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스꼬의 삶에 나타나는 마리아
사랑의 소명을 받다
돈 보스꼬는 그의 삶 전체를 마리아께 봉헌하였고, 마리아를 사랑하며 의지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가 마리아께 의탁하는 세 가지 근본 원인을 기억하십시다. 마리아는 모든 창조물 가운데 가장 성스러우시며,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이고, 마리아는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요한 보스꼬는 1815년 8월 16일에 태어나 이 날에 세례를 받았다. 그가 신학교에 입학하던 1835년 10월 30일에는 자신의 어머니 마가렛이 얼마나 훌륭한 분인가를 깨닫게 된다. "드디어 널 성모님께 온전히 봉헌하게 되었구나! 난 너를 이미 성모님께 바쳤단다."
그가 어느 날 밤 꿈을 꾸었는데, 꿈 속에서 한 남자를 우연히 만났다. 그분은 주님이었으나 요한은 언뜻 알아보지 못했다. 보스꼬는 다른 불량배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자 그가 다가와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만! 넌 사랑으로 승리해야 해! " 놀라움과 의심이 뒤섞인 목소리로 9살난 소년을 말했다. "누가 저에게 그런 사랑을 가르치겠습니까?" "그 분은 바로 나의 지혜로운 어머니이시다." 이때 성모님이 나타나서 말씀하셨다.
"넌 사랑을 모르는 채 늑대들과 싸우고 있구나! 용기를 내어 그들 밑으로 들어가 보아라. 그들은 순한 양들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것은 후에 너의 소명이 될 것이다."
7년 뒤 요한은 라틴어를 배우는 카스텔수오보에 있는 방목장에 가게 되었다. 이웃 사람들은 기쁨으로 가득 찬 소년의 얼굴을 보고 놀라와했다. 그것은 어쩌면 그렇게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었다. 그는 지난날 밤에 바로 자신의 미래를 알게된 꿈을 꾸었던 것이다.
"나는 앞으로 사제가 되겠습니다. 나는 어떤 고귀한 부인이 내게 다가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은 굉장히 많은 양떼들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 분은 내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이 양들을 너에게 맡긴다. 너는 양들을 정성껏 돌봐야 한다. 네가 목장이 없다고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내가 너의 보호가 되고 도와줄 것이다.' "
이와 유사한 꿈은 그가 부제품을 받기 직전인 1840년에도 꾸었는데 그 때에도 이전에 나타났던 성모였다. 불량배들을 사랑으로 굴복시키리라는 말씀은 1841년의 성모 무염시태 축일(12월 8일)에 현실로 일어났는데, 그것은 곧 16살난 고아 바르톨로메오 가렐리와의 유명한 만남이었다.
성 프란치스코 성당의 성당지기가 어느날 가렐리를 마구 때리고는 제의실에서 내쫓아 버렸다. 이를 본 돈 보스꼬는 불쌍한 소년을 데려와서는 이야기를 나누고 그와 함께 자신의 첫 번째 교리공부를 시작하였다. 이것이 바로 더 큰 활동을 위한 초석을 놓은 것이었다. 그후 45년 뒤 요한은 자신이 나타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유명해지고 존경을 받게 되었다. 그는 말하였다.
"우리는 예측할 수 없는 은총의 샘을 1841년 12월 8일 무염시태 축일에 노래한 마리아께 드리는 기도 중에서 찾아야 합니다. 나는 그날 온 정성을 다 바쳤습니다. 성모님은 나의 기도를 들었으며, 주님은 반세기 동안 당신 비천한 종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요한은 특별히 성모님을 공경하였기에 "마리아 - 그리스도인의 구원자" 라는 제목으로 교황께 간원하였다. 교황 비오 5세는 그의 간청을 레판토 연도에 끼워 넣었다. 이 전례의식은 교황 비오 7세가 유배지인 사ㅗ나에서 돌아온 기념식의 첫 부분에서 불려졌는데 이 날이 1814년 5월 24일이었다.
"마리아는 나의 전 생애 동안에 모든 것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요한은 항상 이 말을 반복하면서 온 교회가 마리아를 공경할 것을 바라고 요구하였다. 그가 살레시오 수녀회를 시작하면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여러분들은 내가 온 정성을 바쳐 지켜온 이름을 지녀야 합니다. '마리아 - 도움의 딸', 성모님은 여러분을 통해 온 세상의 딸들에게 도움을 주시고자 하십니다.
수녀회가 창설되던 해에는 마리아 도미니카 마자렐로 외에 14명의 자매가 있었느데 이후 92년 뒤에는 18,000여 명으로 늘어났다. 현재는 전 세계에 1,450여개의 지역부를 갖게 되어 두 번째로 큰 수녀회가 되었다. 이에 앞서 요한은 후기 소명을 위해서도 노력하였는데 1876년에 "마리아 - 그리스도인의 협력자" 라는 기구를 창설하였다. 후기 소명인 이 교육 및 단기연수 계획을 결국 성직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요한이 으름붙인 "마리아"는 그를 가장 충실히 따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수도원장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자비로운 성모의 도움이 항상 여러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과 자주 영성체 할 것을 아이들에게 부단히 권고하기 바랍니다!"
요한은 임종 직전의 기도에서 계속 반복하였다.
"오, 예수, 마리아, 내 마음과 영혼을 드립니다. 어머니여 내게 천국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 주소서.
그의 시신은 19229년 6월 9일 이후로 투린(이태리의 북부도시)에 있는 "마리아의 도움"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마가렛
요한이 신학교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의 어머니 마가렛은 그에게 탈라르(성직자가 입는 가운)를 입히면서 아들의 눈을 바라보며 말하였다. "아들아, 넌 이제 사제의 옷을 입는구나. 난 지금 아들의 행복에 대해 모든 어머니가 느낄수 있는 그런 신뢰감을 느낀다. 내가 너를 낳을 때, 난 너는 성모님께 봉헌했지. 그때부터 나는 네가 온 마음을 다 바쳐 진정으로 성모님을 공경할 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너의 귀를 좋으신 천상 어머니께 기울이려무나. 또한 네가 사제가 되는 행복을 갖게 되면 그 때에는 성모님의 사도가 되기를 바란다."
6년이 지난 1841년 그리스도의 성체축일에 있었던 그의 첫미사에서 마가렛은 저녁에 아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말하였다.
"넌 이제 사제가 되었구나. 미사를 올리기 시작한다는 말은 이제부터 곧 시련이 시작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란다. 아마 내일부터 아니 지금 곧 시작될지도 모르겠구나! 넌 내 말이 옳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너는 내가 살아있는 동안에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하겠지. 또한 내가 죽은 뒤에도 그렇게 해 주겠지? 그러나 난 괜찮단다. 나를 위해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오로지 영혼들을 구하는데 온 마음을 쓰기 바란다." -마리아 1994년.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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