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이 책의 '내적 담화'

   구체적으로 이 책, [성모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아들 사제들에게]의 경우, 다음의 몇몇 신학적 기준을 염두에 두는 것이 보다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1)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깊은 평화를 느끼게 하고, 그분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욱 큰 겸손과 신뢰를 불러 일으킨다. 또한 악에서 벗어나 단순하고 항구한 정신으로 선을 실현하게 도와 주며, 우리 자신의 자유와 이웃의 자유를 존중하게 해준다. 하느님의 이름으로 글을 쓰거나 활동하는 이는 누구든지, 스스로의 인간적 한계와 약점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균형 감각과 인류애와 영적 힘으로 (이웃을) 교화한다.
   이 책 속의 어떤 구절이 마음에 걸리면 그채로 계속 속을 끓이기보다는 차라리 책을 덮고 보다 좋은 때가 오기를 기다리는 편이 낫다.

(2) 하느님께서는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나 지상에 살고 있는 당신 자녀들과의 통교를 원하시고 또 그렇게 하실 수 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는 우리가 만나게 된 것의 내용과 교회 교도권에 의해 충실하게 보존되고 그르침없이 제시되어 온 '계시'를 대조함으로써 그것이 참으로 하느님 말씀인지 아닌지를 알아낼 수 있는 능력이 주어져 있다.
   이 책의 경우, 메시지들의 각 부분은 물론 그 전체 역시 그리스도교 교리의 맥락 안에서 읽어야 하고 또 그렇게 실천해야 한다. (성모님의) 이 '말씀'의 목적은 다음과 같은 점을 기억하게 하면서 사제들을 보다 쉽고 안정감 있게 성화의 길로 인도하는 데 있는 것이다 :
(ㄱ) 마리아의 모성은, 거기서 발생되는 그분과 나를 위한 권리와 의무로써, 나를 인격적 개인으로 간주한다. (* 즉, 나와 개인적인 모자관계를 맺는다.)는 점.
(ㄴ)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겸손하고 순결하신 성모님은 자신을 목적으로 하시는 분이 아니라, 당신 성자 예수님 안에 이루어진 (구원)사업을 완성하시려고 양자들을 (신비적으로) 낳아 길러 주시는 '어머니'시라는 점, 따라서 그 목적은 오로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 하느님께 영광을 돌려 드리는 데 있으니, 이를 위하여 자신의 성소를 완수하고자 애쓰는 사제들을 부르신다는 점.
(ㄷ)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시므로, 그분의 활동과 우리 응답의 역사적 맥락은 교회에서 권위를 가지고 성무를 집행하는 이들, 곧 교황과 주교들 및 우리의 법적 장상들에 대한 순종과 그들과의 완전한 일치에 있다는 점.
(ㄹ) 사제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해 하느님께 자신을 바친 자이기에, 신자들에게 성모님께 바치는 봉헌의 기쁨과 풍성함과 서약들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고 여겨야 한다는 점. 사제가 앞장서서 봉헌하고 그 실천(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점.

(3) 마리아 사제운동에 소속되려면 연령, 인간적 자질, (주변인들의) 평판, 하물며 긍정적인 것이건 부정적인 것이건 과거의 개인적 체험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지만, 교회분파주의적 정신을 지닌 채 가입코자 하는 자는 누구나 이 운동의 성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을 터이다. 교회에는 불변적 본질과 외형이 있다. (다시 말하면) 교회의 '말' (* 즉, 교의)과 '생명'은 오직 그 외형에 있어서만 시대에 따라 옷을 갈아 입듯 변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불치의 향수병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그 가치를 지니는 옛것과 언제라도 대치될 수 있는 낡은 것을 혼동하는 이들이 있다. 또한, 극성스럽도록 새 체험을 찾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영원하신 성부보다 더 많이 알고 있기나 한듯이 성령께 새로운 무엇을 일으켜 달라고 졸라대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치, 모든 영혼의 구원이 오로지 기도와 참회의 길에 있다고 여길 수는 없다는 태도이다.

(4) 그리스도교 교의와 생명은 그 구성 요소 및 표현이 다양하고 복합적이므로,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그 가운데 어떤 것도 과소평가한다거나 단죄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표현이, 예컨대, 현대 신학에 관한 언급이 상당히 호되게 보인다면, 그것은 신학 그 자체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몇몇 거짓 신학자들에 의해 제시되는 신중하지 못한 방식과, 더욱 나쁘게도 그들의 가르침이 다른 이들에게 너무도 쉽게 수용되는 방식에 대한 지적으로 알아들어야 한다.
   또하나의 예를 들어보면, 사회 내지 일반 사목과 같은 주제들은 분명히 다루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는 백과사전이 아닌 이 책이 모든 문제에 답을 줄 수는 없기 때문이고, 성모님께 참으로 자신을 맡긴 사람은 탁상공론이 아니라 생활을 통해 사회 사목 문제를 구체적으로 해결해가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라면) 보스꼬 신부, 오리오네 신부, 혹은 (現) 교황을 생각해보는 것으로 족하다.

(5) 이 책에 상술되어 있는 '내적 담화' 현상이 일어날 때, 스테파노 신부는 어떤 황홀경이나 탈혼 상태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평상시와 똑같은 태도로 마음 속에서 들려오는 (성모님의) 말씀을 받아 적는다. 즉시 단숨에 쓰기 때문에 다시 생각한다든지 수정한다든지 하는 지성 작용이 끼어들 틈이 없고, 그것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그 자신의 문체가 빈약하건 풍부하건 개인적 기질이 어떠하건 간에 (자신에게 들리는 대로) 표현하는데, 그가 좀 전까지만 해도 몰랐던 진실이라든지 이전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말씀이 들릴 때도 그렇게 한다.
   이 스테파노 곱비 신부의 글에서 가장 선호되는 부분은 성모님께 대한 온전한 맡김을 복음적인 영적 어린이의 모습으로 훌륭히 비추어 주는 페이지들이다. 이 텍스트의 타당성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은 고전적 전통적 기준에 꼭 들어맞는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
   - 게시 '진리'와의 부합,
   - 겸손과 순종의 항구한 태도,
   - 하느님께 겸손하게 간청하는 확증,
   - 하느님의 말씀을 받는 자가 그 전후에 보이는 차분한 자발성과 평화.
   그러나 무엇보다 긍정적 표로 여겨지는 것은 마리아 사제운동이 수만명의 사제들의 영혼 - 그들 중의 상당수는 위기에 처해 있었다. - 에 베푼 엄청난 선익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자들에게 베푼 선익이다.
   그렇듯 많이 생산된 놀라운 열매를 보면 오직 영적 빛 안에서만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추정에 이를 수 있다. 성령께서 마리아의 티없으신 성심의 중재를 통해, 이 책을 손에 든 사람의 정신과 마음에 그 빛을 내려 주시는 것이다.

(6) 지금은 교회든 세상이든 주목할 만한 변화를 겪고 있는 때이기에, 현시, 영어(靈語), 치유 능력 등등의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거니와, 이에 대해 마리아 사제운동은 다음과 같은 입장을 취한다 :
   - 우리 '운동'은 초자연적 양상을 띤 어떤 단체나 개인이나 사건과 일절 유대를 맺지 않음으로써 그 무엇과도 동일시 되는 것을 피한다. 우리로서는 (그런 일체에 대한) 인가권도 단죄권도 없음이 사실이다. 그 일은 다만 교회 소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운동에 속한) 모든 사제에게는 신중히 숙고하여 개인 자격으로 처신할 자유가 주어져 있지만, 어느 때나 교회 당국에 온전히 순종해야 한다.
   - 반면에 마리아 사제운동은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에 위배되는 (오류를) 담고 있는 계시들이라든지,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또 균형잡힌 그리스도 신자로서 걸어야 할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이 문제일 때, 이 운동에 소속된 이들로하여금 그들이 온전한 충실로 교회에 남아 있도록 보호 감독하게 한다.
   - 교회가 기꺼이 인정한 사람들이나 사건들의 경우, 마리아 사제운동은 각자의 선택과 취향을 최대로 존중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파티마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 일부는 제거할 수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는 결코 아니다. 파티마 사건은 교회가 공인했을 뿐 아니라 보편적 중대성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제댜로 이해되지도 증언되지도 않고 있는 실정이다. (그 발현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면) 교황 바오로 6세와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티마의) 코바다이리아 계곡을 순례했음을 상기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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