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트외팅의 성자 콘라드
1934년 성령강림 대축일 로사에서는 지극히 단순한 생야를 살았던 카푸친회의 수사를 성인품에 올리게 되었다. 그는 바이에른 지방에서 많은 공경을 받아왔던 파르츠함의 콘라드 수사이다. 그는 파르츠함에서 어떤 농부의 아홉 번째 아이로 태어나 31살까지 부모님의 집에서 살았다. 그곳에서 그는 예수님과 성모님께 대한 내적 사랑이 돈독하였고 많은 자선을 행하였다. 아버지 농장의 상속자로서 자기 몫의 일부는 고향 사람들에게 그리고 나머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자신은 카푸친 수사로서의 단순한 삶을 살았다.
마리아께 대한 깊은 공경으로 그는 많은 은혜를 받았다. 이미 어린시절부터 그는 천상 어머니께 대한 특별한 신뢰를 갖고 있었는데 학교가는 길에서 항상 묵주기도를 바쳤고, 더군다나 학우들에게도 같이 기도하도록 권고했다. 청년이 되어서는 마뭇간이나 논밭, 숲속에서 묵주는 없어서는 안될 동반자였다. 때로는 손에 감고 있기도 그방해가 되지는 않았다. 그는 자주 성모성지인 알트외팅을 방문하였다. 또한 그는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 형제회' 의 회원으로서 스카풀라를 착용했다. 그는 서원에 앞서 봉헌을 위한 글귀를 적어 놓았다. "나는 항상 내적으로 지극히 복되신 마리아께 경건한 마음으로 그리고 열렬한 마음으로 그분의 덕행을 따르도록 노력하겠다."
그는 하느님의 계획 안에서 마리아의 비길 데 없는 위치에 대해 좋은 지식으로 채워져 있었고 그의 신심은 언제나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였다. 그의 신심은 결코 광식적이거나 부자연스런 것이 아니었다. 마리아께 대한 사랑의 핵심은 언제나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님께로" 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마리아께 대한 사랑이 커져 그는 수도원에서 위대한 마리아 공경자가 되었으며, 오늘날 우리가 그를 경탄할만한 인물로 보게 된 것이다. 장상들이 그를 알트외팅 성지에서 가까운 성 안나 카푸친 수도원에서 힘든 문지기의 소임을 맡겼을 때는 아주 행복해 했다. 그는 입구에 커다란 성모상을 모셔놓고 알렉시우스라고 불리우는 작은 방에는 조그마한 상본을 걸어 두었다. 그는 실로 처리해야 할 많은 일들이 주어졌지만 그래도 매일 성모 소성무일도로 기도드리는 시간을 가졌다. 놀라운 방법으로 하느님의 전능은 왼손 중지에 무염시태 묵주 반지를 끼고 다녔던 그를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었다. 그는 무엇보다 성모님을 원죄없이 잉태되심과 고통의 어머니로서 공경하였다. 사람들은 성당에 있는 통고의 성모상 앞에서 두 팔을 벌려 자주 기도드리던 그를 볼 수 있었다. 그는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마리아를 모든 인류의 어머니로 주시게 되었음을 알았고 언제나 마리아와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을 일치시킨 그의 모토 "십자가는 나의 책이다" 를 바라보았다. 구세주의 죄없으시고 굴욕적인 고통에 그의 동정어린 참여는 마리아의 순수한 덕행을 본받으려는 것이었다.
그는 알트외팅을 향한 자신의 소명을 소중하게 여겼다. 알트외팅의 성모님께 사랑을 드리고 미사 때 복사하기 위하여 41년 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성지의 오래 된 경당으로 올라갔는데 이것이 그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특권을 고집하지는 않았다. 어떤 사람이 복사하기를 원하면 그는 겸손하게 기꺼이 양보하고 경당 한쪽 구석에서 조용히 무릎 꿇고 기도에 잠겼다. 그가 건강할 때는 낮휴식 시간에도 경당에서 지냈다. 그가 묵주기도를 드릴 때와 성변화 후에 팔을 벌려 현존하시는 주님을 깊이 흠숭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이 세상을 초월한 아름다운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했다.
성인의 불같은 탄원들이 은혜로운 제대 앞에서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렀는지는 증인들이 복자품에 오르는 과정에서 책임지고 진술했다. 콘라드 수사가 성모상 앞에서 오랫동안 묵주기도를 바치는 동안 사람들이 눈으로 볼 수 있는 불꽃과 때로는 반짝이는 불덩이들이 성모상 위로 날아갔다. 한번은 방문객들이 성인의 머리 위에 빛나는 별들로 된 화관을 보았다. 그는 5시에 미사를 드린 후 곧바로 5시 30분에 드리는 미사에 복사를 했으며, 다음에는 깊은 묵상에 잠긴 채 지름길로 해서 집으로 돌아갔다. 이리하여 그는 새로 기운을 얻어 언제나 천상 어머니의 눈길 아래 즐거워하며 그의 힘든 하루의 일을 시작하고자 했다. 그는 영원한 안식을 누릴 때까지 매일 이렇게 했다. 1894년 4월 21일 토요일에 그는 알트외팅의 정문에서 종이 울리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이날 그의 성모 공경의 깊은 갈망이 채워졌는데 어머니께서 그를 아드님께로 데리고 가셨던 것이다. 그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겸손한 종을 위해 준비해 두셨던 환희에서 조금이라도 빛을 발산하도록 하셨다. 그의 장례식은 이상한 개선 행렬의 형태가 되었다. 주민들의 그에 대한 공경은 이미 그의 생전에 있었으며 사후에도 여전히 그러하였고 교회는 그를 복자품에 올렸다. 알트외팅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은 거기서 이 위대한 성인의 특별하고 은혜로운 현존을 감지할 것이며, 아버지의 협조자로서의 그의 강력한 중재기도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심 바오로 신부. 마리아니스트회)-마리아 1994년.6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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