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이 책의 기원 및 형태

   스테파노 신부는 1973년 7월부터 자신의 영혼에서 울려오는 낭랑하면서도 힘찬 (음성을 들었고 그) 몇 가지 생각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는 '영적 지도자'에 대한 순명으로 그것을 몇 페이지의 작은 '책자'로 엮을 생각을 했고, 그렇게 초판을 마련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이 같은 해 9월 말에 열린 이 운동의 사제들 모임에서 첫 선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 책자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부정적인 것이었다. 기도하고 의견을 나누면서 마리아 사제운동의 방법으로 직감해 왔던 것과 책의 내용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판단하면서도 (그들이) 그렇게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동일한 이유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여기는 것 같다.
   - 무엇보다도 교회 인가가 없다는 점이 그 첫째 이유였다. (그러나 그 초판은) 소책자로 인쇄된 비매품인데다, 교황 바오로 6세의 교령(1966년 10월 10일)에 따라 이런 종류의 책은 이미 (교회 인가 없이도) "자발적으로" (motu proprio) 출판할 수 있어진 때이기에, 그 당시 인가 청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 다음의 이유는 그것의 기록 유형에 있었다. 이 책은 성모님께서 몸소 "내적 담화"라는 신비 현상을 통해 알려 주시는 '운동'의 영적 방향을 그대로 받아 적은 것이지만, 사제들은 보통 이런 현상에 대해 떨떠름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 상례(常禮)이기 때문이다.
   - 특히, (그러잖아도) 오늘날에는 메시지들이 허다한데다, 그 중에는 (메시지를 받았다는 자의) 병적 상태에서 나온 것들도 있고, 그 진정성이 의심스러운 것들도 있어 보이기에, 이런 유형의 책을 내어 놓음으로써 앞으로 극복할 수 없는 장애와 심각한 어려움, 무엇보다 교회 당국으로부터 오는 어려움과 맞닥뜨릴 위험이 있음을 그들은 염려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거부감 내지 당혹감은 서서히 극복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이 사제, 수도자, 평신도들 사이에 갈수록 널리 받아들여지고, 잘 알려진 주된 언어들로 된 번역판 출간이 도처에서 증가한 까닭이다.
   누구나 처음에는 어떤 놀라움을, 다음에는 심오한 희열을 느끼면서, 아주 초라하고 작은 이 책이 성모님께서 온 세상에 '운동'을 전파하시기 위한 도구임을 깨닫게 된다.
   인간적으로 보면 이것은 사실 매우 한계가 많은 도구이다. (하지만) 성모님께서 사제들과 그들에게 맡겨진 신자들을 끌어당기시기 위해 쓰고자 하신 도구이다. 사제와 신자들이 일단 이 어머니다우신 성심에 이끌려 들어오고나면, 성모님께서 그들을 예수님의 성심 깊숙이로 인도해 주시어, 예수님의 '신비체'인 '교회'의 마음 안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다.
   존경심을 가지고 이 책을 손에 든다면, 그리고 단순한 마음으로 묵상한다면, 우리는 여기서 살아 있는 말씀, 꿀처럼 달면서도 칼날처럼 (예리하게 마음 속을) 파고드는 말씀을 듣고 있는 느낌이 들게 된다.
   이것은 계시와 교회 생활에 기반을 둔 하나의 영성을 제시하고 있으니, 이는 복음사가 성 요한,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꼬와 살레시오의 성 프란치스꼬,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 그리뇽, 성 요한 보스꼬,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성 막시밀리아노 콜베 같은 눈부신 기둥들로 이루어진 영성이다.
   이 영성의 타다성은 그것을 실천에 옮길 때 한해서만 확인된다 : 나무의 품성은 그 열매에 의해 알려지기 마련이다 (* 마태 7,17-18 혹은 루가 6,43-44 참조).
   이것은 (또한) 전체의 논리적 맥락에 따라 명확하게 장절(章節)이 구분되는 (종류의) 책이 아니다. 마리아 사제운동 자체가 성모님께서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기록을 통해 알려 주시는 정도에 따라, 그 필요성과 풍요함 안에서 점차로 분명하게 이해되어지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 어디서든지 은밀하면서도 놀라운 방식으로 오늘날 미리아 사제운동을 정의(定義), 확장, 건설하시는 분은 (어디까지나) 성모님이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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