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끼아라 루빅)
예수님의 놀라운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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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아라 루빅은 1920년 이탈리아 토렌토 생이다. 1943년 복음활동을 시작하며 "포코라레"라는 세계적인 영성운동을 비롯하여 젠, 마리아 폴리, 새가정 운동 등 22가지로 이루어진 인류 평화 운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그녀는 현재 각국을 순회하며 십자가에 뿌리를 둔 사랑의 외침,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주십시오" 라고 외치며 사랑을 통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질문 : 만약에 우리들이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오 18,20)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생활하려고 애쓴다면 어떤 성과가 나타나겠습니까?
끼아라 루빅 : 우리들이 이 말씀을 실천하면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현존하시게 됩니다. 곧 하나의 특별한 도덕이나 신적인 것이 현존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분의 인격이 현존하게 됩니다. 비록 우리들의 눈은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현존해 계시고 우리들의 생각과 맥박과 우리 영혼의 모든 움직임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현존해 계시고 우리들의 생각과 맥박과 우리 영혼의 모든 움직임을 다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며 우리를 에워싸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이 세상에서 생활하셨으며 우리들의 한계를 보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작으며,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근시안적인가 하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내가 예수님의 현존을 깊이 묵상해 보았을 때 나는 예수님을 위해서는 몇몇 사람, 곧 두세 사람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 테르툴리아노 교부는 "평신도라도 두세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치해 있는 곳, 거기에 교회가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교회가 있는 곳에서는 교회가 빛을 발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방법은 다르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그 당신의 팔레스티나에서처럼 역사하고 계십니다.질문 : 앞으로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시련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끼아라 루빅 : 나는 그런 것을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 때문에 우리가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세 사람이 복음서의 이 말씀을 굳건히 생활해 가는 곳에서는 그들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공장이건, 학교이건, 집이건, 그 어느 곳에라도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계실 수 있으시며, 이 작지만 "살아있는 이동식 교회"가 미래의 세계에는 "혼"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교회에 적대적이고 무신론적인 세계를 용납하시는 것은 세상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세계를 그렇게도 감동시킨 이러한 진리들을 통해 인간이 그 원천이신 예수님께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목적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러한 일은 언제나 눈에 띄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들레헴의 외양간에서 탄생하신 것처럼 오늘날에도 이 세상에 새로이 오십니다. 두세 명의 젊은이들을 통해서, 두세 명의 소녀들을 통해서, 두세 명의 여인들을 통해서, 어머니와 아들, 며느리와 시어머니, 두세 명의...
여러분들의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나는 여러분 안에서도 내 안에 가득 차 있는 열정이 불붙기를 바랍니다. 곧 온 세상에 이 조그만 교회를 건설하기 위해 인류에게 파고들려는 열정이 불붙기르 원합니다.질문 : 복음서를 요약하면 그것은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함께 생활하는 것'이라고 누군가가 쓴 말을 읽은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새 계명'을 실천하는 전제 조건하에서 입니다. 그러나 서로 사랑하는 데는 적어도 '서로 마음을 같이 하는' 두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무실에서 동료들이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거나,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시다는 것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내가 이런것을 말해야 하겠습니까? 또는 다른 사람들이 이 사랑에 응답할 때까지 사랑만 해야 하겠습니까?
끼아라 루빅 : 가장 좋고 확실한 방법은 복음서의 방법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사랑하고 또 사랑함으로써 우리들이 해야 할 의무를 다해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계속해서 새로이 참여하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사랑은 그만큼 더 순수해지고 효력이 있게되며,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자기를 버릴수록 우리를 더 좋아하시게 됩니다.
우리들이 간절히 바라는 것은 정신적인 유익을 생각하지 않고,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일터에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소망을 채워드리고, 우리 근심을 나눔으로써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난 뒤에, 우리들이 많은 사랑을 투자했을 때에는 말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때를 잘 택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우리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오해를 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섰을 때 말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한 성인은 이 문제에 대해 "말은 마지막 총알로 써야합니다"라고 경고했다고 합니다. 이 말은 정곡을 찌른 말입니다.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주님께서 당신의 왕국을 넓혀 나가기를 서두르는 걸 원치 않으신다는 것은 절대로 아닙니다. 아마 주님께서는 당장 그 친구에게 이 훌륭한 삶의 계획을 설명해 주리고 재촉하고 계실지도 모를 일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다 맡기고 난 뒤에야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이 신비로운 이상(理想)에 관한 메시지를 전해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합쳐진"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은 서로간에 생명을 내어 줄 준비까지 다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여러분 가운데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두 사람들의 이해력을 밝혀 주시고 의지를 북돋워 주셔서, 자기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디에서든지 하느님의 왕국을 넓혀나가는 방법을 알게 하실 것입니다. 성서에는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홀로 있는 자는 불행하다! 의좋은 형제는 요새와 같으니"(잠언 18,19). - 마리아 2001년 109호(9~10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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