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성모 발현 성지 순례기 2 ; 멕시코의 과달루페 성모 성지

(염봉덕 신부. 부산 거제동 성당)

   필자가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해서 처음들은 것은 신학교에서 인간학 강의를 들을 때였다. 그 강사는 오스트리아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얼마 안된 평신도 교수였다. 그 교수님은 공부를 마치고 귀국 길에 멕시코 수도에 있는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순례하고 많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당시 필자는 교수님이 부러웠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도 성지를 순례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성지를 순례할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외국 여행이 얼마나 어려웠는가?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순례하게 되었다.
   1987년 6월, 필자는 연산 성당 주임신부로 있으면서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성 그레고리오 성당과 자매 결연을 맺기 위해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LA에 있는 그레고리오 성당에 머물면서 친지 교우들을 방문하기 위해 미국의 여러 도시를 돌았다. 그리고 멕시코 시에 있는 과달루페 수도회의 이 요한 신부에게 안부 전화를 했다. 당시 그는 부산 교구의 사직 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하다가 멕시코로 귀국한지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한국에서 사목할 때 같은 지구에 있었기에 친분이 있어서 본국으로 귀국한 이 신부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이 신부는 나의 전화를 반갑게 받더니 꼭 멕시코에 와서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순례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래서 멕시코 영사관에 가서 비자를 발급받아 멕시코로 갔다.
   그는 공항에서 나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우리는 그가 필자를 관광시켜 주기 위해 빌린 낡은 자가용을 타고 과달루페 신학교로 갔다. 그곳의 학장 신부는 과달루페 수도회 소속으로 광주 신학교에서 같이 공부한 안루수 신부였다.

멕시코에 도착해서
   다음 날부터 이 요한 신부는 멕시코 시 근교에 있는 아즈텍 문화 유적들과 시내의 대통령궁, 주교좌 성당과 박물관을 구경시켜 주었다. 주교좌 성당은 시내 중심부에 있는데 옛날 스페인 스타일의 대성당이었다. 성당 안에는 나무로 조각된 성물들이 있어서 보통의 유럽 성당들과는 대조적이었으며 퍽 인상적이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멕시코의 북부 지방은 옛날 인디언이 꽃피운 아즈텍 문화 유적들이 많이 남이 있고 남부 유카탄 반도 지역에는 마야 문명의 유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 신부와 함께 방문한 멕시코 북부에 있는 테오투칸이라는 웅장한 종교도시는 필자를 압도하였다. 당시 인디안들은 태양과 달을 신으로 모시고 거대한 피라밋 형태의 제단을 만들어서 신에게 제사를 드렸고 중요한 제사 때는 젊은 사람의 심장을 제물로 바쳤다. 제단이 큰 산과 같이 높아서 올라가기를 주저하고 있는데 이 신부가 여기까지 와서 정상에 올라가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게 된다고 강력히 권하는 바람에 힘들게 올라가서 보니, 그곳이 천하 명당 자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의 유명 사찰들이 큰 산을 뒤에 두고 지어져 있듯이 인디언들도 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들은 먼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 한가운데에 종교도시를 만든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멕시코 시내에 있는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순례했다.

과달루페 성지 순례
   현재 과달루페 성모 성지에 가면 오랫동안 과달루페 성모님의 성화를 보관하고 있던 오래된 큰 성당이 있고 그 옆에 죄근에 대리석으로 지은 체육관 형태의 아름다운 새 성당이 있다. 예전에는 호수였던 곳을 매립해서 성당을 세웠기 때문에 지반이 약해서 오래된 주교좌 성당도 약간 기울어져 있다. 이 요한 신부와 나는 작은 경당에서 함께 순례 미사를 봉헌하고 성모님의 성화를 보러 갔다. 500여년 전에 발현한 성모님의 모습이 담긴 그 성화는 현재 새로 건립된 성당의 제대 뒤편에 걸려 있다.
   제대와 그림이 걸려있는 사이에 수평 에스컬레이터가 두 개 있어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천천히 성화 아래를 지나가면서 올려다 볼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리는 혼잡을 피하고 질서정연하게 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처음의 자리로 돌아가서 다시 에스컬레이터에 올라서면 볼 수가 있다. 이 요한 신부와 나는 두세 번 반복해서 보았는데 그림이 아주 선명해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당시 주교님이 사무실 벽에 걸어 놓았다가 나중에 기념 성당의 제대 뒤에 걸어 놓았다고 한다. 지금 성지에 있는 성당은 1700년대에 지어진 것으로 최근까지 성화를 그곳에 보관해 두었다가 새로운 성당을 세운 후 다시 옮겼다고 한다.
   최근에 과학자들이 그 성화를 최신 과학 실험 기구로 정밀하게 관찰해 본 결과 그것은 자연적인 염료로 그려진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으로 그려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뿐 아니라 500여 년 전에 가난한 인디언 농부의 초라한 옷 위에 그려진 성모님의 성화기 습기가 많은 멕시코 시에서 몇 세기 동안 부패되지 않고 지금까지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기적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한국 교우들에게는 루르드 성모와 파티마 성모는 잘 알려져 있어서 유럽 성지 순례 때에 많은 교우들이 순례를 간다. 그러나 멕시코에 있는 과달루페 성모 성지는 한국에 잘 알려져 있지 않고 지리적인 여건상 가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적은 경비로 갈 수 있기 때문에 미국 교우들과 한인 교우들이 단체로 과달루페 성모 성지 순례를 많이 가고 있다.

과달루페 성모님은 어떤 분인가?
   과달루페는 교회 내에서 가장 오래된 성모 발현 성지이다. 성모님은 지금부터 약 500여년 전인 1531년 12월 9일 후안 디에고라는 평범한 인디언 농부에게 발현하셨다. 당시 그는 가톨릭 신자로 개종한 지 얼마 안 된 교우였다. 그 날 아침 후안 디에고는 미사에 참석하기 위해 테페약 언덕 길을 걸어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떤 여인이 밝은 빛 속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녀는 디에고에게 자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고 말하며 “하느님의 자비와 구원 계획이 드러나도록 이곳에 성당을 지으라고 주교에게 이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과 이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멕시코는 다른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스페인 사람들이 많이 이주하여 살고 있었기에 성직자들은 대부분이 스페인인이었다. 영세를 받은지 얼마 안되는 인디언이 주교관에 가서 주교님을 면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면회가 거절되었으나 끈질지게 요청을 한 디에고는 주교님께 자신이 목격한 것을 이야기하고 성당을 지으라는 성모님의 요청을 전했다. 프란치스코 수도회 소속인 후안 주메라가 주교는 인디언 농부인 후안 디에고의 말을 듣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성모님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오면 성당을 짓겠다고 말했다.
   주교님의 말을 들은 후안 디에고는 다음 날 전날과 같은 길로 집으로 가는데 성모님이 우아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셨다. 그가 주교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하자 성모님은 다음 날 다시 이곳에 오면 증거를 보여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1531년 12월 13일 후안 디에고가 성모님이 약속한 장소에 가니 추운 겨울인데도 불구하고 언덕 위에 아름다운 장미꽃들이 수없이 많이 피어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이것은 기적이라고 생각하여 자신이 입고 있는 틸마(망토처럼 생긴 인디언의 겉옷) 자락에 장미꽃들을 담아서 주교관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주교님에게 장미꽃을 보여드리려고 틸미 자락을 펼치자 장미꽃들이 사무실 바닥에 흩어졌다. 또한 놀랍게도 후안 디에고의 틸마 위에는 아름다운 성모님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그 순간 주교는 성모님이 인디언 후안 디에고에게 나타나신 것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과달루페에 대한 교회의 관심
   그후 교회는 기념 성당을 지었고 많은 교황들은 과달루페 성모님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1910년 교황 비오 10세는 과달루페 성모님을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수호자로 선포하고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도록 허락했다. 더 나아가 비오 11세 교황은 성모님을 알래스카를 포함한 북남미 전역의 수호자로 선포했다.
   또한 비오 12세 교황은 성모님을 공경하는 뜻으로 성모님의 성화를 공식적으로 모시도록 했다.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1년 중남미 주교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 멕시코를 방문할 때 과달루페 성모 성지를 순례하였다. 현재 새로 건립된 성당 입구에는 교황의 방문을 기념하여 청동으로 만들어진 교황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후안 디에고는 1990년에 시복되었고 금년 7월 31일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서 과달루페 성모 성당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시성식 미사에서 교황은 “500여 년 전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 마리아를 목격한 후안 디에고를 아메리카 대륙의 첫 인디오 성인으로 선포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깁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중반부터 중남미에서 복음을 행동으로 적극 실천해야 한다는 해방 신학은 가난한 사람들과 억압받는 이들을 말로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도와야 한다는 것이 그 요점이다. 중남미의 부패한 군사 정권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구조적으로 그리고 원천적으로 바로잡자는 데서 해방신학이 시작된 것이다.
   대표적인 해방 신학자는 영화로 인해 한국에서 잘 알려진 엘살바도르의 로메로 대주교이다. 그리고 신학적인 이론가로는 많은 사람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는, 한때 교황청과 미묘한 관계를 가졌던 브라질의 카메라 대주교와 페루의 구스타포 구지에르가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의 해방 신학자들은 중남미 최초의 해방 신학자로서 500여년 전에 발현하신 과달루페 성모님을 꼽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주장이 어떤 면에서는 아이러니컬한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1492년 유럽인인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처음 발견한 이래 많은 스페인인과 포르투갈인들이 중남미 대륙으로 건너왔다. 처음에 그들은 중남미에 살고 있는 많은 인디언들을 살육하고 그들의 문화를 철저히 무시하며 그리스도교를 강요하였다.
   심지어 어떤 교회 신학자들은 세속적인 유럽인들과 마친가지로 인디언들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람과 동물의 중간 정도의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신학적으로 인디언 박해를 정당화하였다. 몇 년 전에 상영된 명화 “미션”은 중남미 교회에서 교회 당국이 저지른 잘못을 고발하고 있다. 그 영화는 교황청이 추천하는 명화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당시 성모님은 스페인 사람이 아닌 인디언인 후안 디에고에게 발현하였다. 그뿐 아니라 인디언들이 입는 옷을 입고 나타나셔서 스페인어가 아니라 인디언 언어로 후안 디에고에게 말씀하셨다. 결과적으로 성모님은 인디언의 모습으로 발현함으로써 유럽인들과 교회 당국이 가지고 있던 잘못을 깨우쳐 주신 것이다.
   성모님은 인디언들도 유럽인과 동일한 인간 존엄성을 지닌 인간임을 알려 주신 것이다. 성모님은 제대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고 억압받고 있던 인디언들도 존귀한 존재라는 사실을 분명히 보여 주셨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해방 신학자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고 여겨진다. - 마리아 2002년 115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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