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메신저 ; '마리아'지 기사
 

 

참된 신앙, 참된 행복; 피임에서 봉헌생활로 전환

 

    이 이야기는 가톨릭 진리를 발견하고 회개한 우리 부부의 체험담으로써 많은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 왜냐하면 아직도 우리가 한 때 몸부림쳤던 유혹 중에 살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알고있기 때문이며 이 방법으로 어떤 보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에 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듣게 되었던 정확한 날짜를 가끔 기억하곤 한다. 우리가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에 관한 내용을 깨달았을 때, 친구들과 가족을 참된 신앙을 갖도록 그리고 그 참된 신앙을 일상생활로 실행해 나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고 받아들인 그 목적을 의무로써 실행하기에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젊은 시절의 우리는 대표적인 피임 부부였다. 우리는 전통적인 개신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였으며 신앙에 관해서는 아무런 의심이 없었다.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의 린다의 체험
   내가 원죄없는 마리아 성심 고등학교에 다닐 때(1965-66년)에 루터파 목사님은 종교 수업시간에 '결혼 준비'에 관해서 말할 때 낙태는 사랑하는 부부 사이에서는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나는 교황님이 "어느 누구도 결혼 생활에서 피임을 할 수 없다고 말할 권리는 없다" 고 한말을 생각했다. 그 당시 성당과 학교에서는 부부간의 순결에 관하여 좀 더 명확하고 친밀감있게 가르치지 못했었다. 마리아를 극진히 사랑하시는 우리 본당 신부님께서는 혼탁해져 있는 사회를 예리하게 지적하고 열띤 대변자가 되셨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앙과 가톨릭 윤리를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라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강론도 하셨다. 그분은 훌륭한 신부님이셨지만 나는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는 더 쉬운 길을 권하면서 그것을 소위 '가톨릭' 이라 부르고 있었다.

결혼생활에서의 새로운 체험
   나는 심장병과 늘어나는 체중, 갑상선으로 인해 건강 상태가 점점 악화되었다. 의사는 우리 부부에게 절대 피임약을 복용해서는 안된다고 했다. 피임약이 이 사회를 얼마나 혼탁하게 만들고 있습니까? 약물 중독으로 인해 기형아들이 태어나고, 복용자들의 건강이 쉽게 나빠지는 등 이것은 악의 온상입니다" 라고 훈계하며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어릴 때부터 교육되었던 것이 쉽게 고쳐지질 않았다. 진실되고 바른 가톨릭 양심으로 양육되기까지는 몇년이 걸여야 했다.
   변화되기란 불가능할 것 같았다. 이미 우리는 혼탁한 사회 속에 깊이 물들어 있었으며, 쉬운 방법을 두고 구태여 어려운 방법을 택해야 하는 까닭을 깊이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러다가 "하느님과 더불어 모든 것들은 가능하게 된다" 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우리는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랑하올 복되신 어머니께서도 우리를 극진히 사랑하고 계셨으며 우리의 이탈된 생활을 원하지 않으셨다.

고해성사-전환점
   나는 이제 가리워진 삶을 청산하고 하느님의 자녀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고해성사를 보기로 굳게 결심하고는 비오 신부님(오상을 받은 이태리 신부님)께 성주간에 참된 고해성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를 드렸다. 그런 다음 내 죄를 깊이 인식하고 양심에 거슬리는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옥에 떨어질 대죄로 가득 찬 영혼의 모습을 하나하나 드러냈다.
   남편인 마르코 역시 고해성사를 보고 진실된 회개를 하게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그리스도께 이르게 되는 진리의 길 위에 다시 서게 되었다. 주위의 올바른 결혼생활을 하고 있던 사람들 덕택으로 우리는 순수한 부부애 안에서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진정으로 회개하고 용서를 청하면 즉시 무한한 자비로써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다.
   막내 아이가 5개월 되었을 때 나는 자궁외 임신으로 목숨을 잃게 될 위험한 상태에 놓였다. 신부님은 병자성사를 주시기까지 했다. 의사는 "피임약을 과다하게 복용해 왔기 때문에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다" 고 했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자녀를 가질 수 없는 이 고통을 우리의 죄악에 대한 보속과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회개하여 그들이 가톨릭 신앙에로 되돌아오도록 봉헌하였다.

성모님은 우리를 완전봉헌으로 이끌어 주셨다.
   신앙의 눈이 차츰 열리고 있을 때 큰 시련이 우리 시야를 가리웠다. 큰 딸아이가 암에 걸린 것이다. 이 엄청난 시련은 우리가 정화되어 보다 더 충실한 신앙 생활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하느님의 섭리일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스쳤다. 우리는 열성적으로 성모님께 간구하였다.
   "사랑하올 어머니, 이제까지 당신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과 당신의 원의를 거스른 일들을 진심으로 뉘우치며 회개합니다. 당신의 지극한 모성애로써 저희들을 용서하시고 보살펴 주심같이 나 또한 제 자녀를 사랑합니다. 그 너그러우신 마음으로 딸아이의 병을 거두어 주십시오. 차라리 그 죄를 내가 짏어지겠습니다. 만일 당신의 너그러우심으로 딸아이의 병이 완쾌된다면 나는 당신의 종으로써 봉헌의 삶을 살아가겠습니다. 저의 간청을 거절하지 마시고 받아들여 주소서. 아멘."
   얼마 후 성모님의 사랑으로 우리 딸아이는 건강이 회복되었다. 우리는 성모님께 약속드린 것을 잊지않고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마음으로 봉헌 준비를 했다. 성모님께 대한 봉헌은 성모님을 통하여 예수님께 봉헌하는 것을 의미하고 예수님을 통해 성부께 대한 봉헌이란 결실을 맺게 되는 것이다. 완전봉헌이 이루어질 때부터 우리의 모습은 마리아를 모시고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여 "그 분이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 고 하신 마리아께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부도덕한 생활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행동인지는 조금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결손 가정들을 돕기 위한 하나의 사도적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얼마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모른다. 이 모든 선물은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께서 베푸신 특은으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는 더욱 열심히 성모님께서 기뻐하시는 을을 해야겠다.

성모님, 당신은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십니까?
   우리는 성모님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을 간구했다. 우리들의 요청에 성모님께서는 즉시 응답을 주셨다. 성모님께서는 청소년들에게 죄인들의 회개를 위한 보속과 기도, 희생을 바치도록 기도하는 그룹(쎌 모임)을 지도해 주시길 바라셨다.
   청소년 단체를 구성함으로써 우리는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 회원으로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성모님께서는 언제나 청소년들 곁에 함께 계시면서 어머니로서 자상하게 돌보아 주셨다. 그들은 겨우 알고있는 성모송으로 로사리오5단을 기도하는 동안에 무릎이 아프다는 불평 한마디없이 참아 받았다. 그들은 차츰 신앙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사고까지 바뀌어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른들이 자기들을 위로해 주고 감싸 주며 보호해 주는 것을 무척이나 기뻐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따뜻한 사랑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청소년 쎌모임을 구성한 지 1년 후에 그들의 부모들로 구성된 또 하나의 쎌모임을 구성하게 되었다. 일곱 쌍의 부부로 구성된 이 모임은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는데 모두 열성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다. 거룩하고 인자하신 주님께서는 이 부부들을 더욱 아름답고 완전한 부부애로 다져 주시며, 부부적 정결, 서로 먼저 이해하려는 자세 그리고 산아제한과 현대 사회에서 참 그리스도 정신을 소생시켜 주셨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부부생활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너무나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의 도움으로 올바른 부부생활을 가르칠 만한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하겠다. -마리아 1994. 64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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