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 메신저 ; 다락방 메시지 323
 

323.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86. 3.28. 동고
성금요일

 

1. 오늘 나는 예수께서 임종 고통을 겪고 계시는 십자가 아래에 (서) 있다. 이 어머니의 티없는 마음은 그분의 고통으로 말미암아 짓눌리고 있는데, 그분의 탄식 섞인 마지막 외침 소리가 들린다:"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마태 27,46: 마르 15,34)

2. 사랑하는 아들들아, 너희는 오늘 나와 함께 그분의 이 마지막 외침에 귀를 기울여라. 이 외침은 이를테면 그분의 고뇌 전체의 절정, 수난 전체의 마지막 절정인 셈이다.

3. 오! 그분의 이 처참한 수난의 형언할 수 없는 순간들을, 너희는 나와 함께, 상처입고 비탄에 잠긴 어머니인 나와 함께, 생생하게 되살려 보아라: (그분께서) '게쎄마니'에서 겪으신 번민과 유다의 배반, 제자들의 저버림, 베드로의 부인, 종교 재판소의 능욕과 단죄, 빌라도 앞에서 받으신 재판을! 그리고, 잔혹한 채찍질을 당하시고 가시관을 쓰신 채 '갈바리아'를 오르신 그 고통의 길을, 못 박히시는 손과 발의 경련을, '십자가'에 달려 계신 길고도 긴 세 시간 동안의 그 처참한 임종 고통을!

4. 보아라, 묵묵히,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이사 53,7 참조)을! 보아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이 참된 '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 참조)을! 십자가에 못박혀 희생제물이 되신 이 부드러운 몸의 심장에, 세상의 모든 죄와 온갖 악이 짊어지워져 있다. 그 모든 죄악이 그분의 '희생제사'에 의해 속량된 것이다.

5.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6. 성부께서마저 당신을 버리셨다고 느낄 만큼 극도로 짓눌려 있었던 그분의 성심은, '당신 교회'의 무응답과 배은망덕으로 인한 압박감도 느끼셨다. 교회는 그러나, 그분의 그 크신 수난의 태중에서 순결한 '신부'같이 태어난 것이다. 7. 오늘날에도 예수께서는 여전히 당신 교회의 저버림과 부인과 배반을 당하고 계신다. 8. 그분을 부인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안락, 자아, (사람들에게서) 환영과 칭송을 받는 재미부터 찾느라고 그분을 뒷전으로 밀어내는 자들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만심 때문에 말과 생활로 그분을 부인하면서,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마태 26,72:마르 15,71:루가 22,57:) 라고 말하고 있으니 말이다.

9. 그분을 배반하는 자들은 스스로에게 맡겨진 양떼를 돌보지 않는 목자들이다. 두려워서, 혹은 편의상 침묵을 지킴으로써, 오류의 속임수로부터 진리를 옹호하지 않을 뿐더러, 양의 탈을 쓰고 나타난 사나운 이리(*마태 7,15)들의 끔찍한 횡포로부터 양떼를 보호하지도 않는 목자들이다.

10. 그분을 저버리는 자들은 숭고한 성소의 신분을 버리고 떠나거나, (떠나지는 않더라도) 서원에 충실하지 않거나, 혹은 몸담고 있는 세상의 정신에 자신을 온통 내맡기고 끌려가는 숱한 사제와 수도자들이다.

11. 그분을 거부하며 배척하는 자들은 (오늘날) 유행하는 이데올르기를 추종하여 '복음'과 상반되는 가치들을 내세우면서, 모든 이의 찬동을 얻기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타협하고 마는 평신도들이다.

12. '성금요일'은 과연, 오늘날에도 되풀이되고 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신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고 더 일반적인 모양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를테면,) 그 당시의 (못된) 짓 한 번이 지금은 천 배로 가중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그 비통한 외침을 아직도 계속하시는 것이다: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나이까?"

13. 너희 '천상 엄마'의 고통이 오늘 다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도, 예수께서 성금요일에 받으신 고난이 지금도 똑같이 교회에서 반복됨을 보기 때문이다.

14. 내 고통과 같은 고통이 (달리) 있겠는지 생각해 보아라! 이 고통의 원인은 죄가 넘쳐흐르고, 수많은 이들이 신앙을 잃음으로써 배교자가 갈수록 불어나며, 영혼들을 삼키는 불충실의 진수렁이 확산되는 데 있는 것이니, 너희도 나의 이 고통을 나누어 가져 다오.

15. 오, 교회여, 오늘날만큼 네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네 '신랑'을 닮은 적은 일찍이 없었으니, 너에게 있어서도 지금은 고뇌의 때, 버림받고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때이다.

16. 그러나, 이 '너의 성금요일'에도 '고통의 어머니'는 네 곁에 있다. 네게 다가올 영광스러운 부활을 굳게 희망하면서 너를 격려하고 깨어 기도하는 '어머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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