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 책의 한계점

   명백한 한계점이 있으니, 그것은 이 책이 부정할 수 없도록 빈약하고 작은 도구라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이 빈약함과 작음이 여러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 우선 책의 '형식'에 있어서 그렇다. 내적 담화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인 바, 많은 사람들에게는 그 사실이 이 책을 받아들이는데 있어서 걸림돌이 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 (그것이 걸림돌이 되는가)? 일반적으로 초자연 (현상과) 관련이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나 배척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이들은 스스로의 이성적 판단을 통과하는 것만 수용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량하고 준비가 되어 있고 교양이 있지만, (정신적으로) 너무 큰 사람들일 수도 있다. 너무 큰 사람들이기에 이도구의 극심한 작음을 보면 (반감부터 울컥 치밀어) 거기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이다.
   - 책의 '내용'에 있어서도 그 작음이 드러난다. 신학 논문도 마리아론도 아님이 사실이고, 그러니 마리아 신심을 다룬 하나의 완전한 개론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더욱이, 마리아께 드리는 봉헌의 영적 체험을 권장하는 성서적 신학적 주장의 근거가 체계적으로 개진되어 있지도 않다. 이러한 주장은 그러나, 몽포로(의 루도비꼬) 성인(* 1673-1716)이 쓴 "(거룩한 동정녀께 대한) 참된 신심론"이 입증하듯이 매우 중요한 주게와 가치를 지닌다.
   이 책은 더없이 단순한 언어로, '천상 엄마'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 오늘날 원하시는 바를 제시하고 있다. (곱비 신부의)일기에서 뽑은 것이거니와, 그렇더라도 그 내용은 계시된 교리와 교회의 가르침에 (온전히) 일치한다. 그 문체로 말하면 '어머니'와 아들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의 묘미가 있는데, 책을 처음 접해본 사람에게는 그것이 어떨 때는 너무 부드럽고 다른 때는 너무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다. (또) 어떤 주제는 거듭거듭 집요하게 강조되지만, 어떤 주제는 (한 번의 언급 뿐) 거의 눈에 띠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이것은 책상 앞에 앉아 사전에 미리 구상한 각본에 따라 집필하는 (식으로 쓰여진) 글이 아니다. 여기서 오는 실망감 때문에, 이 책을 거부하지 않으려면, 오늘날 모든 사제가 알아두어야 할 것은 당연히 알아두어야 한다는 것이 그 전제 조건임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사제는 자신의 내적 생활, 사도직 수행, 전교회와 세상과의 통교의 생활을 위해서 '계시'와 '교도권' (의 가르침) 외에도 건전한 신학, 철학, 문학, 수덕(修德) 및 신비 신학의 원천에서 지식을 얻어내야 하는 것이다.
   사실, 사제운동은 '성서'에 내포되어 있고 '교부'들이 밝혀주며 교회의 '교도권'이 제시해 온 마리아(에 관한) 교리 전체에 그 신학적 근거를 두고 있다. 이 책이 마리아학의 한 논문이 아니고자 한 까닭은, 그러한 목적으로 설립된 전문기구가 교회 안에 이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마리아 사제운동에 속하는 사제들을, 건전한 신학적 지식이라면 딱 질색인 사람, 감상주의자, 혹은 속기 쉬운 얼간이로 여기는 이들이 있는데, 이런 이들의 견해만큼 '사실과 상반되는 것'은 달리 없다. 오히려 우리가 냉철히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이 운동에 가입서를 보낸 사제들 - 그들 중에는 일반 교양 분야에서 유명한 사제들, 중책을 맡고 있는 사제들, 혹은 보통의 일반적 직무에 종사하는 사제들이 있거니와 - 은 모두가 (물론) 각각의 장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내적으로 가장 균형잡힌 사제들이라는 점이다.
   아일랜드의 한 사제는 이 책에 봉헌에 관한 몽포르(의 성 루도비꼬)의 가르침,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의 영적 어린이의 길, 그리고 파티마의 메시지의 실행 (방법)이 총괄적으로 요약되어 있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그런지 아닌지는 각자 확인해 볼 일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도 과연 그러한 종합이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마리아께 행한 봉헌을 실천하며 살려면 사랑의 포로로서 자신을 그분께 바칠 필요가 있기 때문이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려면 아기들처럼 성모님의 티없으신 성심께 자신을 맡기며 살아가야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께서 언제나 먹여 주시고 옷 입혀 주시고 데리고 다니실 수 있을 정도로 지극히 유순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비로소 매우 흥미있는 하나의 질문이 나올 수 있다 : (그렇다면) 성모님께서 이리도 작고 한계점이 많은 도구를 고히 택하고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아들아,) 너는 내가 지혜를 무색하게 하려고 어리석음을 택했고, 강함을 쳐부수려고 약함을 택했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1973년 9월 27일)
   이 말씀에 모든 비밀이 담겨 있다. '복음'의 비밀과 같은 비밀이다. 예수님께서 안다는 사람들과 지혜롭다는 사람들을 단죄하신 건 아니지만, 그런 이들에게는 당신 '나라'의 비밀을 감추시고 작은 이들에게는 나타내 보이신 데 대해 '천상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신 것이다(* 마태 11,25 혹은 루가 10,21 참조)
   물론, 마리아 사제운동에 속한 이는 누구든지, 이토록 작지만 너무나 귀중한 도구인 이 책의 내용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께 행한 봉헌을 실천하며 살고자 한다면, 그렇게 함으로써 그분의 어머니다우신 구원과 자비의 계획을 이루는 데 이바지하고자 한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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