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슬픈 것이 있다면 그건 오직 성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느님은 유동적이던 16세기에 일련의 성인들을 교회에 선사하셨다. 예수의 데레사 성녀는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성녀는 어릴 때부터 재능이 뛰어나다. 어머니는 데레사에게 성인들의 전기를 읽을 거리로 주었다. 데레사는 그 성인들에 의해 하느님께로 향한 불길이 뜨겁게 타올랐다. 그러나 그녀가 기사 소설을 읽기 시작한 후로는 하느님께로 한 열정이 식어버렸다. 어머니와 사별한 후에도 데레사는 세속적인 생활에 휩쓸리며 살았었다. 그러나 18세가 되었을 때 데레사는 "저는 수녀원에 들어가기로 결심했어요" 라고 말한 뒤 남몰래 울면서 집을 나왔다. 하지만 데레사는 수녀원에 살면서도 오랫동안 그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미지근한 규칙속에서 외적인 것에 빠져 내면의 기도를 할수가 없었다. 두 번째 회개에 이르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어느날 채찍을 맞은 구세주의 모습이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마음이 뒤흔들어 놓았다. "제가 지금까지 영위해왔던 생활은 오직 저만을 위한 저의 삶이었습니다. 이제부터는 하느님의 뜻을 쫓는 하느님의 삶을 살겠다고 저는 감히 말하고 싶습니다." 그후 데레사는 아주 엄격한 자기 수련을 통해 무아지경과 황홀경을 넘어 관상에 이르기까지 자신의 기도의 삶을 상승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녀는 통찰려과 황홀경을 얻었다. 그것은 데레사의 위대함 점이다. 순수한 사랑의 불꽃에서 사도직이 자라났다. "정신적 자극과 행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기도의 목표입니다." 비젼이나 고양된 무아지경에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같이하는 데서 그녀는 가장 높은 완전성을 보았다. 즉 "우리 모두는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고 있는 것을 우리의 전 의지로 포용하고 또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알 때는 고통과 아픔을 기쁨과 마찬가지로 즐겁게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녀는 저술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하느님께로 인도하는 안내자가 되었다. 데레사는 "한번 기도를 시작한 사람은 아무리 많은 잘못을 범한다 하더라도 결코 기도를 그만 두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인간을 변화시키는 유일한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데레사는 언제나 자신의 글에서 하느님께서 누군가로 하여금 기도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은총들 중의 하나라는 것을 언제나 거듭 강조한다. 악마가 누군가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한다면 사람은 영혼이 없는 육신과 같으며 이것이야말로 악마의 가장 사악한 유혹이라고 데레사는 생각한다. 데레사에게 있어 "기도는 모든 인간에게 있어 선의 출발점이며 은총의 입구" 이다. 그녀의 기도를 위한 격려의 글들에서 "기도의 목표는 기도를 통해서 행동이 나오고 또한 늘 새로운 행동을 자라게 하는 데 있습니다." 라고 말한다.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을 맡은 사람은 청소년과 민중으로 하여금 기도를 실천에 옮기도록 인도해야만 한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에게 기도라는 보물을 주자! 종교적 형상이나 성서말씀으로 묵상기도를 해보자. 우리가 하느님의 사랑으로 행하는 노동과 휴식과 기도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자. 그러나 기도는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감사하는 것이다.
   "자신들의 삶으로 기도하도록 가르칩시다. 자신들의 내면을 움직이는 모든 것을 하느님께 보이도록 합시다. 사람은 기도 속에서 하느님과 함께 대화할 때에 비로소 자신의 참다운 존엄성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데레사에게 기도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도는 어떤 더 높은 존재자 앞에 그저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살아있는 대화자와 만나는 것이다. 데레사는 그분이 현존하시는 가운데 자신의모든 삶을 영위했다. 그녀의 기도의 특징은 복음을 따르는 것이다. 신성과 인성을 취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께서 지상에 인간으로 태어나신 방식이 그녀의 모범이다. "저는 언제나 복음 말씀 한 마디 한 마디를 음미합니다. 그 말씀들은 다른 모든 것보다 더 깊이 저의 정신을 집중시켜 줍니다. 제가 기도하는 동안 저를 떠받쳐주는 복음은 모든 것을 능가합니다. 그 복음에서 저는 저의 가련한 작은 영혼이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퍼냅니다." (완덕의 길 21,4)
   이렇게 데레사는 점점 더 하느님과의 우정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그녀에게 기도는 자주 그리고 기꺼이 함께 있고 싶은 친구와 함께 있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왜냐하면 저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그녀는 또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당신은 당신과 함께 있기를 어려워하는 자가 당신 대전에 머무는 것을 그대로 참아주심이 사실입니다. 오 하느님! 당신은 그 영혼에게 얼마나 좋은 벗이 되어주시는지요. 얼마나 은총을 아낌없이 그에게 내려주십니까! 그를 참고 기다리시는 그 깊으신 인내! 당신은 그 비천한 신분을 참아보시는 너그러우심을 보이면서 그가 스스로 당신 지위에 맞추기를 기다리십니다" (자서전 8,6) 그러나 그녀는 친구와 친밀한 교제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과의 필요한 거리를 잃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하느님은 그녀가 그녀 시대의 아이로서 "주님"하고 부른 "완전한 다른 분"임을 또한 알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 위대한 수녀의 가르침이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진시란 친구로서 체험할 수 있다. "오, 나의 임이시여! 당신은 그 얼마나 성실한 벗이십니까? 전능하신 당신께서는 원하시자마자 무엇이든 하실 수 있으십니다. 아니, 당신은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을 결코 그치지 않습니다. 오온 세상의 주님이시여, 창생은 당신을 찬미할지어다! 아, 주님은 당신 벗들에게 얼마나 충실하신지를 온 누리를 향해 선언하는데 그 누가 충분한 목청을 갖고 있겠습니까? 온갖 피조물이 우리를 배신합니다. 그러나 우주 만물의 주님이신 당신은 결코 배반하는 일이 없으십니다. 오 나의 임으시여! 당신은 그 얼마나 정답고 부드럽게 조심스럽고 기분좋게 그들을 다루실 줄 아시는지요! 당신밖에는 그 무엇도 도무지 사랑해 본적이 없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서전 25,17).성녀 데레사는 자신의 기도서에 있는 쪽지 한 장에다 마음을 두고 본받을 가치가 있는 조언을 남겨놓았다. 즉 "어떤 것도 당신을 불안하게 하거나 놀라게 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느님은 영원합니다. 인내는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하느님을 소유한 이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하느님만으로 충분합니다." "하느님만으로"는 또한 하느님이 사랑하는 모든 것도 포함된다. 아무것도 잃는 것이 없으며 기껏해야 분열을 잃을 뿐이다. 그 대신 그 모든 다양한 것보다 더 가치 있는 것, 이 세상이 주지 못하는 것, 즉 전체의 일치와 조화 그리고 평화를 얻게 된다. 그녀는 하느님으로부터 인간과 그리고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아주 새롭고 정화된, 아주 내밀한 관계를 찾게 된다.
   미사와 성사에서의 그리스도의 현존은 데레사에게 있어서는 삶의 중심이었다. 하느님의 모든 백성뿐만 아니라 가장 거룩한 평신도들도 사제가 없으면 제대에서 십자가 희생을 현존시킬 수 없다. 하느님은 이러한 사제직을 사제들에게 맡기셨다. 이로써 교회와 세상에 대한 그들의 의미가 밝혀진다. 주님은 데레사에게 어떤 환시를 통해서 어느 사제의 성전을 모독하는 행동을 보여주셨다. 그리스도는 그의 죄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성변화에서 오는 힘은 여전히 남는다고 말씀하셨다.
   데레사는 고해성사를 높이 평가했고 바로 그 때문에 주님의 풍부한 축복을 경험했다. 고해성사에서 우리는 모든 고통의 뿌리인 죄로부터 벗어난다. 이를 행할 수 있는 이는 오직 하느님과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의 뜻에 따라, 정당하게 봉헌되고, 주교를 통해 사죄권을 위임받은 사제들이다. 정신병 의사나 심리치료 의사가 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오늘날 사람들은 사제의 봉헌 및 축복의 권능을 비웃고 경멸하기 때문에 데레사가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각별히 주목할만하다. 이를 보여주는 것은 성수에 대한 데레사의 견해이다. 데레사의 시복을 위한 진행과정에서 한 여자 증인이 말했다. "데레사는 성수를 찍지 않고서는 여행을 하려고하지 않았지요. 우리가 여행 도중 거룩한 성무일도를 기도할 때마다 성수를 발라야 했어여." 데레사는 스스로 다음과 같이 확인한다. "저는 악령을 내쫓고 그것들이 다시 오는 것을 막는 데는 이보다 더 효과있는 수단이 없다는 것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그 악령은 도망치지만 다시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성수는 위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없어요. 제가 성수를 사용하면 저는 아주 분명하게 제 마음 속에 독특한 위한을 느끼게 됩니다. 거기에다 제가 아주 빈번히 즐거움을 느끼고 제가 설명할 수 없는 내면적 기쁨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공상이 아니며, 저에게 한 번이 아니라 아주 자주 일어났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이를 주목해왔습니다. 아주 목이 마를 때 시원한 물 한잔 마시므로써 새로운 힘이 솟는 것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에 저는 교회가 지시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음미해봅니다. 그리고 교회의 축복의 말로 인해 이 성수에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봉헌된 성수와 봉헌되지 않는 물은 얼머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보고 저는 몹시 위안을 받습니다."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책에서 "그녀가 하느님께 자신을 구속시키면 시킬수록 더 자기 자신이 되고 더욱 더 인간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동료들에게는 더욱 더 호의적으로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진짜 낯선 분이 아니시니까요. 하느님이야말로 그녀를 창조하셨고 그녀를 받쳐주는 바로 그분이 아니십니까. ..." 이 위대한 여인은 이를 경험했고 솔직하게 이를 전파했다. 기도에 대한 그녀의 지침에서 그녀는 동료 수녀들에게 "사람들은 그냥 하느님과 함께 온갖 것에 대해 얘기할 수 있습니다" 라는 말을 해준다. 하느님과 데레사의 대화에서 우리는 신선한 맛을 즐긴다. 언젠가 그녀가 임시로 만든 다리를 건너가야 했을 때 급류에 떠내려가는 위험에 처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그러한 곤경 중에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다. 그녀에게 응답을 보내신 하느님의 목소리는 다음과 같다. "데레사야, 나는 내 친구들을 그렇게 대한단다." 데레사는 "그 때문에 당신께는 친구가 그렇게 적은거예요" 라고 응답했다. (독일 '디렉토리움 스피리투알리스' 잡지에서)-마리아 1997년 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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