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6월 2일

(영성체할 때에:)
나는 모든 사람에게 같은 예수이다. 내가 어떤 영혼들을 더 사랑한다고 해도, 이것이 모든 사람과 각 사람에 대한 내 사랑을 털끝 만큼도 빼앗아 가지 못한다.

강한 사람들의 빵은 확실히 쓰다. 그러나 나와 더불어 나누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비길 데 없이 맛있게 된다.
느낄 수 있는 신심은 영혼을 그의 온 열정으로 들어올린다. 무감각과 표면상의 저버림은 애정을 기울여 받아들인 고통으로 영혼을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게 한다.
온전히 사랑에 바쳐진 생활의 신비.
인간적인 것은 어디까지 가고, 하느님의 것은 어디까지 가는가? 내 거룩한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것이 섞이고, 모든 것이 결합한다.

(영성체에 대하여:)
대단히 짧지만 비길 데 없이 풍요로운 순간.
나는 양분을 주는 수액이고 강한 사람들의 빵이다.
한 순간이면 네가 나를 먹을 수있고,
한 순간이면 내가 너를 새롭게 할 수 있다.

 

1967년 6월 4일

이제는 네 불완전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거룩한 사랑의 베일로 가려져 있다.
네 충실과 복종으로 숭고한 내 마음에 다정스럽게 결합하여라.
거룩한 영혼과 사죄 지위에 있는 영혼 사이에 있는 대조는 천국과 지옥 사이, 피조물과 창조되지 않은 존재 사이에 있는 대조와 비슷하다.

주의 하지 않으면 물질이 정신을 둔하게 한다.

 

1967년 6월 5일

어떤 잘못도 그 개심을 함께 가져와야 한다.

불이 심지에 댕겼다.(* 중동전쟁)
누가 그 불을 끄겠느냐?
사제들에게 이렇게 말하여라. 만일 세상이 회개하지 않고, 내 목소리를 듣기를 거절하면, 내 분노가 그 위에 단두대의 칼날같이 떨어질 것이라고.
이것은 꾸중 한 마디이다.
나는 내 메시지가 알려지기를 요구한다. 내 메시지는 개들에게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내 메시지가 받아들여지고 실천에 옮겨지면 나는 내 정의를 중단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 정의가 행하여질 것이다.
내 말을 의심하지 말아라.
내가 네게 품게 하는 것을 행하여라.

그들은 교회의 건전한 가르침과 양립할 수 없는 길로 들어선다.
나는 그것만이 올바른 첫째 진리를 회복시킴으로써 혼란을 선동하는 자들의 바람을 꺾어버리겠다.
사람들에 대한 내 사랑은 그들의 구원을 바란다. 나는 그들에게 선에 대한 사랑과 너그러움을 권장함으로써 구원에 필요한 수단들을 마음대로 사용하게 하였다. 이 세상을 가지고 향락과 이익의 땀을 만들지 말고, 천국을 앞당기는 것인 기도와 형제적 사랑이 풍부한 밭을 만들라고 그들에게 요구함으로 그렇게 하였다.
행복은 이 댓가로 얻어지는 것이다.
증오는 오직 사랑에게만 패배할 것이다.
구원의 사업에 협력하기를 거절하는 개체는 어느 것이든지 내 뜻에 의하여 죽은 나무처럼 잘릴 것이다. 나는 착한 뜻을 가진 모든 영혼들의 협력을 바란다. 그러나 슬프게도! 다만 한 영혼 안에 있는 악을 파괴하는 것보다는 짧은 시간에 세상 하나를 건설하는 것이 더 쉽다. 그리고 때로는 자애만 가지고는 부족하므로 비상수단을 써야 한다.

 

1967년 6월 7일

나는 그들 모두를 구원하고 싶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구원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의 타락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하여 나는 구할 수 없는 사람들을 어쩔 수 없이 희생해야 한다.

메시지의 현실성에 대한 표적들이 없지 않다. 그리고 나는 방금 그들에게 가장 긴급한 표적을 주었다. 그것은 인민들의 개심이 긴급하다는 것이다.
하늘의 경고.

 

1967년 6월 9일

꾸중을 한 번 하였고, 내 계획에 따라 끝났다. 그러나 위협은 그대로 남아 있다.
너희들의 선행이나 너희들의 죄악에 따라 너희들은 내 손을 사죄(赦罪) 쪽으로 또는 징벌 쪽으로 이끌어간다.

 

1967년 6월 10일

내 딸아, 나는 많은 사람의 위로가 되라고 너를 선택하였다.

 

1967년 6월 12일

정신상의 가치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하느님의 선물을 더 높이 평가한다.

더 중대한 것은 네가 넘어간 유혹에 대한 그 원통함을 네 안에 느끼지 않는 일일 것이다.

입술은 신용하는것 같지만 마음은 의심하고 있다. 그들이 내게 대하여 가져야 하는 신뢰를 불신이 억압한다.

너같이 몸이 성하지 못한 빈약한 연장을 내가 택한 것은 그들이 내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고, 그들의 지식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하느님이 그의 피조물 중에서 가장 하찮은 피조물의 수준에까지 내려온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약함을 가지고 강한 자들을 부끄럽게 한다. 조심성이 필요불가결하기는 하지만, 이것을 정도를 지나치게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되면 그 영향이 내게 미쳐 나를 몹시 기분나쁘게 하기 때문이다.

 

1967년 6월 13일

내 벗아, 너는 내 인성에 열중하였다. 그런데 내 천주성이 네 영혼의 모든 능력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1967년 6월 14일

네 영혼은 압착기에 들어가 있다.

하느님의 사랑의 압착기이다.

 

1967년 6월 15일

내 딸아, 너는 네 뜻을 내 뜻에 일치시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지속적인 묵상기도이다.
사랑의 노래가 들린다. 낮에는 풍부함 속에서, 밤에는 무감각 속에서.
나를 사랑하는 영혼 안에는 내가 항상 있으면서 흔들어주고 새롭게 해준다.
나는 내 인자를 의심하는 약한 마음들에만 있지 않다.
네 마음의 비탄 중에서 내가 절대로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깨달아라.
내가 아무 때에나 올 수 없으니까 내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라.
그리고 나는 네가 주의를 기울이고 내가 틀림없이 온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을 만나기를 바란다.
결정은 마지막 순간에야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네 믿음을 시험하고자 한다.
믿어라, 그리고 네 하느님을 네 힘을 다하여 흠숭하여라. 네 사랑이 나를 황홀하게 한다는 것을 너도 알고 있지. 그러나 만일 네가 나를 의심한다면 나는 무한히 서글플 것이다.
경험이 결정적인 것이 될 것이다.
내가 네게 불러일으키는 일을 하여라.
자신을 가져라. 내일은 어떻게 될까 하고 알려고 하지 말아라.
내가 모든 것을 보살피지 않았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진실한 것처럼 너도 모든 일에 진실하여라. 왜냐하면 너는 네 안에 진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를 네 안에 가득 채우게 내 안에서 모든 것을 잊어라.
정말 잘 들어 두어라. 거룩한 영혼들은 기쁨의 눈물을 흘릴 것이고, 의심많은 사람들은 무릎을 꿇을 것이다.

 

1967년 6월 16일

내 귀여운 딸아, 걱정은 신심의 독약이다. 걱정으로 인하여 신심이 맥없어지고 맛없어지기 때문이다.

 

1967년 6월 19일

성령이 세상을 지배하라고, 일체의 속임수를 억제하고 진리를 다시 완전히 찬란하게 해 놓으라고 부름을 받았다. 하느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반역의 죄를 짓는다.

내 딸아, 네 영혼의 낙담은 조금도 내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네 영혼의 원수에게서 오는 것이다. 육체적인 고통과 정신적인 고통이 그에게는 낙담시키는 데 소용된다.
그러나 내게 속한 것은 지킨다.
사람들은 내 은총의 작용으로 내 생각의 새싹들같이 된다. 다른 때에는 그들의 무가치라는 것 외에 다른 울림이 없는 속빈 팀파니와 같다.

귀여운 내 딸아, 제발 울지 말아라. 내가 여기 있다.

 

1967년 6월 20일

네가 옮겨쓰는 것과 네가 읽는 거룩한 책들 속에 네 믿음을 정상(頂上)에 유지하기 위한 묵상기도가 넉넉히 들어 있다.

(장례미사에서 영성체를 모실 때에:)
너는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말을 안했다.

그러나 네가 그 말하는 것을 듣는 것이 좋다.
그런 다음, 이 영혼에 대한 청을 내게 해도 된다.

 

1967년 6월 21일

교회는 오직 내 성덕으로만 거룩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외교인들에게보다도 교회 안에 무신앙이 더 많다.
신성한 조직의 생명력 자체를 부인하는 자들의 잘못으로 분열이 신성한 조직에까지 상처를 입혔다.
착한 뜻을 가진 영혼들 안에 혼란의 씨를 뿌리는 환상적인 학설로 내 유산의 이 몫이 유혹을 당한다.
교회는 잘못을 바로잡아 주어야지, 그것을 모르거나 소홀히 하여 변명해주어서는 안된다. 나는 교회를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러나 내게는 방향을 잃은 이 세상에 서서 그것의 존재에 대하여 내 앞에서 책임이 있는 사람들의 협력이 필요하다.

 

1967년 6월 22일

내 딸아, 나를 사랑하느냐?

만일 네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그 때문에 그를 덜 사랑하느냐?
그 때에는 그를 올바른 길로 다시 데려오겠다는 걱정을 하면서 어머니다운 충고를 한다.
그가 네 말을 듣던가 고려하지 않던가 한다. 이 마직막의 경우에는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그로 인하여 네가 아무리 큰 마음의 고통을 느끼게 된다 하더라도 엄중히 다스려야 한다.
내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들아, 나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한다.
그리고 아무리 슬프더라도 내가 너희들의 행실을 고쳐 주어야 한다.
마침내 내 말을 듣겠느냐?
언제나 민족들이 내 거룩한 이름의 찬미와 영광을 노래하겠느냐? 언제나 그들이 그들의 갈등을 잊고, 그들의 하느님을 더 많이 기억하겠느냐? 오직 하나이고 같은 사랑으로 결합하여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말이다.
그들은 행복을 바라지만, 행복이 없는 곳에서 그것을 찾고 있다. 그들은 환멸만을 발견할 뿐이다.
그것은 그들이 모든 선의 근원에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는 시간이란 없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그러면 그 다음에는?

 

1967년 6월 23일

세상의 모든 영광이 천상 영광의 작은 일부분도 보상할 수 없다.
한편은 존재하지 않는 것의 허무이고, 또 한편은 너그러움과 기도의 생활로 얻은 풍부한 재산이다.
한편에는 죽음 앞에서 받는 위로가 있고, 또 한편은 면할 수 없는 것 앞에서 느끼는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절망이 있다.
자, 불쌍한 내 자녀들아, 이런 것이 너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눈물의 이 세상에서 부유하게 살다가 영원히 가난해지느냐, 또는 이 세상에서부터 살아계신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늘에서 영광스럽게 하느님을 차지하느냐 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찾는 사람은 찾아내고, 그가 찾은 것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너희들이 충실하면 도달하리라고 내가 약속하는 종말에 확실히 이르기 위하여 모든 십자가를 받아들이기를 열렬히 바라지 않을 수 있느냐?
너희들이 아는 것을 알면서, 영혼은 없지만 너희들 안에 있는 소유의 정신을 만족시키는 물건들인 저 하찮고 무익한 물건들에 대하여 무질서하게 애착심을 가질 수 있느냐? 대답해 보아라. 너희들이 좋아하는 저 사치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그것이 하느님 사랑을 조그만치라도 얻게 해 줄 수 있느냐? 오히려 현재도 그러해야 하고 장차도 그러해야 할 것에서 너희들을 멀어지게 하지 않느냐?
내가 이것 때문에 너희를 창조하였느냐?
그런데 만일 너희가 너희 존재의 목적이 되는것에서 그토록 멀어지면, 너희가 그분에게 대하여 가졌던 사랑이나 혐오에 대하여, 또 너희가 그분의 가르침을 업신여겼던 것에 대하여 이 다음에 너희를 심판하실 그분에게 어떻게 가까이 할 수 있겠느냐?
너희 하느님의 비통한 호소를 들어라.
아직 때가 늦지 않았다.
내게로 오너라!
나만은 너희를 구원할 수 있고 너희가 갈망하면서도 찾아내지 못하는 그 행복을 너희에게 줄 수 있는 이로 알아보아라. 내 곁에서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순수하고 고결하다. 그리고 나는 너희 영혼을 내 모습대로 만들었다.

 

1967년 6월 24일

내 딸아, 행동의 가치는 그 의향으로 측정된다.
이 내적 생활론은 모든 지능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모든 작은 영혼을 꼭 움직이고 싶다. 그들의 너그러움에서 많은 것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희망이 확실성이 되도록 기도하여라.
착한 뜻을 가진 사람들아! 세상의 장래는 너희의 손안에 들어 있다. 내가 너희에게 맡겨준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그렇게 되는 것이다.

 

1967년 6월 25일

네가 해야 할 것은 매일의 의무를 완벽하게 하고, 네가 하거나 계획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말과 양심이 완전한 것이다.
생각하는 것이 완벽해야 하고
모든 일에 아주 완전해야 한다.
사랑을 가지고 내 뜻에 맡겨야 한다.
네 피난처는 내 마음이다.

나는 슬퍼하는 사람들의 위로이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자애이다.
흘린 저 피가 너희들의 것이다. 그 피가 너희에게 양분을 주고 생명을 준다.
너희는 너희들 자신의 피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의 피가 된 내 피는 얼마나 더 사랑하겠느냐?
왜 그렇게도 자주 활기를 잃느냐?
그것은 너희가 내 피와 내 살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빈약해진 너희 피는 너희 영혼에 필요한 힘을 너희에게 가져다 주지 못한다.
육체는 영혼이 아니다.
영혼이 육체보다 더 중요하다. 영혼이 육체에 양분을 주고 생명력을 주기 때문이다.
육체가 어느 정도 영혼의 생명에 이바지할 수 있는 만큼, 영혼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육체의 생명에 그만큼 더 확실하게 이바지 한다.
병자들아, 너희 고통을 바쳐라. 그리고 너희들 건강한 사람들아, 하느님 사랑을 위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써 주께 감사를 드려라.
너희들 모두가 하느님의 임하심에 이바지할 수 있다.

나는 어떤 영혼에나 마찬가지로 저 죄있는 영혼 안에도 있다.
그는 그것을 물론 모르고 있다. 그러나 그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이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그의 품행은 찬성하지 않더라도 나 때문에 그 사람을 존중해야 한다.

 

1967년 6월 26일

같이 나누는 사랑의 우아한 끈으로 네 생각을 내 생각에, 네 마음을 내 마음에, 네 뜻을 내 뜻에 얽어 매어라.

네 모든 행위에서 네 하느님을 찬미하여라.
모든 사람에게 평화의 감실이 되어라.

 

1967년 6월 27일

(성당에서:)
내 딸아, 하느님의 고독이 어떤 것인지 아느냐?
사람이 많이 몰려드는 가운데에서도 고독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느냐?
내 둘레에는 빈 자리가 너무 많다.
그런데 내 사랑은 그것을 참아견디지 못한다.

 

1967년 6월 28일

그 덧없는 영광에서 무엇이 남아 있느냐? 재 한줌밖에 아무것도 안남았다.
그런데 너희들은 그것 때문에 너희들의 영원한 구원을 위태롭게 한다. 정말 잘 들어라. 너희들의 더없는 즐거움이 되던 것을 없애는 데에는 1초면 넉넉하다.
나는 너희가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 시간에 오며, 아무도 그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1967년 6월 29일

네 첫 반응을 내 마음 속에 던져라. 그것들은 내가 네게 맡긴 사랑의 사명과 양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불완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네가 완전하기를 원한다. 너는 네 온 사랑을 기울여 다른 사람들의 소원을 미리 알아차려서 만족시키고 그들을 도와 주어라.
작은 영혼아, 만일 네가 원하면, 피로가 힘으로 변하고, 걱정이 기쁨으로, 이기주의가 너그러움으로 변하며, 자존심과 체면존중의 영웅적인 행위로, 버림이 하느님 사랑의 순금으로 변한다는 것을 나에게서 배워라.
네 비참을 알아라, 그러면 그것과 싸우는데 쓰는 무기를, 원수의 화살이 와서 부러지는 방패를 얻게 될 것이다. 약한 자들의 갑옷이며 강한 자들의 갑옷인 거룩한 겸손을 말하는 것이니, 이것에 대항해서는 아무도 어떻게 하지 못한다.
그것이 하느님께서 입으신 옷이고, 내가 너더러 입으라고 하는 옷이다.
내 딸아, 내가 네게 가르쳐 주는 것을 잘 실천에 옮겨라. 그리고 겸손이 성덕의 길이라는 것을 믿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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