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12월 1일
나를 생각하여라. 그리고 내가 되어라.
논쟁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
내가 너 대신 보고 듣는다.
내가 너이고, 네가 나이다. 너를 맡겨라.
나는 네 고향인 천국으로 인도하는 왕도(王道)이다.
1967년 12월 5일
작은 영혼의 하루 일과는 다음과 같다.
교황을 위하여, 그의 의향대로, 교회와 모든 사제를 위하여,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리고 내 숭고한 마음과 마리아의 고통당하는 티없는 마음에 심한 상처를 주는 모욕과 보속을 위하여 하루를 바친다.
나는 각 영혼에게 모든 사람과 각자에게 있는 이기주의에 대하여 전적이고 용감한 노력으로 싸우라고 권고하고, 이웃에 대하여 큰 사랑을 가지라고 권고한다.
묵주의 기도의 보급, 이렇게 하면 교회와 사제들을 위하여 많은 은총을 얻게 될 것이다.
묵상기도는 각 사람에게 그의 시간여유에 따라 선택하게 한다. 그러나 중대한 이유 없이는 그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라.
묵상기도가 너희들 영혼에 힘을 불어넣음으로써 성화(聖化)와 지식의 확실한 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작은 영혼들이 사랑과 열성으로 이 의향에 일치하기를 바란다. 하느님과 너희들 사이에 끊임없는 접촉을 유지하기 위하여 강렬한 갈망으로 너희 하느님을 자주 기억하여라.
너희를 온전히 내 뜻에 맡기고, 나를 신뢰하여라.
이것이 그의 멍에를 받아들일 작은 영혼 누구나가 존중하고 실천해야 할 규칙이다. 그 멍에가 용감한 사람들에게는 기분좋고 사랑스러우리라는 것을 단단히 믿어라.
만일 너희가 이렇게 하면 악의 전진이 정지될 것이고, 많은 사람이 자기 반성을 하고 선의 근원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말하고 또 말한다.
내 작은 영혼들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사방에 성덕의 작은 섬들을 만들어라.
어떤 본당에 있는 거룩한 영혼 몇이 한 본당을 구할 수 있다.
거룩한 영혼을 가지고 있는 여러 본당이 한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사랑을 생활하고 빛나게 해야 한다.
그러나 희생없이는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다.
1967년 12월 12일
(메시지는 아침 이슬과 같이 세상에 퍼져서 위로하고, 인도하고, 불안한 영혼들에게 평화를 다시 줄 것이다.)
1967년 12월 17일
세상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봐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세상과 세상의 유혹은 흔히 가장 올바른 영혼들에게도 영향을 미쳐, 그들이 무엇을 위하여 났는지를 잊게 하고, 또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그들의 의무의 가장 기초적인 개념을 잊어버리게까지 한다.
그들의 창조주의 지상권(至上勸)이 그들에게는 부차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땅과 땅 위에 기어 다니는 것을 내려다보기 때문에, 그들을 움직이고 있는 감정들은 굴종의 감정이다. 그들의 영혼은 그들의 약함에 사로잡혀 있다. 설탕을 입힌 싸구려 약이 항상 그 쓴맛을 감추지는 못한다. 그들은 그들의 하느님의 심판보다 사람들의 비판을 더 두려워한다. 그렇게 때문에 그들은 필요불가결한 결정을 자유롭게 취하지 못한다. 이 사실로 인하여 그들은 정신과 마음을 보시고 살피시는 분 앞에 죄인들이 되는 것이다.
1967년 12월 18일
네가 네 약함과 네 무능을 느끼는 것은 내가 너에게 제물로 바쳐지신 하느님의 겸손을 주었기 때문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의 비참을 알려고 하는 생각이 없다.
1967년 12월 23일
네가 그렇게도 꾸준히 나를 찾는데, 내가 왜 형태를 감추겠느냐?
1967년 12월 25일
(성당 구유 앞에서:)
나는 너를 안아주고 내 무한한 사랑으로 타오르게 한 사람이다. 사람들이 착하고 너그러우며, 그들에 대한 내 사랑의 즐거움을 깨닫고 그리로 피난해 오며, 그들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고 내 평화가 그들 위에 머물러 있도록 기도하여라.
1967년 12월 26일
그들은 왜 실재하는 것의 진리를 연구하기를 원치 않느냐?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마는, 그들이 자신에 대하여 모순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나는 네게 작은 영혼들에게 가장 유리한 “작은 길”을 가르쳐 준다. 그들에게는 나를 위한 노력이든지 영혼들을 되찾게 하는 넘쳐흐르는 너그러움을 가져다 줄 것이다.
네 하느님인 내가 네게 필요한 때 언제든지 도움과 구제를 약속한다. 그리고 이를 위하여 피조물들을 쓰겠다.
마지막 시간까지 항상 “나중에”라는 말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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