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교회는 파티마를 체험으로 알고 있다 3

(이반 포야보니크 신부. 슬로베니아 마리아사제운동 책임자)

3. 세 번째 비밀이 이루어지고 있다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 26~27). 파티마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선택받은 곳이다. 파티마는 우리 시대의 중요한 메시지를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사실 우리 세기가 시작되었을 때, 주님께서 골고타에서 하신 말씀들이 특별히 강조되어 울려 퍼졌던 것 같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1991년 5월 13일 강론에서).
   요한 묵시록의 태양을 입은 여인과 용의 투쟁에서 박해받는 하느님의 백성은 갈바리아 산꼭대기로 올라가 십자가에 매달리는 것을 체험한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적인 시련이지만, 무엇보다도 하느님이 주시는 위대한 시련이다. 하느님께서는 이 시련 속에서 교회와 인류를 특별히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에 의탁하도록 하여 구원하려 하신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교회와 인류가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에 봉헌하기를 요청하신다. 이 봉헌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서 요한 사도에게 말씀하신 것을 특별히 실행하는 것이다. 요한 사도는 골고타에서 교회와 인류를 대표한다.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요한 19,27).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교회와 인류의 어머니로서 십자가에 달리신 당신의 아들 예수님과 함께 갈바리아 산꼭대기에 서서 고통을 당하신다. 그리고 오늘 우리 세기에서는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고통을 받으신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2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에 봉헌한다는 것은 어머니의 전구를 통해 골고타에서 열린 생명의 샘에 다가가는 것을 뜻합니다. 이 샘에서 구원과 은총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에 봉헌한다는 것은 마리아의 아드님의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더 나아가 이 봉헌은 이 세상을 구세주의 열린 성심에 봉헌하는 것이며, 세상을 다시 구원의 원천으로 데려가는 것을 뜻합니다. 구원은 언제나 인간의 죄와 세상의 죄보다 크며, 구원의 힘은 인간과 세상 안에 있는 악의 힘을 훨씬 능가합니다" (Insegnamenti 1982).
   교회와 인류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영적 어머니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에 봉헌함으로써 묵시록에서 예언한 악이 만연한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헤아릴 수 없는 은총이 흘러 들어간다.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은 활활 타오르고 있는 불의 검을 든 천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천사는 세상에 불을 지를 태세이다. 천사는 외친다. "회개하라, 회개하라. 회개하라!"
   애초부터 이런 전망이 파티마를 감싸고 있다. 인류에게 내려지는 벌을 당신의 손으로 저지하시는 묵시록의 "여자"(묵시 12,1) 마리아는 이런 전망 속에 있다. 마리아는 파티마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회개하고 하느님께로 돌아오라고 외치신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에게 커다란 재앙이 내려질 것이다. 즉 제2차 세계대전, 무신론의 확산, 교회의 박해, 그리고 선한 사람들이 고문을 당할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이미 일어났다. "회개하라"는 외침이 받아들여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이런 물음이 생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교회 안에서 참회의 정신이 일어났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그리스도교 국가의 국민들에게 참회의 정신이 늘어났는가? 일반적으로 보면 참회의 정신은 줄어들었다.그래서 세속화가 이렇게 까지 진척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세 번째 비밀의 둘째 부분에 이르게 된다. 충성스런 주교들, 사제들, 수도자들 및 갈바리아 산으로 올라간 신자들의 행렬, 그 맨앞에 흰옷을 입은 주교 곧 지금의 교황이 앞서 간다. 동시에 교황은 반쯤 파괴된 도시를 지나간다.
   여기서 이 도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갈바리아 산은 교회 안에 자리잡고 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은 교회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이들의 수가 너무 적고, 갈바리아 산에 오르는 이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 이 도시는 교회요, 그것도 반쯤 파괴된 교회이다.
   교황은 길을 가다 만난 시체들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했다. 이 시체들은 누구인가? 그것은 소위 "활동하는 이단"을 통해 특별하게 살아 움직이는 것같이 보이는 영적으로 죽은 인간들이다. 교황은 길을 가다가 이런 사람들을 만난 것이다. 그들은 어디에서나 손에 묵주를 들고 있는 교황을 보았고, 교황은 죽은 이들을 위해 기도한다.
   마침내 교황은 산에 이르러 커다른 십자가 밑에 무릎을 꿇었다. 이때 교황은 한 무리의 군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이 군인들은 불을 뿜는 무기와 화살을 교황에게 쏘았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의문에 생긴다. 이런 일이,이런 광경이 이미 일어났던가 아니면 아직 일어나지 않았던가? 이 환시에 대한 원본은 이렇다. "교황은 시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한다. ...교황은 산에 이르자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교황은 어느 커다란 도시를 지나갔다. 그 도시는 반쯤 파괴되어 있었다. 교황은 고통과 근심에 짓눌려 부들부들 떨고 비틀거리면서 시체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나의 물음은 이렇다. 1981년 저격당하기 전 교황이 거의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떨며 비틀거린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우리는 지난해 교황이 거의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았다. 또 하나의 물음은 이것이다. 베드로 광장에서 저격당했을 때 한 집단의 군인들이 교황을 쏘았던가? 아니다. 오직 한 사람이 쏘았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집단의 군인이라고 묘사되어 있다. 그리고 교황은 살아 남았다. 그와 반대로 그 환시에서는 교황이 갈바리아 산에서 죽임을 당하여 죽는다. 그래서 나는 곱비 신부님과 의견을 갈이한다. 즉 루치아의 환시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교황의 순교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주교들, 사제들, 수도자들과 여러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차례로 죽었다." 이런 일은 교황이 죽은 뒤에 일어날 것이다. 이것은 원본에 정확하게 "교황이 죽은 뒤에" 라고 쓰여져 있다. 이로써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즉 세 번째 비밀의 어떤 것은 이미 20세기에 이뤄졌는데 왜냐하면 몇몇 주교들과 많은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황과 그에 연이은 순교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음으로 해서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이미 지나가버렸으며, 이젠 관심 가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파티마는 끝나버린 사건이며 과거의 일이라고...
   교황, 주교, 사제, 수도자, 신자들의 순교는 우리 앞에 가로놓여 있다. 이 순교는 교회를 멸망시키고 없애버리려는 박해이다. 그리고 이것은 모든 박해를 총망라한 것이다.
   세 번째의 비밀은 이런 박해를 묘사하고 있다. 그런데 직접적인 방법이 아닌 간접적인 방법으로 드러나지 않게 적그리스도교와 적그리스도교 시대에 관해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1995년 3월 11일 파티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발현이 있었던 바로 이곳에서 오늘 너희에게 나의 비밀을 밝히고자 한다. 첫째는 교회에 관한 비밀이다. 대대적인 배교의 풍조가 교회 내부에서 극에 달하여 전 세계로 확산될 것이며, '복음'과 참 신앙에서 멀어지는 일반적 추세로 말미암아 교회 분리가 일어나리라. 그리스도의 적인 불법의 인간(2데살 2,3)이 교회에 들어와, 그 내부에 황폐의 흉물(마태 24, 15 ; 다니 9,27 ; 11, 31 ; 12,11)을 세움으로써 예언자 다니엘이 예언한 가공할 독성 행위가 자행되리라.
   둘째는 인류에 대한 비밀이다. 인류는 타락과 불경, 하느님께 대한 반역, 그분 '사랑의 법'에 대한 노골적인 대항이 극에 달할 것이다. 그래서 인류는 이미 예언자 즈가리야가 예언한, 더없이 큰 징벌의 때를 치르게 될 것이다(즈가 13, 7~9 참조).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중에서 -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서 하느님의 어머니께서는 세 번째의 비밀, 곧 무신론자들에 관한 말슴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다시 말해, 불을 통해 인류를 정화하는 것에 관한 말씀을 하고 계시는 것 같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신다.
   "불(2베드 3,7)이 하늘에서 내려오리라. 그리하여 정화되고 완전히 새로워진 인류가 채비를 갖추어 영광에 싸여 너희에게로 다시 오실 주 예수님을 영접할 것이다."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1994.10.13]
   신앙교리성의 요셉 라칭거 추기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왼손에 불검을 든 천사는 묵시록에 나오는 비유를 연상케 한다. 이 천사는 세상에 대한 징벌의 위협을 상징한다. 세상이 불바다와 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오늘날 단순한 환상으로만 생각되지는 않는다. 많은 것들을 발명한 인간은 스스로 이 불검을 마련한 것이다."

4. 새로운 이스라엘이 내려왔다

   이제 세 번째 비밀의 마지막 부분을 살펴보기로 하자. 십자가의 양쪽에는 두 천사가 있었다. 두 천사는 각각 크리스탈 주전자를 손에 들고 있었다. 이 천사들은 순교자들의 피를 모아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는 영혼들에게 뿌렸다. 이제 또다른 새로운 전망이 열린다. 곧 순교자들과 교회의 고통이 열매를 맺은 것이다. "순교자들의 피는 씨앗이다."

   첫 번째 전망은 갈바리아 산,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십자가 아래 서 계시는 마리아이다.
   20세기에 들어서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들 사이의 투쟁이 계속되었고 교회는 십자가에 달렸다. 교황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옛하늘과 옛땅은 사라졌다. 골고타 산의 십자가는 구원의 십자가이다. 이 십자가에서 인간의 전 역사가 드러난다. 이와 동시에 죄와 고통의 역사도 드러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1991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의 강론).
   1991년 5월 13일 파티마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두 번째 전망을 피력했다. 교황은 이 두 번째의 전망을 가지고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의 지평을 넓혔다. "하느님께서는 골고타에서 당신 아드님의 십자가를 통해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 (묵시 21,5)를 되풀이 하셨다.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신랑을 맞을 신부가 단정한 것처럼 차리고'(묵시 21,2) 골고타의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께 인류의 역사로, 곧 모든 세기의 역사로 들어가신다" (Insegnamenti 1991.1.)
   이 두 번째의 전망은 무슨 뜻인가? 우리는 20세기에 들어 교회가 커다란 십자가에 달리는 사건들을 경험했다. 그리고 십자가에 달리는 일은 앞으로 그 정점에 이르게 될 것이다. 곧 교회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점점 더 많이 닮아 갈 것이요, 계속해서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다. 십자가를 통해, 소위 고통의 십자가를 통해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내려오시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두가지의 움직임이 있다. 올라감(부활)과 내려감(멸망)이 그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아래로 내려오심을 통해 교회는 위로 올라간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점점 더 많이 체험한다. 그리스도께서 내려오심으로써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온다. 교회가 십자가에 달릴수록 이 예루살렘은 그만큼 더 내려온다. 이렇게 해서 십자가에 달리는 정점에 이르러서는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완전히 내려오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 곧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의 승리가 파스카 신비 안에 들어오게 되는 것이다.

   이번 세기에 들어와서 교회는 묵시록적인 고난을 체험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고난은 어제 그 절정에 이르고 있다. 교회의 고통스런 십자가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고 있다. 이와 동시에 세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하느님으로부터 개혁이 시작된 것이다. 곧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이 열렸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십자가를 들고 내려오신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계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어머니와 교화의 십자가를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을 마련하셨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이 땅에 불을 지르게 될, 불의 검을 들고 있는 천사의 광경을 이해할 수 있게된다. 이것은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묵시록적인 벌이다. 노아의 대홍수는 있었으나 불을 내리는 벌은 아직 없었다.
   200년에 순교한 리옹의 이레네오 교부는 이렇게 썼다. "몇몇 예언자들은 그리스도를 구름을 타고 올 사람의 아들(다니 7,13)이라고 보았다. 그리고 이 사람들의 아들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은 내 가슴을 찔러 아프게 한 일을 외아들이나 맏아들이라도 잃은듯이 슬퍼하며 곡하리라'(즈가 12,10). 그리고 그분의 다시 오심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 볼 수 있겠느냐?" (루가 18,8) 그리고 사도 바오로도 사람의 아들이 올 것에 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느님은 공정하셔서 여러분을 괴롭히는 자들에게 괴로움을 당하게 하시고 괴로움을 당하는 여러분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을 누리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일은 주 예수께서 당신의 능력있는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질 것입니다. 주께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셔서 하느님을 거부한 자들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을 처벌하실 것입니다'"(2데살 1,6~8).
   불꽃 가운데 하느님께서 오신다. 불은 하느님이 나타나시는 표징이다. 이런 표징은 이사야서 66장 15절에도 나타나 있다. 하느님의 위대한 날이 빛날 때에는 이 세상이 정화된다. 그리고 여기서 이레네오는 이사야서를 인용한다. 예언자는 주님의 위대한 날에 관한 말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이레네오도 커다란 불의 홍수에 관해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스런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불로써 온 세상을 정화시킬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그의 저서 [신국론]에서 적그리스도의 시대에 교회가 안팎에서 받을 박해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요한 묵시록 20장 9절을 인용한다. "하늘로부터 불이 내려와서 그들(교회의 원수들)을 삼켜버렸습니다."
   데살로니카2서 2장 8절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주 예수께서는 다시 오실 때에 당신의 입김과 그 광채로 그자(하느님을 거부한 자)를 죽여 없애 버러실 것입니다. "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의 입김" 이란 두 번째의 성령감림, 곧 특별히 많은 성령을 부어주심을 뜻한다. 성령강림은 온 세상의 교회와 인류를 그 뿌리까지 새롭게 할 것이다.

   묵시록에 나타나 있는 바와 같이 커다란 진통과 괴로움 속에서 태양을 입은 영인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하늘에서 내려오신다. 이렇게 여인이 내려오신 이유는 교회가 갈바리아 산에 오늘 때와 어둠의 세력들과 무시무시한 투쟁을 할 때 교회를 도와 주어, 영광 속에 다시 오시는 예수 그르스도를 잘 준비하도록 돕기 위해서이다.
   오늘날 온 세계의 교회는 커다란 고통을 당함으로써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왕국에 가까워졌다. 파티마에서 있었던 태양의 기적은 정의와 자비의 태양이 다가왔음을 알려 주고 있다. 곧 온 세상에 하느님의 정의가 내리시는 벌과 하느님의 자비인 커다란 기적 안에서의 구원을 알려 주고 있다. 그런 다음에 사람의 아들의 성심과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티없는 성심 안에 있는 훌륭한 십자 나무에서 교회의 아름다운 봄이 무르익을 것이다. 그리고 이 교회 안에 살아 남은 온 인류가 모이게 될 것이다.

   교황 비오 12세는 돌아가시지 얼마 전, 내적인 비추임을 받아 영적으로 그 시대를 앞서가는 강론을 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파티마의 세 번째 비밀과 관련이 있다. 비오 12세는 당시의 혹독한 겨울이 지나고 나면 빛이 찬란한 여름이 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여름이 가까왔다"(마태 24,32 참조). 교황 비오 12세는 예수님이 종말에 관하여 말씀하신 것을 인용하면서 지금의 겨울은 묵시록적인 겨울이며(마태 24,15 이하 참조), 이 겨울은 영광 속에 오시는 주님을 앞서 오는 것이라고 암시했다. 그리고 교황은 특히 이러한 말을 하고 있다. "현대의 많은 죄악들은 그것들이 죄악이라는 것 그 자체로서 벌을 받은 것이다. 모든 죄악은 사라져야만 한다. 우상을 파괴되어야 하고, 끝없는 소유욕도 끝이 나야 한다. 이런 파멸은 하느님의 척도에 따르는 냉정함이 크면 클수록 그만큼 더 현기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끝나면 여름이 오고, 풍부한 수확을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눈물을 마신 땅은 사랑의 진주 안에서 웃게될 것이다. 그리고 순교자들이 피의 이슬에 젓은 땅이 그리스도인들을 탄생시킬 것이다. " (비오 12세, 1958년 3월 19일의 강론). 다음 호 계속 - 마리아 2002년 5~6월 11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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