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사랑 : 가톨릭 메신저 ; 다락방 메시지350
 

350. 내 크나큰 비탄의 안식일

87. 4.18. 동고(꼬모).
성토요일

 

1. 사랑하는 아들들아, 오늘은 이리도 깊은 슬픔에 잠겨 있는 너희 '엄마' 곁에 남아 있어 다오. 내 크나큰 비탄의 날이니, 돌아가신 예수님을 (무덤에 모셔둔 채) 지낸, 유일한 날이기 때문이다.

2. 나는 요한과 경건한 여인들의 도움으로 그분을 지성껏 무덤에 모셨다. (사람들이) 커다란 돌을 굴려 그 무덤 입구를 막고 (*마태 27,60) 나자, (내 생애) 처음으로 내 '아들' 없이 (홀로) 남게 된 것이다. 그때 내게는 시간이 정지한 것 (같았다).

3. 그리하여 나의 지속적인 철야가 시작되었다. 흐르는 시간 속에 끊임없이 고동치는 기도, 하늘의 문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확고한 희망, 깊고 격심한 고통 속에 이어지는 철야였다. 그러자 마침내 엄마로서의 슬픔을 스스름없이 표현할 수 있어졌고, 줄곧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이었다. 마치,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 내게 맡기신 너희 모두를 누이려고, 눈물의 요람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었다.

4. 그것은 기나긴 안식일이었다. 그것은 대침묵의 안식일이었다. 내 크나큰 비탄의 안식일이었다. '어머니'가 홀로 남은 유일한 날 -- 무거운 고통에 짓눌린 '어머니'가 십자가에 달려 간구하면서 신뢰 안에 충실히 홀로 남은 유일한 날이었다.

5. 그날은 너희 '엄마'에게도 그토록 격려가 필요한 날이었다. '어머니'에게 모든 자녀들의 사랑이 필요한 날이었다.

6. 오늘 나는 이 팔 안에 너희 모두를 모아들인다. 그리고 너희가 과연 자녀다운 사랑으로 나를 사랑함을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내 귀에는 아직 그분의 음성이 들리는 것 같다. 더없이 보배로운 제헌의 막바지에서 이렇게 말씀하시던 음성이다: --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요한 19,26)

7. (그런즉) 너희는 오늘, 내 비탄의 요람 안에서 너희 자신을 열고, 그분의 마지막 선물인 이 신적 열매를 받아들여라. 이날은 나의 날이요, (동시에) 너희의 날이다. 내 영적 모성의 이 새 안식일의 안식에로 들어오너라. 교회는 이 선물을 내 성자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의 첫 열매로서 받아들였고, 이런 이유로 -- 아주 오랜 옛날부터 -- 나를 특별히 공경하기 위해 내게 (안식일을, 즉) 토요일을 바치는 관습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8. 나는 오늘날에도 너희가 이날을 내게 바쳐 주기 바란다. 이날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 사이의 시간을 나타내기에, 모든 사람에게도 건너감(의 의미가 있는) 날이다: 죽음에서 삶으로, 수난에서 영광으로, 이기심에서 (진정한) 사랑으로, 종(의 신분)에서 자유인으로, 더없이 깊은 암흑에서 꺼질 줄 모르는 광명으로 건너가는 날 말이다. 이 빛나는 안식 안으로 들어오너라.

9. 나를 기념하며 토요일을 내게 바치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너희가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도와 안식에 들어가게 해줄 수 있다. 비탄에 잠긴 '수난의 어머니'이며 즐거운 '부활의 어머니'인 나와 함께, 너희가 날마다 '너희의 파스카'를 살게끔 함으로써 말이다.

[HOME] Copyright 2001~2002 Agnes Lee.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