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죽음을 맞이한 히야친타
"5월 13일 파티마에서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의 시복식이 거행됩니다."
7세기 전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가 탄생한 곳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에서 1920년 2월, 한 어린 소녀가 죽음을 맞이하기에 이르렀다. 그 소녀는 태어난 지 열 번째 해를 몇 주 앞두고 있었다. 소녀는 1910년 3월 19일, 파티마에서 약 70마일 북쪽에 떨어져 있는 성 안토니오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었는데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 중 가장 어린 히야친타라는 소녀로서 지금 리스본에서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오빠인 프란치코는 1919년 4월 4일에 죽었다.
2월 20일 저녁 6시쯤 외과 수술실에서 나온 히야친타는 자신이 곧 죽게 될 것이라며 성체를 모시게 해 달라고 청했다. 페레이라 도스 레이스 신부가 히야친타에게 고해성사를 주었고, 내일 아침에 성체를 모시라고 말했다. 히야친타는 "그때는 너무 늦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간호사인 오우로라 고메즈는 그날 밤 약 10시 30분 쯤 도나 에스테 파니아 병원 60호 병실에서 나왔다. 몇 분 후 그 간호사가 돌아 왔을 때는 이미 그 어린 환자는 마지막 꺼져가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미리 예언된 그녀의 죽음
"나는 두 곳의 병원에 갈 것이고 그 후 홀로 죽게 될거야" 라고 히야친타는 몇 달 저에 이미 자신의 죽음을 예언했다. 그녀의 아버지인 마누엘 페트로 마르토는 소녀를 나귀에 태워 오우렘에 있는 성 아우구스틴 병원으로 데려갔다. 히야찬타는 그곳에 두 달 정도 있으면서 엄청나게 고통스러운 치료를 받았으나 병의 차도는 없었다. 히야친타의 좋은 친구가 되어 주었던 포미가오 신부가 히야친타를 방문하고는 너무나 그 모습이 야윈 것을 보고 매우 충격을 받았다. "그 애는 아주 불쌍해 보였어요. 폐렴으로인해 약해진 상태를 폐결핵이 더욱 손상시키고 있었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 가족들은 가난하여 수술로 가능한 치료를 위해 그녀를 리스본에 보낼 여유가 없었다. 포미가오 신부가 리스본에서 온 의사르 통해 히야친타를 데려가도록 부모를 설득하고 훌륭한 의사를 만날 수 있도록 손수 준비시켜 주었다. 기차로 히야친타를 리스본으로 데리고 갈 때, 어머니와 오빠인 안토니오는 기차의 창문을 계속 열고 가야만 했다. 히야친타의 왼쪽 옆구리의 큰 상처에서 나는 악취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었다. 히야친타에게 일시적으로 안식처를 제공하기로 약속했던 어느 부자집에서는 히야친타의 그러한 상태를 꺼려했고 그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작은 고아원에서 두 주일 간 머물러야 했다. 그곳에서 히야친타는 원장이며 프란치스코 제3회 회원인 고딘호 수녀를 좋은 친구로 사귀게 되었고 많은 조용한 시간을 "숨어 계신 예수님"과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 고아원과 리스본 병원에 머무는 동안,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 중 한 명이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히야친타가 죽을 때 기력이 다빠진 그 몸에서는 아름다운 향기가 났다. 히야친타는 1917년 5월 13일, 첫 성모님 발현 이후 서른 세 달을 살다가 1920년 2월 20일 죽었다. 그 시기는 완전한 자아포기의 시기였다. 히야친타는 영혼들의 천국에 가기를 열망했다. 그녀는 그녀의 오빠와 사촌과 함께 잠시동안 본 그 지옥을 모든 사람들이 피하기를 갈망했다.
히야친타는 성부의 뜻에 온전히 자신을 내어드린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했다. 임종의 마지막 며칠동안은 계속되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과의 대화를 통해 더욱 양육되고 인도되어 영웅적인 사랑의 꽃송이가 활짝 피게 된 시간들이었다.마음 상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왜 그렇게 슬프신지 알아?" 히야친타가 루치아에게 말했었다. "예수님이 얼마나 마음 상하셨는지 또 아직도 아무도 그것을 걱정하지 않는다고 성모님께서 설명해 주셨어. 사람들은 오랫동안 습관된 똑같은 죄를 계속 짓고 있어."
1920년 2월 16일. 성모님께서는 히야친타에게 나타나셔서 "이제는 더 이상 고통을 겪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해주셨다. 그녀의 마지막 나흘간은 수술에 따르는 극도의 육체적 고통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히야친타가 성모님과 대화할 때 성모님은 매우 슬픈 표정이셨다. 히야친타가 그 이유를 여쭈었더니 성모님께서는 "영혼들을 가장 많이 지옥으로 이끄는 죄는 육체에 저지르는 죄들이다. 사람들은 사치 생활을 버리고 그들의 죄를 통회하고 회개해야 한다. 반드시 깊은 통회가 필요하다." 하고 말씀해 주셨다.
다른 이들의 구원을 위해서 히야친타가 영웅적인 인내심으로 육체의 고통과 영적인 고독을 참을 수 있었던 용기는 많은 영혼들이 영영 구원받을 수 없는 그 무서운 지옥을 뛰어 넘을 수 있게 하기 위한 발돋움에서였다.(성모님께서는 이미 히야친타와 프란치스코는 천국에 데려가시겠다고 약속하셨던 것이다.)
히야친타의 큰 내적 고통은 '자신이 혼자서 외로이 죽을 것' 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던 것으로부터 왔다.히야친타의 인간 존재의 깊은 실존에 대한 통찰력은 예언적인 환시를 보게 했다. 한 의사의 죽음을 예언했고 다른 의사들에 대해서도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의사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환자들을 적절하게 치료하는 법을 알지 못해요."
교회는 공식적으로 히야친타와 그의 오빠인 프란치스코의 영웅적 덕행들을 인정했고 그들은 지금 존경할 만한 하느님의 종들로 들어 높여지고 있다. (크리스토퍼 랭거스 신부) -마리아 2000년 1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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