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신심 운동
(폴 마리아 시글 신부. 마리아의 공동구속자 전교수도회 지도신부)
“너는 자발적인 확산이 일어나는 것을 볼 것이다.”
1951년 4월 15일, 암스테르담에서기적의 패에 적혀 있는, 1830년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해 빌어 주소서“ 라는 기도문과 함께 전파된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원죄없는 잉태 교의가 소박한 일반 신자들의 협력에 의해 보급된 것처럼,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기도와 상본도 신자들의 호의적이고 자발적인 전파로 가장 위대하고 최종적인 마리아 교의가 준비되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한다.(1)
암스테르담에서 마리아는 발현 목격자인 이다 페르데만에게 지구의 위에 떨어지는 수백만 눈송이들로 이러한 전파를 나타내 보여 주시면서 이는 “구원과 평화의 운동”이라고 말씀하셨다.(2) 이 상본을 받는 사람은 누구나 마리아를 자신의 어머니로 사랑하기 시작하며 이는 세계적으로 더욱더 명백해지고 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평화와 위로를 경험할 것이다. 구세주를 세롭게 발견하게 되고, 대부분은 난생 처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에 있어서의 자신들의 역할인 공동 구속의 협력을 이해할 것이다. 또 확신하건대, 암스테르담의 은총의 상본은 성녀 파우스티나의 자비심 상본과 더불어 제삼쳔년기를 위한 가장 확실하고 가장 위로가 되는 협력자가 될 것이다.(3) 이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세계 곳곳에서 기적을 행하셔서 마니피캇에서 노래하신 “모든 민족이 나를 복되다 일컬으리니!” 라는 구절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실현되고 있음을 인류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많은 나라들 중에 몇 군데를 살펴보자.콜롬비아인, 세실리아 코레도르 데 헤르난데스는 사람의 눈에 띄지 않도록 홀로 방치되어 하루종일 침대에 누운체 움직일 수 없는 중환자이다. 그녀는 병 때문에 두 어린 자녀들과 남편에게서 버림을 받고 이제 모든 것을 성모님께 의탁하고 봉헌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기도’는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기도가 되었다. 그녀는 공동 구속자의 고통을 지켜 보며 위안을 받고, 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들을 위해 위안과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해한다.(4)
2000년 대희년의 해에 미국 메사츄세츠의 한 가톨릭계 중학교의 교장 선생은 학생들을 위해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다. 그녀는 이 세상에 자신의 학교 학생수와 똑같은 232개의 국가가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읽었다. 그래서 학생 하나하나가 그 각각의 나라들을 위해 매일같이 기도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생각에 들어맞는 기도문을 찾던 중 본당의 아는 사람이 그 무렵 ‘우연히’도 그녀에게 상본을 주었다. 교장은 곧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기도가 모든 민족들에게 성령이 오시도록 기도하는 데 이상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232명의 학생들은 매일 자신이 맡은 나라들을 위해 그 기도를 한다.(5)
1999년 12월 28~30일, 요셉(Joseph Gnayalloor) 신부와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봉사자들은 마리아께 대한 공경의 표지로 트리반드룸(Trivandrum)과 케랄라(Kerala)에서 큰 축제를 계획했다. 안티어키아의 총대주교인 치릴 마르 바셀리오스(Cyril Mar Baselios), 다마스커스의 부주교 이그나체(Ignace Moussa Daoud)와 수자 파키암(Sooza Pakiam)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전통적인 방식으로 황금 등경에 점화함으로써 축제가 시작되었다. 12월 29일, 트리반드룸(Trivandrum)에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께 새 성당을 봉헌함으로써 축제는 절정에 달했다. 특히 긴 행렬이 참으로 멋있었는데,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상본이 코끼리 등에 모셔져 13,000명 이상이 참가한 그 행렬을 이끌었다.(6)
1999년 9월 이래로 첫 순례상이 일본 도쿄의 프란치스코 수도원에서 축성되어 일본의 가정을 순례 중이다. 많은 노력 끝에 이미 메시지의 핵심 부분이 번역되었고 단편영화로 제작되어 일본어로 녹음되었다. 지금은 인터넷에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일본어 웹사이트가 준비되고 있다.(7)
1999년 10월말, 스웨덴으로의 세 번째 선교방문 시 우리는 새로 서품된 주교 안데르스 아르보렐리우스(Anders Arborelius) 몬시뇰을 만나기 위해 스톡홀름을 방문하여 스웨던어로 번역된 암스테르담 기도문의 인가와 활동에 대한 그의 후원에 감사드렸다. 그의 말은 고무적이었다. “나는 지금이 마리아를 스웨덴에 더 많이 전파해야 할 시기이며, 구원계획 안에서의 그분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야 할 때이고, 이것이 또한 올바른 길이라고 믿습니다.”
이제 스웨덴의 성 브리짓타회 수녀들이 이 기도문을 주교의 허락 하에 스웨덴에서 전파하고 있다.(8)아프리카의 상아해안에서 “모든 민족들의 여인”에 대한 영성 세미나가 개최되었으며, 세미나 후 신자들은 아프리카의 풍습에 따라 춤추고 노래하며 성전을 떠났다.(9)
1999년 9월 아일랜드의 한 신자가 암스테르담의 성지에 영문으로 된 기도상본을 30,000장 주문했다. 그로부터 반 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는 30,000장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열렬한 후원자가 된 그는 자신의 고향 아일랜드에 이것들을 가져가 전파할 것이다.
“전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 이 기도를 전파하여라. 그들 모두는 그것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 나는 너에게 이 세계가 변화할 것이라는 것을 보증한다” (1951.4.29).
“이 기도가 하느님께 얼마나 힘있고 중요한지 너희는 모를 것이다” (1955.5.31).“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라는 호칭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너희을 도와주기 위해 모든 곳에 있다.” (1955.12.8) 우리는 성모 호칭 기도에서 마리아를 여러 가지 훌륭한 호칭으로 공경한다. 그리고 마리아께 대한 사랑과 공경의 이 호칭들은 마리아의 소명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 준다. 그러나 새로운 호칭인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이 호칭들 중에서도 어머니로서의 소명을 가진 마리아를 가장 훌륭하게 표현한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어떤 종교를 가지든지 모든 민족, 모든 인종의 참다운 어머니이시다. 마리아는 사람들이 알든 모르든,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자신의 모든 자녀들을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는 세상에 지속적인 평화와 민족간의 이해를 가져오게 하고 성령 안의 참된 일치를 간구하시며 우리에게 그 일치를 베풀어 주실 수 있으시다.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세상의 중심에서 십자가 앞에 서 있다. 그녀는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라는 이름으로 이 시대에 온다” (1951.12.31).
“나는 지구의 위에 굳건히 발을 딛고 서 있다. 성부와 성자께서 ‘이 시대’에 ‘이 세상’에 나를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서 보내시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1951.5.31).
또한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나는 미리암 또는 마리아로 불렸다. ‘이제’ 나는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내 딸아, 때가 ‘다가오고’ 있다고 선포하여라” (1951.9.20). 다시 말하면 “그녀는 하느님의 여종, 마리아였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다” (1952.4.6). 하느님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마리아가 물론 그녀의 이름이긴 하지만 그 이름으로는 결코 그녀의 광범위한 소명을 나타낼 수 없음을 가르친다.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라는 호칭은 마리아라는 호칭에 비해 그 소명을 아주 잘 나타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녀는 우리에게 재촉한다.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를 위해 일하고 싸워라! 어머니는 틀림없이 ‘이 시대’로 올 것이다” (1954.4.4).성서에서의 여인
“두 번에 걸쳐 즉 가나에서의 십자가 밑에서 예수께서는 마리아를 ‘여인’이라는 호칭으로 말씀하신다(요한2,4 : 19,26 참조). ‘여인’으로서 마리아는 구원 사업과 연결된다. ‘남자와 여자’로서 하느님은 사람을 창조하셨다(창세1,27 참조). 또한 구원에 있어서 하느님은 새로운 아담에게 새로운 하와를 옆에 세우시길 원하신다. 선조들이 죄의 길에 떨어졌기에 새로운 한 쌍, 하느님의 아들은 어머니의 협조 아래 인류를 원래의 자리에 다시 올려 놓아야 했다.”
“예수님의 시대와 어머니와 교회의 시대에 장엄한 구세주의 말씀, 즉 마리아가 그리스도 제자들의 어머니가 되고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뽑히셨다는 그 말씀이 실현되는 것이다.”
1952년 4월 6일의 암스테르담의 메시지가 그것을 증명한다.
“이 여인은 십자가 옆에서 공동 구속자, 중개자가 되었다. 그것은 아들이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 아들을 통해 선포되었다. 십자가 제사에서 아들은 이 호칭을 전 세계에 선포했다. 이 순간에 또한 마리아는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지신 예수님으로부터 교회의 어머니로임명되었다. 이를테면 그녀는 ‘축성’되었다.“
“마리아가 진정한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어머니에게 ‘여인’이라는 말을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든 민족들의 여인, 어머니는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1953.10.11)
“그렇다. 이 호칭, 이 기도로써 세상을 대재앙으로부터 구해내고자 창조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을 보내셨다” (1953.5.10)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기도
“이 기도로 ‘여인’이 세상을 구원하리라.” (1953.6.10) 새로운 기도
수년 전부터 전 세계 수백만의 사람들이 이 새로운 기도를 여러 나라의 많은 언어로 바친다. 이 기도는 혼란 속에 놓인 세상에 성령의 재림을 간구하는 기도이다. 성령이 모든 민족들의 마음 속에 거주하시어 그들을 타락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어머니로서의 마리아가 변화하는 교회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시 한번 우리를 구원하러 달려 오시는 이때에, 그리고 곤경에 빠진 그리스도 교회에 스카풀라나 묵주, 기적의 패 같은 가장 단순한 수단을 통해 영적 구원의 닻을 보내 주신 이때에 20세기 암스테르담의 메시지 속에 있는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의 기도는 빛을 발하며 그 중심에 서 있다.
이 기도에 대해 남미의 어느 추기경은 말했다. “가장 짧은 기도문 속에 오늘날 이 세계가 가장 필요로하는 것을 청하고 있다!”
그 추기경의 표현처럼 짧고 단순한, 그러면서도 의미심장한 기도가 바로 이것이다.성부의 아드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지금’ 이 세상에 당신의 성령을 보내 주소서.
모든 민족들의 마음 속에 성령께서 살게 하시어
그들을 타락과 재앙과 전쟁으로부터 보호해 주소서.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시여,
저희의 변호자가 되어 주소서. 아멘.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분” - 참된 예언의 증거
한 사제는, 이 놀라운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분”이라는 구절이 확실하고 참된 말씀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어떤 “가짜 예언자”가 이 기도를 만들었다면, 그 기도가 세계적으로 모든 민족에게서 기도되기를 원했을 때, 그것은 교회 당국에서 끊임없는 논쟁을 일으키고 반대에 부딪쳤을 것이다. 이다 페르데만처럼 참된 예언자만이 모든 저항을 무릅쓰고 자세한 내용을 충실히 지킬 용기를 가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그 기도가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1951년 7월 2일 성모님은 이 말에 대해 아주 간단하고 짧고 단순하게 설명했다. “일찍이 마리아로 불리었던” 이 뜻하는 말은 많은 사람들이 마리아라고만 알고 있었으나 지금 이 새로운 시대에 와서 나는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가 되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누구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이다.“그래도 당신은 언제나 마리아가 아닌가?
마리아는 피앗(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을 통해 원죄에 물들지 않은 은총을 가득히 받으신 분이 되었고, 이름없이 소박한 나자렛의 마리아에서 천상 아들의 어머니가 되었다.
예수님의 어머니는 고난, 예수님과 일치된 그 고난을 통해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가 되었다. 마리아는 이제 그 신분으로 우리 시대에 알려지고 모든 인류로부터 사랑받고자 하신다.
“이 단순하 기도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것이다” (1952.2.17). 사람들이 이 기도문을 전파하기를 주저하자 성모님은 이다 페르데만에게 나타나 요청하셨다.
“사람들이 이 짧고 단순한 기도를 매일같이 바치게 하여라. 그것은 아주 짧고 간단해서 급변하는 현대 세계의 모든 이가 기도할 수 있다. 그것은 영, 즉 성령을 이 세상에 내리도록 간청하기 위해 보내진 것이다” (1951.9.20).기도의 열매
이 기도를 열심히 하는 자에게 하느님의 어머니는 놀라운 약속하신다. 마리아는 이다 페르데만에게 눈발이 세상을 휘몰아쳐 눈더미가 두텁게 쌓이는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말씀하셨다.
“이 장면처럼 기도문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어 모든 민족들의 마음에 사무치게 될 것이다.그래서 눈이 땅에서 녹는 것처럼, 이 기도를 매일 바치는 모든 이의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열릴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성령’께서 세상에 오실 것을 청하기 때문이다” (1951.4.1).모든 민족들의 어머니 성화
“바로 내가 이 그림을 민족들에게 주었다.” (1952.12.8) 마리아는 이 성화가 그려져서 그 기도문과 함께 온 세상에 있는 모든 민족들의 기도 운동으로 퍼지기를 원했다. “이 성화는 나라에서 나라로 도시에서 도시로 퍼져 나가야 한다” (1951.5.31).
우리는 이 은총의 성화에서 성모님의 소명이 시작되었던 원죄없이 잉태된 분으로서의 마리아, 혹은 하느님 아들의 젊은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를 볼 수가 없다. 오히려 암스테르담의 첫 선택 이후로 점차 놀라운 성장을 하셔서 우리를 위한 공동 구속의 어머니로서, 우리를 위한 모든 은총의 중개자로서,우리를 위한 보편적 변호자로서 나타나셨다.이렇듯 삼중의 양식으로 성모님의 “공동 구속자적 존재”가 상징적으로 그려졌다. 성모님은 아들의 십자가 앞에서 허리에 구세주의 허리띠를 두르고, 빛나는 손의 상처를 지니고서 계신다. 그리고 ‘여인’은 말씀하셨다. “나중에 사람들은 공동 구속자의 상징으로 이 성화를 사용할 것이다” (1951.4.29).
이 성화에서 “모든 민족들의 어머니”는 십자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듯 묘사되어 있다. 성모님은 친밀하고 고통스럽게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인다. 우리는 세상과 민족들에게 “은총, 구원, 평화”를 발산하는 마리아의 손을 본다. 마리아는 또한 우리의 어머니로서 우리와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구의 위에 확고히 서 계심으로써 암스테르담에 보편적 방법으로 실제로 오신 것이 “전 세계를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자 하신다 (1951.3.4).
이러한 모습의 발현은,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 이제 때가 무르익었음을, 또한 그리스도가 그의 구원사업에 자신의 어머니의 협력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는지를 모든 지상의 민족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 그리고 마리아가 어머니의 사랑으로 하느님인 자신의 아들과 일치하여 지상의 모든 민족들을 위해 그렇게 고통받았음을 아주 아름답고 명백하게 드러내시는 것이다.
마리아는 모든 민족들에게 은총을 중개하는 모든 민족들의 전구자이다. 지구의 위에서 계신 공동 구속자는 우리가 그녀의 모범적인 행동을 배우기를 바라신다. 마리아의 본보기는, 우리 구세주와 하나되어 우리 형제자매들의 구원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기를 우리 모두에게 호소하신다.
“성부와 성자께서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인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서 이 시대에 보내고자 하신다” (1951.5.31).
“빛줄기는 모든 민족, 모든 양들을 비춘다” (1951.7.2). 은총의 빛을 뿜고 있는 상처로 뚫어진 두 손은 그 자체로 이미 많은 것을 말해 준다.그것은 먼저 공동 구속의 고통을 그리고 은총을 중개하는 기쁨을 분명하게 나타낸다. 마리아는 모든 은총의 중개자이다. 왜냐하면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으로서 그리고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어느 누구보다도 모든 사람이 구원의 은총을 얻는 데 협력하시기 때문이다.그녀는 십자가의 빛 속에 서 있다.
공동 구속자의 성화를 바라보는 자는 분명히 마리아가 발산하는 모든 빛이 그녀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십자가에서 나오는 것임을 볼 수 있다. 이 장엄한 십자가의 빛 속에 서서 마리아는 묵시록의 태양을 입은 영광스러운 여인으로 나타난다 (묵시 12,1 참조). 암스테르담의 은총의 성화를 보면 긴밀하게 서로 연결되어 있는 두 가지의 것을 알아보게 된다. 한 가지는 구원과 공동 구속자의 수난, 그리고 다른 하나는 거기에서 발산되는 하느님이 주시는 은총의 빛이다.성모님은 중심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중앙에 서 계신다
물론 마리아는 중심이 ‘아니다’. 빛은 분명 십자가에서 나온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과 마리아의 소명에 따라 마리아께서 공동 구속자, 중개자, 변호자로 중심에 서 계신 것은 무엇보다도 우리 마음의 중심을 주님께로 이끌기 위해서이다. 마리아께서는 자신을 가리키며 분명히 강조하여 말씀하신다.
“내가 아니라 십자가이다. 그래서 이 성화를 전파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십자가가 다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1951.4.15).생각하게 하는 그림
모든 민족들의 여인이며 어머니의 성화를 처음 보는 사람은 아마도 예수님 없이 마리아 혼자 구원의 십자가 앞에 있는 것을 보고 당황할지도 모른다. “그녀가 십자가를 가리고 있지 않은가?” 하고 비난할 수도 있다. 어머니가 어두운 십자가 앞에 서서 이 이상한 그림을 통해 의식적으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또 하느님의 구원계획에서의 마리아의 위치와 소명을 더 깊이 생각하도록 우리를 강요하려는 듯이 보여질 수도 있다. 물론 마리아는 옆에 서 있으면서 십자가 위의 구세주를 가리킬 수도 있다.
이와 같거나 또는 그 비슷한 방법으로 오랜 세월 많은 뛰어난 거장드리 갈바리아에서의 예수님과 마리아의 고통을 그렸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의 이 성화는 구세주의 소명과 그의 구속의 고통을 묘사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메시지에 있는 대로, “사람들은 이 그림을 공동 구속자를 위해 사용할 것이다” (1951.4.29). 그렇다. 이 그림은 공동 구속의 어머니의 소명을 묘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구세주를 가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이미 부활하셨고 하늘나라의 영광에 싸여 아버지께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십자가는 부활의 빛속에 있고 그 빛이 마리아를 완전히 감싸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십자가 앞 중앙에서, 어머니와 아들은 그들의 소명 속에서 떨어질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아들이 있는 곳에 언제나 어머니도 계신다. 하느님인 아들 스스로가 어머니를 공동 구속자로서 중앙으로 부르셨고, 그로써 우리는, 마리아가 그 중심에서 모든 민족들에게 어머니로서 예수님과 함께 겪은 고통을 통해 얻은 구원의 은총을 중개하시고 우리를 위해 전구하시고 변화시면서 우리를 도와 주심을 기꺼이 인정한다.‘여인’은 예수님의 허리띠와 같은 모양의 자신의 허리띠를 가리킨다. 그것을 우리는 잘 보아야 한다. “이것은 아들의 ‘허리띠’와 같다. 나는 아들의 ‘십자가’ 앞에 ‘여인’으로 서 있다” (1951.4.15). 그 허리띠는 한편으로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통의 표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공동 구속자이신 어머니가 아들의 굴욕적인 수난과 내적 일치를 이루는 것을 비유적으로 강조한다.
“그들은 침묵 속에서 십자가를 바라보기 전에는 평화를 얻지 못할 것이다” (1951.5.31).
1951년 5월 31일, 마리아는 그 성화에 관한 새로운 지시를 내렸다. “잘 보아라, 나는 지구의 위에 서 있다. 너는 이 지구의 주위에서 구름을 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제 내가 너에게 보여 주는 것을 잘 보아라. 이제 나는 구름이 양떼로 변하는 것을 보여 준다. 지구 둘레의 좌우에서 마치 깊은 데서 솟아나듯이 양쪽으로부터 양떼가 나타나고 있다. 이 양떼들의 모습은 침묵 속에서 이 세상의 중심인 십자가를 평온히 바라보기 전까지는 평화를 얻지 못할 전 세계의 민족들을 의미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지구의 위에 그리고 십자가 앞에 서서 목자 그리스도를 안고서 이 시대에 오신다” (1951.9.20).모든 은총의 중개자의 손의 상처에서 나오는 세 줄기의 빛
마리아가 보여 주는 마지막 한 가지는 마리아의 두 손이다. “이제 내 손을 바라보고, 네가 보고 있는 바를 묘사하여라. 이제 나는 상처가 있는 두 손바닥 가운데에서 나와 양떼에게 쏟아지는 세 줄기 빛을 보여 준다” 라고 ‘여인’은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이것은 은총과 구원과 평화의 광선이다. 나의 주님이며 주인이신 성부께서는 인류에 대한 사랑에서 은총으로 당신의 독생 성자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셨다. 성부와 성자께서는 이제 진리의 성령을, 홀로 평화가 될 수 있으신 참된 영을 보내시고자 하신다. 여기서 은총, 구원, 평화가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성부와 성자는 모든 민족들의 여인인 마리아를 공동 구속자, 중개가, 변호자로서 이 시대에 보내기를 원하신다” (1951.5.31).
“빛줄기는 모든 민족들 위에 그리고 모든 양떼 위에 비춰진다” (1951.7.2).- 마리아 2002년 7~8월 11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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