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야친타의 예수님 사랑
파티마의 세 어린이 중에 가장 나이 어린 히야친타의 예수님께 대한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게 된다. 엄숙한 최후의 만찬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작별을 고하시며 말씀하셨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예수님을 향한 히야친타의 사랑은 주님의 벗들 모두를 다 포함하고 있다. 파티마 메시지는 구속사업을 계속하고 계시는 주님과 가까이 동참할 준비를 갖추는 방식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라는 부르심이다.
이는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기꺼이 기도하고 희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모님 발현을 본 히야친타는 1917. 5. 13부터 1920. 2. 20 죽을 때까지 33개월 동안 인류 구원을 위해 고난 받으시고 돌아가신 예수님의 그 완전한 사랑에 동참한 것이다.작은 희생들
그녀의 사랑의 응답의 길은 자신의 점심을 나누어 주는 등의 작은 희생을 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그녀의 오빠인 프란치스코와 사촌 루치아도 열심히 똑같은 희생들을 바쳤다. 어린이들은 또한 죄인들을 위한 희생으로 한동안 몸에 밧줄을 매고 그 불편을 극복했다. 히야친타는 3개의 매듭을 엮어었는데 그곳엔 핏방울이 맺혔었다. 1917. 9.13 발현 때 성모님의 충고는 아이들이 밧줄을 매지말라는 것이 하니라 밤에는 그것을 풀어 두라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너희들의 희생을 기뻐하신다. 그러나 너희들이 밧줄을 감과 잠자는 것 바라지 않으신다. 낮동안만 그것을 매도록 하여라"
여기서 주목해야할 중요한 것을 이 자발적인 희생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구속하시 모든 벗들을 받아들임으로써 행해졌다는 것이다. 그 어린이들은 성모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우리가 묵주기도 매단 끝에 하는 "예수님 저희 죄를 용서하시며 저희를 지옥불에서 구하시고 연옥 영혼을 돌보시며 가장 버림받은 영혼을 돌보소서" 를 반복했다. 파티마에서 성모님에 의해 선정된 그 길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마르 8,34)라는 예수님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새롭고 특별한 길이다.
루치아는 자기 정화의 먼 길과 파티마 메시지의 살아있는 증인으로 선택되었다. 프란치스코에게는 기도의 짧은 길, 성체께 대한 깊은 관상. 1919.4.4에 집에서의 고통과 죽음이 주어졌다. 세 어린목동들 중 가장 어린 히야친타에게는 신비적 환시에 의해 더 높이 올라갔다가 하느님의 자비와 정의의 헤아릴 수 없는 길들과 싸우면서 어둠 속으로 더 깊이 떨어지는 '외로운 길'이 주어졌다.
그녀는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하느님의 정의의 완전한 힘을 체험했고 성모님의 사랑스런 인도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의 완전한 깊이를 체험했다. 성모님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 서 있었을 때와 같이 그녀 곁에 서 계셨다. 성모님은 위로아 힘을 가져다 주셨다. 그러나 히야친타의 구속적인 고통은 계속되었고 그녀는 구원받은 모든 영혼에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완전한 반영으로 거기에 동참하였다. 삶은 실제이다. 삶은 가장 진지하다. 그리고 무덤이 그의 목적지는 아니다.우리의 현세적 목적
우리들 대부분은 마치 우리의 모든 목적이 현세적인 것에 있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생활에 집착한다. 히야친타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대해 늘 절박한 책임감을 가졌다.
그녀는 얌전한 성격을 가졌으나 어린이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사람들의 잘못을 고쳐주었다. "그것을 하면 안돼요. 그런식으로 말하면 안돼요. 당신은 지옥에 갈 수도 있어요." 그녀는 성모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던 것이다. "기도하여라. 죄인들을 위해 많이 기도하고 희생하여라. 많은 영혼들이 그들을 위해 누군가가 기도하고 희생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지옥으로 가고 있다." (1917.8.19)
1917년 7월에 성모님은 어린이들에게 지옥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어린 영혼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수업이었다. 종종 히야친타는 하느님께 등을 돌린 사람들을 위한 이 마지막 벌에 대해 생각할 때 자신의 머리를 깊이 숙이고 "지옥, 지옥! 지옥으로 가고 있는 영혼들에게 대해 생각할 때 내가 얼마나 괴로운지요" 하고 말하곤 했다. 히야친타가 영혼들에게 가진 큰 관심은 예수님과 성모님에 대한 그녀의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분들께서는 사람들이 천국에 가도록 그녀가 도와주기를 원하셨다.
기도와 속죄에 대한 긴박한 두 분의 요청은 지옥을 보여주심으로써 더 생생하게 알려 주셨다. 히야친타는 특별한 감성과 온화한 심성을 지녔다. 금방 울었다가도 금방 감사를 드리거나 즐거운 말을 하는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슬픔과 즐거움에도 금방 빠져들어갔다. 그 때문에 그녀는 하느님의 정의에 의해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과의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없게 되는 데에 대해 훨씬 더 큰 상실감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기도와 희생으로써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채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이해했던 것이다. 파티마는 바로 그것을 하라는 호소이다. 즉 아주 개인적인 방법으로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 또 하늘나라를 확장 시킴으로써 그분께서 하늘나라에서 당신과 함께 있기를 열렬히 바라는 영혼들을 모두 포함시키기 위해 그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시에나의 가타리나 성녀가 한 번은 예수님께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관대한 제안을 했다. 그녀는 자신이 지옥을 덮는 뚜껑이 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그녀는 만약 이 제안이 하느님의 자비를 만족시켜 드림으로써 모든 사람이 그때부터 천국으로 갈수 있다면 자신은 기꺼이 지옥으로 가는 마지막 사람이 되겠다고 한 것이다.
히야친타도 나름대로 예수님께 이와 비슷한 것을 말했다. 그녀의 영웅적인 단계까지 이르는 이 자발적인 희생은 때때로 고통을 덜기 위해 침대에서 자세를 바꾸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고 그 효력으로 예수님께는 이렇게 말씀드렸다.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저는 이 희생을 더 많은 영혼들이 천국에 가도록 도와주는 데에 바칩니다." 현대는 지옥에 대해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결국 천국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 상벌의 장소들은 실재한다. 이 최후의 현실들을 받아들이고 영혼들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하려는 예수님의 구속사업에 동참하여 그들을 천국으로 이끄는 것을 돕는 일은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가장 높은 형태이다. 이것이 예수님께 가졌던 히야친타의 사랑이다. 그녀가 예수 성심 상본 한 장을 껴안은 것은 바로 예수 성심이 사랑하신 모든 사람을 품에 안은 것이었다.(Chirstopher Rengers O.F.M.) -마리아 2000년 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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