모 형제자매들과 함께라면 어디엔들 못 가겠는가 싶어 어느듯 마음 속깊이 평화가 찾아드는데, 어머니와의 정이 얼마나 짙으면 살아계실 때나 돌아가셔서도 내 영혼을 보살피고 계실까 느껴본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께서도 이 세상에 발현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어머니께는 "예수 그리스도, 성모님, 묵주기도" 라는 말들이 생소하게 들리지도 모르지만 그분 영혼이 편히 쉬셨으면 하는 바램으로 두 달을 보냈다. 잠깐 동안의 지상생활을 마치고 언젠가 본 고향에 돌아가 다시 뵈올 때까지 자주 기도 드려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지극히 거룩하신 성사 안에 참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지극한 사랑으로 간절히 바라옵나니 거룩하신 당신 어머니의 티없으신 성심을 통해 영적으로 저의 마음에 오시옵서소. 오셔서 영원토록 사시옵소서. 당신은 제 안에 계시옵고, 저는 또 당신 안에서 현세와 또한 영원히 살게 하시며...
   저를 낳으시어 기르셨고 고통 속에서 이 세상의 삶을 마치신 어머니의 영혼이 주님의 평화 안에서 편히 쉬어지이다. 아멘." (김윤환 다니엘)-마리아 1995년.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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