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스의 신부님; 요한 마리아 비안네
성인들은 우리들에게 마리아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나는 마리아와 관계없는 성인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르시의 성인 신부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우리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주시고 난 후에도 우리들을 보다 더 값진 당신의 보물의 상속자, 즉 가장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상속자로 삼으셨다."
이 말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의 기본적 요소를 알 수 있다. 아르스의 신부는 주님과의 관계 다음으로는 마리아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성인들은 우리에게 마리아에 관해 해 주고 싶은 말이 매우 많은데, 특히 아르스의 성인 비안네 신부가 그렇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맹목적인 열성도, 과장된 해석도, 개안적인 편애도 또 종교적인 취미도 아니다. 그가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가톨릭 신앙의 가장 심오한 진리이다. "사랑하는 하느님은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보다 더 아름다운 세상을 창조하실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피조물도 마리아보다 더 완전하게 창조하실 수는 없었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마리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하느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나의 첫사랑이다. 나는 그분을 알기 이전부터 그분을 사랑했다."
아마 우리는, 성인의 어머니가 성인을 출생하기 전 이미 그를 동정녀께 봉헌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이 말을 보다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마리아는 사랑으로 그에게 다가왔는데 마리아에 대한 그의 사랑은 이 사랑에 대한 보답이었다.
요한이 세 살 때, 그의 어머니는 아이를 잃어버려 크게 걱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를 어디서 찾아냈는가? 소들이 있는 마굿간에서 무릎을 꿇고 어머니가 선물로 주었던 조금만 성모상 앞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방해받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지않는 이 장소를 택했던 것이다.
그는 성모상을 호주머니에 넣고 축사가 있는 들판으로 자주 갔었다. 거기에는 버드나무 고목이 한 그루 있었는데 그는 그 버드나무에 구멍을 내고 조그만 성모상을 모셔놓았다. 그리고는 이끼, 나뭇가지, 꽃 등으로 꾸며놓고 풀밭에 무릎을 꿇고 묵주기도를 바쳤다.
열 여섯 살 때에 요한이 이 조그만 목각 성모상을 기억하고 있었다. "오, 나는 이 성모상을 얼마나 사랑했던가? 나는 언제, 어디서나 그 성모상을 떠날 수 없었다. 그리고 항상 내 조그만 침대 안에 두지 않고서는 잠을 이룰수가 없었다."
요한은 공부를 하는데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가 당면한 문제는 그에게 사제서품이 허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는데 마침 주교 총대리가 요한과 함께 신부가 될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마리아 비안네는 경건한가? 마리아를 공경하고 또 묵주기도는 잘 바치는가?" 이런 물음에 "예, 그는 마리아의 공경과 기도는 모범적입니다" 라는 동정적인 대답을 받고나서, 주교 총대리는 "그래 좋아, 그가 경건하고 모범적이라면 사제서품을 허락한다. 그 밖의 은총은 하느님께서 스스로 해결해주시겠지."
실제로 하느님의 은총이 마리아를 통해서 내렸다. "마리아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친구들인 가난한 사람들을 너무나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신다." 그리고 성인은 마음에서 우러나는 겸손으로 이렇게 말했다. "마리아는 나의 진정한 사제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다 주셨으나 나는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마리아가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제라면 요한이 마리아에 관해 말한 것과, 마리아가 그에게 어떠한 위치에 있는가를 자세히 알아보자.은총을 중재하시는 분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간청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실 것이다. 또한 어머니께서도 아들이 간청하는 것을 모두 똑같이 들어주실 것이다."
여기서 아르스의 신부는 마리아를 은총을 중재해 주시는 분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중재자이신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함께 계신다. 마리아는 보다 넓은 뜻으로 단 한 분이신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계신다. "부유한 부모에게 오직 한 자녀만 있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이 자녀는 정당한 상속인일 것이다. 아담에게 있어서도 사정은 같다. 아담의 자녀들은 원죄때문에 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두 죽었다. 그러나 마리아는 원죄에서 제외되어 있었다. 아담의 자녀들이 원죄가 없었다면 은총과 총애를 상속받았겠지만 원죄로 인해 그 상속들을 마리아께서 모두 받으셨다. 은총의 선물은 얼마나 풍부한가! 얼마나 풍성한 총애를 받았는가! 하느님은 마리아를 당신의 은총을 관리하는 분으로 삼으셨다."
또 다른 한 가지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문지기에서 청하지 않고서는 남의 집에 들어가지 못한다. 가장 복되신 동정녀는 하늘나라의 문지기이시다." 아르스의 성인 신부는 "어떠한 은총도 마리아의 손을 거치지 않고,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받을 수는 없다" 확신했다. 그는 거듭해서 다음과 같은 요청을 했다. "항상 우리의 기도를 귀담아 들어주시는 가장 복되신 동정녀께 기도드립시다. 확신을 가지고 그분께 매달립시다. 그러면 어떠한 불행이 있다 하더라도 확실히 우리에게 회개의 은총을 얻어 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 아르스에 왔다. 사람들은 그를 무척 공경했지만 그는 이런 일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그는 언제나 겸손하게 중개자로서 모든 것을 완성한 마리아에 관한 얘기만 했다. 사람들은 그에 관해 "그는 언제나 회개의 은총을 사랑하는 마리아께 돌리려고 마음썼다." 고 말했다. 나는 지금 여기서 아르스의 성인 신부와 함께 똑같은 확신을 가지고 외친다. "오! 티없으신 마리아여, 당신은 하느님 곁에서 당신이 원하시는 모든 것을 다 이루셨나이다."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프로비덴스라는 고아원에서 아르스 신부를 성실히 도왔던 가타린 라싸뉘도 후에 아르스 신부의 삶의 증인이 되었다. 그녀는 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마리아의 원죄에 물들지 않은 잉태는 그의 가슴에 매우 값진 것이었다. 그는 가장 거룩한 동정녀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라는 존칭으로 공경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며, 또 거기에다 큰 가치를 두었다.
1836년 5월 1일 그는 자기의 본당을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께 봉헌했다. 그는 이 날을 기념하여 하나의 표지판을 만들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했다. "여러분들은 마리아께 봉헌하십시오! 그리고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를 공경하십시오!" 그 뒤 1854년 12월 8일 교황 비오 9세가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에 관한 교리를 선포한 것은 그에게 큰 기쁨이 되었다. 교황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얼마니 큰 기쁨인가! 나는 언제나 마리아의 불빛이 아직도 가톨릭의 진리의 빛속에 결여되어 있다고 생각해 왔다. 그리고 이 결함은 우리의 종교 속에서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또 말했다. "하느님의 세 위격이 가장 복되신 동정녀를 보고 계셨다. 흠이 없으신 그분은 당신을 아름답게 해주고, 가장 거룩한 삼위일체의 마음에 들도록 모든 덕으로 꾸며져 있다."
교황은 또 개인적으로 한 사제에게, 자기가 대리주교 시절에 한 서원이 거룩한 순결을 해치려는 모든 유혹을 이겨내게 해줬다고 고백했다. 그 서원이란 매일같이 다음과 같은 짧은 기도를 여섯 번 바치는 것이었다.
"가장 복되신 동정녀여,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는 영원히 찬미받으소서. 아멘."마리아의 성심
우리는 마음으로 아는 사람을 진정으로 안다. 우리는 한 인간의 가장 내면적인 것, 즉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마음을 열기 때문에 우리는 한 사람을 알기 위해서는 그를 사랑해야만 한다. 아르스의 성인 신부는 마리아를 어떻게 사랑했는가?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심은 우리들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가득 차 있어, 모든 어머니들의 마음은 이에 비한다면 한 조각 어둠에 지나지 않는다. 마리아의 성심은 사랑과 자비심 뿐이다. 그분이 보시고자 한 것은, 우리들이 행복한 것을 보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것은 그분이 들으시도록 그분께 기도하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
사람들이 성인에게 어떤 죄인의 회개를 위해 기도를 요청했을 때, 그는 마리아께 기도하고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공경하는 9일기도를 바치라고 권했다.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것을 권장했다. "나는 이미 오래 전에 말라버린 것 같은 우물에서 물을 길어내는 일을 자주 했다. 사람들은 이 우물에서 물을 완전히 다 길어내버릴 수도 있었을텐데..."하느님 어머니께 드리는 기도
아르스 신부는 마리아와 티없으신 성심이 좋다는 것은 그분에게 기도로 대화하는 사람들만이 알 수 있다고 했다. 아르스의 신부는 끌레르보의 베른하르트처럼 우리들이 그분께 기도를 하는 것은 절대로 헛되지 않고, 또 그분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는 죄인들을 위해서는 그분이 자비로움과 사랑이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인자하시고 너그러우신 마리아께서는 기도하는 죄인들에게 끊임없는 동정의 눈길을 보낸신다. 그러므로 죄인드이 이 좋으신 어머니께 기도를 하면, 창문을 통해 그 죄인을 들어오게 하신다." 우리는 이때 성인이 마리아가 중재자라는 것을, 예수님의 어머니라는 무거운 짐에서 분리시키고 있다는 사실로 알아들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옳지 못하며 다음과 같은 말이 이런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기도는 가장 복되신 동정녀께 죄인들을 위해 피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봉헌한 당신의 아들을 영원한 성부께 희생으로 바치시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도이다. 왜냐하면 모든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겨나기 때문이다. 나의 자녀들이여, 잘 들으라. 나는 한 가지 은총을 받았을 때에는, 언제나 이런 방법으로 그 은총을 얻었다."
그는 시인다운 비유로 말했다. "우리의 손이 좋은 냄새가 나는 물건을 만지게 되면, 그 손은 어디에나 좋은 향기를 뿌리게 된다. 그러니 우리의 기도가 가장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의 손을 통해 전달되게 하자. 마리아는 당신의 손을 달콤하고 좋은 냄새로 가득 채워줄 것이다."
요한 마리아 비안네는 매우 실질적이다. 그는 매 시간마다 성모송을 바치고, "그 시간을 축복하라" 고 거듭해서 권장했다. 이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몸에 익혀버린 습관이었다.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였다. "찬양받으실 하느님, 내 영혼을 북돋워 주소서! 시간은 흘러 가고 영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죽어야 하는 것처럼 그러나 우리는 살고 싶습니다. 가장 복되신 동정녀이시요, 하느님의 어머니시며 원죄없이 잉태되신 마리아여 찬미받으소서."
그는 또 자기의 아이들(본당의 어린이들)에게 길거리나 오솔길에서도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루에 세 번씩 '삼종기도' 를 바치도록 지도했다.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읽은 일이 있다. "그의 요청을 헛되이 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세 번의 종을 골짜기에 울려퍼지게 하고 높은 곳에 이르게 하면, 남자들은 모자를 벗고, 부인들은 손을 합장하여 '주의 천사가 마리아께 아뢰니...' 하고 모두 삼종기도를 바쳤다."
친애하는 순례자들이여, 나는 성인이 몸소 말한 모든 것을 말씀드릴 수는 없다. 다만 마리아께 대한 그 분의 사랑이 여러분들의 마음에 와닿아 따뜻하게 해 주기를 바란다. 마리아께 나아가는 우리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래서 성인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들이 죄를 많이 지으면 지을수록 마리아는 우리들에게 보다 더 온유하시고 동정심을 베푸십니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눈물을 많이 흘리게 한 어린이가 어머니의 마음에 가장 소중히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언제나 자기의 자녀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의지할 곳 없는 자녀에게로 서둘러 가지 않습니까? 의사는 중병을 앓는 환자에게 먼저 치료를 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또 아르스의 성인 신부는 "아들은 정의로우시나 어머니는 사랑이시다" 라고 고백했다. 오늘 여기 바누에서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과 함께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기쁜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자. "하느님, 감사합니다. 당신의 우리 죄인들을 위해 인자하신 어머니를 보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마리아께서는 이제 당신이 오신다는 약속을 몸소 새롭게 하시고 우리 모두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으라. 그러면 나도 너희들을 믿는다.' 아멘." -마리아 1994년.64호-
[HOME] Copyright 2000-2003 Agnes L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