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묵주기도의 힘; 내 마음의 산만함

 

분심
   묵주기도를 가장 싫어하는 이유는 단지 그것이 '생각하는 기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하는 것이 싫다" 혹은 "나는 각각의 신비에 집중할 수 없다. 마음이 산란하다. 그래서 묵주기도를 그만하게 된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문제는 너무나 자주 묵주기도의 신비를 논리적으로 생각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각 신비들에서 교훈을 얻으려고 세심한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그 방법보다 이냐시오의 묵상법으로 묵주기도의 신비들을 고요한 마음으로 음미하면 된다. 이냐시오 성인은 온갖 종류의 교훈을 끄집어내서 자신의 삶에 적용시키려 하지 말고 주님의 삶의 장면들을 단지 바라보기만 하라고 말씀했다. TV 연속물을 시청하듯이 그냥 거기에 있으면 된다. 교훈과 묵상내용이 저절로 다가 올 것이다.
   영화관에 가서 친구에게 영화가 어떠했나를 물은 적이 있지 않는가? 여러분들이 대답을 할 때, 여러분들은 무의식적으로 장면을 분석한다. 의식조차 못한다 해도, 여러분들은 단지 영화를 바라봄으로써 그 장면에 대한 결론을 이끌어낸다.
   묵주기도도 마찬가지이다. 성모님과 함께 열번의 성모송을 하면서 그분의 삶의 장면들을 바라만 보면 되는 것이다. 영화처럼, 바라보는 것 이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여러분들에게 무엇인가를 말하기 시작할 것이다. 여러분들이 장면들을 바라보는 동안에, 하느님은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신다.
   어느날 나는 영광의 신비를 드리면서 두 번째 신비를 생각하고 있었다. 승천하심. 승천하실 때에 성모님과 제자들만을 어떻게 남게 하셨는가에 대해서 생각의 나래를 펴고 있었다. 11명의 사도들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었는지가 궁금해졌다.
그때 불현듯 루르드, 파티마와 메주고리예에서 아이들에게 발현하시는 성모님에 대해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단지 아이들에 불과했지만 수천 만 명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주고리예에서 이미 영향을 받은 사람은 천 오백 만 명 이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예수님을 뵈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과 여러 해 동안 생활한 사도들은 얼마나 더 큰 영향을 받았을까라는 생각을 할 수 있으며, 천주의 모친이신 성모님은 예수님의 승천이후 15년 넘게 그들과 함께 하셨다. 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나는 세 번째 신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지난해(1989년), 나는 코넷티켓에 있는 프트남에서 사제 피정에 참여했고, 아일렌 조오지 여사가 피정을 지도했다. 아일렌 여사는 여덟 자녀들의 어머니이고 암 말기 환자이다. 그녀는 매우 평범한 사람이고, 그녀가 아빠라고 부르는 성부에게서 많은 은총을 받는 사람이다.
   피정에 대한 광고를 별로 하지 않은 덕에, 단지 11명의 사제만이 피정에 참가하고 있었다. 우리에게 있어 피정은 휴식이었다. 매일 저녁, 마지막 회의 이후에 우리는 간단한 간식을 먹기 위해 카페로 내려가서 아일렌 여사를 중심으로 둘러앉아서 성부, 성자, 성령에 대하여, 하늘나라, 지옥, 연옥에 대하여, 미사, 사제 생활, 교회와 세상의 선과 악에 대하여 온갖 종류의 질문을 하였다. 그녀는 매우 친절하였다. 그녀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대하듯 어머니처럼 우리와 대화했다. 그리고 삼위일체에 대한 놀라운 그녀의 체험을 우리와 나누어서, 우리의 믿음을 강하게 해주었고 교회와 사제 생활에 대한 사랑과 감사를 깊이 느끼도록 해주었다.
   어느날 저녁 짧은 모임 후에 나는 묵주기도 15단을 다하기 위해서 성당을 갔다. 성령을 보내심을 묵상하는 영광의 신비 3단에 들어 갈 때, 나는 아일렌 여사를 중심으로 한 소규모의 사제들이 마치 성모님 주변의 사도들과 같다는 생각을 했다. 아일렌 여사가 보다 큰 사랑과 이해로 우리 사제들을 격려하는 것처럼, 훨씬 깊이 있는 폭으로 성모님은 사도들에게 같은 역할을 하셨음에 틀림이 없다. 성모님은 참으로 교회의 어머니이시고, 모든 사제들의 생활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하셨음이 분명해졌다.
   또 한번 내가 동산에서의 고통의 신비 1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예수님이 11명의 사도들과 최후의 만찬 장소를 떠나서 키드온 골짜기의 게쎄마니 동산에 오르시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때쯤에 나는 국세청에 세금을 환불받기 위해서 가야 할 약속을 생각하고 있었다. 세금을 어떤 식으로 삭감한다 해도 그것은 겁나고 불편한 느낌을 준다. 그러니 저절로 예수님이 게쎄마니 동산에 오르실 때 감정이 어떠하셨을까에 대해서 생각되어졌다. 예수님은 고통과 모욕의 표적이 되어 끔찍한 죽음을 직면하시게 될 것이었다. 내 앞에 닥친 국세청에서의 면담 생각으로, 나는 어느 정도 예수님이 겪으셔야만 했던 감정들을 공감할 수 있었다.
   그때 또 하나의 생각이 저절로 떠올랐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 보시오. 그분은 기도하시기 위해서 동산에 오르고 계셨다. 그것은 어려울 때 예수님께서 상황에 대처하시는 방법이었다. 기도로써! 그리고 나서 나의 인생에 닥치는 모든 시련들을 어떻게 대처 할까를 생각했다. 기도로써. 주님의 삶을 묵상하는 이러한 신비는 문제에 부딪힐 때 항상 기도하리라는 결심을 확고하게 해주었다.
   또 한번은 환희의 신비 2단 '마리아께서 엘리사벳을 찾아보심'을 묵상하고 있을 때, 구원사업에서의 여성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문득 하느님의 비밀안에 있었던 첫 번째 사람들은 여성들이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성모님과 엘리사벳이 그 여인들이다. 요셉과 즈가리아는 밖에서 바라보는 입장이었다. 여성들이 남성들을 이끌었다. 나는 어떤 사제에게 그것을 말하고 누가 교회에서 여성들은 2등 시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느냐고 주석을 달았다. 그러자 그 재치있는 사제는 "태 안에 든 아기는 남성들이었습니다."라고 응수했다.
   아무튼, 내가 의도하는 바를 이해하기 바란다. 느긋하게 성모님의 삶의 모습들을 바라보기만 해도, 결코 기대하지 않았던 결실을 거둘 것이다. 우리의 눈에 하느님께서 식견을 주실 것이다.
   열 번의 성모송은 여러분들이 주님의 삶을 바라보는 동안에 흐르는 배경 음악과 같다. 배경 음악은 우리가 독서하거나 일할 때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그러한 배경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아도, 그것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성모송을 드릴 때, 성모송에 그다지 많이 집중하지 않는다. 성모송은 우리가 주님의 삶을 잘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배경 음악이기때문이다.

반복
   일부 사람들은 묵주기도가 너무 반복적이라며 싫어한다.
심리학자들은 계속적으로 같은 형식을 반복하는 것은 진정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리듬있는 반복은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그래서 수를 세는 것 - 리듬있는 수의 반복 - 이 자장가 역할을 하여 잠에 빠지게 한다. 바느질 - 리듬있는 행동 - 은 1차 대전에서 폭탄 소리에 충격받은 군인들을 위해서 사용되어지던 한 가지 요법이다. 묵죽기도 - 성모송 50번의 리듬있는 반복 - 는 마음을 진정시켜서 고요하게 해주고,    마음을 자유롭게하여 각각의 신비를 묵상할 수 있게 해준다.
언젠가 한 젊은 여자가 풀튼 J.쉰 대주교님께 같은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 사람은 진지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은 묵주기도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대주교님은 그에게 약혼했느냐를 질문하셨다. 그녀는 약혼했다고 대답했다.
   "당신의 애인은 당신을 사랑합니까?"
   "물론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요."
   "그가 단지 한번만 말하던가요?"
   "물론 아닙니다."
   "두 번 말하던가요?"
   "나를 사랑한다고 수 백 번 말했습니다."
   "오, 나라면 그와 결혼하지 않을 것입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니까 그는 진지한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 그들은 단 한 번이 아니라, 수 백 번 사랑한다고 반복해서 말한다. 진실로, 반복은 사랑의 언어이다. 반복은 지루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 반복은 안정을 만들어 내고 안정은 재확인을 하며, 미래에 있을 충격에 대항하여 완충 역할조차 한다. 어머니가 자녀에게 "사랑한다"고 말 할 때, 아이는 다시 그 말을 듣고 싶어한다.
   단조로움은 지속적인 변화로써가 아니라, 세심한 주의와 진지함과 목적으로 인해서 제거된다. 골프가 단지 공을 치는 것이기만한다면, 단조로움 보다 나쁜 것일 것이다. 허나 그것에는 목적이 있다. 골프 코스가 있고 겨냥하는 우승컵이 있어서 멋진 게임이 되는 것이다.
   인생의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반복하는 데 있다. 먹기를 반복하고, 잠자기를 반복하고, 일을 반복해서 하고, 사랑을 반복한다. 묵주기도는 사랑의 언어이다.
   다음의 뉴스는 로체스터 민주당원 신문에서(1954년 1월 24일) 발췌한 것이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로 바꾸어 한 여인.
   뉴욕 연합통신 : 한국 전쟁 중에 토옥된 애인에게 2년 동안 400통의 편지에서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말만 반복함으로 중국 공산당을 당황케 한 한 여성이 어제 엽서에 새로운 두 단어를 첨가했다.
   그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새로운 말을 했다.
   21살의 데레사 맥도널드와 22살의 상병인 래팅건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브룩클린에 있는 14명의 거룩한 순교자들의 성당에서 결혼을 하였다.
   500명이나 되는 하객들은 긴 낭만을 쫓아서 그 결혼식에 증인들이 되었다. 처음에 두 연인은 1950년 성탄절에 약혼식을 올렸다. 여러 달 휴에 래팅건은 제2보병 사단과 함께 한국 전쟁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으로 떠났다. 그는 1951년 5월 체포되었고 지난해에 출감되었다. 그의 오랜 투옥 기간 중에 그는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꾸준한 편지를 계속해서 받았다. 편지 중에 한번도 검열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 편지는 확실히 중국인들을 당황케 했습니다. 허난 나는 전혀 놀라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내가 참으로 듣고 싶어하는 말이었고 데레사는 그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래팅건을 말했다. (알버트 J.M.세몬) -마리아 1999년 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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