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우리의 사랑하올 파티마 성모님의

세계 순례 여정

(세츠 데겐)

   루르드의 주교 역시 파티마의 사랑하올 어머니를 영접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을 나타냈다. 그래서 성모상이 그 동굴 앞에 모셔졌다. 주교좌 성당의 몬시뇰 바르사스(Barthas)가 훌륭한 축하 연설을 했다. 그는 "파티마의 사랑하올 어머니의 이 방문과 모든 순례여행은 말하자면 동일한 천상 어머니의 다른 두 가지 발현의 만남이다" 라고 말했다. 루르드와 파티마의 발현은 하느님의 거룩한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서 동시대에 일어난 역사적인 중요한 사건들이다.
   이어서 우리는 한 지역을 지났는데 그곳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많이 약해진 곳이었다.
   공산당원인 시장이 하느님의 어머니에게 존경을 바치는 모든 예식에서 사회자가 될 것을 자청하였다.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는 사람들의 어깨 위에 모셔져 전 프랑스를 여행했다. 그분이 가시는 곳의 가정마다 철야기도와 미사가 봉헌되었다.
   어떤 곳에 동방 정교회의 수녀원이 있었다. 그곳의 수녀들은 하늘의 어머니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서 모두 성모님을 마중하는 데 동참했고, 깊은 신심으로 손에는 성모님이 그려진 이콘을 들고 4km에 달하는 순례길에 동행했다.
   몇 명의 동방 정교회 신부들도 같이 순례하면서 경건하고 아름다운 성가들을 불렀다. 우리의 순례단이 지나는 어떤 곳에 죄중에 있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그 소녀는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지나가신다는 소식을 듣고는 자기 방으로 숨어버렸다. 그녀는 성모님을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성모님께 존경을 바치기 위해 부르는 노래도 듣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행렬이 지나갈 때 설명할 수 없는 힘이 소녀를 행렬에 합류하도록 압박했다. "싫어! 나는 가고 싶지않아! 나는 내맘대로 할거야! ..." 그러나 이상하고 불가사의한 힘이 점점 더 세게 느껴졌다. 소녀는 그 힘에 맞서 자신을 지키려고 일어나 방문을 잠궜다. 그러나 하늘의 여왕께서 원하신다면 가련한 소녀가 어떻게 그것을 대항할 수 있겠는가?
   갑자기 소녀는 벌떡 일어나 두려움에 떨며 방문을 열고 뛰어나가 날아갈듯이 교회로 달려갔다. 교회 안에 들어 가자 곧바로 하얀 성모상이 그녀에게 미소를 짓는 것 같았다. 어린 소녀는 무릎을 꿇었다. 눈물이 한없이 흘러 내리며 얼굴을 적셨다. 그것은 기쁨과 행복의 눈물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오랫동안 피해왔던 하느님과 화해하고 프랑스의 한 벽촌을 방문하여 그녀를 되찾아 주신 순례하는 동정녀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렸다.
   한 노인이 순례자들을 따라왔다. 그는 사제에게 말했다. "할 줄 안다면 기꺼이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소년시절 이후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지금에 교회에 왔습니까? 어떤이유로 그랬습니까?" 라고 사제가 묻자 그는 "나도 모르겠습니다. 아주 우연히 이 지역을 여행하게 되었고 역 근처에서 밤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의 상을 모신 행렬이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성당에 들어가 그곳에 계속 머물렀습니다. 그 사이에 내가 탈 기차는 벌써 떠났습니다. 그게 어쨌단 말입니까! 내일 다른 기차를 타면 되지요."
   사제가 그를 이해할 수 없으리라는 불안감이 갑자기 그에게 덮쳤다. "하지만 나를 이해해 주십시오. 나는 내 삶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그분은 하느님의 어머니였습니다!"
   그 신부는 노인과 함께 무릎을 꿇고 성모송을 바쳤다. 그들은 함께 성당으로 들어갔다. 그 노인은 열두 살 이래 처음으로 하느님을 맞이하였다.
   8월 2일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께서는 벨기에 국경에 도착했다. 벨기에 국경에서 투르나이(Turnai)의 주교는 땅에 무릎을 꿇고 순례하는 동정녀를 영접했다. 사람들은 깊고 경건한 침묵으로 천상의 손님께 경의를 바쳤다. 행렬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신문은 이렇게 썼다.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투르나이가 그러한 영광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어떤 세계적 축제도 그러한 큰 기쁨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수천 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여왕으로 오신 분께 머리숙여 절했다."
   아무도 믿을 수 없겠지만 "공산주의자들의 도시"인 샬레로이(Chaleroi) 역시 순례하시는 동정녀를 영접했다. 고해성사를 받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아서 고해석이 모자랐다. 사람들은 거리 한가운데서, 심지어 개방된 장소에서까지 고해를 했다. 기억에 남을 그 밤에만 이천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성체를 모셨다. 며칠 후, 그 도시의 사제가 한 환자를 방문했을 때, 거기서 가톨릭을 지독히도 반대하던 한 부인을 만났다. 그녀가 말했다. "신부님, 제가 최근에 파티마의 밤에 종교적 의무를 지킨 것을 아시는지요? 저는 광장에서 고해성사를 받고 다시 성체를 모셨답니다." 오 여주인이신 순례하는 동정녀의 기적이여!
   어디에서나 그랬다. 20년, 30년 또는 40년 동안 하느님과 떨어져 살았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 주 하느님과 화해를 했던가?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샬레로이를 방문하신 며칠 후 한 사제가 일반인의 복장을 하고 설문조사를 했다. 그는 언론인, 학생, 의사, 가정주부, 시장 상인들에게 물었다. 그리고 이러한 결론을 내렸다. "파티마의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의 방문 이래로 이 도시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께 찬미를!"
   3일 동안 성모님은 벨기에의 뤼튀히에서 머물렀다.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는 더없이 큰 사랑으로 당신을 환영했던 원죄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녀의 수도회 신부들을 첫 번째로 방문하시고 이어서 모든 본당들을 차례로 방문하셨다. 성모님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침묵기도를 한 후에 주교의 집전 하에 자정미사가 이어졌다. 성모님은 본당 외에 병원과 수도원들도 방문하셨다.
   한 사제는 어떤 남자가 순례 행렬을 따르는 것을 보았는데, 놀랍게도 그는 종교적인 모든 것에 적의를 품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사제에게 조언을 구하고 고해성사를 청했을 때 사제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마침내 사제가 그에게 물었다. "종교적인 것에 대해 그다지도 적대적이었던 당신이 어떻게 해서 성당에 나오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나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내 집 앞을 지나가셨지요. 그리고 그때 나는 그분을 따라가야만 했어여." 사제의 호기심은 그것으로 만족되지 않았다. 그 기적은 그에게 그렇게도 컸던 것이다. "당신은 혹시 어쩌면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께서 이런 큰 은혜를 베푸실 만한 어떤 일을 하셨다고 생각되지 않으세요?" 그 남자는 그 어떤 것을 생각해내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는 고개를 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네요. 최근에 하느님의 어머니께 몹쓸 말을 한 녀석을 코가 깨지게 한방 먹였던 적이 었거든요." 축복받은 주먹질은 그가 원죄없으신 동정녀께 존경을 드러내는 방법이었으므로 성모님께 그렇게 큰 용기로 받아들여진 것이다.
   10월 21일에 파티마의 사랑하올 어머니는 당신의 축제행렬을 브뤼셀에서 멈추셨다. 그것은 승리의 행진이었다. 행렬을 이끄시는 분은 진덩 여왕이셨다. 오만 명의 가톨릭 노동 청년 회원(Jocistes)들이 감동적인 예식 중에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자신들을 봉헌했다. 감동적인 일들이 계속되었다. 하느님의 어머니가 순례하셨던 어느 지역에 두 형제가 있었는데 한 명은 열심한 가톨릭 신자였고 다른 한 명은 투쟁적인 공산당이었다. 은총과 축복을 내리면서 성모님이 지나가셨다. 다음 주일에 놀랍게도 그 가톨릭 신자는 성당에서 자신의 형을 보았다. 그들은 오랫동안 교제가 없었지만 동생은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형에게 다가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자신의 놀라움을 전했다. "여기에서 형을 보다니!" "네가 우너하는 바잖아!" 그가 말했다. "동정 성모님께서 지나가셨지. 그리고 나는 그분께 내 삶을 변화시켜 달라고 청했어."
   마침내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는 러시아 정교회를 향했다. 가톨릭 신자들과 정교회 신자들이 교회를 가득 메웠고 열광적인 기쁨으로 기적의 성상을 맞이했다. 얼마나 흥미로운 일인가! 가톨릭 신자나 정교회 신자 모두가 눈물을 흘렸다.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의 방문 이후로 러시아 정교회는 매일같이 가톨릭 신자들과 함께 러시아의 회개를 빌고 있는 많고 많은 정교회 신자들을 본다.
   벨기에 다음으로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가 방문하신 곳은 네덜란드였다. 수없이 많은 군중들을 이끌고 성모님은 9월 1일 저녁 무렵 네덜란드와 벨기에의 국경에 다다랐다. 두 나라의 항공기들이 행렬 위를 선회비행하며 하늘의 어머니께 꽃을 뿌렸다.
   특히 파티마의 사랑하올 어머니는 마스트리트(Maastricht)의 국제 마리아 대회를 영광스럽게 하시려고 그곳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성모님은 주교들과 추기경들이 겸손되이 당신의 발 아래 무릎을 꿇는 것을 보실 수 있었다.
   로에르몬드(Roermond) 시의 주교는 며칠 후 이렇게 썼다. "대회는 성대하고 장엄한 예절이었다. 그러나 파티마의 사랑하올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가져오신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참된 믿음과 신앙의 정신이었다."
   어머니는 이 나라를 떠나 룩셈부르크로 향하셨다. 그 작은 나라는 대단한 정성으로 사랑하올 하느님의 어머니의 방문을 준비했다. 모든 본당은 "사흘" 동안 성모님을 맞을 준비를 계획했고 어머니가 그곳에 머무시는 동안 매일같이 모든 장엄미사에 순례자들을 위한 기도가 마련되었다. 이십 오만 명의 인구 중에서 십만 명이 영성체했다는 사실은 분명 그 훌륭한 준비의 결실임을 나타낸다.
   1948년 2월 29일,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은 배를 타고 다시 포르투갈로 돌아갔다. 그러나 파티마의 우리의 사랑하올 어머니의 순례는 끝나지 않았다. 이때부터 파티마의 순례 성모상은 전 세계를 다녔다. 성모님은 아직도 여전히 순례하시면서 파티마에서 예언하셨던 것을 이루고 계신다.
   "결국 내 티없는 성심은 승리할 것이다. 교황은 내게 러시아를 봉헌할 것이다. 러시아는 회개할 것이다. 그리고 세계에는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다" (1917년 7월 13일)- 마리아 2002년 5~6월 113호 -

[HOME] Copyright 2000-2003 Agnes L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