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리아를 따라다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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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부산교구 성모의 밤에 있은 이갑수 주교님의 강론을 옮긴 것입니다.) 성모성월 첫날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에서 성모의 밤을 개최하게 됨으로써 성모님께 대한 식어가는 열을 덥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성을 취하시고 강생하셨는데 마리아는 천사의 소리를 듣고서 솔직하게 자신은 처녀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성령의 힘으로 아기를 낳을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그 당시 나자렛 동네에서도 옛날 우리 나라의 경우처럼 5일장이 있었을 것입니다. 만일 그때 마리아가 그 시장을 오가며 장사하는 여자였다면 도무지 천사의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청각, 시각 등의 감각기능은 매일 이 세상의 모든 것과 접하고 있고 세속과 가까이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자렛의 마리아께서는 아주 고요하게 살으셨습니다. 너무나 고요하게 사셨기에 성서에는 마리아에 관한 기사가 거의 없습니다. 그만큼 고요하게 살으셨고 또한 마리아께서는 천상의 것에 늘 마음을 쓰고 있었기에 천사가 그러한 보고를 할 때 천사의 음성을 쉽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요즘 너무나도 시끄럽게 살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청소차가 틀어놓은 음악 소리에서부터 하루 종일 소음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어머니가 아이를 혼자 빈 집에 두고 외출하면서 집을 보라 하면 종일토록 볼 수 있었는데, 요즘은 아이들이 조용히 있지 못하므로 그렇게 혼자 빈 집에 있게 하지를 못합니다. 조용하게 있지 못하는 사정은 어른도 마찬가지여서 묵상시간, 혼자서 고요히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세상이 갈수록 자꾸만 급해지고 소란해져 가고 있으니 사람들도 모두 그 파도를 타고서 급해지고 시끄러워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자렛의 마리아께서는 고요하게 사셨습니다. 그러했기에 천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고 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TV나 라디오 그리고 세상에 정신이 쏠려 있어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고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삶은 고요했기에 천사를 알아볼 수 있었고 말씀을 들으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께서 어떻게 살으셨는지를 보고 그분처럼 고요하고 조용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소란한 곳에 하느님을 계시지 않습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마리아께서는 예수님과 함께 초대받아 참석하셨는데 술이 떨어져서 곤란을 겪고 있을 때 마리아는 그 사정을 보고 예수님께 알려드렸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것이 저에게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십니까? 아직 제 때가 오지 않았습니다" (요한 4)고 하셨지만 마리아께서는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 (요한 5)며 그들의 곤란한 입장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마리아의 부탁이면 다 들어주셨습니다. 우리는 마리아를 통해 구세주 하느님을 얻었듯이 우리가 하느님께 갈 때도 마리아를 통해 가야 합니다.
소련 공산당이 무너졌습니다. 마리아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그것을 예고하셨습니다. 묵주기도를 많이 바리고 보속과 희생을 많이 바치라고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세계의 공산주의는 무너졌습니다. 왜 그처럼 묵주기도가 중요한 것입니까? 성모송의 후반부를 보면 "천주의 성모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해 빌으소서" 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나에서 당신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는데도 마리아의 간청을 기꺼이 들어주셨드시 우리도 마리아께 달라붙어 기도한다면 하느님께서는 틀림없이 그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리아를 통한다면 하느님께 갈 수 있음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임종에 다다랐을 순간에 자신의 생애에 걸쳐 묵주기도를 몇 번이나 했는가를 돌이켜본다면 이 기도를 많이 한 사람을 위안을 얻게 될 것입니다. "천주의 성모여, 이제와 우리 죽을 때에 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으소서" 하는 기도문은 성모송 밖에 없습니다. 묵주기도를 많이 한 경우 임종의 순간에 이르러 많은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마리아께서는 공동 구속자입니다. 그러므로 묵주기도를 통해 우리의 국가, 공동체, 가정, 개인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성모님은 은총의 중개자이기에 성모님을 통한다면 안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저는 지금 여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리아를 따라다니십시오!"
마리아를 닮으면 됩니다! 마리아께서 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그분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애정이 우리보다도, 보통이 어머니보다도 훨씬 더 뜨거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당신 아들의, 하느님의 아들의 사명이 무엇인가를 늘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갈바리아에서 십자가를 지고 갈 때도 울음을 참고 아들을 끗끗이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십자가 밑에 서 있었습니다. 보통의 어머니 같았으면 그러한 아들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충격으로 쓰러지거나 대성통곡하거나 했을 것이나 마리아께서는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우리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80% 이상이 어머니들에게 달려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요즘의 어머니들은 육정은 있으나 매를 드는데는 너무 약합니다. 마리아께서는 모성애 자체였을 것이나 당신의 아드님이 목숨을 바치는데도 자신의 감정이나 눈물조차도 없앴습니다. 그런데 요즘의 어머니들은 오히려 하지 않을 뿐더러 옳은 말, 바른 말도 하지 않고 오히려 자식의 눈치만 보는 형편입니다.
우리 한국 사회의 모든 문제의 원인은 어디 있습니까? 바로 어머니들에게 있습니다. 자식에 대한 어머니들의 잘못된 애정 때문에 학교에서도 선생이나 교수가 학생들 눈치 보느라고 할 말을 제대로 못하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 있어 권위가 없어졌습니다.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지 않습니까? "자식이 귀여우면 매를 한 대 더 들어라."
오늘 성모의 밤을 가지면서 저는 마리아의 모성애에 비추어 볼 때 우리 어머니들의 잘못된 자녀교육과 애정을 다시 바로잡고 정비하자는 의미에서 이런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금 세상은 너무나 시끄럽고 그런 가운데 우리가 살아가고 있으니 하느님께서 들려주시는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께서 무조건 애원하시면 때가 되지 않아도 예수님께서는 들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주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묵주기도를 많이 하십시오. 이 사회가 병들어 있습니다. 그러니 어머니 되시는 분들은 자기 자식을 육정으로만 대하지 말고 하느님의 뜻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성모성월의 이 한 달 동안 묵주기도를 더 많이 바쳐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여, ..." 하는 소리가 더 많이 울려 퍼지도록 합시다. 자꾸만 속화되어 가는 이때, 전 세계가 묵주기도를 통해 그것을 속죄하도록 마리아의 도움을 구합시다.(이갑수 주교.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총재)- 마리아 1997. 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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