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파티마와 연옥

 

(* 이 내용은 포르투갈 파티마의 지속적인 로사리오 기도의 도미니코
수녀회에서 제공한 것입니다.)

   "묵주기도를 바쳐라. 러시아의 회개를 위해 기도하여라.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여라!" 이 말씀들은 파티마 성모님의 잘 알려진 소중한 말씀들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이 주신 이 말씀을 너무나 자주 못들은 척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 중요한 말씀인데도 실제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파티마의 성모님이 어린 세 목동에게 꼬바 다 이리아에 처음 나타나셨을 때인 1917년 5월 13일에 루치아는 성모님께 아멜리아(죽을 당시 18~20세)라는 처녀가 천국에 있는지 물어 보았습니다. 성모님은 "세상 마칠 때까지 연옥에 있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대답으로써 성모님은 죽은 후 신자들의 영혼이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언제나 즉시 올라가지 않음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연옥은 있는 것입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신자들이 연옥에 대한 완전한 교리를 배우게 하도록 주교님들에게 명하였습니다. 그런데도 혼돈된 가르침 때문에 소수의 신자들은 연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최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가톨릭 교회의 교리서가 제시되었는데 연옥은 하느님의 은총 속에 죽었지만 온전히 정화되지 않은 자들이 마지막 정화를 거치는 곳이라고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혼들은 영원한 구원이 보장되지만 그들이 천국에 들어가기에 필수적인 성화를 이르기까지는 연옥의 정화를 감수해야만 합니다.

연옥의 고통
   불. 교회 전통은 성서에 기초하여 연옥을 불로서 정화시키는 곳으로 언급하였습니다. 연옥의 영혼들은 육신을 떠나 있지만 아직도 영혼에 일어나는 고통의 감각 때문에 고통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모든 육신적 고통은 영혼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상처가 영혼 자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때 영혼이 가장 큰 고통을 느끼는 필연성이 따라 온다고 말하였습니다.
   따라서 육신으로부터 해방된 영혼은 육신과 한 몸이 되어 있을 때보다 더욱 강렬하게 고통을 체험하게 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렇게 썼습니다. " 이 세상의 징벌과 연옥의 징벌은 비교될 수 없습니다. 연옥의 고통은 이 세상 삶의 모든 고통을 훨씬 능가합니다."
   실고(失苦)의 고통을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불의 고통 이외에 연옥에서 체험하는 또 하나의 고통이라고 덧붙여 말했습니다. 이 실고는 하느님으로부터 떨어져 있음을 말합니다. 영혼이 육신을 떠났을 때 하느님께 대한 갈망은 매우 강렬한 것입니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은 하느님과 함께 있기 전에 순수해질 때까지 기다려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만큼 그들은 실제적으로 고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어떤 것을 열망할수록 그것이 없을 때 더욱 고통스럽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교부들과 성인들은 하느님과 함께 하고픈 열망은 연옥의 가장 심한 고통이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런 관점에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하느님을 볼 수 없는 실고는 자신들의 간절한 소망의 핵심으로서 하느님을 향하여 분발된 영혼들이 계속 배척당함으로써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몹시 괴로운 모든 고통을 능가하는 것입니다" 하고 기록했습니다. "오랫동안 파도와 싸운 후에 마지막으로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 이르렀을 때 보이지 않는 손길에 내맡겨진 자신을 발견한 파선한 배의 선원이 당신 자신이라고 상상해 보십시오.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연옥의 영혼들은 그보다 수천배의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고통에는 악령들이 따라 다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 따르면 사람이 징벌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악령들이 거룩한 영혼들 가까이 머물러 있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악령들은 거룩한 영혼들을 따라 다니며 그들이 넘어질 때를 기다리고 서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불쌍한 영혼들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불. 상실과 악령의 존재는 소름끼치는 무서운 실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은 그들 자신을 도울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들의 고통의 시간을 줄일 수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지상에 있는 우리는 그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육신으로부터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공로를 세울 시간이 없다. 그러므로 나는 아직도 살아있는 너희가 그들을 위하여 시간을 내어 주어야 한다고 준비시키는 것이다. 연옥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의 대리인들인 성직자들은 성무일도를 바침으로써, 애긍, 희사함으로써, 너희가 은총 지위에 살아있을 동안 단식하고 기도함으로써, 나의 자비로움에 의해 너희는 그들의 징벌의 시간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교회가 인정한 가장 위대한 수단인 거룩한 미사는 교회 공의회에서 권장된 것이며, 그리고 특별히 가톨릭 교회의 교리문답에서 추천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죽은 자의 영혼들이 그들을 대신하여 중재자의 희생이 바쳐졌을 때 그들에게 생존자들의 친절로 어떤 구원이 주어진다는 것은 의심할 바 없을 것입니다." 하고 말씀하였습니다.
   로마의 도미니코 사제인 훔베르트는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어떤 주교가 자기 수하 신부가 매일 죽은 자를 위하여 미사를 드리는 것을 금지시켰습니다. 그런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주교가 묘지를 걸어가고 있었을 때 죽은 자들이 그 주교를 향해 대항하듯 모두 일어서는 것 같았습니다. "여기 우리의 사제를 내쫓고 우리를 위해 미사를 드리지 못하도록 한 주교가 왔다"고 말하면서 그 주교를 위협했습니다. 만약 그 영혼들이 주교를 놓아주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그는 죽었을 것입니다. 그 주교는 겁에 질린 나머지 죽은 자들을 위해 미사를 드리는 그 사제를 복직시켰고 그 자신도 죽은 이를 위해 미사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불쌍한 영혼들을 위한 묵주기도
   파티마 성모님은 교회에서 권장한 기도 중에서 미사와 성무일도 다음으로 높이 평가한 묵주기도를 바치도록 요청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바칠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고통과 죽음과 부활, 승천을 묵상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가장 큰 기쁨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우기 파티마의 성모님은 묵주기도를 바칠 때 우리에게 영광송 다음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덧붙여 바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 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이 기도는 묵주기도 매단 끝에 바치는 것으로 많은 고통을 당하는 연옥 영혼과 자비를 필요로 하는 연옥 영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확실한 방법입니다.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희생을 바쳐라." 파티마의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모든 것을 희생으로 바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작은 행위도 공로가 됩니다. 하느님께 바쳐진 것이라면 작은 행위도 연옥에서 받는 고통을 덜거나 줄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의 행동이 연옥에 있는 영혼을 위한 것임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면서 하느님께 봉헌하는 것만이 필요합니다.
   히야친타는 매우 무더운 날 물 마시는 것을 참았고 불쌍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점심을 주었으며, 덜 익은 쓰디쓴 올리브 열매를 먹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히야친타는 바로 이런 행동으로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희생으로 하느님께 바쳤던 것입니다. 우리도 연옥 영혼들을 위해 이와 비슷한 희생을 바칠 수 있습니다.
   루렛 신부님은 이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해 줍니다. 자기 친척 중에 수도자 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기 친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영혼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날 밤 그 수도자는 목이 몹시 말라 물을 마시려고 나갔습니다. 그러나 갈증을 풀려고 할 때 죽은 친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물을 마시는 것을 포기하고 그대신 하느님께서 죽은 친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고 기도하면서 물을 쏟아버렸습니다. 루렛 신부님에 따르면 이 조그만한 희생이 하느님을 기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날 밤 그 영혼이 그 수도자에게 나타나 자신이 받은 구원에 대하여 감사한다고 하였답니다. 희생의 정신으로 마시지 않았던 그 물이 연옥의 한 영혼을 도왔던 것입니다.
   파티마의 천사는 세 어린 목동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들 하고 있느냐? 너희는 기도해야 한다. 아주 많이 기도해야 한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천사의 말씀으로 우리는 기도가 얼마나 힘찬 중재의 수단이 되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이러한 기도들이 연옥에 있는 열심한 영혼들이 고통을 줄이고 가볍게 되도록 도와줄 수 있는 것입니다.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는 이 세상에 살아있는 동안 여러 번 자신이 기도해 주었던 연옥의 영혼들이 연옥에서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죽은 장상을 위해 기도하였는데 그가 자신의 오른쪽 깊은 땅 속으로부터 올라 오는 것 같더니 아주 행복한 모습으로 하늘로 오르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잘 정진하였으나 내 생각에는 목이 타는 듯 보였고 그의 얼굴은 불타고 있었습니다. 이 환시 아주 빨리 지나갔으나 그의 죽음이 나를 더 이상 슬프게 하지 않으리라는 위로를 받았습니다."

사탄의 실망
   사탄은 우리가 영혼을 도와줄 때 그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우리의 노력을 중지시키려고 애쓸 것입니다.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가 한번은 위령의 날 밤 기도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내가 경당에서 저녁기도를 바치고나서 다른 신심기도를 바치는데 끝에 가서는 내가 끝기도를 바칠 수 없을 만큼 악령이 기도서에 나타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내 자신에게 축복기도를 바쳤고 악령은 사라졌습니다. 내가 다시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자 악령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또다시 기도를 세 번이나 시작했다고 생각되는데 성수를 뿌려야 끝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순간 어떤 영혼들이 연옥을 떠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영혼들이 즉시 연옥에서 자유를 얻는 것이 힘들었나 봅니다. 그리고 나는 '악령이 이것을 방해할 목적으로 그랬구나' 하는 이상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리지외의 소화 데레사 성녀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는 특별히 연령들을 위한 성무일도를 즐겨 바쳤습니다. 성녀는 생애를 다 마쳐갈 때 몹시 앓고 있었는데, 장상은 연령을 위한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을 면제해 주려고 하였지만 데레세 성녀는 "연령을 위한 성무일도를 바치는 것을 막지 말아 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이것은 내가 연옥에 수녀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입니다. 그것은 나를 녹초가 되게 하지 않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침상에 누워 고통을 받고 있었던 또 다른 때에 연옥의 영혼들을 위하여 전대사를 얻을 수 있도록 통회의 기도를 한 후 "십자가상에 친구할 수 있도록 내 십자가상을 내게 건네 주십시오. 내가 그 연령들에게 그 이상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죽음이 다가오자 데레사 성녀는 연옥을 더 자주 생각했습니다. 어느 기회에 성녀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대신하여 고통을 받기 위해 자신을 봉헌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 날 밤 데레사 성녀는 자신의 등이 불타듯이 강한 열을 받았으며, 연옥에서 매우 뜨겁게 불타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였습니다.

열망의 기도
   묵주기도와 위령 성무일도와 같은 공식 기도 이외에 아빌라의 데레사 성녀는 연옥에 있는 영혼들을 위해 매우 도움이 되는 말없는 또 하나의 다른 기도가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성녀는 그것을 열망의 기도라고 불렀습니다. 성녀는 우리가 시끄러운 말로서가 아니라 단순히 우리의 열망으로써 기도해도 하느님께서 들어주시며, 거룩한 영혼을 도와 주는 이런 형태의 기도로써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와 비슷한 방법으로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죽은 자들이 살아있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살아 있으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지향은 그 죽은 이들에게 미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의 기도나 희생이 어떤 형태이든 간에 우리는 기도와 속죄를 요청하신 파티마 성모님께 응답해야 합니다. 지상의 교회의 충실한 지체들은 자비로운 속에 미사와 기도와 희생을 산 사람들 뿐 아니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서도 바치는 것을 우리의 일상 생활의 부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가 죽은 자들을 위해서 속죄의 제물을 바친 것은 그 죽은 자들이 죄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2마카 12,45) -마리아 1999년 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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