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파티마의 목동 복자 프란치스코의 길

 

    파티마 성모 발현의 목격자인 목동 프란치스코 마르토는 다소 과묵한 듯한 순박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여동생 히야친타처럼 사람들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이라고 자신이 알고 있는 어떤 사람들이 행하거나 말하면 단지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프란치스코가 그런 일을 보았을 때 한 행동은 예수 성심과 마리아의 성심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자주 성 안토니오 성당으로 갔다. 그는 거기 앉아서 감실 안에 계신 작은 예수님을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는 묵주기도를 많이했다. 성모님은 그가 하늘 나라에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많은 묵주기도를 해야한다고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에 관해 말하자면 우리는 특별히 묵주기도와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을 연상한다. 그가 학교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되는 때에 성당에 있었다고 꾸지람들을 경우 그에게서 바랄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은 프란치스코의 과묵한 듯한 순박한 성격이었다.
   성모 마리아께서는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에게 일찍 천국에 갈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그들의 사촌인 루치아는 지상에 남아 평화를 위한 성모님의 계획을 계속 알리기 위해 더 오랫동안 기다려야만 했다. 프란츠시코에게 왜 학교에 가지 않고 성당에 앉아 있었느냐고 묻는 말에 프란치스코는 자신을 곧 천국에 갈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프란치스코는 모든 책의 지식이 곧 쓸모없어질 것이고 예수 성심과 티없으신 성모 성심을 위로해드릴 천국의 뛰어난 지식이 모든 책의 지식을 훨씬 능가할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여동생 히야친타와 사촌 루치아와는 달리 프란치스코는 파티마에서 성모님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는 성모님의 모습을 보았고 성모님과 루치아 사이에 오고간 대화 중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만을 들었다.
   히야친타는 성모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자신이 직접 말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프란츠스코는 작고 가장 사랑하는 여동생 히야친타가 누리지 못한 한 가지 큰 특권을 가졌다.
   히야친타는 첫영성체를 하지 못했지만 프란치스코는 죽기 바로 전날 일생의 유일한 영성체를 했다. 프란치스코의 첫영성체는 그의 노자성체가 되었다. 프란치스코는 1919년 4월 4일에 죽었다. 천국에 가서 죄인들을 위해 그리고 루치아와 히야친타를 위해 성부께 기도해 달라는 루치아의 요청을 프란치스코는 기억할 것인가?
   프란치스코는 그 요청을 받았을 때 이의를 제기했다. "그래 그럴께. 그렇지만 그 대신에 히야친타에게도 이런 것들을 부탁해 줘. 내가 주님을 뵙고 나면 너희들의 그 요구들을 잊어버릴까봐 두려워. 나는 먼저 그분을 위로해 드리고 싶어."
   프란치스코는 시간과 영원 사이에 천국과 지상 사이에 아무 장막이 없는 실재를 보는 깨끗한 마음을 가졌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마태오 5,8)
   오늘날 우리의 주요한 문제들 중 하나는 이 세상의 삶과 무덤 저편의 영원한 삶 사이에 보이지 않는 빽빽한 장막이 놓여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시야를 세상적인 한계에로 좁힌다.
   부르심과 십계명의 준수는 고통스럽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재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거나 녹이 슬어 못쓰게 되며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간다. 그러므로 재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거기서는 좀먹거나 녹슬거나 못쓰게 되는 일이 없고 도둑이 뚫고 훔쳐가지도 못한다" (마태오 6,19~20).
   이 세상 저편을 내다보지 않는 사람은 그런 보물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을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약 100년 전에 프랑스의 라 살레트에서 발현하시어 사람들이 일요일을 주일로써 지키지 않는다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오늘날은 주일에, 보이는 작은 일거리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여러 일들, 즉 쇼핑을 한다던가 집안 일을 습관적으로 한다던가 설겆이, 다리미, 페인트칠, 도배나 세차 등을 한다. 또 다른 드러나지 않는 근시안적인 일은 인공피임이다. 시간과 영원이 결합하는 분명한 비젼은 없어졌다. 천국에 도달하는 것이 위태로와졌다. 희망을 이루는 일, 때때로 합법적이며 일시적인 목표들이 영원한 삶의 목표를 무색케해 버린다. 지상에서의 교황님의 목소리는 때때로 들리는 속삭임으로 사라져가고 세속적인 인물의 큰 목소리가 더 우세해지고 있다.
   파티마의 메시지에 따라 프란치스코는 착한 사람이 마음의 참 평화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다. "나는 하늘에서 왔단다." 성모님께서 첫 발현에서 하신 말씀이다. 성모님께서는 그 어린 목동들에게 천국에 가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프란치스코에게는 또 다른 조건을 하나 더 붙여주셨는데 그것은 "그도 또한 천국에 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묵주기도를 많이 해야한다." 는 것이다. 사실 프란치스코는 성모님을 보지 못했다. 1917년 5월 13일 성모님의 첫 발현 때에 프란치스코는 묵주를 꺼내기 전에는 단지 빛나는 광채만 보았다. 묵주를 꺼낸 뒤 프란치스코도 루치아와 히야친타처럼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묵주기도가 성모님의 모습을 분명히 보게 해준다는 것을 우리에게 예증해준다. 프란치스코가 감실 안에 숨어 계신 예수님을 위로해 드리면서 성당에 오랫동안 머무르기를 열렬히 원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성모님과 묵주기도는 특히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 앞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비결임을 우리에게 알려 준다.
   프란치스코의 단순하고도 강한 바람은 예수님과 성모님의 성심을 위로해 드리는 것이었다. 이것은 프란치스코가 성모님과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했으며 또한 그분들을 슬프게했던 죄인들도 매우 사랑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예수님께 다가갈수록 프란치스코는 회개한 한 명의 죄인에 대한 천국의 기쁨을 깊이 느꼈다. 공개적인 것이든 드러나지 않는 것이든 어마어마한 죄의 통계치는 전심으로 파티마 메시지를 따르기를 원하는 사람들조차 실망시킬 수 있다. 그러한 용감한 영혼들은 어린 프란치스코에 대해 그리고 그의 조용하고 단순한 해결책에 대해 좀더 묵상해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프란치스코는 히야친타가 때때로 그랬던 것처럼 죄인들을 꾸짖지 않았다. 오히려 프란치스코는 묵주를 가지고 그 자리를 벗어나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의 현존앞에 앉아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오늘날 우리 모두가 즐겨하지 않는, 자신에게 유익한 한가지 일만을 했다. 우리 모두는 묵주기도를 할 수 있지만, 늘 활짝 열려 있는 성당문을 찾지는 않는다. (크리스토퍼 랭거스 신부) -마리아 2000년 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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