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총의 줄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마리아(시편 1,1)
근심에 잠긴 한 부인이 나에게 신문 한 조각을 보내 왔는데, 거기에는 한 신부의 강연에 관한 글이 실려 있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묵주가 없어도 하늘나라로 나갈 수 있다. 오늘날에도 묵주는 하늘 나라로 이끄는 구원의 밧줄인가? 묵주는 하느님께 강요만 하는 도구로 탈선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자가 보도를 잘못 썼는지, 또는 강론을 한 사람이 소위 너무 많은 "마리아의 발현"에 반대하려고 했는지는 모른다. "우리들을 하늘로 이끌어 줄 은총의 줄"이 많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리아를 구석으로 몰아 내려는 사람들에게 우르스 폰 발타살의 말을 빌어 이렇게 말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나는 자기의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기는 그런 교회를 부끄러워한다."
시편 1에서는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아니하고, 야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는" 사람은 복되다고 찬양하고 있다. 물론 교회의 유일한 중심은 그리스도이지 마리아가 아니다. 그러나 한창 자라고 있는 나무를 "중요한 부분"만을 남기고 모든 가지를 다 잘라버리는 사람은 그 나무를 죽이는 것이다.
발터 닉이라는 유명한 기독교 목사는 중세기의 수도원장 발터 성인에 관한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한밤중에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성인에게 나타나시어 한 가지 지시를 하셨다. 그는 아침에 잠이 완전히 깨어 꿈에서 본 모든 것을 단지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다음날 밤에 마리아께서 다시 나타나시어, 그가 잘 믿지 않았다고 빰을 찰싹 때렸다. 그 수도원장은 하루 종일 빰이 뚱뚱 부은 채로 돌아다녔다. 닉은 이 일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아드님과 교회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 어머니를 결코 무심코 지나칠 수 없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매를 맞게 되고 교회는 큰 타격을 받게 되며 신앙이 무너지는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마리아께 "교회의 어머니"라는 호칭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진리에 근거를 두지 않고 너무 지나친 감정으로만 마리아께 신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주의를 환기시켰고, 동시에 마리아를 너무나 냉정하게 거절하는 것에도 주의를 환기시켰다. 이런 일은 둘아 옳은 일이다.야훼께서 주신 법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1,1)
성서 해석가 알폰스 다이슬러는 자기의 저서 "내가 너를 해방시킨 너의 하느님이다" 라는 책에서 성서에 따라 "묵상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려주고 있다. "성서의 하느님은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들어간 침묵이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 '나'이다. 이 '나'가 '너'에게 대화를 하도록 재촉한다. 우리의 대답은 마음 속에서 조용히 말하는 것이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되게 하기 위해, 하느님의 말을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것" 이다. 우리들이 하느님의 법을 묵상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에게 말을 거신다.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개개인에게 친밀하게 말을 하신다. 그래서 시편 1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깊이 깊이 묵상하는 사람이 칭송을 받고 있다. 즉 이런 사람들은 하느님의 법을 깊이 생각하는 데에 기쁨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밤낮으로 "중얼거린다". 우리는 묵주의 기도를 바칠 때 바로 이렇게 한다. 입으로 거룩한 말들을 염하고 있는 동안에, 나는 묵상을 하면서 마리아와 예수님의 신비로운 사건에 깊숙이 파고들게 된다.
이렇게 해서 나는 내 마음을 일깨우고, 감탄하고 놀라면서 내 삶을 이 빛에 비추어 돌이켜 본다. 나는 행복에 젖어 내가 혼자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본 회퍼라는 목사는 이렇게 숙고했다. "만약에 우리들이 참된 기도를 할 줄 아는 사람의 기도에 우리 자신을 끼워 넣고, 그와 함께 기도를 바칠 수 있다면, 우리도 참된 기도를 할 수 있게 된다." 단순히 깊이 생각만 한다면 잡념이나 잠에 빠져버리고 말 것이다. 마리아는 기도 뿐만 아니라 듣는 것과 순종의 큰 스승이시다. 마리아는 동방교회가 말하고 있는 "호데게트리아", 즉 하느님의 면전에로 우리를 이끌어 가는 분으로서, 우리와 함께 가고 계시다.
그래서 "묵주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로 가득 차 있는 마리아의 생활영역에 머무르게 한다."라고 구아르디니는 말했다. 우리는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함께 가는 동안에 하느님과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우리들은 마리아에 의해 해석된 영화처럼, 묵주기도 각 신비의 광경들을 눈으로 바라봄으로써, 성모 마리아의 해석을 통해 우리가 해야할 아름다운 역할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신비 묵상 중에 신앙의 거룩한 사람들과 마주치게 되고 바로 그곳에서, "모든 것을 성장시키는"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입으로 외는 "중얼거리는" 말들은 흐르는 물줄기와 같다. 이 흐르는 강줄기의 양쪽 둑 사이에서 나의 생각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머무르게 된다. 묵주 구슬들은 나의 쓸데없는 환상을 붙들어 매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로 인도한다. - 마치 철길 위에서 여러 객차들을 끌고 가는 기관차처럼. 아주 단순한 사람들이나 또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만이 이런 형식으로 기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속적으로 똑똑한 사람들과 모든 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이 기도를 결코 제대로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마리아께서는 우리 옆에 계시는가 우리위에 계시는가?
프로테스탄트 목사인 카알 바르트는 우리들에게 매우 주목할 만한 말을 해주고 있다.
"만약에 당신네 가톨릭 신자들이 성모상을 제대 옆, 우리를 바라보는 자리에 두지 않고 당신들과 함께 밑에 둔다면 나는 당신들의 마리아 공경에 찬동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묵주기도에 관해 다음 두가지의 관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리아는 우리 신앙의 자매로서 우리 옆에 앉아서 우리와 함께 기도하는 분이신 반면, 마리아는 완전히 구원받으신 교회의 어머니로서 제대 옆에서 우리들에게 미소짓는 분이시다. 그리고 마리아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로서 수많은 도전을 받고 있는 우리에게 용기를 주시는 분이시다.
우리가 묵주기도를 통해 그 두 분과 함께 대화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상황이라도 이겨낼 수 있는 희망의 사람이 되게 하는 비결임을 명심하자.(헤르만 렘배크 신부) -마리아 2001.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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