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요셉
성 요셉의 위대함
베르나르도 성인은 요셉 성인을 일컬어 "보다 깊은 신앙과 지혜의 종인 그를 하느님은 당신 어머니의 배우자로 삼으셨고, 당신 외아드님의 양부로 그리고 이 세상에서의 조언자이면서 보호자로 선택하셨다" 고 노래하고 있다. 이것은 굉장한 칭송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새 아담이므로 우리는 문예부흥에서의 성 요셉의 역할과 인간의 타락에서 새 아담의 역할이 어느 정도 유사하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고 있다. 요셉 성인이 구원사에 있어 첫째가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음은 사실이며, 여인과 그녀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짓밟을 것이라고 상술한 원시복음에 포함되어 있지도 않다. 인류는 새 하와인 마리아의 협력 하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또 다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마리아의 보호자로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강생의 신비에서 그의 존재는 필수적임을 우리는 알아야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될지라도 그의 위대함을 완전히 인식하기는 어렵다.
여기에 마리아의 입장에서 성 요셉의 위치에 대한 성인들의 견해들을 몇 가지 살펴보자.성 요셉의 위치
예로니모 성인은 마리아의 조상은 예수의 혈통에 의해 설명되어져야 하고, 마리아는 간음한 옂로 취급되어 유대인들의 돌에 맞아서는 안되며, 마리아는 초기의 시련들에서 요셉 성인의 보호와 위로를 받아야만 했다. 그리고 사탄은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났음을 알지 못했다. 이는 순교자 이냐시오 성인에 의해 이미 논의되었다.
대 그레고리오 성인과 베르나르도 성인은, 요셉 성인이 예수께서 동정녀에게서 태어난 사실의 증거자로서 필요했다고 말한다.
에프렘(시리아) 성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 왕조의 후손임이 상 요셉에 의해 증명된다고 말한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요셉 성인이 예수님의 법적인 위치를 굳건히 했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법적인 신분과 권리는 아버지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이상 열거한 것들은 가장 중요한 목적이지만 지금 우리가 고려할 것들은 이상의 것들과 꼭 상응하지는 않는다. 이것들은 요셉 성인이 강생의 신비에 가장 깊숙이 들어간 까닭에 매우 타당한 이유가 된다.
수아레즈는 마리아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과는 다른 경로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의 겷바체에 요셉 성인이 속하고 있다고 말한다. 성 요셉은 그 시대에 구원이 내려지기 전에 이미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고에 포함되어졌다.
예로니모와 이냐시오 성인이 든 이유를 다시 검토해보면 간음한 여자라는 오명에서 마리아를 구하기 위해 결혼이라는 장막 하에서 성취된 강생의 신비에 요셉 성인은 필요했다. 실제로는 이보다 더욱 필요했다. 그 결혼은 비록 부부간의 권리가 배제되었을지라도 실제적인 것이었다. 결혼의 모든 다른 목적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러므로 성 요셉은 마리아가 당신 아드님에 대해 가지는 사랑의 정당한 몫과 부모로서의 고유한 사랑을 가지고서 하느님에 의해 부여된 권위로써 예수에게 있어 세상의 아버지가 된 것이다. 이는 예수에 대한 성 요셉의 사랑이 마리아의 사랑에는 못 미치지만 이 땅 위에서는 가장 위대한 아버지로서의 사랑임을 의미할 것이다.성 요셉의 부성애
이것의 또 다른 면은 성 요셉이 예수와 맺었던 관계를 신비체로서의 예수와도 똑같은 관계를 가질 것으로 예정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예수에 대한 그의 사랑은 모든 인류를 끌어안기 위해 응당 치뤄야 할 과정으로 확산될 수 있는 반(半) 신적 속정이 되었다 하느님이신 예수께 대한 마리아의 모성적 사랑은 요셉의 그것과 정말로 동등한가?이 모든 것들은 하느님의 방법과 일치하며 필연적이다. 나는 성 요셉이 이 땅 위에서 예수와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성부로서의 모습이 재현되어질 예정이었다고 언급했었다. 이러한 재현은 예수가 그의 양부모님들에게 순종하며 평범하게 살아갈 때 가장 완벽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3일 동안 예수를 잃어버렸을 때 그는 하느님 아버지에 관해서 토론하면서 성전에 있었던 신비적인 일화를 살펴보면 이러한 격리된 장면은 단번에 전통적인 관계를 회복하고 있다. 예수는 그의 부모에게 복종했음을 신약성서는 말해 주고 있다. 우리는 예수가 그런 순종적인 태도를 또다시 버렸다고는 듣지 못했다.
임무와 그것을 다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은총을 주시는 것은 하느님의 섭리이다. 이러한 평범함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당신 외아드님에게 당신의 권한을 위임하셨을 때 궁극적인 극치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한 일화들이 비실재적인 면을 가지지는 않을 것이다. 성 요셉의 부권은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일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목적을 위해 가장 위대한 사람이면서 하느님이신 분에 의해 창조된 성 요셉은 가장 큰 은총을 받아야만 했다. 그의 미덕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한 것이다.
성 요셉은 어린 예수에게 있어 마리아에 의한 모성과 동등한 부성(父性)의 모델이 되었다. 그는 모든 면에 있어 실패함이 전혀 없는 이상적인 아버지로 예수에게 비춰졌음이 틀림없다. 성 요셉과 예수는 인간적인 외양을 가졌음에도 불고하고 성 요셉은 예수께서 성부로 비춰져야만 했다. 예수의 인간적인 인격 도야와 교육은 확실히는 알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성 요셉은 마리아만큼의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한다.천상적 사랑으로
거룩한 동정녀는 마리아에 대한 천상의 사랑을 가지고 마리아와 어울리며 마리아에 대한 거룩한 사랑으로 불타는 가슴을 지닌 동정인 정배 요셉을 만났다. 마치 우연히 만난 것처럼 어떤 이들은 성 요셉이 정결 서약을 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 시대의 모든 관습과 사고 방식이 그것을 강조하지 않았다면 이것은 해당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리아가 그들의 결합의 요소를 제안했을 때 그는 스스로 묵묵히 따라 주었음은 확실하다. 화가들이 종종 성 요셉의 손에 그려넣는 백합은 경건한 신앙의 세계가 성 요셉의 그러한 면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음을 보여준다.
성 요셉을 공경하는 일부 사람들은 성 요셉도 원죄없이 잉태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사실은 공식적으로 판명되지 않았고 또한 그것에 대한 증거도 없다. 예수의 육체는 마리아의 몸을 빌려야 했고 마리아는 깨끗해져야 했으므로 마리아가 원죄없이 잉태되어야 했음은 긴박한 것이었다. 그러나 요셉의 경우는 이와 달랐으며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힘을 써야 할 필요가 없으셨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어머니 모태 안에서 원죄를 없이한 것과 매우 흡사하다. 그것은 그가 지녔던 그의 고유한 인품으로 설명될 수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레미야 예언자와 세례자 성 요한에게도 그러한 특전이 부여되었는데 그들의 전교는 요셉 성인의 그것보다 덜 친밀하고 호소력이 얕다.성 요셉의 역할
지금까지 서술한 모든 것들은 요셉 성인을 한없이 높인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를 보다 높은 정상에로 이끄는 것은 없다. 그러면 무엇이 그를 한층 높여 줄 수 있는가?인간의 타락에서 아담이 한 것과 대비될 수 있는 그 어떤 역할을 요셉은 하느님의 강생에서 했었는가? 그는 확실히 중요한 역할을 했었다. 아담은 하와의 말을 믿음으로써 타락했다. 하와의 유혹은 그것이 비록 하와의 죄로 인해서가 아니라 아담의 죄때문이었어도 원조의 타락을 가져오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하자없이 아담만이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아니었다.
그러면 이러한 파멸에서 어떤 것이 강생에서의 요셉의 역할과 관계있는가?
먼저 아담과 하와 그리고 영원히 동정으로써 부부관계를 서약한 마리아와 요셉, 이 두 쌍의 관계에는 어떤 유사함이 있다. 그것은 어둠의 천사가 하와에게로 그리고 마리아에게 빛의 천사가 갔었던 최초의 시기에 있다. 그 각각의 경우에 여인들은 묵묵히 순종했고 그에 따라 대변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전자는 원조의 타락을 그리고 후자는 하느님의 강생을 가져왔다.
그 각각의 경우에 남자들은 여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아담을 하와에게 빠짐으로써 그녀의 죄를 확증했고 완성했으며 인류의 타락이 야기되었다. 요셉의 경우 그의 승리는 그의 배우자가 하느님에게서 잉태되었음을 모든 본성을 대항하여 믿도록 하는 신앙을 형성하였다. 그는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천사의 말을 믿었고 그리하여 그는 위대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의 신앙의 뛰어남은 그로하여금 예수의 영적인 아버지가 되게 했다. 이 경우에 있어 그는 이러한 역할과 동반해야만 하고 절대적인 완전함으로 그를 준비시키기 위한 필요한 모든 특은과 은총을 받는다. -마리아 1994년.63호-인류가 남긴 행적에서
요셉에게는 인류가 보다 하위의 개념으로, 그러나 마리아와는 유사한 것으로 표현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마리아의 협력은 공속자란 명칭을 얻을 만큼 그 성격상 아주 독특한 과정을 거쳤다.
강생에 대한 그분의 동의는 모든 인류에게 요청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렇게 동의함으로써 마리아는 모든 살아있는 자들의 어머니요 새 하와가 되었다.
요셉은 마리아가 새 하와인 것처럼 새 아담은 아니었다. 새 아담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나 그 역할의 재현은 요셉에게 맡겨진 듯하다. 남편으로서의 요셉은 마리아에게 성취된 것을 받아 들였으며 그의 믿음은 마리아의 믿음을 보충한다. 그는 인류를 대표하는 마리아의 동의에 지극히 중요한 어떤 것을 더해 주는 것같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남성을 대표하는데, 왜냐하면 새 아담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고 옛 아담을 가시적으로 대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점은 나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아담과 하와는 타락하기 전까지는 인류의 원조라는 중요한 의미를 지녔다. 구세사에서 마리아는 예수의 가장 완전한 정신적, 육체적인 어머니이며 신비체인 교회를 양육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요셉은 예수의 육체적인 아버지가 아니라 천사의 인도로 믿음에 의해 예수의 아버지가 되었고, 예수와 마리아의 보호자요 예수의 영적인 아버지이면서 동시에 신비체인 교회의 양부가 되었다.교회의 수호자
예수와 마리아에 대한 요셉의 도움이 현세 생활에서 필수적이었던 만큼 교회에 있어서도 역시 필수적이다. 1870년 12월 8일, 비오 9세께서는 성 요셉을 교회의 수호자로 선언하셨다. 1961년 요한 23세께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심의와 그 결과들을 성 요셉의 보호에 맡기셨고 1963년 11월 13일에는 고대의 미사전문에 요셉 성인의 이름을 덧붙이셨다.
그러나 그에게 맡겨진 소명이 교회의 명령에 의해 주어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되며 교회의 이러한 선언을 엄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더우기 "수호자" 라는 단어가 그의 기능을 표현하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하느님의 강생에 있어 그의 관련성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것이며 다른 어떤 성인들의 상호작용과 비교해 보아도 질적으로 다른 것이다. 그는 예수의 양부였듯이 교회의 아버지이다. 마리아 또한 예수의 실제적인 어머니였던 것처럼 교회의 어머니이다. 가톨릭적인 전통에 따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존엄한 세 이름은 신학적으로 세워지므로 우리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그 분들에게 열과 성의를 다해서 존경하도록 하자.성가정의 보호자
우리는 성모영보 때 천사의 발현 이후 성가정의 피난과 관련한 하느님의 메시지는 마리아가 아닌 요셉에게 내려졌다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만 한다. 이는 그가 명실공히 성가정의 가장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성서의 "꿈에 나타나다" 라는 이 표현은 가장 깊은 의미의 중재를 대표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있어 요셉의 협력을 요청하기 위해서이고, 마리아와 예수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이며, 마리아와 예수를 에집트로 데려감으로써 하느님께서 예언자를 통해 "내가 내 아들을 에집트에서 불러 내었다" (마태 2,15) 라고 하신 말씀을 이루어 하느님의 구원의 길에 서게 된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주의 천사가 나타나서" 라는 똑같은 구절을 세 번씩이나 사용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신비적인 말에 있어 꿈을 의심해서는 안된다. 천사의 말은 아주 단호하고 분명했기 때문에 요셉은 곧장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에집트로 피난할 때 요셉은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 않고 곧장 일어나 겨울의 어둠을 헤치고 산길을 따라 모진 여행의 위험을 떠맡았다. 한번이라도 그와 같은 경험을 해 본 사람이면 그 당시의 공포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요셉의 책임을 놀랄 정도로 컸다. 요셉의 두려움은 자신의 보호에 전적으로 맡겨진 사람들에 대한 지극한 염려로 인해 사라져 바렸으며 그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은 지혜롭게 드러났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신앙의 엄청난 시련은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약혼녀 마리아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한 시련은 요셉이 협력했던 세 가지 점에 있어 마리아의 비애와 유사한 영혼의 고뇌를 갖게 한다. 그가 본 것은 이해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엄연한 현실이었다. 율범을 준수하는 그로서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없었으나 그렇다고해서 마리아를 공공연히 비난할 수도 없었다. 그는 조용히 파혼하기로 결심했다.
그가 이런 생각을 품고 있을 때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 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마태 1,20-21) 하고 일러 주었다.
여기서 천사의 두 번째 알림과 비견될 만한 천사의 통보를 분석해 보자. 요셉의 꿈에 나타난 천사의 알림은 극적이지는 않지만 마리아에게 강생을 알리는 천사의 방문과도 유사하지 않는가? 이러한 사실들은 예수의 잉태와 관계가 있고 아기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것과 인간의 개입없이 잉태되었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으며, 초자연적인 신앙에 근거한 동의를 요구하고 있다.신앙의 응답
요셉은 마리아와 그 아들 예수를 자신의 가족으로 받아들여 그들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질 것을 요청받고 있다. 아들 예수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었고, 이름은 예수라 불릴 것이며, 예수는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요셉은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관조해야만 했는데, 곧 이스라엘의 모든 역사가 그의 뇌리를 섬광처럼 지나가면서 인간의 타락, 구원의 약속, 예언의 여인, 아기를 가진 동정녀, 임마누엘, 구세주의 어머니, 이 모든 것들은 그에게서 지금 일어나려는 사건에 모두 포함되어져 있는 것이었다. 이 운명의 여인은 바로 자신에게 예정된 아내이며 그는 이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여야 한다. 요셉은 이제 자신이 하느님 계획의 일부분임을 이해하게 되었고 의심의 여지 없이 "예" 의 응답을 하게 된다.
신앙의 힘은 엄청난 것이어서 이상을 실현한다. 요셉의 신앙은 마리아의 신앙만큼 위대하지 않았던가? 그는 천사의 말을 마리아가 그랬던 것처럼 그도 역시 믿고 순응했으며 인간의 모든 가능성을 뛰어넘는 그 무한함을 믿었다.신앙의 횃불인 마리아
천사와 대면한 마리아의 응답은 "예" 였다. 그러나 여기에는 신중한 고려가 있어야 했고 마리아의 행실은 단정했다. 마리아는 율법을 준수했고 스스로 자신을 다스렸다. 마리아의 신앙은 조상들에게서부터 물려받은 본질적인 것이었으며 모든 인류, 모든 시대를 통틀어 마리아 홀로 인류 갱생의 하느님 계획을 품을 수 있었다. 마리아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다. 마리아의 신앙은 이 땅에 하느님을 낳았고 사랑과 자비를 가져왔으며 초자연적인 질서가 이루어지게 되었고 은총은 충만해졌다. 이제 사람들은 능력껏 이 은총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 요셉은 하느님의 새로운 섭리의 은혜를 받았다. 그는 예수에게서 풍성한 은총을 받았고 마리아를 통해서도 은총을 받았다.
"마리아는 인류가 예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며, 예수께서 인류에게로 오시는 유일한 길이다."
우리는 세례자 요한이 마리아의 중재를 입은 첫 번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요셉은 그보다 더 먼저가 아닐까?
이것은 바로 요셉의 신앙이 마리아의 신앙과 동등할 수 없다는 이유가 된다. 요셉의 신앙은 자신에 의해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마리아의 도움 덕분이다. 마리아를 표현하는 이름들 중의 하나는 "신앙의 횃불" 이다. 신앙의 횃불이 처음으로 강렬하게 비추었던 사람은 마리아이고 이것은 마리아의 특전이다. 그러므로 요셉을 포함한 모든 성인들은 마리아로부터 조명되어져야 한다. 그러나 요셉의 신앙은 마리아의 신앙에 가장 가까이 있다. (프랭크 더프.레지오 마리애 설립자)-마리아 1994년.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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