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왜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보속을 해야 하는가?

 

    하느님께 죄를 범하여 마음을 상하게 해드리면 동시에 성모님의 마음도 상하시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당신 어머니의 티없는 성심이 당신의 성심과 나란히 공경받기를 원하셨고 세상에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대한 신심이 세워지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특기할 만한 사항은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상해드린 보속으로 첫토요일 신심을 명하셨는데 보속을 해야하는 이유를 다음의 다섯가지로 알려주셨다. 즉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셨음을 부인하는 것에 대한 보속, 성모님의 영원한 동정성을 부인하는 것에 대한 보속, 성모님께 대한 신심으로부터 어린이들을 소외시킨 것에 대한 보속, 성모상을 불명예스럽게 하는 것에 대한 보속이다. 그러면 이 다섯 가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원죄없는 잉태를 부인한 까닭에
   첫째는 성모님이 원죄없는 잉태에 대한 모독이다. 어떤 이들은 "하와의 자손인 우리와 다름없는 자가 어떻게 원죄없이 태어날 수 있겠는가?" 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공공연하게 성모님의 이러한 특전(特典)을 거부해왔으며 그릇된 신학사조에 젖어있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여러 세기를 통하여 교회로 하여금 성모님의 원죄없는 잉태 사실을 받아들이도록 이끄셨다. 이로써 교황 비오 11세는 1854년 12월 8일, 성모님께서 원죄없이 잉태되셨음을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로 반포하게 되었다.
   성모님의 이러한 특전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었다. 그들은 성모님께서 그리스도를 낳기는 했지만 다른 인간과 별다를 바 없는 존재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성자 그리스도의 어머니를 피조물 중의 걸작품으로 창조하고자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원죄없는 잉태' 라는 크나큰 신비를 알아 들을 수 없어 부인하는 것이다. 성모님은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하셨으니, 그분의 자비가 세세대대에 미칠 것' 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성모님의 이 특은을 어떻게 의식적이고 악의에 가득차서 거부할 수가 있는 것일까? 어머니의 영신적 자녀들이 등을 돌리고 이러한 모독을 하게 되면 성모님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상하실 것인가를 잘 알 수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보속을 바쳐야 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동정성을 부인한 까닭에
   두 번째로 성모님께 범하는 죄는 그분의 동정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성모님의 낳으신 아기는 단순히 인간으로서 머무는 아기가 아니라 천상의 아기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의 시작에 대한 하나의 표징이다. 그러나 현대 소설 중에는 성모님의 동정 교의를 희극화시키고 있는 것도 있다. 여러 해 전에 나온 '기적' 이라는 영화가 그 한 예이다. 즉 하느님께서 기적을 행하셔서 성모님을 동정녀요 어머니로 만들었다는 것은 성모님의 동정성을 하느님의 전능으로도 믿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어머니를 사랑하는 효자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자기 어머니를 아름답게 꾸밀 것이다. 하물며 무한한 사랑 자체이신 천주 성자께서 당신의 어머니를 가능한 한 모든 은혜로 꾸미신다는 것을 어찌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슬픈 일은 이러한 사실에 관한 성서의 증거조차 부인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성서의 예언자는 구세주께서 동정녀에게서 탄생하시리라고 분명히 예언하였다(마태 1, 23 참조). 하느님을 믿지만 그 말씀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신앙이다. 우리는 성모님의 이 특은을 보다 깊이 믿고 성모님의 순결한 생활을 본받으면서 보속을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하느님의 어머니이심을 부인한 까닭에
   세 번째로 성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리는 죄는,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심을 부인하고, 인류의 영적 어머니가 되심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작될 때부터 성모님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정활기 규명하기 위하여 철학 및 신학용어들이 여러 가지로 연구되어 왔다.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요 또 인간이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성모님은 그리스도의 인성에만 어머니가 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들은 성모님을 하느님이요 인간인 그리스도의 모친이 되는 것을 인정할 수가 없어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됨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들이 바로 네스토리우스의 추종자들인데 에페소 공의회(A.D. 431년)는 이들을 이단으로 단죄하고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로 선포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일차적으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예" 라고 응답한 절대적인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고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셨다.
   프로테스탄트는 종교개혁의 여파로 성모님을 도외시하게 되었고 아마도 하느님께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성모님을 장애로 생각했던 것 같다. 그들은 우리 가톨릭인들이 성모님을 너무 흠숭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성모님과의 관계를 멀리하고 영신의 어머니를 부인하였던 것이다. 물론 가톨릭 신자 중에는 성모님께 9일기도는 바치면서 미사에 참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가장 중요한 전례기도인 하느님께 대한 흠숭지례의 의무의 소홀함이나 무지한 점을 탓할 일이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을 욕할 일은 아니다.
   성모님이 하느님의 어머니시요 인류의 영신적 어머니시라는 사실을 부인한 모독을 보속하기 위하여 우리는 구원 사업 안에 깊이 참여하신 성모님을 인정해야 한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폴 투리안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그리스도의 자리를 점유한다" 말했고, 또툴안은 칼 바르트는 "성모님은 구원사업에 동참하지도 않았고 할 수도 없었다" 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정해 주시는 위치에 성모님을 모심으로써 이러한 그릇된 발설들을 막아야 한다. 그리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교회를 성모님의 배려에 맡기심으로써 당신 구원사업에 성모님을 크게 들어높이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바로 우리의 보속이 되는 것이다.

성모님께 대한 무관심과 모욕 때문에
   네째로 티없으신 마리아의 성심을 거스르는 죄는 성모님께 대한 무관심과 모욕과 증오를 사람들의 마음 속에 공공연히 불어넣는 행위이다. 중국에서 교회에 대한 첫 공격은 레지오 마리애였고 그것을 말살시키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공산주의를 반대하는 세력을 분쇄하자는 체계적 일환이 아니었고, 성모님께 봉헌된 조직체에 대한 악마적 증오의 발로였다. 중국뿐만 아니라 공산주의가 성행하고 있는 나라에서는 젊은이들의 마음에서 하느님께 대한 개념과 종교에 관계되는 모든 것, 특히 마리아 신심을 뽑아버리려고 힘쓰고 있다.
   이것으로도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보속을 드려야 할 충분한 이유가 되는 것이다. 공산주의는 성모님 앞에 철의 장막과 가시장막을 치려고 애쓰지만 성모님께서는 계속 그곳에, 특히 당신 성심께 봉헌된 러시아 안으로 들어가고 계신다. 성모님은 교회를 멀리하려는 자들의 모욕에 낙심하지 않으신다. 그것은 아담의 범죄 이후부터 성모님께서 맡게 된 사명인 사탄의 머리을 쳐부수는 것이기 때문이다. 성모님께서 러시아에 들어가시려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지난 세기에 교회를 위협하던 이단이 성모님의 개입으로 정복되었다. 앞으로는 공산주의가 그렇게 될 것이다. 성모님께서는 파티마에서 "결국 내 티없는 성심은 승리하게 될 것" 이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성모님께서는 승리를 가져올 수 있는 우리의 보속을 중요시하신다.

성모상을 모독하는 까닭에
   마지막으로 티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아프게 하는 죄는 성모상과 성화를 모독하는 것이다. 이러한 범죄는 교회역사를 통해 오래 전부터 있었다. 옛날의 성모상 파괴 운동에서부터 최근까지 종교에 대한 증오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서나 성물을 모독하고 있다. 프랑스 혁명(1789-1799) 때에는 성당의 성모상을 내던지고 대신 이교 여신들의 누드상이나 황제의 상들이 그 자리에 세워지곤 하였다. 스페인의 시민 전쟁 중에는 예수님의 성상이나 성모님의 성상이 좌익 군이들의 사격 연습 표적이 되기도 했다. 러시아에서는 하느님의 어머니의 성상들이 초자연적 빛을 발산하였다는 보고가 있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그 석상들을 파괴하라고 명령하였다. 이러한 죄악을 보속하기 위해 우리는 성모님의 표양을 본받음으로써 우리 생활 안에 성모님의 성상을 다시 세워야 하며 또 우리 가정의 가장 좋은 위치에 성모상이나 성화를 모셔 가정을 봉헌해야 할 것이다.

보속은 하느님께서 직접 요구하신 것!
   복되신 어머니와 그 성심께 대한 보속은 주님께서 십자가 위에 달리시면서 사도 요한에게 당신 어머니를 돌보라고 말씀하셨을 때부터 시작하였다고 본다. 가톨릭 교회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1900년이 넘도록 성모님께 대해 특별한 신심을 가짐으로써 예수님의 부탁에 충실해왔다. 그러나 지금 이 세대에게 하느님께서는 마리아께 대하 더욱 특별한 신심과 보속을 요구하고 계신다. 이 크신 요구를 이행하는 데에 우리는 얼마나 참여하고 있는가를 다음의 사항으로 점검해보자.
   1. 봉헌의 표지로 스카풀라를 착용하고 있는가?
   2. 아침마다 성모님을 통해 예수님께 그날을 봉헌하며 일상생활에서 오는 모든 고통을 희생으로 바치는가?
   3.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며 그 신비를 묵상하는가?
   4. 다섯 번의 첫토요일 신심(다섯 달 연이여 매달 첫토요일에 고해성사, 영성체를 하고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그 신비를 15분간 묵상하는 것)을 지키려고 노력하는가? -마리아 1998년 8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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