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10월 2일
사랑의 전당은 그 중심에 우뚝 서 있는데, 그 중심은 교황권의 본거이다.
1969년 10월 6일
은총이 사람에게 충분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은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그가 다시 현명하게 되면, 그가 이미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것을 찾으러 아주 멀리까지 가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은 오므라지게 하고, 사랑은 늘어나게 한다.
신뢰는 내 마음을 불붙은 화살로 상하게 하고, 그 안에 숨겨둔 은총의 보물들을 빼앗아간다.
바람(희망)은 나 안에서 심오한 메아리를 만나게 되는데, 이 메아리는 사랑의 되돌아옴으로 표현된다.
믿음이 비틀거리면... 사랑의 행위 하나가 튼튼하게 한다.
1969년 10월 17일
사람의 죄는 그 벌을 부른다.
사람 때문에 악이 온다. 내가 내 정의를 풀어놓지 않는 것도 사람때문이다. 내가 사람을 아직도 무한한 사랑으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1969년 10월 21일
세상은 사랑이 없어서 죽어간다. 그런데 사랑만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내가 더 끌어당길 의무가 있다고 느끼지 않게 될 만큼 내게 가까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1969년 10월 24일
네 비참은 내 자비를 끌어당기고, 또 내 자비를 더없이 기쁘게 한다. 내 어린 자녀들아, 만일 너희에게 용서할 것이 아무것도 없으면, 내 자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지 말해 보아라.
내 정의가 존재이유가 있다면, 내 자비는 존재할 권리가 얼마나 더 있겠느냐? 내 자비는 너희들에 대한 내 사랑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느님이 그의 죄지은 불쌍한 자녀들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 애정의 팔을 그들에게 활짝 벌리기까지 한다. 하느님의 용서와 사랑은 하나이며, 너희들의 죄가 하느님을 너희에게서 영원히 멀어지게 하지는 못한다.
가책을 느끼며 죄를 짓는 사람은 정말 불쌍히 여길 만하다.
그러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죄를 짓는 사람은 정말 지옥에 떨어져 마땅하다.
1969년 10월 27일
내 어린 자녀들의 영광은 그들의 하느님의 마음에서 얻어내는 것이다.
사랑이 있는 곳에는 어려울 것이 없어진다. 모든 것이 그 한없는 사랑 속에서 녹아서 사라진다.
내 딸아, 작은 영혼 하나하나를 애정으로 받아들이고, 그에게 작은 빛이 되어 주어라.
충실과 너그러움은 사랑 없이는 인간적인 가치나 하느님의 가치로 보아서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힘들여 얻는 선이다.
오만은 육체의 죽음보다 더 나쁘다. 그것은 영혼들의 죽음과 타락이며, 그들에게 하느님의 벌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나희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통하여 이웃을 사랑하여라. 희생은 하늘의 영광에 이르기를 갈망하는 모든 사람의 생활의 일부가 된다. 너희 약한 힘에 어울리는 희생, 내 정의를 달래고, 그렇게 해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희생들 말이다.
너희 마음 속에 거룩한 욕심을 품어라. 그리하여 너희 마음이 은총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기 바란다.
너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은 찾지 말아라. 차라리 하느님의 선물을 깨끗한 마음 속에 보존하도록 힘써라.
내 모습을 따라 온유하고 인내하고 자비로와라.
늑대들은 으르렁거리라고 내버려두어라. 그렇게 하면 사랑이 없기 때문에 죽은 사람의 행실인 그들의 행실을 가지고 사람들의 그들을 알아보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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